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신, 라이벌을 참수하다
예상치 못한 승리를 거둔 후 노츠 카운티의 팬들은 영토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개선군을 맞이하듯 수천 명의 환영 인파가 거리에 나섰다. 9월 30일에 맨스필드 타운과의 더비전이 기다리고 있기에 라이벌을 참수하라는 표어가 여기저기에 걸려 있었다.
원래 노팅엄 지역에서 노팅엄 포레스트와 노츠 카운티가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 하지만 노츠 카운티가 오랜 시간 동안 하부리그에서 허덕이며 그 관계가 점점 희미해졌고 같은 4부리그 팀인 맨스필드와 점차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었다.
경기 당일 아침부터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축구하는 선수들이 우천에 익숙하고 젖은 잔디에서 축구를 잘 할 거라는 편견이 있다. 영국에서 오랫동안 축구를 했지만 비 오는 날씨에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선수들이 수두룩하다. 기신도 오전에 컨디션을 확인하고 나서야 의외로 우천에 의해 컨디션이 망가진 선수들이 많음을 확인했다.
지금까지 골문을 지켜오던 터너를 대신해 아담 콜린이 장갑을 착용했다. 안투이와 스벤은 아예 벤치에도 앉지 못했다. 기신이 내놓은 4-4-2 진형에서 헌터와 존 알렉산드로가 공격수를 맡았다. 오코너 역시 벤치에서 대기하고 알란 스미스와 그레이가 중앙 미드필더를 맡았다.
터너는 평소에도 가끔 공을 놓치는 경우가 있는데 비가 오자 그런 경향이 더욱 심해졌다. 그걸 감안해도 터너가 아담 콜린보다는 낫지만 한가지 문제점으로 아담 콜린이 키퍼로 선택되었다. 맨스필드가 극단적 반격 전술을 사용하는 팀인데 골대를 벗어나기 싫어하는 터너는 이런 팀과의 경기에 적합하지 않다.
팀의 진형이 전체적으로 밀고 올라가면 키퍼가 적당히 나와서 센터백과의 거리를 줄여야 한다. 상대 공격수에게 달릴 공간을 최소한으로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터너는 앞으로 나가기 싫어하기 때문에 상대에게 커다란 공간을 남겨줄 수밖에 없다.
같은 노팅엄 지역의 팀들 간의 경기이기에 노츠 카운티의 팬들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맨스필드의 홈구장이 소방 등 안전 원인으로 7300 좌석밖에 인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경기장에 입장할 수 있는 노츠 카운티의 팬들은 400명을 조금 넘었다.
잭슨은 6대째 노츠 카운티의 팬이다. 지금 여덟 살이 된 아들도 노츠 카운티의 팬으로 키우려고 노력 중이다. 잭슨의 조상이 노츠 카운티 구단이 만들어질 때 원년 멤버라는 것은 잭슨의 모든 친구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아들, 공부 성적이 떨어지는 건 괜찮아. 하지만 노츠 카운티에 대한 사랑이 식는 건 이 아빠가 용서할 수 없어. 이 구단은 우리 조상님이 직접 창단에 기여한 구단이야. 우리는 목이 터져라 응원해서 이 구단을 프리미어 리그로 보내야 해."
토미는 부친에 의해 어릴 때부터 축구광으로 키워졌다. 하지만 최근 토미는 아스널의 축구에 흠뻑 빠져 있었다. 여덟 살이 된 토미가 점점 더 많은 관심을 아스널에 돌리자 잭슨은 토미를 위해 시즌권을 구매했다.
"토미, 넌 행운의 부적이야. 네게 시즌권을 구매해준 후 팀은 모든 경기에서 이겼어. 오늘 경기도 이길 게 뻔하니까 12연승이야. 팀의 승리에 토미 너도 기여를 한 거야."
잭슨은 자신의 아버지가 써먹었던 멘트들을 회상하며 토미를 설득하려 애썼다. 토미가 다른 팀의 팬이 되면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 아마 모든 노츠 카운티의 팬들이 자신을 반역자의 아비라고 손가락질할 것이다.
경기가 시작되자 잭슨은 모든 것을 잊고 응원에 열중했다. 아버지의 잔소리에서 벗어난 토미 역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버지의 불시 검문 때문에 다운로드한 아스널의 동영상들은 비밀 폴더에 몰래 숨겨놓고 있다. 켜놓은 모든 창들을 한꺼번에 닫는 프로그램도 매우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아빠, 저 두 사람은 처음 보는데 누구야?"
잭슨은 몇 달째 매우 분주하게 보냈다. 생각지도 못한 투자를 받아서 사업 규모를 몇 배로 늘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혈 팬답게 홈경기들은 전부 경기장에서 관람했다. 하지만 팬 모임에도 오랫동안 못 나갔고 인터넷도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둘의 정보에 대해서는 자세히 일지 못한다.
