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명, 선수들을 지켜라
7월에 들어서자 노츠 카운티는 재계약 및 선수 영입 소식을 연일 쏟아냈다.
- 엑토르 에르난데스, 4년 계약 새로 체결, 평생 노츠 카운티를 위해 헌신하고 싶다.
- 리차드 헌터, 5년 계약 새로 체결, 노츠 카운티 최고 주급 갱신.
- 스테판 보나비치, 5년 계약 새로 체결, 이 팀에서 나는 매일 나아지고 있다.
- 아기안 르노, 4년 계약 새로 체결, 날 포기한 팀들이 땅을 치며 후회하게 하겠다.
- 케이스 워드, 5년 계약 새로 체결, 이곳은 축구뿐 아니라 무엇이든 즐겁다.
- 피터 그레이, 4년 계약 새로 체결, 요즘 패스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 샘 터너, 5년 계약 새로 체결, 노츠 카운티의 수비는 내가 책임진다.
헌터는 6만 파운드의 주급을 받게 되었다. 핵심 선수들 전부 5만 파운드 이상의 주급을 받는다. 거기에 새로운 선수들의 영입 소식도 있었다.
- 산도르 구즈믹스, 자유 신분으로 노츠 카운티와 2년 계약.
- 스티븐 테일러, 맨시티의 유스 유망주 자유 신분으로 노츠 카운티와 2년 계약.
- 중국 키퍼 두레이, 왕후이와 김시웅의 전설을 이어갈까.
- 맥도날드, 120만 파운드로 노츠 카운티 이적, 스코틀랜드 최고의 풀백.
- 엘리엇, 자유 신분으로 이적, 빠른 발이 특기.
- 곤살레스, 자유 신분으로 이적, 엑토르와의 경쟁이 두렵지 않다.
맥도날드의 능력치는 49이고 엘리엇은 44이며, 곤살레스는 50으로 2부리그에서는 주전 경쟁이 가능하지만, 프리미어리그에서는 주전이 힘든 선수들이다. 세 선수는 구단 스카우트들이 어렵게 찾아낸 선수들로 기신도 영입에 동의했다.
나이스와 후안은 유스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을 체결하러 온 로베토를 강제로 병원에 데려가서 검사한 결과, 잘못 붙은 뼈를 부수고 다시 붙이면 정상인처럼 걸을 수 있다고 했다. 치료비는 회사와 구단이 각각 반씩 부담하기로 했다. 곧 15세가 되는 후안의 재능을 알아보는데 기신처럼 초월적인 능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이스는 지금 몸을 만들고 있다. 하루에 4끼씩 고기를 먹으며 체중을 불리고 근육을 만든다. 비싼 돈을 주고 데려온 피지컬 코치가 3개월간 나이스의 몸을 적정 체중으로 바꿔줄 것이다. 처음에는 즐거워하던 나이스는 요즘 식사 때만 되면 위에서 경련을 일으킨다고 한다.
후안은 규칙적인 훈련과 휴식 그리고 잠을 자는 생활습관을 기르고 있다. 최대한 키가 많이 자라기를 바라는 것이다. 훈련도 위치선정과 동료가 공을 잡은 상황에서의 움직임에 대해 집중적으로 훈련했다. 그리고 드리블이나 돌파에 비교해 다소 부족한 기본기도 처음부터 다졌다.
드리블과 돌파 능력이 좋은 선수들이 가끔 기본기가 좋다고 오해를 받는데 후안의 트래핑은 4밖에 되지 않았다. 기본기도 6으로 나이에 비해 나쁘지 않지만 이 둘을 끌어 올리면 더욱 대단한 선수가 될 것이다. 후안도 자신 하나를 위해 특별히 훈련 계획을 짜주고 전담 코치도 붙여주자 감동하여 열심히 훈련에 임했다.
두레이 역시 몸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소고기로 몸을 만드는 나이스와 달리 두레이는 닭고기로 몸을 만들었다. 둘의 체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두레이는 키퍼치고 팔과 상체 근육이 부실한 편이어서 부족한 근력도 끌어올려야 한다.
이 셋은 이번 시즌 전력 외라고 봐야 한다. 몸을 만들고 기본기를 다지는 것만으로 최소 일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후안과 나이스는 공이 없는 상황에서의 움직임을 훈련하는 데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팀워크가 둘 다 1이라는 처참한 수치다.
