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법사들의 몰락
신기를 묶은 밧줄은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 대소변이 보고 싶다고 말하면 바지를 내려준다. 목마르다고 하면 물을 따라준다. 두 팔이 묶였지만, 밧줄 덕분에 신기는 일상생활의 불편함이 없다.
모산도사는 술과 안주를 가지고 신기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랜 시간 말동무가 없었다며 신기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신기는 적절한 추임새와 질문으로 자신의 호기심을 풀었다. 모산도사는 이상한 향과 술법으로 매일 신기를 세뇌하고 있다. 자신의 세뇌술에 자신이 있는지 신기의 질문에 전부 대답했다.
"대한제국이 건립될 때 일본 아이가 한 명 있었다. 그 아이도 너처럼 용의 힘을 가지고 태어났지. 그래서 그 아이에게 대한제국의 황제로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내게 순종하는 척하면서 결국 나를 배신했지."
아이는 힘을 얻은 후 대륙이 아닌 일본부터 수복하려 했다. 결국 모산도사는 말을 듣지 않는 아이를 죽이고 귀걸이를 회수했다.
"너도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이고 귀걸이를 회수할 것이다. 그러니 꼭 내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신기는 밧줄에 목이 가렵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밧줄이 신기의 목을 긁어주었다. 밧줄로 모산도사의 시선을 끌었지만 모산도사는 별 반응이 없었다.
'내 목의 문신을 보지 못하는구나.'
대드루이드는 목걸이 문신을 발견했다. 하지만 모산도사는 목걸이 문신도 그렇고 반지의 문신도 보지 못했다. 신기는 모르지만 모산도사가 볼 수 있는 것은 팔찌와 왼쪽 귀걸이뿐이다. 오룡신기의 보관자들은 두 개의 문신밖에 볼 수 없다.
신기는 모산도사가 아는 것이 자신보다 적음을 확신했다. 오룡신기에서 모산도사는 귀걸이밖에 모르는 게 확실하다. 아마 모산도사가 말하는 세상에는 다른 대륙들이 포함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치우도 플레이어 혹은 캐릭터였을 가능성이 크구나. 그때 황제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패배하여 세상의 운명을 바꾸지 못한 모양이다. 내가 첫 플레이어가 아닐 것이고 내가 퀘스트에 실패한다면 또 다른 플레이어가 생길 수도 있겠구나.'
새로운 진실을 마주한 신기의 직관력이 날뛰었다. 그때 모산도사가 바지춤을 부여잡고 밖으로 향했다. 신기는 모산도사가 사라지자 밧줄에 말했다.
"배고프다. 저 고기를 먹고 싶다."
밧줄의 한쪽 끄트머리가 쓱 움직여서 젓가락으로 고기 한 점을 집어 신기의 입에 넣어주었다. 고기는 육질이 부드럽고 맛이 고소했다. 양념을 통해 맛을 낸 것이 아니라 고기 본연의 맛인 것 같았다.
"됐어, 배부르다."
신기의 말에 밧줄이 젓가락을 원위치에 놓은 후 다시 신기의 몸을 감았다. 돌아온 모산도사는 계속 술잔을 홀짝이며 신기에게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다 갑자기 일어나서 술과 안주를 들고 신기를 가둔 방을 떠났다.
육체가 젊지만, 정신까지 젊은 것은 아닌지 모산도사는 잘 까먹는다. 아마 중요한 일이 있었는데 까먹고 노닥거리다가 갑자기 생각난 모양이다. 이미 모산도사의 행동에 적응한 신기는 침대에 편하게 누워서 모산도사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대한제국이 건국될 때 그 배후에는 술법사들이 있었다. 그때는 검사들의 힘이 많이 부족할 때이다. 모산도사의 계파는 용의 힘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 아이를 황제로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 술법사들은 일본인을 황제로 모실 수 없다며 반대했다.
용의 힘을 가지지 않은 자가 귀걸이를 착용하면 귀걸이가 그대로 있다. 하지만 용의 힘을 가진 자가 착용하면 문신으로 변한다. 모산파의 도움으로 힘을 얻은 아이는 모산파의 지시대로 행동하지 않고 한반도를 통해 일본부터 수복하려 했다. 인천 지역까지 괴수들을 몰아냈을 때 모산파는 독과 술법으로 아이를 처단하고 귀걸이를 회수했다.
