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 풀이
"자, 어린이 여러분, 위인 이야기 시간이 왔어요."
아이들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두 손을 앞으로 공손히 모은 아이도 있다.
"시작하기 전에 선생님이 질문 하나 할게요. 유치원 어린이가 되면 주의해야 할 점을 하나씩 말하고 나서 이야기 시작할게요."
어미새의 먹이를 다투는 새끼들의 부리처럼 아이들의 손이 쑥쑥 올라갔다.
"음식 먹을 때 흘리면 안 돼요."
"바지에 오줌 싸면 안 돼요."
"자다가 깨나 울면 안 돼요."
"잠자는 시간에 엄마아빠 방문 두드리면 안 돼요."
"여러분이 훌륭한 대답을 해줘서 선생님은 아주 기뻐요. 그럼 오늘 이야기 시작할께요. 혹시 오늘 누구 차례인지 아는 어린이 있나요?"
"이순신 장군님이요."
"신기 왕자님이요."
"저는 연아 백작님 이야기 듣고 싶어요."
"이미 다 이야기했던 분들이에요. 어떤 분들인지 기억하는 어린이 있나요?"
"이순신 장군님은 조선의 불씨를 살린 성웅이십니다."
"저는 연아 백작님 이야기 알아요. 신기 '연아'와 '진실의 거울' 만드셨어요."
"저는 신기 왕자님 알아요. 무척 잘생겼어요."
"신기 왕자님은 통계학, 분석학, 군사 지휘학, 컴퓨터 공학, 마법 공학을 통달한 위대한 학자이고 효율의 개념을 정립한 실용주의 학문의 창시자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인정하지 않지만 아프리카와 유럽 그리고 미국 및 일본에서는 대마법사로 불리기도 합니다."
"너무 어려워요. 그냥 대마법사만 하면 안 돼요?"
순수함은 언제나 진실과 가까이 닿아있다. 신기는 그냥 대마법사다. 학문적인 부분은 기신의 공이다.
"이건 이후 어린이 학교에 가서도 배울 내용이니 그저 알고만 있으면 돼요. 오늘은 대마법사 김은결 공작님 이야기를 하겠어요."
"선생님, 신기 왕자님이랑 김은결 공작님 누가 더 잘생겼어요?"
"선생님도 두 분을 직접 뵌 적이 없어서 몰라요. 이야기를 시작할 테니 다들 조용히 해주세요."
아이들은 전부 합죽이가 되었다. 위인 이야기 시간은 모든 유치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간이다. 위인들의 이야기는 늘 재밌다.
"후지산을 봉인하고 삼 년이 지나 세계에서 대다수 괴수가 사라졌어요. 인류의 전면적인 승리죠. 우리는 괴수를 걱정하지 않고 산과 들과 바다에 마음껏 놀러 갈 수 있게 되었어요."
미국과 아프리카도 뒤늦게 후지산의 봉인을 알게 되었다. 괴수는 피해야 할 괴물에서 사냥해야 할 희귀자원으로 변했다. 인류는 희생을 감수하고 괴수 사냥에 열을 올렸다. 다른 나라로 가서 밀렵하면 정부에서 상금도 줬다.
"우리 대한민국은 신기 왕자님이 남긴 저서들로 기술혁명을 일으켰어요. 공장의 생산 효율이 무려 대한제국의 세 배, 대영제국의 일곱 배가 되었어요. 대영제국에서 장난감 하나 만들 때 우리는 일곱 개 만들었죠."
효율은 아이뿐 아니라 어른들도 어려워하는 개념이다. 시간 효율과 자원 효율 그리고 인력 효율 등 복잡한 개념이 얽히고설켰다. 그래서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줬다.
우왕 하는 감탄사가 들려왔다. 장난감을 빨리 만드는 대한민국이 아이들에게는 세계 최강이다.
"그때 간악한 일본에서 나쁜 짓을 했어요. 우리의 성산 백두산에 주술로 된 말뚝을 박았어요. 그 말뚝은 잠자고 있던 백두산을 깨웠어요."
대한민국이 빠른 발전을 했다. 지금은 남중국과 북중국으로 갈라졌지만 그때는 내전 중이었던 대한제국은 대한민국으로부터 무기를 수입하기 위해 견제를 꿈꾸지 못했다. 그때 강해지는 대한민국에 겁을 먹은 일본이 야비한 수를 썼다.
후지산의 봉인을 몰래 연구한 후 반대되는 주술을 만들어 냈다. 그 주술을 담은 말뚝을 백두산에 몰래 박았다. 그리고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다.
"옛날 후지산처럼 백두산에서 괴수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어요. 다행히 거북선이 바다를 통해 빠르게 움직여서 인명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였죠."
"선생님, 일본 떼찌해 주세요."
몇몇 아이는 벌써 눈물이 글썽했다. 아직 아이들이라 확실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 이야기를 미리 들어본 게 분명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괴수를 안정적으로 막아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7등급의 괴수 봉황이 나타났어요."
