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저을 시간
11월 4일 첫 승리를 거둔 노츠 카운티는, 18일에 원정에서 본머스를 1:0으로 격파하고 26일 홈에서 울버햄튼을 3:0으로 완승했다. 본머스 경기에서 헌터가 첫 헤딩골을 넣었다. 울버햄튼전에서는 헌터, 르노, 보나비치가 각각 득점을 하나씩 올렸다.
3점으로 꼴찌를 달리던 노츠 카운티는 갑자기 각성하여 12점으로 16위를 차지하여 강등권을 탈출했다. 운으로 악으로 이긴 것이 아니라 상대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승점 자판기라는 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노츠 카운티의 팬들은 주술사가 시즌 초반에 주술력이 부족했다고 주장했다.
14라운드는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에서 아스널을 상대하게 되었다. 강등권인 18위와는 2점 차이밖에 안 되기 때문에 최소한 무승부는 이루어야 계속 강등권을 멀리할 수 있다. 최근 급격히 각성한 르노가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기신은 4-4-1-1의 윙이 없는 진형을 펼쳤다.
수비수는 큰 변화가 없었다. 개인 능력들은 부족하지만 많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 거기에 터너가 점점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주면서 최근 2경기를 무실점으로 마쳤다.
미드필더는 차범수와 그레이가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했고 보나비치와 에두아도가 좌우 미드필더로 출전했다. 에두아도가 왼쪽에서 조금 더 수비적으로 활동하고 보나비치가 오른쪽에서 좀 더 공격적으로 움직였다.
공격형 미드필더는 엑토르가 자리했고 헌터가 부동의 원톱으로 출전했다. 헌터는 최근 3경기 연속으로 득점하면서 괜찮은 골 감각을 자랑했다. 특히 홈에서의 두 골은 왼발과 오른발로 하나씩 넣어서 큰 의미가 있다.
경기가 시작되자 노츠 카운티는 공격의 고삐를 바싹 당겼다. 기술형 선수들이 많은 아스널은 초반에 집중이 떨어진다. 그리고 40분 이후에 집중력이 하락하는 고질적인 문제도 가지고 있다. 노츠 카운티는 경기가 시작하자 곧바로 강공을 펼쳤다.
그레이와 부딪힌 외질이 2미터 남짓이 날아갔지만 주심은 두 팔을 벌리며 반칙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둘이 부딪히기 전에 공의 소유권이 외질에게 있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레이는 곧바로 공을 차범수에게 패스했다.
차범수는 공을 받자 곧바로 헌터의 머리를 찾았다. 아스널의 주장인 메르테자커가 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헌터와 헤딩싸움을 할 수 있는 수비수가 없다. 오늘 노츠 카운티의 작전은 바로 수비에 치중하면서 헌터와 엑토르를 통해 반격하는 것이다.
헌터의 헤딩은 엑토르의 발밑에 안전하게 배송되었다. 엑토르는 상체를 세 번 흔드는 것으로 무스타피의 수비를 벗겨냈다. 엑토르가 무스타피를 돌파하자 왼쪽 풀백으로 출전한 몬레알이 다가왔다. 엑토르는 드리블을 자제하고 보나비치에게 패스했다.
보나비치는 공을 잡고 곧바로 크로스를 올렸다. 자카가 방해하기 전에 올린 크로스를 헌터가 헤딩했다. 다만 골대가 아닌 반대 방향으로 헤딩을 했다. 급가속으로 몬레알을 떨쳐버린 엑토르는 공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슛했다.
기본기 부족은 남미 선수 대부분의 문제점이다. 공을 다루는 감각이 뛰어나지만, 기본기와 트래핑이 부족하다. 그래서 체력이 부족하거나, 컨디션이 나쁘거나, 나이를 먹어 육체 능력이 하락하면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다. 엑토르 역시 기본기와 트래핑 수치가 6밖에 되지 않는다.
체흐의 뒤를 이어 아스널의 주전 골키퍼가 된 오스피나는 엑토르의 슈팅에 반응하지 못했다. 슈팅 동작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서 공을 트래핑하는 걸로 잘못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오스피나가 반응했을 때는 공이 이미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벵거 교수는 자신의 제자들에 대한 불만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수비수의 느린 반응, 미드필더들이 즉각 수비에 가담하지 않은 점, 상대의 슈팅을 관객처럼 지켜보기만 한 골키퍼, 메르테자커가 출전하지 못하면 원하지 않지만 가끔 보게 되는 광경이다.
