반칙을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후반전이 시작된 후 노츠 카운티와 아틀레티코는 진형의 변화가 없었다. 다만 아틀레티코가 공격에 더 많은 인원을 투입하기 시작했고 노츠 카운티는 수비에 더 신경 쓰기 시작했다. 먼저 선수를 교체하는 팀이 후반전에 피동적인 상황에 놓인다. 기신은 수비형 선수 한 명을 올리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았다.
차베즈는 상상외로 전술 이해가 높았다.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이해하고 수비와 공격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되었다. 산시스의 체력을 아끼지 않는 플레이와 차범수의 침착한 지휘로 노츠 카운티는 안정적인 수비를 보였다.
기신과의 면담으로 자신의 문제를 알아차린 터너는 팀에 사흘의 휴가를 얻어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캐리어가 주전으로 출전한 리그 경기에서 노츠 카운티는 0:3으로 웨스트브롬에 패배하여 언론의 비난을 받았다.
여행을 다녀온 후 터너의 출격 수치는 3으로 성장했다. 여전히 못 봐줄 수치지만 그래도 심리적인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는 뜻이다. 자신이 회전이 많은 공에 약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터너는 공을 잡을지 쳐낼지 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제레미와 발을 맞춘 나이스도 경기장을 넓게 사용하며 자신의 능력을 여감 없이 뽐냈다. 토마스나 마티야와 함께 출전했을 때 나이스는 이번 경기처럼 마음껏 날뛰지 못했다. 김시웅과 베노도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주면서 아틀레티코에 변화를 강요했다.
경기 65분 시메오네는 두 명의 선수를 한꺼번에 교체했다. 기신은 곧바로 엑토르를 내리고 그레이를 출전시켰다. 엑토르는 오늘 경기에 자신의 모든 능력을 바닥까지 긁어서 사용하여 체력이 부족했다. 체력이 뛰어난 편이지만 이런 식으로 경기를 해본 적이 없어 완급조절에 실패했다.
보나비치는 '자의'로 미드필더 자리에 가서 수비에 참여했다. 예전에는 기신의 지시로 미드필더 자리로 이동했지만, 오늘은 자신의 판단으로 움직였다. 본인의 의지로 한 결정이어서 그런지 보나비치의 움직임이 경쾌해 보였다.
아틀레티코는 진형이 무의미한 팀이다. 4-4-2를 즐겨 사용하지만, 경기 도중 수시로 경기 상황에 따라 위치의 이동이 생긴다. 새로 올린 두 선수도 미드필더로 분류되었지만, 공격수나 다름없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레이는 차범수와 산시스보다 앞에 자리했다. 뛰어난 체력과 넓은 활동 범위 그리고 출중한 일대일 수비 능력으로 아틀레티코 선수들이 편한 패스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그리고 틈이 날 때마다 관객석을 한 번씩 바라보았다.
봉인을 풀어달라고 외치는 그레이를 위해 기신은 가투소를 청해왔다. 감독 생활에 실패하고 집에서 놀고 있던 가투소는 노츠 카운티의 요청에 선뜻 응했다. 가투소를 만난 그레이는 초면에 가투소를 그러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레이는 가투소와 함께 가투소의 경기들을 곱씹었다. 경기의 세세한 부분은 가투소 본인보다 그레이가 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가투소는 당시 자신이 했던 생각들, 자신이 잘했던 점과 부족했던 부분을 그레이에게 얘기해 주었다. 그레이는 가투소의 말을 귀담아들으면서 생각의 폭을 넓혀갔다.
오늘 경기에 가투소는 관객석에 앉아 경기를 관람했다. 후반전 그레이가 출전하자 그레이의 플레이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레이의 플레이는 가투소의 흔적이 꽤 많이 보였다. 가투소는 갑자기 그레이를 세계적인 수비형 미드필더로 키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육체적인 부분이나 투지는 그레이가 자신보다 더 뛰어났다.
차범수도 기신과 개인 면담을 했다. 기신은 차범수가 노츠 카운티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인지 명확히 알려주었다. 부담이 커지면 경기에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선수들이 있다. 블랙이 그랬고 호세가 그랬다. 차범수는 이들과 반대다. 책임감이 막중할수록 더 힘내는 선수다.