"저 스물여섯 정도 되어 보이는 흑인 아저씨는 그레이라고 해. 그리고 저기 서른 정도 되어 보이는 공격수 아저씨는 헌터야. 지난 경기에 둘이 공격포인트 두 개씩 올려서 우리 팀이 토트넘을 4:1로 이겼어."
토트넘은 토미도 싫어하는 팀이다. 토미가 좋아하는 아스널과 숙적 관계이기 때문이다. 둘이 토트넘에 골을 넣었다는 말에 급격히 호감이 생겼다. 잭슨은 지난 경기를 생중계로 보지 못하고 신문에서 둘의 사진과 이름만 확인했다. 하지만 기사 내용은 자세히 읽지 않아 그 이상의 정보는 가지고 있지 않다.
"근데 왜 예전 경기에서 저 두 사람은 한 번도 출전하지 않았지?"
"비밀병기 같은 거 아닐까? 토트넘을 이기기 위해 지금까지 숨겨둔 거겠지."
토미는 잭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노츠 카운티에 대한 호감도 급상승했다. 자신이 싫어하는 토트넘을 이기기 위해 두 명의 비밀병기를 숨겨둔 결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그때 그레이와 맨스필드 선수가 동시에 경기장에 쓰러졌다. 맨스필드 선수가 그레이에게 거친 태클을 걸었고 그레이가 넘어지면서 맨스필드 선수를 깔아뭉갰다. 태클을 당한 그레이가 오히려 빠르게 일어났고 맨스필드 선수는 장외로 들려나가 치료를 받았다.
"아들 봤지. 방금 부상 입은 선수는 맨스필드의 유망주야. 하지만 20살밖에 안 되어서 신체적으로 완성되지 못했지. 그래서 자신이 반칙하고 오히려 자신이 부상을 입은 거야. 원래 노츠 카운티의 유스였는데 저 간악한 맨스필드가 가로챈 거야."
전반전 29분, 그레이가 상대 선수와 경합을 벌여서 공의 제어권을 획득했다. 그러자 아란 스미스가 곧바로 달려가서 그레이의 공을 2미터 거리에서 받았다. 패스가 부정확한 그레이기에 공을 잡고 있으면 센터백이나 다른 미드필더들이 공을 받으러 달려가야 한다.
스미스는 공을 잡자마자 곧바로 앞으로 찔렀다. 192의 신장에 어울리지 않게 헌터가 빠른 속도로 달렸다. 따라붙는 수비수가 몸으로 부딪혀 왔으나 본인이 되려 튕겨났다. 키퍼와 일대일이 되었지만 헌터는 슈팅을 하지 않고 옆으로 패스했다. 알렉산드로는 헌터가 패스한 공을 빈 골문안에 손쉽게 밀어 넣었다.
"아들, 봤지. 몸을 잘 쓰니까 상대 선수가 들러붙지도 못하잖아. 맨스필드가 우리 유스를 데려다가 벌써 프로경기에 투입시키는 건 선수를 망치는 간악한 행위야."
다른 팬들과 손뼉을 마주치며 첫 골을 환호한 잭슨은 토미에게 신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하지만 토미는 잭슨의 눈앞에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눈을 찌푸리고 화면을 들여다보니 두 선수의 프로필이 나와 있었다.
피터 그레이는 19세이고 리차드 헌터는 17세였다. 잭슨은 눈앞이 캄캄해 왔지만 정신줄을 놓지 않았다.
"아들, 항상 예외는 있는 법이야. 유스라고 모두 신체가 완성되지 않은 건 아니야."
골 하나 먹었지만 맨스필드는 급해하지 않고 계속 반격 전술로 일관했다. 이들은 끈질긴 수비로 70분 버틴 뒤 마지막 20분 동안 공격에 집중한다. 한 골 앞선 노츠 카운티의 선수들도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며칠 전 토트넘을 이긴 후 팀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오늘 더비전에서 대승을 하여 이 기세를 이어나가고 싶은 생각뿐이다.
36분에 튜틀이 오버래핑을 하여 센터링 기회를 얻었다. 헌터는 말할게 없고 알렉산드로도 188로 작은 키가 아니다. 하지만 튜틀은 공을 띄우지 않고 낮게 크로스를 올렸다. 헌터가 몸싸움에서 승리하고 좋은 위치를 선점했기 때문이다.
맨스필드 선수는 헌터의 허리를 부여잡고 흔들었다. 하지만 헌터의 억지로 뻗은 발에 맞은 공은 골대에 맞은 뒤 골인되었다. 슈팅 동작을 제대로 완성하지 못했는데 운 좋게 공이 들어간 것이다. 골인이 인정되고 맨스필드 수비수는 노란 카드 한 장을 어깨에 얹었다.
