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문, 새 짝을 찾다
프랑스가 독립한 배경에는 대한제국 황실이 있었다. 대한제국 황실의 도움을 받은 프랑스는 독립을 주장했다. 하지만 그때 괴수들의 패턴이 갑자기 바뀌면서 대한제국이 프랑스를 도울 여력이 없어졌다. 대한제국의 외면 때문에 프랑스의 독립은 몇 개월 만에 실패했고 독립을 주장하던 자들은 프랑스 민중들에게 쫓겨났다.
그때 도망친 자들은 우여곡절 끝에 아프리카에 도착했고 아프리카의 토착민들을 이끌고 괴수들과의 끝없는 싸움을 시작했다. 대한제국은 상황이 안정된 후에야 다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대영제국의 영토에서 어렵게 한 쌍의 이동문을 만든 뒤 하나는 대한제국으로 하나는 아프리카로 가져갔다.
그 이동문을 통해 아프리카에서는 절대 구할 수 없는 물품들을 지원했고 프랑스 독립군은 마법 무기를 만드는데 필요한 희귀금속들을 보답으로 대한제국에 바쳤다. 하지만 사천과 서장을 복구하면 필요한 금속들을 전부 직접 채취할 수 있다. 북경부터 아프리카까지 물건을 보내는데 드는 마력석만 해도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대한제국의 군부는 더 이상 프랑스 독립군과 연계를 유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러시아가 내전의 조짐이 보이면서 여러 가지 수출 금지 품목들이 슬슬 풀리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아무 파벌이나 선택해서 무역을 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대한제국 군부는 프랑스 독립군과의 관계를 중단하기로 했다. 하지만 대국의 체면 때문에 입을 열기가 난감했다. 그래서 프랑스 독립군에게 아무 말도 안 하고 이동문을 파괴하였다.
이동문이 이동진보다 못한 부분에는 이것도 포함된다. 이동진은 좌표로 연결하기 때문에 목표로 하는 이동진이 멀쩡한지 확인 가능하다. 하지만 이동문은 반대편 이동문이 멀쩡한지 파괴되었는지 확인을 하지 못한다. 거리가 먼 경우에는 가끔 연결이 제대로 안될 때도 있기에 연결에 실패해도 확실한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프랑스 독립군은 정해진 날짜가 지나도 대한제국에서 연락이 없자 어렵게 구한 마석들을 이동문의 입력단자에 가져다 바쳤다. 입력단자는 마석들의 마력을 쑥쑥 빨아들였지만 활성화되려는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 나는야 황당한 분계선 ###
선원들이 뽑아온 마석들을 신기가 가공했다. 마석을 가공해서 마력석으로 만드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가공을 하는 기계에 넣으면 기계가 커다란 자기장치의 위치를 움직여서 가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법사가 자신의 마력을 마석에 넣었다 뺐다 하면서 마석속의 마력을 더욱 활발하게 바꾸어주는 것이다.
신기는 수련도 되고 마석의 효율도 높일 수 있기에 시간을 들여 마석을 마력석으로 가공했다. 중간에 얼음의 울타리를 한번 더 사용해서 괴수들의 접근을 막았다. 수백 개의 마력석의 가공이 끝나자 장보고가 마력석을 입력단자에 가져다 대었다.
'느낌이 이상해. 신현 그 개자식이 출발할 때 너무 길게 말했어. 설마 이동문을 파괴하고 나를 버린 것인가?'
기신은 아무런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지만 신기는 신현이 출발할 때 작별 인사를 길게 해준 것에 의심을 가졌다. 뭔가 꿍꿍이가 있어서 그걸 숨기려고 말을 주저리주저리 길게 늘어놓은 느낌이다. 하지만 상호 거리가 멀 경우 가끔 연결이 안 될 때도 있다는 것을 아는 신기는 섣부른 판단을 내리지 않기로 했다.
그때 하늘에서 붉은색 그림자가 이들을 덮쳐왔다. 그 기척을 놓치지 않은 신기는 마법으로 내리 꼰지는 괴수를 공격했다.
"얼음의 상자."
빙결 속성에 속하는 얼음의 상자 마법은 날아오는 괴수를 얼음덩어리 속에 가둬버렸다. 하지만 전설의 대마법사도 가끔 실수를 하는 법이다. 매를 닮은 붉은색 괴수를 가둔 얼음덩어리가 떨어지며 이동문을 살짝 긁었다.
"이놈 5등급의 승우구나. 울기 전에 잡은 게 참 다행이다."
