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신, 선수영입의 어려움을 느끼다
영국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기신은 스마트폰으로 기사들을 훑었다. 칭찬 일색의 기사들을 읽으며 기신은 헛웃음이 나왔다. 작년 8월에 FA컵 우승팀 자격으로 참가한 커뮤니티 실드 경기에서 맨시티에 8:0으로 참패를 했을 때 언론들은 노츠 카운티와 기신을 엄청 까댔다. 그런 자들이 지금은 칭찬만 가득한 기사를 뱉어내고 있다.
- 우리 노츠 카운티의 팬들은 주술사와 선수들에게 무언가를 더 요구할 염치가 없다. 다음 시즌 어떤 모습을 보이더라도 우리는 묵묵히 지지할 의무만 있을 뿐, 무언가 지적하거나 요구할 권리는 없다.
그나마 챔이 미리 다음 시즌을 위해 밑밥을 깔기 시작했다. UEFA 슈퍼컵에서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에게 참패라도 당하면 또 언론들이 볼펜 끝으로 아프게 찌를 것이 분명하다. 기사들을 대충 훑은 기신은 지인들에게서 온 축하 문자를 하나하나 다시 읽었다. 기여운이 쓴 것으로 보이는 오타 범벅인 문자가 기신을 즐겁게 했다.
노팅엄으로 돌아가니 성대한 축제가 준비되어 있었다. 기신은 수많은 사람의 축하를 받았고 엄청 많은 술을 마셨다. 신기와 몸이 바뀐 후부터 술을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 다만 물배가 차서 자주 화장실을 다녀와야 하는 귀찮음이 있다.
공식 휴가는 6월 1일부터 시작된다. 선수들은 짧은 시간 동안 가벼운 운동을 하고 주로 심리치료와 의료검사들을 꼼꼼하게 받았다. 작년까지는 없었는데 기신의 요구로 추가되었다. 헌터와 스벤의 부상은 알아냈지만 다른 선수들이 혹시 숨겨진 부상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메시지가 모든 사실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이 과정을 코치들과 구단 직원들에게 맡기고 기신은 에릭 헌터와 함께 프랑스로 향했다. 구단에서도 나름 선수들을 알아보고 있지만 기신도 에릭 헌터를 통해 영입 가능한 선수들을 알아보고 있었다.
기신의 현장지휘는 한가지 약점이 있다. 경기중에 선수들의 스텟치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른 팀의 선수라도 경기가 아닌 상황에, 가까운 거리에서 보면 능력 수치나 스텟치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경기 중에는 안 된다.
보통 감독들은 경기를 보고 선수를 파악하는데 기신은 반대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에릭은 기신을 데리고 굳이 경기장들만 찾아다녔다. 리그가 끝나서 유소년팀들의 친선경기밖에 없기에 만족스러운 선수가 눈에 띄지 않았다.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경기관람이 끝난 후 에릭에게 중요한 전화가 와서 기신은 에릭이 통화를 끝내기를 기다렸다. 그때 건장한 몸매를 가진 흑인이 경기장 관리원과 실랑이질을 벌였다. 프랑스어로 대화를 해서 내용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흑인이 경기장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관리인이 막고 있었다.
- 아기안 르노, 1995년 3월 18일, 키 182 몸무게 78
- 현재 능력 59, 잠재 능력 68, 적합한 위치는 중앙공격수, 공격형 미드필더
통화를 마친 에릭에게 기신은 선수로 보이는 흑인과 대화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에릭이 프랑스어도 어느 정도 가능하기에 대화에 큰 무리가 없었다.
"나는 노츠 카운티의 감독 기신이다. 너는 걸음걸이가 안정적인 것을 보니 드리블이 장기인 것 같구나."
르노는 기신의 말에 깜짝 놀랐다. 노츠 카운티는 최근 매우 뜨거운 팀이다. 3부리그 팀 주제에 유로파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팀의 선수들 면면을 살펴봐도 팀에서 방출당한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자신처럼 말이다.
"반갑습니다. 아기안 르노라고 합니다.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고 있습니다."
사실 르노는 공격수로 출전하기 더 좋아한다. 하지만 노츠 카운티에는 헌터라는 부동의 주전 공격수가 있기에 자신을 공격형 미드필더라고 소개했다.
"실례가 안 된다면 네가 공을 차는 모습을 좀 볼 수 있을까? 우리 팀에 마침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적합한 선수가 부족하거든."
