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승점 공급원
결승전 상대는 영국팀이다. 해리 왕자가 와일드카드로 출전한 영국팀은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다. 해리 케인이 올림픽 출전을 승낙하는 바람에 헌터가 명단에서 탈락했다. 드리블, 패스, 슈팅 다 잘하는 해리 케인에 비하면 헌터는 드리블 불가, 패스 정확도 저조, 슈팅 방향 자유분방 등 본인 만의 특색이 강하다.
결승전에 한국은 4-2-3-1의 진형을 사용했다. 김시웅이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해서 해리 케인을 마크하는 역할을 맡았다. 해리 케인이 공만 잡으면 김시웅이 몸싸움을 걸었다. 김시웅이 몸싸움에서 해리 케인에게 계속 밀렸지만, 영국팀의 공격을 지연시켜 수비에 작지 않은 공헌을 했다.
김시웅의 수비를 떨쳐내려면 해리 케인의 위치를 위로 올리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영국의 미드필더들이 형편없이 밀릴 것이다. 후반전을 생각하지 않고 미친 듯이 뛰는 한국의 미드필더들은 경기 후 단체로 도핑 테스트를 받을지도 모른다.
경기 15분이 되자 이청수가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을 얻어냈다. 공을 조금 길게 차자 일부러 속도를 늦춰 수비수가 내민 다리에 걸렸다. 차범수는 공을 빙빙 돌려 마음에 드는 무늬가 가장 위로 향하게 했다. 워드에게서 배운 방법인데 이런 식으로 패턴을 만들면 마음을 안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영국팀은 프리미어리그에서 주전으로 뛰는 선수가 여섯이나 된다. 그래서 초반에 가볍게 뛰었다. 경기 사이의 휴식시간이 부족하여 피로가 덜 풀렸다. 반면 한국팀은 전반전부터 전력을 다해서 실력의 차이를 메꿨다.
하지만 차범수가 프리킥으로 득점을 하자 곧바로 긴장감을 끌어올리고 경기의 리듬을 빠르게 가져갔다. 하지만 득점에 급급해서 해리 케인에게 공이 집중되다 보니 차범수 입장에서는 오히려 수비가 편했다.
세 번째 코너킥 상황에서 손현민은 비장의 사인을 꺼냈다. 영국팀이 공격에 급급해서 수비 집중력이 많이 떨어졌다. 차범수가 슬금슬금 움직였지만, 수비수는 페널티 구역 밖으로 향하는 차범수를 따라가지 않았다. 대신 차범수의 자리에 들어오는 다른 선수를 마크했다.
손현민의 낮고 빠른 공은 페널티 구역 밖에 자리 잡은 차범수에게 향했다. 차범수는 공을 잡자 곧바로 슈팅했다. 프리킥처럼 편한 상황은 아니지만 강한 슈팅을 날릴 수 있었다. 영국 수비수의 몸에 맞아 굴절된 공은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2:0으로 앞선 후 한국팀은 단 하나의 추가 슈팅을 기록하지 못하고 전반전을 마쳤다. 해리 케인이 위치를 올리자 위력이 강해졌고 한국은 수비선을 뒤로 물릴 수밖에 없었다. 영국팀은 속도가 빠르고 돌파능력이 강한 두 윙을 이용해 크로스를 올렸다. 김시웅이 몇 번이나 반칙에 가까운 수비로 막아내지 못했으면 전반전에 실점했을 것이다.
후반전 60분에 김시웅의 반칙으로 페널티킥을 선언 받았다. 김시웅은 카드 누적으로 퇴장까지 당했다. 심 감독은 이청수를 제외한 남은 세 공격수를 내리고 수비수 세 명을 투입했다. 골대 앞에 버스 두 대를 세웠는데 운전사가 차범수라 영국팀의 공격은 번번이 무산되었다.
경기 70분이 되자 영국팀도 체력이 많이 소진되었다. 영국팀의 잦은 실수로 한국은 숨통이 트였고 가물에 콩 나듯 한 이청수의 반격으로 영국 선수들을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했다. 85분이 넘자 다리에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지는 선수들이 속출했고 결국 한국은 2:1의 점수를 지켜냈다.
### 나는야 우울한 분계선 ###
차범수와 김시웅이 금의 기운을 가지고 노츠 카운티에 합류했다. 하지만 시차 적응과 체력 비축 등으로 인해 8월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리고 8월은 노츠 카운티에 우울한 시간이었다.
