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두 개인 남자
뉴욕에 도착한 토미는 오타와로 향하는 티켓을 구매했다. 한국팀은 이미 뉴욕에 도착했지만 혼절한 기신은 오타와에 남아있었다. 기세등등하게 뉴욕으로 향했던 토미는 살짝 풀이 죽었다.
"저야 무슨 잘못 있겠어요. 저는 수호령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곧 비행기에 올라야 하니 생방송을 잠시 중단하겠습니다. 오타와에 도착해서 다시 켤게요."
그렇다. 토미는 SNS로 자신의 이번 행정을 생중계하고 있다. 누군가 SNS로 미리 병문안을 신청해야 기신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일깨워줬다. 토미는 수호령이 너무 무식하다고 툴툴거리며 차범수에게 전화했다.
"여러분, 지금 오타와 공항입니다. 노츠 카운티의 부주장 차를 통해 이미 허락을 받았습니다. 지금 택시 잡고 있어요. 저 내년이 되어야 운전면허 딸 수 있어요. 렌터카는 안 돼요."
병원에 도착하면 다시 생방송 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토미는 생방송을 껐다. 택시를 타고 기신이 입원해있는 병원으로 갔다. 토미는 굳게 믿고 있다. 주술사가 결승전에 사용해야 할 주술로 차범수의 목숨을 구한 것이라고.
"맙소사, 지금 시청자가 2백만입니다. BBC나 CNN에서 아마 저를 인터뷰하려고 할 겁니다. 여러분은 기적을 보게 될 겁니다."
토미는 한 시간을 기다려서야 기신의 병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병실에 들어간 토미는 다시 생중계를 시작했다. 순식간에 3백만이 되는 시청자가 몰려들었다.
"우선 잘 모르는 분을 위해 말씀드립니다. 이 스카프는 130년이 넘습니다. 정확한 나이는 본인도 모르고 있죠. 사람이 나이 먹으면 건망증이 오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돼요."
토미는 스카프를 꺼냈다. 너무 오래되어 세탁도 마음껏 못하고 있다.
"이 스카프에는 노츠 카운티의 수호령이 깃들어 있습니다. 노츠 카운티의 3번의 FA컵 우승, 두 번의 리그 컵 우승, 유로파리그 우승, 챔피언스리그 우승,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전부 현장에서 지켜보신 분입니다. 특히 FA컵 결승에서 터너를 도와 노츠 카운티의 골대를 지켜주었습니다. 그때 터너는 스물도 안 된 애송이였죠."
그때 토미는 앞니가 빠진 애송이였다. 한국 팬들과 노츠 카운티 팬들은 토미의 말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왜 사람이 이렇게 몰리나 궁금해서 들어왔던 사람들도 흥미진진하게 토미의 생중계를 시청했다.
"제가 결승 티켓도 구매하지 못하고 뉴욕, 아니 오타와에 오게 된 것은 노츠 카운티의 주장이자 영국 대표팀 주전 공격수인 헌터로부터 매우 중요한 비밀을 얻어듣게 되어서입니다."
토미는 목소리를 낮췄다. 누가 엿듣는 게 두렵다는 듯 주위를 살피기도 했다.
"한국팀이 월드컵 우승을 하면 주술사가 다시 노츠 카운티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16강 전에서 헌터와 구두로 계약했다고 합니다."
시청자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이미 수많은 기사에서 언급되어 노츠 카운티나 한국 대표팀 혹은 기신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안비밀'이다.
시청자들의 반응에 토미는 당황했다. 처음으로 시도하는 생중계라 경험이 부족하다. 이 난관을 어떻게 넘을지 고민하던 토미는 바로 주술사를 깨우기로 했다. TV에서 진행자들이 하는 걸 보며 쉽게 생각했는데 생중계는 어려운 일이다.
"자, 그럼 스카프의 수호령에게 부탁해 주술사를 깨우겠습니다. 다들 집중해 주세요."
병실 한쪽에서 병원의 간호사가 차가운 눈으로 토미의 짓거리를 지켜보았다. 몇 시간 전에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동양 남자가 와서 귀신을 쫓고 기신을 깨운다고 난리 쳤다. 결국 경찰이 와서 그 남자를 체포해갔다.
"환자의 몸에 손을 대지 말라고 미리 주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주술사를 깨우는 건 제가 아니고 수호령입니다. 여러분의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제 눈에는 보이거든요. 수호령, 주술사를 깨워줘. 노츠 카운티가 다시 강팀이 되기 위해 주술사가 필요해."
