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신 의혹이 사라지다
세 번째여서 그런지 익숙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시야가 다시 회복되자 푸른색의 드래곤을 머리 위에 얹은 기신의 모습이 보였다. 신기는 새롭게 얻은 블루 드래곤의 조화를 자랑하기 위해 가운뎃손가락을 뽑아들었다.
"퀘스트 완성했어. 얼른 다음 퀘스트 정보 뱉어내."
신기의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에는 푸른색의 띠와 나뭇잎 모양의 문양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다. 기신은 똑같이 가운뎃손가락을 보여주고 나서 대답했다.
"손가락 치워. 다음 목표는 골드 드래곤의 지혜야. 위치는 황산이고 소유자는 모산파의 도사라고 나와있어."
"황산이라면 아직 괴수들의 영역인데. 부하들은 두고 혼자서 가야 하겠구나."
신기는 그간 있었던 일들을 기신에게 들려주었다. 심판의 검의 시험을 받은 이야기를 할 때는 가볍게 통과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힘들 때 의지했던 인물들 사이에 기신도 있었기에 솔직하게 말하기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신기의 말을 듣고 기신은 신기의 행보에 대해 평가했다. 기신이 평화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프리카에 대해 추가로 복수를 해야 한다고 말해 신기를 놀라게 했다.
"너는 그 세상을 구원해야 해. 그게 혼자의 힘으로 될 것이 아니니 분명 아프리카의 힘도 필요할 거야. 그런데 앙금이 남아있으면 안 되니까 차라리 힘으로 눌러버려."
신기의 이야기가 끝나자 기신의 이야기로 넘어갔다. 피오렌티나 다음으로 만난 적수는 독일의 분데스리가 전통적인 강팀인 샬케였다. 원정 경기에서 스벤이 두 골을 득점하여 2:2로 비겼고 홈에서는 딕슨의 헤딩슛으로 1:1로 비기게 되었다. 원정 다득점으로 8강에 진출한 노츠 카운티는 아약스를 만나게 되었다.
홈 2:0에 원정 0:2로 결국 승부차기까지 가게 되었다. 터너 덕분에 승부차기로 힘겹게 승리하고 준결승에서 프랑스 리그앙의 강팀인 리옹과의 원정경기를 앞두고 있다.
"사실 두 경기 전부 실력적으로 차이가 확연한 경기인데 우리가 결국 승리했어. 아직도 뭔가 초월적인 힘이 작용하는 게 아닐까?"
기신의 말에 신기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너에게는 초월적인 힘의 간섭이 없어. 상대의 운명에 간섭을 하려면 우선 DPP를 소모해야 하고 또 하나는 상대와 연결이 있어야 해. 너는 나와만 연결되어 있으니 지금의 성과는 모두 네 힘으로 이루어낸 것이야."
중이 자기 머리를 못 깎는다는 말은 어떤 영화를 통해 틀렸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하지만 신기의 직관력은 기신의 상태에 대해서는 정확히 판단했지만 신기 자신에 대해서는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직관력에 신기의 주관이 섞이기 때문에 본인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은 아직 어렵다.
"네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되면서도 걱정도 되는구나. 지금까지의 성과가 모두의 노력의 성과라고 하니 기쁘기는 한데 결국 우리가 잘 못하면 경기에서 진다는 말이니 리옹을 이길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 나는야 진지한 분계선 ###
경기 시작 두 시간 전에 기신은 국제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전화를 한 사람은 김 전무였다.
"자네 덕분에 내년이면 전자 사장을 김 씨가 하게 되었네. 자네에게 고맙다는 말도 하고 싶고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었으면 해서 전화를 했네."
"그럼 더 열심히 해서 꼭 승리해야겠습니다. 광고비 많이 받으려면 말이죠."
기신은 광고비를 받지 않고 1년의 광고 계약을 맺었다. 동양인 감독으로서 유로파리그 4강까지 간 기신은 이미 유명인이다. 처음엔 기신의 광고를 보면서 뭐지 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기신이 누군지 다 알게 되었다. 엄청난 팬덤이 형성된 것은 아니지만 인지도 하나만은 대한민국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기신이다.
"걱정 말게. 이번에는 장기 계약에다 계약금도 팍팍 쏴줄 테니 말일세."