예외 없이 터너에 대한 이적 문의가 쏟아져 왔다. 작년 챔피언스리그에서 엄청난 실점을 하며 터너에 대한 평가가 하락한 적이 있다. 어떤 상황에도 골문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 약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챔피언십에서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자 평가가 오히려 더 좋아졌다.
반응이 빠르고 슈퍼 세이브를 자주 연출하는 터너를 데려가고 싶은 리그 중하위 팀들이 많다. 특히 수비 위주의 전술을 사용하는 팀들에게 터너는 황금마차를 끌고 가서라도 모셔오고 싶은 존재다. 리그 상위 팀들도 마찬가지다. 맨유의 데 헤아 역시 출격빈도가 낮은 키퍼이다. 가끔 실수하는 데 헤아에 비해 터너는 실수도 드물어서 잘 키우면 주전이 가능하고 지금 능력만으로도 벤치에 앉힐 수준이다.
보통 선수의 재계약 소식이 나가면 이적 문의가 줄어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터너와 엑토르 그리고 보나비치에 대한 문의는 끊이지 않았다. 헌터에 대한 문의도 많았지만 헌터가 공개적인 장소에서 노츠 카운티를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을 천명하여 셋에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4부리그부터 팀에 있었던 선수들 대부분이 팀을 떠났다. 백업 키퍼와 딕슨을 제외하고 3부 혹은 4부리그로 향했다. 딕슨은 1만2천 파운드의 주급으로 3년 계약을 하고 펑펑 울었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함을 잘 알지만, 프리미어리그를 한 경기라도 뛰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래서 남은 1년의 계약 기간에 교체로라도 경기를 뛰고 싶었는데 구단이 3년 계약을 딕슨에게 선물했다.
떠나는 선수들이 많아서 팀의 분위기가 다소 어수선했다. 하지만 기신과 구단의 노력에 힘입어 선수들을 지킬 수 있었다. 선수 보강을 해야 하는 팀들이 가능성이 낮은 선수를 계속 붙들고 있을 수 없기에 7월 중순이 넘어가자 이적 문의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8월에 접어들며 갑자기 차범수에 대한 이적 문의가 쇄도했다. 올림픽은 23세 이하의 선수 위주로 참가하기 때문에 많은 스카우트가 지켜보고 있었다. 한국은 조별 경기를 3승의 훌륭한 성적으로 치러 많은 사람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차범수가 있었다. 차범수 덕분에 공격형 선수 한 명을 더 투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수비가 빈틈이 없으니 팀의 실력이 한 단계 상승한 셈이다. 3경기에서 8득점을 하고 2실점만 했다. 페널티킥 하나 프리킥 하나 실점했다.
### 나는야 상큼한 분계선 ###
한국팀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한국은 준결승에서 1:0으로 승리하여 결승에 진출했지만, 일본은 2:3으로 패해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전반전에 2골을 먼저 넣은 상황에서 후반전에 역전을 당해 그 슬픔이 배가 되었다.
선수들은 TV 앞에 모여앉아 생방송을 지켜보았다. 생방송의 주인공은 차범수와 김시웅이다. 두 선수가 돌아오기를 기다려서 재계약을 하려 했는데 차범수의 이적 문의가 너무 많이 밀려오자 구단에서 급히 직원을 일본으로 파견했다. S 그룹이 나서서 재계약 장면을 생방송 하게 만들었다.
"주급 얼마래?"
"5만 파운드 이상이라고 하던데. 부러워 죽겠네."
누군가 핸드폰을 꺼냈다.
"우리 돈으로 7천5백 정도네. 한 달에 3억이라치면 일 년에 36억. 범수 형님 대단하시네."
큰 웃음이 터졌다. 차범수가 수비 지휘를 시작하면서 선수들은 머리를 비우고 경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차범수의 지시대로 위치를 잡고 훈련할 때 하던 것처럼 하면 웬만해서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실점을 잘 하지 않으니 자신감이 생겨서 움직임에 거침이 없고 집중력이 높아지니 실수를 덜 하게 된다.
"시웅이도 2만 파운드 이상이라던데."
"어허, 이놈이 시웅이 형 존함을 함부로 입에 올리네."
한바탕 투덕거림이 있었다. 결승에 진출했으니 군 면제는 이미 결정된 것이다. 그래서 선수들은 마음이 가벼웠다. 계약서에 사인한 후 사진을 찍고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틀 뒤면 결승전입니다. 결승에 임하는 각오 한마디 부탁합니다."