노츠 카운티는 기신이 떠난 후 첫 시즌 리그 8위로 마감했다. 그다음 선수들이 하나씩 이적하며 지금은 리그 10위에서 14위 사이를 오가는 팀이 되었다. 강등 걱정은 없지만 유로파리그를 노리기에 부족한 어중간한 팀이 되었다.
5분이 흘렀지만 아무 소용도 없다. 허락받은 시간은 20분이다. 이미 절반의 시간이 흘렀다. 토미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위대한 노츠 카운티는 더욱 위대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주술사는 노츠 카운티의 위대한 선장입니다. 수호령이시여, 제발 주술사를 깨워주세요."
SNS에 주술사를 깨워달라고 수호령에게 기원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대부분은 장난으로 하는 것이지만 일부는 진심이었다. 한국 팬들과 노츠 카운티 팬들은 재미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진지했다.
노츠 카운티가 챔피언십 2위로 프리미어리그에 승급하며 노팅엄은 축제를 벌였다. 그날 기신은 노츠 카운티가 더욱 위대해질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때 드래곤의 심장에 깃든 마나가 기신과 수십만 명의 의지에 움직였다.
아주 작고 미세한 축복들이 수십만 명에게 내려졌다. 그리고 지금 토미를 중심으로 그 축복들이 하나로 모였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수십만의 작은 축복들이 모여서 작은 기적 하나를 만들어냈다.
갑자기 스카프가 오랜 시간 풍화된 것처럼 부서져 내렸다. 토미는 가루가 된 스카프를 보며 울먹였다. SNS에는 대박이라는 한글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일부 본인을 냉철하다 여기는 시청자는 마술 도구일 뿐이라고 코웃음을 쳤다.
"토미, 결승전 보러 가야지."
토미는 끝내 울음보를 터뜨렸다. 수백만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했다. 상체를 일으킨 기신의 품에 안긴 토미를 간호사가 달려와서 땠다. 토미도 건장한 고등학생이지만 간호사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기신의 품에서 떨어졌다.
"의사 선생님, 의사 선생님."
중환자실에서는 정숙해야 한다. 그런데 베테랑 간호사가 오히려 큰 소리를 지르고 있다. 급히 달려온 의사는 침착한 어투로 간호사를 나무랐다. 급한 일이면 벨을 눌러야지 소리를 지르면 어떡하냐고. 그리고 상체를 일으킨 기신을 보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토미의 생중계를 통해 이 모든 장면이 방송되었다.
"미스터 기, 반드시 정밀검사를 해야 합니다."
"저는 자신의 의지로 정밀검사를 거부합니다. 한시가 급하니 더는 방해하지 말아 주세요."
기신은 퇴원 수속을 빠르게 끝냈다. 천 부스러기를 다 모아서 담은 토미가 빨개진 눈으로 기신의 곁에 있었다. SNS에서 글이 엄청 올라왔지만 이미 토미의 관심 밖이다. 토미는 생중계를 켠 채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택시를 잡은 기신은 곧바로 대표팀에 전화해서 자신과 토미의 티켓을 부탁했다. 그리고 바로 버지니아에게 영상통화를 요청했다. 통화하다 갑자기 쓰러져서 큰 걱정을 했을 것이다. 더구나 출산일이 가까워서 더 걱정되었다.
영상 반대편에는 강아지 한 마리만 있었다. 당황한 나머지 버지니아는 핸드폰을 집에 두고 병원에 갔다. 머리가 몸통 절반 정도 크기가 되는 강아지는 기신을 향해 윙크했다. 그러고는 핸드폰 통화를 종료했다.
기신은 다시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자신이 무사함을 알렸다. 아버지는 병원 근처 찜질방에서 잠을 자며 병원에 출근하다시피 했다. 버지니아도 기신이 무사하다는 말에 한시름 놓았다.
기신이 깨어나서 뉴욕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이 기사로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다. 축 늘어져 있던 대표팀의 분위기도 다시 살아났다. 차범수와 길서준이 돌아와도 처져있던 분위기가 제대로 살아났다.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노수영이 불쌍할 뿐이다.