14라운드에야 첫 골을 기록한 엑토르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경기장을 달렸다. 윙보다 중앙이 더 어울리는 엑토르지만 팀을 위해 지금까지 윙으로만 출전했다. 중앙 공격수는 아니지만,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하자 정면 돌파가 강한 엑토르의 장기가 살아났다.
엑토르의 골로 경기를 앞서나가자 노츠 카운티의 집중력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아스널에 틈을 하나라도 주면 그것을 비집고 들어와서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버린다. 이들은 그럴만한 개인 능력과 팀 전술 소화 능력이 있다. 반격은 생각하지 말고 수비에만 집중해야 한다.
외질과 오바메양 그리고 므히타랸은 개인 능력도 출중하거니와 패스 워크도 뛰어나다. 이들의 뒤를 받치는 램지와 윌셔도 완성도가 높은 선수들이다. 개인 능력으로 노츠 카운티의 수비수들은 이들의 상대가 아니다. 하지만 노츠 카운티에는 야전 사령관, 차범수가 있었다.
지역 마크와 대인 마크를 적절하게 섞어서 패스의 핵이 되는 외질과 램지를 제한했다. 굳이 슈팅 기회도 안 주는 완벽한 수비를 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다만 페널티 구역 안으로 침투하는 것은 굉장히 경계했다. 페널티 구역 밖의 슈팅은 터너가 웬만해서는 다 수비해낸다.
오바메양이 안으로 침투하자 속도가 가장 빠른 구즈믹스가 곧바로 따랐다. 그리고 다른 수비수들은 오바메양으로 향하는 패스 루트를 최대한 방해하려 했다. 그때 므히타란이 반대편에서 침투를 시도하자 김시웅이 므히타랸을 쫓아갔다. 빠른 속도로 므히타랸을 따라잡은 김시웅은 아주 자연스럽게 므히타랸의 팔짱을 꼈다.
대부분 선수는 가속하기 전에 팔을 휘두르는 습관이 있다. 팔이 움직이는 방향은 몸이 움직이는 방향과 보통 반대이다. 므히타랸의 팔이 움직이면 거기에 반응해 움직이면 된다. 하지만 오바메양과 므히타랸의 침투는 둘 다 페이크였다. 외질은 오버래핑한 몬레알에게 공을 찔러주었다.
외질도 페널티 구역 안으로 침투했고 램지와 자카도 빠르게 앞으로 달렸다. 노츠 카운티의 수비진이 페널티 구역 안으로 압축되자 몬레알의 패스는 아크 지역에 있는 윌셔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윌셔에 앞서 차범수가 공을 가로챘다. 공을 잡은 차범수는 바로 공을 앞으로 보냈다. 헌터는 빠른 속도로 공을 잡은 후 길게 치고 달렸다. 골키퍼는 페널티킥 포인트가 있는 곳까지 나와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고 수비수는 헌터의 뒤를 허겁지겁 따랐다.
헌터는 최근 슈팅 기술이 꽤 좋아졌다. 로빙슛을 시도해 볼만도 한 상황이지만 연승의 기세를 몰아가기 위해 오른쪽으로 패스했다. 수비수보다 조금 느리게 뛰던 엑토르는 급가속으로 수비수를 떨쳐냈다. 오스피나가 급히 앞을 가로막았지만 엑토르의 헛다리 두 번에 중심을 잃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엑토르는 오른편으로 공을 툭 쳐서 키퍼의 방해를 벗어난 후 빈 골대에 강하게 슈팅했다.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은 순식간에 야유소리가 메아리쳤다. '벵거 아웃'이라 적은 큼직한 표어들이 관객석 여기저기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골키퍼와 세 명의 수비수가 두 명의 공격수를 막아내지 못했다. 이는 정신상태가 문제다. 막아내기 힘들다는 판단이 들면 카드를 각오하고 반칙을 해야 한다. 이미 한 골 뒤처진 상황에서 추가로 실점을 하면 경기 운영이 얼마나 힘들어질지 뻔하기 때문이다.
기신은 전술 코치와 손바닥을 마주쳤다. 이번 전술은 전술 코치의 작품이다. 아스널의 최근 공격들이 중앙에 집중되었지만 결국 위협적인 공격은 풀백의 오버래핑에서 나왔다. 그래서 전술 코치는 윙이 아닌 미드필더를 두어 양측의 수비를 강화했다.
중앙에서의 공격은 요란하고 화려했지만, 실효가 없었다. 노츠 카운티 수비수들의 개인 능력이 부족하지만 뛰어난 협력 수비로 부족한 점을 메꾸었다. 협력 수비를 하면서 생겨나는 구멍들을 차범수와 김시웅이 적절하게 메꾸었다. 김시웅이 비운 자리는 보나비치가 차지했다.