김 전무와의 전화를 마친 기신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리그 경기는 어렵지만 유로파리그는 꼭 챙겨 보신다고 한다. 김 전무와의 통화로 마음의 안정을 많이 찾은 기신은 아버지와도 통화를 하고 싶었다.
"아들, 바쁘지 않아?"
"짬을 내서 전화했어요. 곧 인터뷰 들어가야 돼요."
"아들, 난 네가 참으로 자랑스럽다."
"고마워요. 더 자랑스러운 아들이 될게요."
인터뷰 시간에 오늘 경기의 결과를 어떻게 예상하냐는 질문에 기신은 짧게 대답했다.
"오늘 경기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결승으로는 우리가 갈 겁니다."
젊은 선수들의 패기가 경기 초반에 우위를 보여주었다. 전반 22분 만에 헌터가 헤딩으로 선득점을 올렸다. 9골로 현재 골든 슈즈의 유력한 경쟁자인 헌터는 상대하는 팀의 실력이 점점 강해지고 집중적인 마킹까지 당하기 때문에 득점이 어려워졌는데 중요한 경기에 빅게임 플레이어답게 선득점을 올렸다.
하지만 곧바로 노츠 카운티의 공격에 비해 수비가 부실한 결함이 드러났다. 홈에서 실점을 한 리옹이 공격의 강도를 높였고 노츠 카운티는 결국 후반전에 3실점을 하여 1:3으로 패배하게 되었다. 중앙 수비수의 자리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두 번이나 한 호세는 경기가 끝나자 경기장에 주저앉아 펑펑 울음을 터뜨렸다.
블랙 역시 몇 번이나 큰 실수를 했지만 터너의 선방 덕분에 실점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블랙은 호세를 일으켜서 눈물을 그치게 한 뒤 위로의 말을 건넸다. 강심장이지만 기술적으로 많이 부족한 블랙과 기술은 완성되었지만 심리적인 원인으로 자주 실수를 하는 호세는 서로에게 배우면서 절친이 되었다.
"결정적인 실수를 두 번이나 한 호세나 실수를 여러 번 반복한 블랙을 경기 마지막까지 교체하지 않았습니다. 젊은 선수들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패배한 기신에게 기자가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기신도 저 기자가 자신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 것이 아님을 안다. 훈풍이 아닌 된바람을 맞게 된 것은 경기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다.
현장지휘 10인 기신은 속도가 느린 마르코와 딕슨을 올리면 더 큰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리옹의 두 명의 공격수는 속도가 무척이나 빨랐다. 리옹이 스피드가 빠른 공격수를 두 명이나 올릴 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대비를 못한 기신의 실책이다. 교체 기회가 세 번밖에 없기 때문에 선발진에서 지고 들어간 기신은 경기 내내 피동적인 입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젊은 선수들이 경기를 통해 성장하기를 바랐는데 제가 잘못 생각한 것 같습니다. 젊은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당분간 출전을 보류하겠습니다."
공격수가 한 명이라면 둘이 협력해서 잘 막아낼 수 있었으나 혼자서 공격수 한 명씩 맡아야 하기 때문에 실수를 했다. 왕후이나 안투이가 이들을 도왔어야 했는데 안투이는 자기 자리만 지키는 스타일이고 왕후이는 경험이 부족해서 제대로 된 도움을 주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미드필드에서 너무 크게 밀린 것이다.'
차범수와 그레이의 조합은 아주 괜찮았다. 하지만 영어가 서투른 에두아도와 영어 발음이 좋지 않은 차범수는 의사소통이 빠르게 되지 않았다. 더구나 차범수는 그레이를 지휘하는 데도 신경을 써야 하기에 상대의 강한 압박에 속절없이 밀렸다.
노츠 카운티로 돌아온 후에도 기신은 경기 중에 느꼈던 부족점들을 되새기며 홈경기를 준비했다. 이번 패배를 통해 많은 교훈을 얻은 기신이다.
우선 경기 당일 아침에 훈련 경기를 통해 선발진을 정하는 것을 이제는 그만둬야 할 것 같다. 지난 시즌에야 선수들의 실력이 엇비슷하기에 컨디션이 좋은 선수를 올리는 것이 좋았지만 선수 사이의 실력 차이가 명확한 지금 큰 의미가 없다. 오히려 선발진을 늦게 정해서 선수들 사이의 합에 문제가 생기는 단점이 도드라지게 나타났다.