봉황은 불사조, 주작, 화조, 단조, 곤계 등 무수한 이름으로 불린다. 여후작이자 물의 대마법사인 백윤희가 물의 마법사들과 함께 합동 마법을 펼쳤다. 혼자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고위 마법 '구룡폭포'로 봉황의 불을 꺼뜨렸다.
"그런데 봉황은 죽어도 몇 달이면 깨어나요. 몇 달이 지나 봉황은 다시 깨어나게 되었어요. 그때 봉황의 앞에는 대마법사 김은결 후작님이 혼자 계셨어요."
무당들이 굿을 엄청 해서 겨우 봉황이 부활하는 위치를 알아냈다. 그리고 김은결은 홀로 그 자리에 갔다. 빛의 대마법사, 만져지는 환영을 구사할 수 있는 김은결은 일말의 가능성에 목숨을 걸었다.
봉황은 부활 가능한 괴수다. 대신 유일 속성을 가졌다. 봉황 자체가 암컷과 수컷이 한몸에 있다. 죽음을 거부한 대신 혼자 살아야 한다. 개체 생활을 하는 체나 호경 등도 동족이 있다. 번식을 위해 서로 찾아다니기도 한다. 그러나 봉황은 세상에 혼자다.
"대마법사께서는 '진실의 거울' 마법을 사용했어요."
신기의 '서리 거울'과 같은 등급의 마법이다. 그러나 진짜와 똑같은 환영을 만든다는 것을 제외하고 아무 효용도 없다.
부활한 봉황은 진실의 거울 속에서 봉황을 발견했다. 실체가 아닌 봉황의 투영이다. 그러나 진실의 거울 마법은 봉황에게 거울 속의 투영을 실체로 속였다. 봉황이 진실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실체라고 인정하자 유일 속성이 깨졌다.
"진실의 거울을 통해 자기 모습을 본 봉황은 세상에서 사라졌어요. 그리고 UN에서 백두산을 봉인하기로 했어요. 우리는 다시 평화를 찾았어요."
사실 대한민국은 봉인을 원하지 않았다. 안정적으로 마석을 공급받을 기회다. 그러나 대영제국과 대한제국은 내전 혹은 내부 모순 때문에 여력이 없다. 러시아도 서아시아의 영토를 점령하고 도로를 건설하는 등으로 인력이 부족하다.
"그 후 UN은 일본에 벌을 주었어요. 일본의 닌자들을 전부 잡아다 무인도의 감옥에 가두었어요. 닌자가 사라진 일본은 나쁜 말뚝을 더는 만들지 못했어요."
닌자들은 전부 대영제국에 넘겨져 인체실험을 당했다. 닌자가 되면 머리카락 색이 변하기 때문에 웬만해서 숨기기도 힘들다. 운 좋게 흰색이나 밤색이 된 자들은 마수를 피해 살아남았다. 닌자의 후손은 높은 확률로 닌자가 된다. 그러나 머리카락 색은 제각각이다.
러시아와는 그나마 우호적인 관계이고 대한제국은 내전으로 정신이 없다. 일본도 상대가 안 되는 상황은 대한민국이 발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러나 붕당 싸움으로 조정이 혼란해지며 발전의 시기를 놓쳐버렸다. 결국, 왕이 바뀐 후 일본에 대마도를 빼앗겼다.
"선생님, 대마법사 신기 왕자님 이야기를 해주세요."
유럽이나 아프리카 그리고 캐나다와 미국에서는 신기를 대마법사라고 주장한다. 그 주장들이 일관성이 있다. 비키니의 창시자 앙드레 백작은 신기와 함께 얼음 배로 바다를 횡단한 사실을 자서전에 밝혔다.
아이들이 궁금해하는 대마법사 신기는 도깨비와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었다.
"깨비야, 너는 옛날 기억이 다 있잖아. 나는 항상 잘생기고 멋있었어?"
참 다행스럽게도 도깨비는 반신이다. 반신이란 정신이 부서져도 다시 회복하는 경지를 일컫는다. 그게 아니었다면 신기의 정신세계에 오염되어 미친 도깨비가 되었을 것이다.
"인간의 기준을 잘 모르겠어. 다만 암컷들이 널 좋아한 건 틀림없어."
예전에는 도깨비가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신기를 흔들려고 한 것이다. 나약한 인간은 도깨비의 존재를 접하는 순간 숨이 끊어진다. 신기는 인간의 범주를 벗어났고 빙룡의 보호가 있어 멀쩡했다.
정신적인 교감을 많이 나누면 빙룡의 보호가 약해진다. 익숙함은 친근함으로 느껴질 수 있다. 무의식에서 도깨비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하면 빙룡의 보호도 약해진다.
그런데 예상외로 신기의 정신력이 대단했다. 강하거나 굳건한 정신력은 아닌 데 질기기 그지없다. 찰흙과 같이 주무르는 대로 반죽 되지만 결코 가루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정령화가 점점 심해지면서 도깨비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궁금한 거 있는데, 암컷 도깨비도 너처럼 다 벗고 다녀?"