당시 식량 생산이 가능한 땅을 수복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인구수가 늘어나야 괴수와의 전쟁이 가능하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의 힘을 불필요한 곳에 쏟아부었다. 다른 계파들의 비난에 모산파는 어려운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실패로 모산파의 세력은 크게 위축되었다. 황제를 옹립한 다른 계파의 견제를 받았기 때문이다.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모산파는 기공술을 연구했다. 세상의 기가 점점 풍부해지고 사람들의 몸이 점점 튼튼해졌다. 기공술을 통해 사람들의 몸을 더 빠르게 강화하려고 했다.
기공술은 대성공을 거두어 수많은 검사들을 배출했다. 일반인의 수배에서 수십 배의 힘을 내는 검사들의 활약으로 괴수와의 전쟁에서 점차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전공을 바탕으로 귀족이 된 검사들을 등에 업고 모산파는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때 대영제국과 북극해를 통해 통교하게 되었다. 마법사들과 술법사들은 협력하여 이동문과 이동진을 만들어냈고 마법 무기와 마법병기를 만들어냈다. 정형화된 마법이 무기에 접합(接合)하기 더 적합하여 무기와 병기들은 마법을 사용하지만, 제작하는 과정에 술법적인 요소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군대의 특성상 5에서 10의 위력을 내는 무기보다 안정적으로 3의 위력을 내는 무기를 더 선호한다. 술법은 5에서 10의 위력을 내는 무기이고 마법은 3의 위력을 내는 무기이다. 군에서 마법 무기와 마법병기를 점점 더 많이 보유하게 되자 술법사를 배제하게 되었다.
위기감을 느낀 술법사들이 뭉쳐서 술법도 마법처럼 체계화하고 정형화하려고 했다. 하지만 계파마다 자신들의 비전을 꽁꽁 감싸고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지지부진했다. 결국 술법사들을 껄끄럽게 여긴 황실과 검사들이 마법사를 키워내면서 술법사들은 완전히 대한제국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괴수 등급을 체계화한 사람을 신기는 다윈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산도사의 말을 들어보니 괴수 등급을 체계화한 것은 술법사들이다. 괴수들의 이름이 전부 동양식인 것을 보면 모산도사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황실과 군부에서 술법사들을 견제하기 위해 공을 마법사에게 돌린 듯했다.
그리고 대한제국에만 있는 마붕탄도 술법사들이 만든 것이다. 마법사와 검사를 적으로 상정하고 마나를 연구하다가 마나를 소멸하는 마붕탄을 발견한 것이다. 마붕탄의 제작은 마법으로 불가능하고 술법으로만 가능하다. 마붕탄 덕분에 술법사들의 생존 공간이 조금 커졌다.
마붕탄의 제작을 빌미로 술법사들은 여러 가지 요구를 했다. 이미 마붕탄이 괴수들에게 치명적임이 증명되었기에 황실과 군부는 술법사들의 요구를 최대한으로 들어주었다. 하지만 이들도 바보가 아니기에 술법사들에게 일방적으로 끌려다니지 않았다.
황실과 군부에 반감이 없는 술법사들 위주로 우대하면서 술법사들을 분열시켰다. 결과 술법사들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던 모산도사는 홀로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다가 황산에 자리를 잡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술법사들의 처지는 점점 어려워졌다. 보다 배우기 쉽고 배우는 과정이 확실한 마법은,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다. 황실과 군부의 지원을 받지 못한 술법사들은 후계자의 양성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마법은 책만 가지고도 어느 수준까지는 수련할 수 있지만 술법사는 그게 안 된다. 그래서 지금에 와서 술법사들은 완전히 몰락한 것이나 다름없다. 영국의 드루이드처럼 말이다.
신기는 지금 최악이나 다름이 없는 상황에 놓인 술법사들이 어떻게 상황을 반전시킬지 궁금했다. 논리적 사고로 추리가 필요한 일이라서 신기는 꿈에서 기신을 만나기를 고대했다. 어찌 되었건 퀘스트를 완성한 것이기에 다음 퀘스트의 정보를 기신에게 들어야 하는데 꿈에서 기신을 만날 수 없었다.
'빙룡도 무응답이고. 설마 이 밧줄이 나를 외부의 기운과 격리한 것인가?'
그때 신기에게 갑자기 복통이 찾아왔다. 밧줄에 대변이 급하다가 하자 밧줄은 신기를 허공에 띄운 채 화장실로 날아갔다. 그러나 바지를 내리고 한참을 기다렸지만, 복통은 여전한데 배설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됐고, 침대에 잘 눕히고 따뜻한 물을 마시게 해줘."