다음으로는 그레이와 차범수를 서로에게서 해방시킬 필요가 있다. 차범수는 그레이를 신경 쓰느라 강한 상대와의 경기에서 자기 실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레이 역시 수비 상황에서는 차범수의 지시가 없어도 알아서 잘 할 수 있는데 항상 차범수의 지시대로 움직이려 해서 한 템포 느린 감이 있다.
공격 상황에서만 차범수가 위치를 지정해주고 수비 상황에서는 알아서 움직이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신은 리그 경기에 그레이만 출전 시키고 차범수는 벤치에 앉혔다. 그리고 훈련 과정에서도 이 점을 계속하여 강조했다.
또 하나는 호세의 문제점이다. 팀워크 2가 이제는 7로 상승했고 판단력 4 역시 7이 되었다. 안정성 3이 6이 되었고 침착성 3 역시 6이 되었다. 상승한 수치만 보고 자주 센터백 자리에 넣었는데 아직 호세는 상승한 수치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능력은 그만큼 상승이 되었지만 그 능력으로 경기를 하여 자신감을 얻은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강한 적수와의 대결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한 것이다.
"호세의 위치는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 사이로 해서 프리롤을 주어야겠어."
한참을 고민하던 기신은 동전 하나를 꺼내서 허공에 던졌다. 다가오는 홈경기에서 리옹이 공격수 한 명을 쓸지 두 명을 쓸지 행운에 맡기기로 했다. 동전의 결과에 따라 미리 선발진을 정한 기신은 유로파리그를 위한 특별 전술훈련을 진행했다. 이른바 너는 후반전까지 살아라 나는 전반전만 산다 작전이었다.
드디어 5월 12일 노츠 카운티는 메도 레인에서 역사적인 유로파리그 준결승전을 맞이하게 되었다. 물론 그전에도 역사적인 8강전이라든가 16강전이라든가 하는 경기들이 있었다. 준결승전에 진출한 것만으로도 팬들은 만족한 상태이기 때문에 첫 경기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팬들의 얼굴은 밝았다.
관객석 곳곳에는 얼굴에 마스크를 착용한 노츠 카운티의 팬들이 있었다. 맨스필드나 포레스트로부터 배신을 하고 새롭게 노츠 카운티의 팬이 된 사람들이다. 아직 들키면 안 되기 때문에 이들은 마스크를 쓰고 경기장에 온 것이다. 노팅엄 포레스트는 우승컵이 열 개가 넘고 특히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언컵에서 2년 연속 우승을 한 팀이다.
"지난 원정 때 인터뷰에서 결승에 올라가는 것은 노츠 카운티라고 말씀하셨는데 아직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까?"
"물론입니다. 오늘 경기에서 진정한 공격 축구가 무엇인지 보여드리겠습니다."
"선발진을 보니 지난 경기에서 실수를 반복한 블랙과 호세가 명단에 포함되어 있네요. 그리고 상대 미드필더들에게 완전히 제압을 당한 그레이와 차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신 지난 경기에서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준 안투이와 왕은 보이지 않고 있네요. 혹시 지난 경기 후 감독에게 쏟아진 비판에 대한 반발인가요?"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경기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제가 합니다. 기자들이 하는 게 아니고요. 그렇게 대단하시면 축구 감독하시지 왜 기자를 합니까? 다 끝난 경기를 가지고 결과론적으로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귀담아듣지도 않고 거기에 반발할 필요도 못 느끼고 있습니다."
"이번 경기를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점수를 어떻게 예상하시나요?"
"제가 점술사가 아니라서 점수까지 예상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기신은 신문 한 장을 펼쳐들었다. 1면에는 지난 경기가 끝나고 얼굴을 크게 찡그린 기신의 사진이 실려있었다.
"오늘 경기 끝난 후 원정팀 감독이 지을 표정입니다. 제가 원정에서 당한 방식 그대로 갚아주도록 하겠습니다."
- 작가의말
기신이 다른 건 다 좋은데 언론을 상대할 때 지려고 하지 않는 습관이 있습니다. 자신에 대해 자부심이 강하지만 평소에는 겸손한 편입니다. 인터뷰 때만 말을 조금 강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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