"아냐, 우리 종족은 생김새가 제각각이야. 그리고 이 세상에 나는 혼자야. 빨리 이 지긋지긋한 윤회를 끝내야 다른 동족을 만나볼 수 있어."
신기가 질문하면 도깨비는 반드시 대답해야 한다. 그래서 신기가 원하면 대화가 끊어지지 않는다.
"너희 인류는 이래서 안 돼. 저급한 종족이 지배 종족이 되니 결국 이런 결과가 생기는 거야."
도깨비의 말에 신기는 인지 범위를 확장했다. 정령화가 진행되면서 이젠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다. 많은 정보가 들어왔지만 전혀 힘겹지 않다.
"이탈리아 이 미친 새끼들. 내가 인류를 수호하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여기서 벌거벗은 깨비랑 혈투를 벌이고 있는데."
이탈리아에서 화산 근처에 수비선을 구축하고 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일본이 백두산에 했던 짓을 이탈리아가 똑같이 하려고 함을 알 수 있다.
"저긴 백두산과 다르게 많은 괴수를 보낼 수 있어. 백두산은 힘이 부족해 봉황을 보내느라 괴수를 많이 보내지 못했거든."
도깨비의 친절한 설명에도 신기는 흔들리지 않았다.
"여섯밖에 없는 7등급 괴수가 벌써 둘이나 소멸하었어. 이거 처음 아냐?"
도깨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이 제일 엉망이야. 상황 자체는 나한테 가장 유리했는데 왜 이렇게 많은 변수가 생기는지 모르겠어."
충분히 많은 화산이 터져야 한다. 그래야 도깨비는 남극을 벗어날 수 있다. 그때 신기에게 반가운 메시지가 들려왔다.
- 플레이어 기신이 퀘스트에 성공했습니다.
- 특성 '빙의'가 주어집니다.
- 기신의 최종 퀘스트는 대한민국 대표팀으로 2026 월드컵 우승입니다.
- 신기의 최종 퀘스트인 등급외 괴수와 모든 괴수의 소멸을 완성하면 통합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 통합 퀘스트를 성공하면 세상은 구원받습니다.
"깨비야, 설화에 의하면 너는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를 내기 좋아한다고 했어. 너 수수께끼 그렇게 잘해?"
"반신이니까. 논리적 사고와 직관력을 결합하면 풀지 못할 수수께끼가 없어."
"그럼 내가 수수께끼 하나 낼게."
"Can not swim, 맞춰봐."
어처구니가 없는 수수께끼다. 달랑 영어 단어 세 개 말하고 맞춰보라고 했다.
"노수영."
도깨비는 운동장 정도 크기가 되는 손바닥으로 자신의 뺨을 후려쳤다. 뭔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큰 실수를 했다.
"고마워, 나도 설마설마했거든. 이렇게 수준 낮은 힌트를 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지."
기신이나 신기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정보 단말의 역할이다. 그래서 블루 드래곤은 직접적인 힌트가 아닌 이런 다소 어이없는 힌트를 주었다.
"그 멍든 도마뱀이 꽤 센스가 있단 말이야. 나랑 1500회 이상 파트너가 되어서 그런가. 나를 잘 알아."
신기의 수준에 맞춘 힌트다. 신기도 설마 이렇게 유치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도깨비를 통해 확인한 것이다.
신기는 인지 범위를 더 넓혔다. 이 세상과 기신의 세상은 연결되어 있다. 그 통로를 통해 기신의 세상을 감지해야 한다. 정보량이 많은 기신의 세상이라 탐색에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기신의 주변부터 탐색하면 편하지만 신기는 기신을 느낄 수 없다. 기신도 운명을 벗어난 존재다. 아무 생물이나 탐지한 후 인연의 끈을 따라 천천히 탐색해야 한다.
- 작가의말
중간중간 떡밥을 던져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차라리 어제 마지막 편과 이번 편의 순서를 바꿨으면 훨씬 낫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두 가지 의견을 구하고 싶습니다.
우선, 제 글이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만약 문체를 말하는 거라면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천천히 바꾸는 방법밖에 없거든요. 그러나 만약 문단 나누기 이런 거 말씀하시는 거면 쉽게 바꿀 수 있죠.
엔터 자주 쳐서 문장을 짧게 하는 게 좋은 건가요? 문단 사이를 엔터로 나누지 않는 게 좋은가요? 유료 베스트 글 몇 편을 보았는데 문단 사이를 엔터로 나누지 않더군요. 그러면 연속성이 있어 더 쉽게 읽히나요?
두 번째는 이 글을 끝내고 다음 도전으로 동시 연재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글에서 기신과 신기의 서술을 서로 다른 문체로 하려고 생각했는데 결국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두 장르의 글을 따로 쓰면서 다른 문체를 시도해보려 합니다. 물론 두 글의 색이 섞이면 이도 저도 안 될 수 있죠. 혹시 동시 연재 해보신 분이 계시면 조언 부탁드립니다. 동시 연재 작가의 글을 보신 분들도 적극적으로 의견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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