차범수는 자신을 단순히 수비형 미드필더 그리고 팀의 수비를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적지 않은 경기에서 팀 전체를 지휘했음에도 자각이 없었다. 기신과의 면담을 통해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새롭게 인식한 차범수는 이번 경기에서 더욱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예전처럼 선수들의 수비 위치를 지시할 필요는 없다. 영입한 선수들은 수준이 높은 편이고 예전의 애송이들도 어엿이 자기 몫을 하는 선수가 되었다. 차범수는 수비 중심을 왼쪽에 둘지 오른쪽에 둘지, 수비 라인을 올릴지 내릴지, 수비에만 집중할지 반격도 고민할지 등을 결정하고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제레미가 나이스 그리고 차범수가 중앙에서 버티고 김시웅과 베노가 양쪽에서 안정적인 수비를 보였다. 산시스가 차범수의 지시에 따라 수비 중심을 왼쪽과 오른쪽으로 옮겼다. 앞에는 그레이와 차베즈 그리고 보나비치가 엄청난 활동량을 보이며 아틀레티코의 리듬을 파괴하고 있다.
시메오네는 더 버티지 못하고 75분에 마지막 교체를 했다. 풀백 한 명을 내리고 공격수를 올린 다음 스리백을 구성했다. 골 하나 넣으면 전원 수비를 할 것이다. 기신은 교체를 고민하다가 5분만 기다리기로 했다.
아틀레티코는 기신에게 5분의 시간을 주지 않았다. 코너킥 상황에서 아틀레티코 중앙수비수가 헤딩으로 골을 넣었다. 노츠 카운티의 선수들은 헤딩한 공이 선수의 팔을 스치며 반칙했음을 어필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틀레티코가 수비 라인을 내리고 수비에 전념하자 기신은 아일츠를 출전시켰다. 많이 지친 차베즈를 내리고 아일츠와 헌터의 헤딩 그리고 남은 선수들의 중거리 슈팅에 기대를 걸었다. 아틀레티코가 밀집 수비를 하기에 침투는 의미가 없다.
베노의 왼손이 슬쩍 올라갔지만 아틀레티코 수비수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베노는 진짜로 크로스를 올렸다. 헌터는 공이 베노의 발을 떠나는 순간 점프를 했다. 체공 시간이 길고 허리 근육이 강한 헌터는 이렇게 미리 뛰어도 공중에서 자세를 바꿀 수 있다. 공의 궤적을 판단하는 시간을 아낄 수 있기에 헌터의 헤딩은 무척 위력적이다.
그러나 베노의 공은 평소보다 더 큰 포물선을 그렸다. 수비수의 방해를 고려해 평소보다 조금 더 높게 찼다. 먼 포스트에서 아일츠가 살짝 점프했다. 아일츠가 헤딩한 공은 골대와 한 번 접촉한 후 골문 안에 들어갔다.
많은 선수가 엉키고 있고 아일츠의 헤딩 동작이 너무 수줍어서 주심이 호루라기를 불고 나서야 대다수 관객은 골이 들어간 것을 알아차렸다. 5만이 넘는 홈팬이 저마다 다른 소리를 냈다. 메도 레인은 순식간에 들끓었다.
골을 넣은 아일츠는 눈물을 글썽이며 동쪽으로 뛰었다. 그곳에는 아일츠의 아내와 두 아이가 와 있었다. 시즌 초반 예상외로 많은 출전 기회를 얻었지만, 후반기에 와서 출장이 점점 줄었다. 그래서 아일츠는 성급하게 가족을 영국으로 부른 것을 후회했다.
오늘 경기도 벤치 명단에 들게 되었지만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노츠 카운티도 아일츠 입장에서는 천상계의 팀이었다. 아틀레티코는 명성이나 지위가 노츠 카운티보다 훨씬 대단한 팀이다. 그리고 첫 경기에서 진 상황이라 자신의 출전을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골을 넣어버렸다. 그것도 공이 아일츠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점프가 필요 없지만 점프를 하면 헤딩 동작을 더 정확하게 할 수 있다. 헤딩 훈련을 할 때 항상 점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일츠는 수줍게 점프를 하고 고개를 갸우뚱해서 헤딩슛했다.
아틀레티코는 다시 태세를 바꾸어 공격에 집중했다. 헌터는 중앙선에 남아 상대 수비수 두 명을 붙잡았지만 아일츠는 중앙수비수 위치로 가서 수비를 도왔다. 유스 시절에는 중앙수비수로 뛰었다. 키가 너무 커진 후 돌파를 자주 당해 공격수로 위치 변경을 했다. 수비만 하는 상황에서 아일츠는 반사람 몫은 해냈다.