르노가 최근 자신이 훈련하던 공원으로 기신을 안내했다. 대화를 통해 르노의 상황을 대충 알 수 있었다. 르노는 드리블을 아주 좋아하는데 드리블에 심취하다 보니 팀의 공격 리듬을 자주 끊어먹는다. 만 24세가 된 르노는 팀으로부터 재계약을 따내지 못했다.
"하부리그라도 일단 축구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양심 없는 구단들이 주급을 너무 후려치더군요. 그래서 지금 홀로 훈련하고 있습니다."
르노는 사이가 좋은 관리인을 통해 훈련 도구들을 빌려서 사용했다. 하지만 새롭게 바뀐 관리인은 르노의 요청을 거절했고 그래서 잠깐 실랑이를 벌인 것이다.
르노의 훈련을 지켜보면서 기신은 확인한 스텟들을 정리했다. 드리블 9에 돌파능력 9인데 슈팅 능력이 3에 골 결정력이 4이다. 거기에 침착성 역시 3으로 공격수치고는 이상한 스텟이다.
더 많은 스텟을 보지 못했지만, 르노의 문제점을 알 것 같다. 슈팅이 정확하지 못하고 골 결정력이 부족해서 공격수치고 득점을 잘 못 한다. 그래서 슈팅을 자제하고 드리블로 확실한 기회를 만들어내려고 하다 보니 드리블에 집착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아주 괜찮아. 혹시 에이전트 있어?"
르노가 고개를 젓자 에릭 헌터는 곧바로 명함을 건넸다.
"사흘 뒤에 일정이 끝나니 그때 계약사항을 상의합시다."
노츠 카운티의 미드필더 중 드리블이 가능한 미드필더가 없다. 워드는 체력이 부족하고 에두아도와 차범수의 드리블은 평범한 수준이다. 가끔 드리블과 돌파로 상대 수비진을 흔들 필요가 있고 경기를 앞선 상황에서 적당한 드리블로 수비수들에게 휴식시간을 벌어줄 필요도 있다.
"어떻게 짧게 훈련하는 것만 보고 선수를 판단할 수 있나요?"
에릭의 질문에 기신은 미리 준비해둔 답을 말했다.
"걷는 모습이나 보폭 그리고 걷는 리듬 등만 보아도 그 사람의 신체 발달 정도를 알 수 있습니다. 경기 중에는 다들 몸을 충분히 풀고 흥분한 상태이기 때문에 오히려 평소 모습을 보는 것이 선수를 더 정확히 평가하는 방법입니다."
에릭은 뭔가 전문적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에릭이 운전하는 차로 벨기에로 움직였다. 노츠 카운티의 재정으로는 포르투갈이나 네덜란드로 향하지 못하고 선수들의 가격이 착한 프랑스와 벨기에를 찾았다.
벨기에는 3월에 리그가 끝난다. 휴식을 끝낸 팀들이 현재 친선경기로 분주하다. 2부리그에서 후보로 뛰고 있는 루네 담케이를 기신은 낙점했다. 속도가 느리고 돌파능력이 부족하지만, 크로스가 매우 정확하다. 르노와 짝을 맞추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기신은 구단에 전화했다. 이적료가 30만 파운드밖에 안 되어 구단에서도 큰 부담이 없이 기신의 요구를 만족시켰다.
1부리그의 약팀에서 주전을 뛰고 있는 베르베라는 이름을 가진 중앙수비수도 계약을 했다. 이적료 60만 파운드의 베르베는 능력치가 45로 루네 담케이보다 오히려 3이 낮았다. 하지만 수비 스텟이 괜찮고 특히 안정성 수치가 9나 되어 기신의 마음을 움직였다.
사실 마음에 드는 젊은 선수들이 꽤 눈에 띄었지만 예외 없이 이미 명문 구단들이 침을 발라놓고 있었다. 아직 입단이 확정되지 않은 르노를 제외하면 겨우 2명의 선수만 건진 셈이다. 괜찮은 선수들은 이미 명문구단들과 연결이 되어 있었고 그렇지 않으면 선수 본인이 거절하거나 너무 많은 돈을 요구해왔다.
'역시 대단한 놈들은 명문 구단들이 이미 다 선점하고 있구나. 선수의 능력치들을 데이터화해서 볼 수 있다고 큰 우위가 아니야.'
기신의 능력은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보게 해주는 능력이 아니다. 남들보다 쉽고 확실하게 보는 것뿐이다. 오히려 경험이 풍부한 스카우트들이 선수를 더 잘 평가한다. 기신은 잠재력이 높은 선수를 찾아낼 수 있지만, 이 선수가 그 잠재력을 다 터뜨릴 수 있는지 판단할 경험이나 안목은 부족하다.