밧줄은 굳이 물로 신기의 엉덩이를 씻은 뒤에야 바지를 입히고 침대에 눕혔다. 끓인 물을 적당한 온도로 식힌 다음 신기에게 먹여주었다. 하지만 신기의 복통은 지속하었다.
'설마 아까 그 고기가 비유의 고기인가?'
비유는 5등급의 괴수로 크기가 닭 정도이고 생김새가 메추리와 똑 닮았다. 털빛은 병아리처럼 노랗고 부리가 붉은색이다. 수컷과 암컷으로 나뉘는데 수컷은 매우 호전적이어서 싸움닭이라고도 불린다. 움직이는 속도가 매우 빨라 덩치가 큰 괴수보다 훨씬 위협적이다.
비유의 고기를 먹으면 몸이 젊어진다. 아마 황산에 자리를 잡은 5등급 괴수는 비유일 가능성이 크다. 5등급에서 드물게 무리를 짓는 괴수가 비유이다.
'모산도사는 비유의 고기를 먹고 젊음을 유지한 모양이군. 설마 저 모산도사가 동방삭인가?'
동방삭은 괴수를 사육하는 술법사로 알려졌다. 하지만 누구도 그 실체를 확인하지 못했다. 딴생각을 해도 통증은 여전해서 신기는 계속 몸부림쳤다. 신기가 도망을 치려는 것으로 오해한 밧줄이 신기를 꼼짝달싹 못 하게 꽁꽁 묶어버렸다.
'이 미친 밧줄이, 길이도 마음대로 늘어나는구나. 욕심이 나네.'
복통으로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신기는 밧줄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정신상태가 조금 이상한 모산도사에게서 밧줄의 비밀을 캐낼 생각을 했다.
신기가 복통에 시달리건 말건 밧줄은 때가 되면 음식을 만들어서 신기의 입에 집어넣었다. 반항이 소용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아는 신기는 복통에도 꾸역꾸역 음식을 넘겨야 했다. 매일 한 번씩 목욕도 시켜주는 밧줄은 감금된 상황만 아니라면 참 고마운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사흘이 지난 후 복통이 멎었다. 신기는 복통이 가시자 몸에 힘이 솟았다. 한 점만 먹었는데 이렇게 심한 고통을 주었다. 신기를 만나러 올 때마다 술안주 삼아 먹는 모산도사는 얼마나 처먹어서 비유 고기에 적응했는지 궁금했다.
"좋은 소식이 하나 있어. 조선이 대마도를 수복한단다."
갑작스레 술을 들고 찾아온 모산도사는 두서없이 말을 꺼냈다. 신기는 모산도사의 이런 화법에 적응했기에 잠자코 뒷말을 기다렸다.
"대마도에 만인갱이 있거든. 그것이 괴수들을 끌어들이고 있어. 그대로 놔둬도 몇 달을 못 갈 거지만 조선이 만인갱을 없애버리면 내 계획도 앞당길 수 있지."
"무슨 계획입니까?"
"내게는 마붕탄이 두 발 있어. 나머지는 네 상상에 맡기겠다."
신기가 몇 번이나 캐물었지만 모산도사는 예외적으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신기는 화제를 밧줄로 바꾸었다.
"이 밧줄은 도사님이 만든 법기인가요?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 밧줄은 우리 모산파의 보물이야. 신선이 사용하던 물건인데 하계에 내려와서 영성을 얻은 것이지. 나도 뇌물을 바치고 겨우 부탁을 하는 수준이야. 내가 천 년을 더 살아도 이런 수준의 법기를 만들지는 못할 거다."
"과연 대단한 밧줄이군요. 이름이 있나요?"
"여의승(如意繩)이라고 부르는데, 실제 이름은 몰라. 아마 대단한 이름이 따로 있을 거야."
여의라는 이름이 붙는 것은 용의 구슬과 손오공의 몽둥이밖에 없다. 그리고 그 두 가지는 전부 대단한 보물이다. 물론 손오공은 실제로 존재했는지 의문이지만 말이다. 신기는 여의승이 모산도사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말에 더욱 욕심이 생겼다.
- 작가의말
신기야, 밧줄에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해봐. 소원을 말해봐.
오늘 2편으로 마칩니다. 명절이 다가오면서 외출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매일 글을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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