첫 경기에 홈에서 0:3으로 크리스탈 팰리스에 패했다. 두 번째 경기에서 0:1로 뉴캐슬에게 패했다. 세 번째 경기 역시 홈에서 사우샘프턴에게 0:1로 패배했다. 가장 큰 점수로 패한 크리스탈 전이 오히려 가장 잘 뛴 경기다. 남은 두 경기는 일방적으로 밀렸는데 터너의 선방으로 실점을 하나밖에 하지 않았다.
"노츠 카운티의 운영진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구장을 확장할 것이 아니라 선수단을 보강했어야 했습니다. 오래된 구단이라 그런지 아주 느긋하게 움직이는군요."
"동의합니다. 이들이 영입한 선수들을 보면 1부리그 주전이 한 명도 없습니다. 길게 보는 것도 좋지만 프리미어리그에 한 시즌이라도 더 몸담고 있으면 경제적으로 얼마나 큰 이득이 오는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스쿼드 보강을 안 한 것은 정말 이해가 힘든 행동입니다."
운영진은 빚을 내서라도 선수를 영입하려 했다. 하지만 기신이 강하게 반대했다. 실력이 괜찮은 선수를 데려다가 바로 써먹는 것보다 팀 전체의 전력을 안정적으로 키우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맨시티의 경우만 봐도 선수를 그렇게 영입했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 10년간 계속 물만 먹었다. 노츠 카운티는 다른 길을 걸어야 한다고 기신은 확신했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퀘스트가 없었다면 기신도 선수들을 영입해서 리그에 잔류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을 것이다. 하지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노려야 하기에 선수단뿐 아니라 구단의 건실함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도대체 퀘스트의 목적이 무엇이지? 내가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더욱 기신을 괴롭게 하는 것은 퀘스트의 목적을 도무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신기의 퀘스트는 세상을 구원한다는 목적이라도 있지만 기신의 퀘스트는 무엇을 위한 퀘스트인지 알 수가 없다.
9월 초에 국가 대항전이 잡혀 있기에 보름의 휴식 기간이 있었다. 하지만 헌터와 엑토르가 국가의 부름을 받았다. 2022년 월드컵을 대비해서 미리 선수들을 관찰하려는 의도이다. 터너 역시 스코틀랜드의 부름을 받았다.
차범수와 김시웅은 올림픽 대표에 차출된 것 때문에 소집되지 않았다. 덕분에 9월의 경기가 시작될 때 몸 상태나 체력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9월 12일 원정에서 웨스트햄에 0:2로 패배했다.
9월 16일 홈에서 레스터 시티와 0:0으로 비겨서 겨우 1점을 기록했다. 23일에도 1:1로 비겨서 원정에서 1점을 따냈다. 안정적인 수비로 팀의 컨디션이 좋아졌나 싶었는데 30일 홈에서 토트넘에 0:4의 점수로 대패했다.
10월 초 국가 대항전이 되었는데 다행히 터너를 제외하고 누구도 국가의 부름을 받지 않았다. 기신은 기존의 5-4-1 진형을 버리고 4-4-2 진형을 새롭게 짰다.
기존에는 왼쪽 풀백 두두가 수비 시에 돌아오지 않으면 블랙이 그 위치를 메꾸었다. 그 상황에서 두두는 미드필더들을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두두는 미드필더를 지원해야 할지 원래 수비 위치로 빠르게 돌아가야 할지 제대로 된 선택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노츠 카운티는 상대의 역습에 취약했다.
기신은 능력치 55의 두두 대신 왼쪽 풀백 자리에 능력치 49의 맥도날드를 내세웠다. 중앙은 능력치가 45밖에 안 되지만 안정적인 베르베와 키도 크고 속도도 빠른 산드로 구즈믹스를 내세웠다. 오른쪽 풀백은 김시웅이 자리했다.
미드필드에는 차범수와 그레이가 더블 볼란치를 형성했다. 기존에는 차범수 혼자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았는데 몸싸움에서 적지 않은 손해를 보았다. 그래서 기신은 공격형 미드필더를 차지하고 있던 르노를 빼고 그레이를 넣었다.
왼쪽 윙은 속도가 빠른 엘리엇을 선발로 정했다. 크로스가 정확하지 않지만 담케이는 속도가 느려 역습 상황에 제대로 된 공격 지원을 해주지 못했다. 엘리엇도 이제는 팀에 꽤 적응했기에 담케이 대신 엘리엇이 선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오른쪽 윙은 엑토르가 자리를 지켰다. 중앙 공격수로도 잘 하는 엑토르지만, 엑토르를 중앙에 배치하면 양쪽의 공격이 아예 죽어버린다. 기신은 어쩔 수 없이 엑토르를 윙의 자리에 배치했다.