'터너, 차범수, 헌터를 핵으로 하고 나머지 위치는 나쁘지 않은 선수들로 구성해야겠다. 석유 재벌이 갑자기 구단을 사들이지 않는 이상 이것이 최선이다.'
괜찮은 선수들은 대부분 이미 임자가 있다. 호세나 보나비치의 경우 신기의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기신은 이들을 설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DPP를 소모해 신기가 이들을 영입했다. 에두아도의 경우 기신이라면 그 존재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선수영입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기신은 뼈저리게 느꼈다.
벨기에의 탐험을 끝낸 뒤 기신은 비행기로 영국으로 돌아갔고 에릭은 르노와 계약을 하러 프랑스로 향했다. 르노와의 계약을 마친 에릭이 영국으로 오면 차범수까지 셋이서 한국으로 향할 것이다. 이번 광고는 차범수와 함께 찍기로 되어 있다.
에릭을 기다리면서 빈둥거리던 기신에게 최영호의 전화가 걸려왔다.
"기 감독님, 옥체 만수무강하십니까."
"이상한 거 하지 마. 그나저나 무슨 일로 이 시간에 전화했어?"
"나 지금 한국이야. 방금 계약 때문에 이쪽 업체 대표랑 미팅을 했는데, 글쎄 고등학교 때 얼짱 고은희가 그쪽 비서를 맡고 있더라고."
"결혼했대? 너 고은희 좋아했잖아."
"언제 소리 하는 거야? 지금 다시 보니까 진짜 평범해."
"이 소리 할라고 전화한 거야?"
"당연히 아니지. 고은희가 그러는데 해마다 정기적으로 동창회를 한대. 나보고 시간이 되냐고 해서 당연히 된다고 했지. 그러니 너도 참석할 수 있냐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전화한 거야."
"난 생각 없어. 한국 가서 바쁘기도 하고."
"왜? 오랜만에 애들 보면 좋잖아."
"나 핸드폰 번호 지금까지 안 바꿨어. 그런데 동창회 나오라는 소리 이번에 처음 듣는다."
기신은 고등학교 때부터 사용하던 전화번호를 지금까지 계속 쓰고 있다. 원양어선을 탄 아버지와 연락이 끊어질까 봐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은 것이다. 기신이나 최영호나 대인관계가 별로였기 때문에 그간 동창회에 참석하라는 소리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 기 감독 감이 많이 죽었네. 내가 그렇게 싱거운 사람인가? 고은희 동생 고순희 알지? 걔 지금 아이돌 하고 있어.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은데 그래도 아이돌 아니냐. 걔가 축구빠인데 네 팬이래. 네가 나오면 멤버들이랑 아는 배우 언니들이랑 함께 나오겠대."
살짝 끌렸지만 기신은 의심부터 했다. 최영호가 얼마나 실없는 놈인지 아는 까닭이다.
"우리 동창회에 왜 걔들이 나온대? 참 웃기네."
"당연히 동창회는 안 나오지. 동창회 끝나면 고은희랑 몇몇 애들하고 따로 만나는 거야. 너는 고개만 끄덕이면 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
"생각 없어. 나 한국 가면 바빠."
최영호는 기신이 동창회 날짜도 확인하지 않고 거절하자 마음을 접었다. 기신이 얼마나 고집이 센지 잘 아는 까닭이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지 전화를 끊기 전에 한마디 보탰다.
"생각이 바뀌면 전화를 해. 전화가 귀찮으면 문자도 괜찮아. 많이 쓰는 게 귀찮으면 ㅇㅇ 보내. 그러면 내가 알아서 진행할게."
한국에 가면 광고 촬영을 해야 하고 S 전자에서 주최하는 행사 몇 개 참석해야 한다. 물론 축구와 관련된 행사이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토크쇼에 출연해야 할 수도 있다. 광고의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해 기신의 노출도를 높이고 대중과의 거리를 좁힐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의 예능에 출연해야 할 수도 있다. 왕후이를 키워낸 감독이라는 타이틀로 말이다. 촬영은 한국에서 할 가능성이 크다고 하니 그나마 덜 귀찮았다. 생각 같으면 거절하고 싶지만, 에릭으로부터 전해 들은 계약금 때문에 꾹 참고 있다.
- 작가의말
현판에 동창회가 빠지면 안 되죠. 물론 기신은 다른 주인공들과 다르게 거절했습니다. 어떻게 풀어나갈지 기대하십시오. 단, 실망하셔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Comment '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