"저도 얻어들은 건데요. 금메달이 순금이 아니라 겉에 도금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차범수의 말에 웃음이 휩쓸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 메달에 담긴 명예가 금보다 훨씬 값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따낸 금메달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 국민의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를 응원해주시는 모든 분을 대표해, 기필코 금메달을 따내겠습니다."
세찬 박수 소리가 TV를 통해 들려왔다. 그때 이청수가 벌떡 일어나서 투덜거렸다.
"젠장, 푹 쉬다가 결승 대충 치르려 했는데 맏형이 초를 치네. 나는 가서 훈련이나 좀 더 해야겠다."
"형님, 나한테 슈팅 좀 가르쳐주슈. 우리 아들이 아빠는 왜 골 하나도 못 넣냐고 따지더라고."
좌측 수비수 손현민이 벌떡 일어났다. 두 선배가 일어서자 다른 선수들도 눈치가 보여 엉덩이를 뗐다. 그때 심 감독이 입을 열었다.
"우선은 쉬어. 이따 저녁에 범수하고 시웅이 개인훈련을 할 때 같이 해."
선수들은 다시 엉덩이를 바닥에 붙였다. 하지만 분위기는 전보다 아주 무거워졌다. 결승에 진출하고 들떴던 기분이 다소 가라앉자 심 감독이 다시 입을 열었다.
"범수하고 시웅이 매일 개인훈련을 하는 건 알지? 좀 쉬라고 하니까 영국에 있을 때는 더 많이 훈련했다고 하더라. 그리고 이 말도 하더라."
선수들의 시선을 집중시킨 심 감독은 말을 이었다.
"영국에 돌아가면 '진짜'들과 부딪혀야 한다고. 거기 애들은 올림픽 대표팀처럼 무른 애들이 아니라고."
"그럼 우리 범수 형님만 믿고 가면 금메달 가능한 겁니까?"
이청수의 말에 선수들은 킥킥거렸다. 무거워졌던 분위기가 가볍게 되었지만, 아까처럼 풀린 분위기는 아니다. 자세는 편하지만 신발 끈은 꽉 묶은, 언제든 팽팽하게 당겨질 수 있는 시위와 같은 상태가 되었다.
"청수 너 자꾸 나랑 맞먹으려 드네. 우리 범수 형이 언제 네 형이 되었어?"
심 감독의 말에 또 한 번 폭소가 터졌다. 사실 선수들을 모아놓고 차범수와 김시웅의 계약 장면을 보게 한 것은 풀어진 분위기를 조일 필요가 있어서였다. 어린 선수들의 성공한 모습을 보면서 마지막 경기에서 조금이라도 더 열의를 태우기를 바란 것이다.
차범수의 발언 때문에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지자 이청수가 눈치 빠르게 분위기를 풀었다. 풀었다 조였다가 또 풀었다 다시 조이니 정말 편한 분위기가 되었다. 긴장은 하되 걱정은 없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팀 전체가 필승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분위기가 적당하게 되자 감독과 코치들이 먼저 자리를 떴다. 계속 함께 있으면 자칫 분위기가 다시 무거워질 수 있다. 심 감독은 며칠 전 차범수와의 단독 대화를 회상했다.
"올해 2월인가부터, 갑자기 경기가 쉬워졌어요. 공을 잡은 사람이 무엇을 할지 대충 예상된다고 할까요? 올림픽 경기라고 해서 많이 기대했는데 여기 챔피언십보다도 더 쉬워요. 꼭 금메달을 따고 싶습니다."
심 감독도 선수 시절 그런 적이 있다. 하지만 그런 감각은 두 경기만 지속하고 사라졌다. 그 후 무던히 노력했지만 다시는 그런 감각을 맛보지 못했다. 차범수는 벌써 반년이 되는 시간을 그런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나는 뽀록이고, 이놈은 실력인 게지.'
국가대표 감독이 되고 싶다. 차범수만 있으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당장은 아니다. 스물도 안 된 차범수가 성인 국가팀에서 수비 지휘를 하면 팀의 단합이 깨질 것이다. 올림픽팀이야 아직 어린 선수들이어서 분위기를 적당히 잡아놓으면 다들 휩쓸리지만, 성인 대표팀은 어렵다. 심 감독 본인이 선수들을 휘어잡을 카리스마가 있거나 선수 혹은 감독으로서 절대적인 성적을 거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 작가의말
제가 이번 시즌 아스널 리그 컵 결승 진출을 예상했습니다. 물론 소설 속에서는 노츠 카운티에 패했죠. 오늘 글도 예언이 되었으면 합니다. 비록 차범수는 현실 속에 없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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