코너킥 상황에 헌터까지 수비하기 위해 돌아왔다. 아까 공이 팔에 스쳤다고 하지만 스치지 않았어도 골이 되었을 것이다. 아틀레티코 중앙수비수들은 키가 190이 되는 선수가 한 명도 없지만, 이들의 코너킥은 무척 위협적이었다.
아일츠가 헤딩으로 공을 밖으로 걷어냈다. 불행히도 아크 지역에서 공을 잡은 것은 아틀레티코 선수였다. 다른 선수들은 헤딩할 때 차범수나 김시웅의 위치를 알고 그쪽으로 하지만 출전이 적은 아일츠는 그것을 몰랐다.
아틀레티코 선수의 슛은 누군가의 다리에 맞아 굴절되었다. 터너 기준으로 왼쪽 골대에 서 있다가 앞으로 달려 나오던 베노가 공을 막기 위해 몸을 날렸다. 불행히도 공은 베노의 펼친 팔에 맞았다.
페널티 포인트를 가리킨 주심은 오른손을 엉덩이 쪽으로 가져갔다. 왼쪽 가슴 주머니는 노란 카드고 오른쪽 엉덩이 주머니는 붉은 카드다. 베노는 카드 색깔이 궁금하지 않았다. 얼굴을 감싸 쥔 베노는 경기장 밖으로 걸어 나갔다.
뒤에서 터너의 외침이 들렸다. 걱정하지 말라며 뭐라고 하는데 스코틀랜드 억양이 강해서 마지막 말은 알아듣지 못했다. 베노는 언론과 축구 팬들이 자신을 얼마나 물어뜯을지 예상이 되었지만, 절대 후회하지 않았다.
모든 관객이 일어섰다. 경기는 인저리 타임까지 합쳐도 5분이 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서 실점하면 결승전으로 향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기신은 산시스를 내리고 블랙을 출전시켰다.
"블랙, 오늘 경기에서는 크로스만 보여줘. 남은 건 결승전에서 깜짝 공개하자고."
블랙 역시 이번 시즌 출전이 적었다. 남아도는 시간에 블랙은 개인 훈련에 집중했다. 현재 블랙의 크로스 수치를 기신이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컨디션이 좋을 때는 팀 누구보다 훌륭한 크로스를 올린다.
아일츠는 눈을 감고 기도를 올렸다. 자신이 공을 제대로 걷어내지 못해 팀이 실점 위기에 놓인 것 같아 자책했다. 골대에서 등을 돌린 아일츠는 기도가 끝났지만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홈팬들의 환호에 아일츠는 눈을 빼꼼 떴다. 관객들이 모두 제자리 뜀을 하는 것을 확인한 아일츠는 고개를 돌렸다. 터너가 두 손으로 공을 잡고 머리 위에 번쩍 들고 있었다. 보나비치와 같은 칩슛을 시도했지만, 아틀레티코 선수는 다른 결과를 얻었다.
블랙은 왼쪽 풀백으로 출전해 몇 번 없는 기회에 자신의 크로스를 자랑했다. 반대편의 김시웅에게 패스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3:1로 경기가 끝나자 장내 아나운서는 선수들의 이름을 하나씩 호명했다. 아일츠의 이름을 부를 때는 오늘 경기의 영웅, 노츠 카운티의 구원자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가족이 와 있어 서비스해준 것이다.
"오늘 저의 스포츠 정신에 어긋나는 행위에 대해 심각하게 반성하고 있습니다. 모든 축구 관계자와 축구를 사랑하는 팬분들에게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저는 당시 가슴으로 공을 막아낼 수 있다는 잘못된 판단을 했습니다. 고의는 아니지만, 오늘의 행위에 대해 심각히 반성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항상 명심하겠습니다."
베노는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직접 붉은 카드를 받았기 때문에 최소 2경기 출장정지는 받아야 한다. 훌륭한 반성 태도를 보여주면 UEFA에서 추가 징계를 내리지 않을 수 있다.
다행히 이번 경기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선수는 아일츠다. 독일 2부리그에서도 벤치만 지키던 선수가 노츠 카운티로 이적하여 리그 우승과 리그 컵 우승을 했다.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 결승 골을 넣기도 했다. 독일 동포 덕분에 베노는 언론과 팬들의 질타를 덜 받을 수 있었다.
- 작가의말
사실 베노의 반칙은 고의입니다. 이건 우리끼리만 아는 비밀로 하죠. 오늘은 세 편으로 끝내고 힘을 비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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