신기는 어머니가 괴수에 의해 죽었기 때문에 괴수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온몸이 붉은색이고 매를 닮은 승우는 노루와 비슷한 울음소리를 가지고 있고 승우가 울면 며칠 안에 홍수를 일으킬 정도의 폭우가 쏟아진다. 하지만 승우가 아무 때나 울어서 비를 내리는 건 아니다.
예전에 현장실습을 갔던 진도에 가끔 출몰한다는 4등급 라어는 물고기의 몸에 새의 날개를 가진 괴수이다. 이들이 수백이 모여서 울면 큰비가 내리는데 승우는 그 라어를 '흡수'한다. 입으로 먹는 게 아니라 몸을 가져다 대면 라어가 점점 사라지기 때문에 '흡수'라고 표현한다. 그렇게 충분한 힘이 모이면 폭우를 내리게 하는데 승우 한 마리가 불러오는 강우량이 라어 수백 마리보다 훨씬 많다.
5등급 괴수가 원래 이렇게 녹록한 존재가 아니지만 마력밀도 10에 얼음친화력 10에 무영창이기 때문에 승우가 단방에 당한 것이다. 힘의 질이 높은 데다 마법을 사용하는 기미를 전혀 느낄 수 없기에 승우가 알아채고 피할 겨를조차 없었다.
"저, 참장님. 그거 먹어도 되는 겁니까?"
"이거 5등급 괴수야. 생명체가 아니라서 못 먹어."
괴수의 출현으로 잠시 중단되었던 마력석 투입이 재개되었다. 마력석 오십 개정도 넣자 갑자기 이동문이 활성화되었다. 신기는 마력석을 계속 투입하면서 명령을 내렸다.
"이거 이동진하고 다르게 여럿이 함께 사용할 수 있어. 단 마력이 부족하면 모두 사라질 수 있으니까 1분 간격으로 진입한다. 그리고 내가 마지막으로 진입한다."
장보고를 선두로 1분 간격으로 한 명씩 진입했다. 신기는 불의 밝기를 가늠하며 마력이 부족해 보일 때마다 마력석을 투입했다. 불의 밝기는 눈으로 가늠하는 게 아니라 마법사의 감으로 가늠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기가 제일 마지막에 건너가기로 했다.
신기가 진입하기 전에 불이 충분히 밝았지만 신기는 마력석 몇 개를 더 주입했다. 얼음 안에 갇힌 승우를 함께 들고 갈 생각이기 때문이다. 만약 마력이 부족하면 제주도에서 마력석을 보충해 줄 것이다.
"신현이 이 자식 왕세자 되더니 철이 들었네. 이 동생이 오해해서 미안하다."
신기는 출발 전에 얼음의 울타리를 시전해서 이동문을 보호했다. 승우의 출현 때문에 비행 괴수들도 경계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신기가 출발한 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얼음의 울타리가 사라졌고 이동문은 괴수들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다.
### 나는야 황당한 분계선 ###
이동문에서 나온 신기는 장보고 등이 포로가 되어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을 보고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니 널찍한 동굴 속이었다. 기운이 매우 서늘하여 괴수들이 싫어할 만한 곳이다.
"여긴 어디고 당신들은 누구야? 제발 러시아 사람들은 아니길 바란다. 난 러시아어는 할 줄 모르거든."
이동문이 갑자기 활성화되자 이들은 대한제국 군부에서 보내주는 물품들을 받기 위해 기다렸다. 받은 물품을 평가하고 그에 해당하는 희귀금속들을 보내주면 거래가 끝난다. 하지만 기다리던 물자는 도착하지 않고 대한제국 군인으로 보이는 자들이 하나둘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원래 마지막으로 나오는 신기도 제압하려 했으나 신기의 손에 들려있는 5등급 괴수의 위용에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이 자리에는 주술사들이 많았고 드루이드와 같은 계열인 주술사들은 괴수의 등급을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우선 자기소개부터 하는 것이 어떻소?"
"대한민국의 군부 소속이오. 얼마 전에 대한제국으로부터 독립해 나왔지. 왜 우리 이동문이 당신들의 이동문과 연결되었는지 모르겠소."
신기의 말에 상대의 통솔자로 보이는 자가 분을 터뜨렸다.
"이 대한제국의 신의 없는 개자식들이 끝내 우리를 버렸군."
"좀 알아듣기 쉽게 말해주면 좋겠소. 겸사겸사 본인 소개도 하고 말이오."
"우리는 프랑스 독립군이고 여기는 아프리카요. 우리는 이동문을 통해 대한제국 군부로부터 물품들을 지원받고 우리가 캐낸 희귀금속들을 보내주곤 했소."