두 공격수는 보나비치와 헌터를 배치했다. 헌터는 득점을 못 하지만 팀의 공격에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훌륭히 소화했다. 보나비치 역시 영리한 위치 선정과 움직임으로 팀의 공격을 다양하게 만들어주었다. 흠이라면 아직 둘 다 득점이 없다는 것이다.
워드, 르노는 벤치에 앉혔고 블랙은 아예 하비에게 보내 개인 훈련을 시켰다. 실수를 쉽게 하는 단점만 고치면 블랙도 쓸만해 질 것이다. 수비수 중에서 능력치는 가장 높지만, 실수를 가장 많이 하는 사람 역시 블랙이다.
4-4-2로 치른 첫 경기에서 원정에 0:2로 함께 프리미어리그로 승급한 스완지에 패했다. 홈에서 맨시티에 1:1로 비겼고 다시 원정에서 리버풀에 0:3의 참패를 당했다. 10월이 끝날 때 노츠 카운티는 10경기에서 3무 7패로 프리미어리그 순위 20위를 당당하게 차지했다.
"기 감독님, 지금 노츠 카운티는 승점 자판기, 승점 공급원 등 좋지 않은 별명이 가득 생기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리버풀에 패한 후 기신의 아픈 가슴에 기자들이 개인 취향에 따라 고춧가루, 후춧가루, 소금, 식초 등을 뿌렸다. 최근에는 노츠 카운티의 어용 기자인 챔도 기신과 노츠 카운티를 옹호하는 기사를 감히 쓰지 못했다. 노츠 카운티는 몇 년 전에 크리스탈이 1승 1무 8패로 승점 4점을 기록했던 것보다 1점이 더 적어 프리미어리그 최악의 시작에 등극했다.
"지금 팀이 하나로 단합하여 힘든 상황을 이겨내려 하고 있습니다. 팀도 점점 나아지고 있고 젊은 선수들도 점점 성숙해지고 있습니다. 석 달간의 시련을 거쳐 우리 팀은 더욱 훌륭한 팀이 되었습니다. 다음 경기부터 기대하셔도 됩니다."
석 달의 시간은 팀과 젊은 선수들에게 시련과 고난의 시간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기신에게도 시련과 고난 그리고 발전의 시간이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현장지휘는 예전과는 다른 선택지를 기신의 앞에 펼쳤다.
예전에는 몇 개 선택지에서 가장 좋은 선택이라 생각되는 것을 기신에게 건네주는 식이었다. 하지만 프리미어리그에서는 여러 가지 선택지를 제시하고 기신 본인이 직접 선택하게 했다. 기신이 곰곰이 생각해보니 유로파리그나 챔피언스리그에서 가끔 이랬던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크게 개의치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현장지휘 능력도 확신이 없었던 것 같다.
초월적인 힘이지만, 전지하지도 전능하지도 않다는 것이 오히려 기신은 마음에 들었다. 그간 치른 12경기에서 노츠 카운티는 1승 8패 3무의 성적을 거두었다. 리그 컵에서 첫 경기에 3부리그 팀에 승리를 거두었고 두 번째 경기에 2부리그 팀에 패배했다.
리그 열 경기를 통해 노츠 카운티 선수들은 프리미어리그의 빠른 리듬에 어느 정도 적응했다. 심판의 판정에도 적응했고 경기 운영이 노련해졌다. 차범수의 지휘도 더욱 능숙해졌고 선수들도 차범수의 지시에 더 잘 따르게 되었다.
"그럼 노츠 카운티의 첫 승은 언제라고 생각합니까?"
"다음 경기가 홈에서 펼쳐지는군요. 첫 승은 홈에서 거둘 생각입니다."
기자석에서 피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노츠 카운티의 다음 상대는 현재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는 맨유이다. 맨시티가 원래 1위를 달렸는데 최근에 주춤하면서 맨유가 1위로 승격했다. 맨시티는 노츠 카운티와 1:1로 비긴 후 다음 경기에 패배하면서 2점 차이로 맨유에 1위 자리를 내주었다.
다시 말하면 1위 자리를 지키기 위해 맨유가 노츠 카운티와의 경기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기신이 태연하게 승리를 장담하니 코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 작가의말
시련은 짧게. 어릴 때는 고구마 참 좋아했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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