토미는 공항에 도착해서야 자신이 생중계를 끄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챘다. 공항에서 토미의 생중계를 시청하던 시청자가 강하게 항의했다. 토미는 뉴욕에 가서 다시 생중계로 오늘 있었던 일을 자세히 말해준다고 말하고는 생중계를 꺼버렸다. 갑질토미라는 별명이 새로 생기고 빠르게 퍼져나갔다. 한국 팬들을 중심으로.
뉴욕에 도착한 후 토미에게 호텔에 방 하나 배정해 주었다. 바로 사람들의 뇌리에 잊힌 노수영의 방이다. 노수영은 신기에게 몸을 빼앗기고 토미에게 방을 빼앗기는 슬픈 운명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토미가 방에서 생중계를 켜고 시청자들에게 영웅 신화를 각색해서 들려주는 사이 기신은 선수들을 다시 만났다. 선수들의 컨디션이 한눈에 들어왔다. 함께 독일팀의 최근 두 경기를 관람했다. 독일팀을 상대할 전술이 샘솟듯 머릿속에 떠올랐다.
결승전을 앞두었지만 한국팀은 강훈련했다. 기신이 수비 전술과 공격 전술을 몇 개 만들어냈고 그것을 선수들에게 숙지시켰다. 그리고 결승전이 시작되기 전 2시간, 경기 전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독일에는 예의적인 질문들만 던졌다. 독일과 일부 유럽 매체들만 독일에 예의상 질문했다. 모든 관심은 기신과 차범수에게 집중되었다.
"우선 기적적인 회복을 축하드립니다. 일부러 꾸며낸 것이라는 말도 있는데 두 분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맞습니다. 결국 들켰네요. 우리는 이탈리아와 짜고 일부러 차범수 선수가 위급한 척 연기했습니다. 미리 짜지 않았다면 이탈리아 의료팀이 그런 훌륭한 연기를 하지 못했을 겁니다."
"결승전 상대는 독일팀입니다. 월드컵 결승 진출이 가장 많고 우승 경험도 가장 많은 팀입니다. 4강 진출도 가장 많은 팀이죠. 4강은 두 번째이고 결승은 처음인 한국팀이 독일을 상대로 어떤 전술을 펼칠까요?"
"대략 9년인가 10년인가 전에 제가 노츠 카운티의 감독이 되었습니다. 그때 노츠 카운티는 4부리그에서 강등을 걱정하는 팀이었죠. 그리고 터너, 그레이, 헌터가 노츠 카운티로 왔습니다. 그때 어떤 팀도 계약하려 하지 않는 선수가 그레이와 헌터였습니다."
기신은 담담한 듯 힘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해 우리가 뭘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으신다면 제가 상기시켜 드리죠. 리그 컵에서 준결승에서 맨시티를 만나고 결승에서 아스널을 만난 후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FA컵 결승에서 맨시티를 만났고 결국 우승컵을 차지했습니다."
기신의 목소리는 마이크에 에코를 넣은 것처럼 울렸다.
"저는 그때 30대 초반의, 감독이 되겠다고 철없이 회사를 그만둔 애송이였습니다. 무슨 능력으로 4부리그 팀을 데리고 우승했을까요? 인간의 힘으로 가능할까요? 불가능합니다. 저는 그저 신의 가호를 받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신은 아직도 저를 총애합니다. 월드컵 우승, 반드시 이루어내겠습니다."
기신의 굳건한 의지에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피를 공급하는 심장뿐 아니라 마력을 공급하는 블루 드래곤의 심장도 기신의 의지에 따라 더욱 빠르게 박동했다.
"차범수 선수에게 묻겠습니다. 생명이 위급한 부상에서 기적적으로 깨어났습니다. 물론 아무 문제 없다고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뇌의 신비는 아직 미지의 영역입니다. 최소 일주일은 지켜봐야 하는 상황인데 위험을 무릅쓰고 결승에 출전할 생각입니까?"
"결승전은 다른 의미의 전장입니다. 제가 한국팀 사령관입니다. 가장 중요한 전투에 빠질 생각이 없습니다. 만약 제가 불행한 일을 당한다면, 그저 신이 저에게 3초의 시간을 주기 바랍니다."
차범수의 어조는 침착하고 목소리는 단단했다. 곧은 자세는 전투를 앞둔 군인의 그것이었다. 고개는 적당한 각도로 들려 기세가 넘치지만 거만한 느낌을 주지 않았다.
"미소지을 시간을 주시기 바랍니다."
- 작가의말
일단 신비주의로 가겠습니다. 중간에 듬성듬성 빠진 이는 빠르게 보충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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