"지금 당신네 이동문과 우리 이동문이 연결되었다는 것은 한가지 답밖에 없소. 당신들의 하나만 남은 이동문과 우리의 하나만 남은 이동문이 우연한 기회에 연결되었다는 것이오."
한 쌍으로 제작된 이동문은 둘 다 멀쩡할 때 어떤 경우에도 다른 이동문과 연결되지 않는다. 우연에 우연이 겹치고 거기에 또 우연이 곁들여져 다른 이동문과 연결되는 경우는 한가지 결론밖에 없다. 두 이동문이 전부 짝을 잃은 이동문일 경우다.
'결국 나는 버려진 거구나. 기신 이 자식이 나를 대신해서 엄청 열심히 해줬는데. 나도 귀족이지만 귀족들은 정말 정이 안 간다. 언젠가는 돌아가서 장군님의 검으로 정의의 심판을 내리리라.'
기신이라면 이 상황에 배신감을 느끼고 많이 흔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신기는 어려서부터 여동생한테 마저 괄시를 받으며 자랐기 때문에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강대한 마법을 손에 넣었기에 자신감이 넘치는 덕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신기는 가족들의 처사에 크게 놀라움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가 이곳에 대해서 소개를 좀 해주지 않겠소? 내가 대한민국으로 돌아가면 당신들을 지원해 줄 수 있소."
이곳의 책임자인 에릭과 신기는 대화를 통해 본인이 필요한 정보들을 얻어냈다. 아프리카의 상황을 대충 이해를 한 신기는 돌아갈 방도를 고민했다. 이곳은 식량과 물이 보족해서 자급자족도 어려운 곳이다. 괴수들에게 죽는 사람보다 부족끼리의 싸움과 굶어죽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이다.
이곳은 괴수들의 영역이 안정되어 그 영역들만 피하면 살아갈 수 있다. 괴수들이 기피하는 지역들이 있어 부족들은 그곳을 차지하기 위해 사람들끼리 피를 흘린다. 괴수들이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는 경우가 매우 드물기 때문에 사람들은 굳이 괴수의 땅을 빼앗으려고 하지 않는다.
"당신이 얼음 마법을 사용한 뒤 그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되오?"
"이곳에는 마법사가 없는 모양이군. 나는 얼음 마법사이지만 일반 얼음을 몸에 가져다 대면 추위를 느끼오. 하지만 내 마법으로 만들어낸 얼음에는 추위를 느끼지 않지. 이는 일반 얼음의 추위는 '물리적' 추위이고 얼음 마법의 추위는 '속성적' 추위이기 때문이오."
"나도 이론적으로는 잘 몰라서 정확히 해석할 수는 없소. 내 얼음이 녹으면 그저 사라지오. 가끔 얼음 마법의 주위에서 물자욱이 생기는데 그건 얼음이 녹은 게 아니라 공기 중의 수분이 찬 기운에 물방울이 되기 때문이오. 마법의 얼음이 녹아서 생긴 것이 아니오."
신기의 대답에 에릭은 입맛을 다셨다.
"사막에 괴수들이 절대 접근하지 않는 곳이 있소. 아주 큰 면적이어서 물 문제만 해결되면 수백만이 살 수 있을 거요. 하지만 대주술사들도 비를 내리지 못하기 때문에 그곳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마법사도 방법이 없다니 참으로 안타깝소."
수백만이 모여서 살면 힘이 정비되고 그 힘으로 괴수들을 몰아내며 땅을 늘릴 수 있다. 한때는 바닷물을 끌어올 생각도 했지만 바닷물을 끌어오면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포기했다.
"여기 혹시 라어라고 있소? 물고기의 몸에 새의 날개가 달린 4등급 괴수요. 그것만 있으면 비를 내리게 할 수 있소."
신기는 자신의 발치에 놓여있는 승우를 바라보며 에릭에게 질문했다. 블루 드래곤의 심장처럼 사막에 무언가 있을 수 있다. 이들을 모여살게 한 다음 괴수를 막아낼 능력이 되면 그 물건을 빼돌려서 배를 타고 돌아갈 생각이다. 괴수들이 접근하지 않으니 물과 식량만 충분하면 안전한 항해가 될 수 있다.
- 작가의말
사실 블루 드래곤의 심장을 들고 움직이면 그야말로 세이프티 존인데 말입니다. 글쎄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렸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누구도 그 심장의 행방을 예측하지 못하고 있을 겁니다. 제 훌륭한 필력 때문에 모두들 갈팡질팡하고 있을 걸 생각하니 막 미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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