45분의 정규시간이 다 끝나고도 2분의 추가시간이 주어졌다. 더비전 답게 몸싸움이 격렬했기 때문이다. 페널티 구역 안에서 공을 잡은 헌터의 슈팅이 수비수의 몸에 맞아 코너킥이 되었다. 센터백 칼 딕슨이 깔끔한 헤딩슛으로 세 번째 득점을 올렸다.
후반전이 되자 알렉산드로가 조나슨 알레오비에 의해 교체되었다. 알레오비 역시 속도가 빠른 공격수이다. 헌터가 헤딩을 전혀 못하기 때문에 알렉산드로가 선발 출전했지만 3골을 앞서자 후반전에는 역습에 능한 알레오비를 올린 것이다.
후반 52분에 키퍼가 페널티 구역 안에서 알레오비를 넘어뜨려서 빨간 카드로 퇴장을 받았다. 페널티킥은 알레오비가 깔끔하게 득점에 성공했다. 59분에 헌터가 새로 올라온 키퍼의 반칙에 의해 또 한번 페널티 구역 안에 넘어졌다. 이번에는 심판이 사정을 봐서 노란 카드만 꺼내들었다.
페널티킥은 튜틀에게 기회가 넘어갔고 튜틀은 깔끔하게 성공시켰다. 5:0이 되자 맨스필드 감독은 뒤집을 가능성이 아예 없음을 인정하고 다시 수비를 명했다. 다만 반격에 투입되는 선수를 전반전의 3명에서 4명으로 늘렸다.
큰 점수 차이 때문인지 맨스필드 선수들의 동작이 점점 커졌고 노츠 카운티도 지지 않고 몸싸움의 수위를 높였다. 서로 눈싸움은 기본이고 이마와 이마를 대고 소싸움을 하는 선수들이 점점 늘어났다.
맨스필드의 수비형 미드필더가 스미스가 찔러준 공을 잡으려고 전속력으로 뛰는 헌터에게 태클을 걸었다. 헌터는 달리던 속도 그대로 넘어져서 미끄러운 잔디 위를 5미터 정도 미끄러졌다. 화가 난 그레이가 주먹을 쥐고 달려갔고 곧바로 양쪽 선수들이 그레이를 말렸다.
거친 욕설이 오가고 몸과 몸이 서로 부딪혔다. 하지만 이성을 잃고 손이나 발을 쓰는 선수는 없었다. 그레이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가 헌터가 가벼운 동작으로 일어나는 것을 보고 화를 가라앉혔다.
위험 태클을 한 선수는 붉은 카드로 퇴장을 당하고 그레이를 포함해 총 네 명의 선수가 노란 카드를 받았다. 심판의 강수와 벤치의 지시로 선수들의 동작이 조금 작아졌다. 두 명의 선수가 퇴장당한 맨스필드는 수비만 하기에도 벅찼다.
기신은 그레이와 헌터를 내리고 오코너와 테리 톰프슨을 올렸다. 공격수 한 명을 내렸지만 미드필더에 공격 성향의 오코너와 스미스가 공격을 주도하고 수비 범위가 넓은 톰프슨이 수비를 도왔다. 주로는 공격 가담이 많은 튜틀 쪽으로 많이 움직였다.
88분에 오코너가 중거리슛을 성공시키고 90분에 딕슨이 코너킥 기회에 헤딩슛을 성공시켜 멀티골을 달성했다. 추가시간 2분 만에 튜틀의 센터링이 운 좋게 그대로 골인했다. 런던 더비나 맨체스터 더비처럼 원한이 깊은 건 아니지만 팬들 사이에서 작은 마찰이 계속 있어왔기에 양 팀 팬들의 반응은 매우 격렬했다.
이튿날 노팅엄 데일리의 1면은 챔의 기사로 장식되었다. 기사의 큰 제목은 '노츠 카운티 8 : 0 맨스필드 타운'이고 부제목은 '노츠 카운티, 라이벌을 참수하다'였다. '12연승, 주술사의 주술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로 시작된 기사의 말미에는 토미라는 이름을 가진 꼬마팬의 인터뷰가 실려있었다.
"노츠 카운티의 축구는 진정한 남자의 축구예요. 아스널과 같은 계집들의 축구를 하는 구단은 반성해야 돼요. 그리고 저희 조상님이 노츠 카운티의 창립멤버 중 한 명이에요. 저희 집에는 백 년 전 노츠 카운티 스카프도 있어요."
- 작가의말
지금 신기의 분량이 적은 건, 신기는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고 기신은 감독 노릇하느라 게임을 등한시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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