그레이도 정해진 구역에서 램지 혹은 외질을 마크하고 그 구역을 벗어나면 무시했다. 옛날처럼 졸졸 따라다니지 않았다. 그레이와 구즈믹스가 정해진 구역 안에서 두 선수를 마크하는 역할을 맡았다. 두 선수가 한 구역 안에 있을 때는 한 명을 무시했다.
'새옹지마라, 내가 벵거 감독을 전술로 누르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아스널은 유스팀부터 시작해서 통일된 전술을 사용했다. 아스널은 젊은 선수들을 키우거나 사들여서 아스널의 전술 체계에 적응시켰다. 그래서 아스널은 항상 상대가 누구든 자기 갈 길을 꿋꿋하게 가는 팀이다.
반면 기신은 전술 역량도 부족하고, 전술 일관성이 1밖에 안 될 정도로 다양한 전술을 운용했다. 그래서 노츠 카운티는 정해진 전술이 없다. 그런데도 노츠 카운티가 지금까지 괜찮은 모습을 보인 것은 현장지휘 덕분이다.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곧바로 정확한 지적으로 시정을 하니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왔다.
첫 골은 멍하니 지켜보고, 두 번째 골은 농락당해 엉덩방아를 찧은 오스피나와 다르게 터너는 전반전의 마지막과 후반전을 터너쇼로 만들었다. 경기 66분 엑토르가 두 명의 수비수를 제친 후 강슛으로 해트트릭을 완성하자 일부 아스널 팬들은 퇴장했다. 퇴장하면서 스카프를 자리에 버리는 것으로 강력한 항의를 표했다.
"노츠 카운티는 아주 훌륭한 팀이고 그들은 오늘 승리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일부 팬들이 아스널의 지금 상태에 불만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아스널의 현황을 개선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벵거 감독은 다소 격동한 어조로 말했다. 감독들의 과격한 깜짝 발언은 프리미어리그의 또 하나의 재미다.
"노츠 카운티의 감독을 아스널로 데려오면 됩니다. 만약 그게 어렵다면 노츠 카운티의 골키퍼를 데려와도 됩니다. 만약 둘 다 데려올 수 있다면 이번 시즌이라도 우승을 장담할 수 있습니다."
어린 선수들을 키우기 좋아하는 벵거 감독은 젊은 선수를 과감히 기용하고 또 잘 써먹는 기신이 몹시 탐이 났다. 그리고 기복이 심한 오스피나와 달리 승패와 관계없이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터너에게도 군침을 흘렸다.
"아스널은 강팀입니다. 그들만의 축구 철학이 있는 팀이죠. 저는 이러한 팀이 프리미어리그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이기기 위한 축구를 할 때 아스널은 아름다운 축구, 관객을 즐겁게 하는 축구를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기신 역시 아스널에 금칠을 해줬다. 시즌 초반에 수비가 부실하고 공격이 원활하지 않아 득점도 어려웠다. 차범수를 핵심으로 하는 수비 시스템이 완성되자 공격을 강화했다. 공격이 위협적이 되니 상대가 공격 기회에 너무 많은 인력을 투입하지 못해 수비 압박이 가벼워졌다. 선순환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11월에 4경기 전부 승리로 마쳤지만, 이달의 감독상을 받지 못했다. 토트넘과 맨시티 그리고 리버풀까지 전부 전승을 거두었다. 리그 1위를 재탈환한 맨시티의 대머리 주술사가 이달의 감독상을 받았다.
12월 2일, 하루만 쉬고 원정에서 에버튼을 상대했다. 기신은 보나비치에게 휴식을 주고 르노를 출전시켰다. 에버튼은 양측의 공격이 위협적이지 않다. 주 공력 루트가 중앙이기 때문에 기신은 변태적인 4-3-3을 펼쳤다. 차범수, 그레이, 에두아도가 중앙으로 모였고 르노와 엑토르가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했다.
엑토르의 행운의 골로 1:0 승리를 거둔 노츠 카운티는 18점으로 리그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유효 슈팅을 비교하면 노츠 카운티가 5번이고 에버튼은 13번이다. 골키퍼가 손에 참기름을 발랐는지 엑토르의 공을 흘리지 않았다면 비기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선수층이 너무 얇음을 느낀 기신은 선수영입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 작가의말
오늘은 2편으로 마칩니다. 강호정담에 표절에 관한 논란이 한창이더군요. 일부 의견에 뜨금 했습니다. 김용 할배 소설에서 가져다 쓴 게 꽤 되거든요. 누군가 시비 걸면 오마주라고 얼굴에 철판을 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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