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겨울 바람
역시 지난해에는 늦었던 게 분명하다. 3월이면 리그가 끝나는 벨기에나, 벨기에보다는 늦지만, 영국 리그보다는 훨씬 빨리 끝나는 소규모 리그의 팀들이 이곳에 와서 먼저 선수들을 뽑아갔을 것이다.
당장 쓸만한 선수는 없지만, 마음에 드는 선수는 꽤 있었다. 깊은 고민을 거쳐 기신은 두 명의 선수를 선택했다. 솔직히 공격수는 이미 포화 상태다. 엑토르는 이미 프리미어리그에 잘 적응했고 헌터도 슈팅 정확도만 높이면 해리 케인 못지않은 공격수가 될 것이다. 최근 각성한 르노도 점점 경기를 운영하는 능력이 좋아지고 있다.
캐리어는 21세로 세미프로팀에서 골키퍼를 하고 있다. 12만 유로의 이적료를 지급하고 캐리어를 노츠 카운티로 데려갔다. 잠재력 73에 현재 능력 24인 캐리어는, 큰 키 덕분에 중앙수비수로 뛰다가 최근에 골키퍼로 전향했다. 어릴 때 유망주 취급을 받으면서 이미 핀란드 영주권을 얻은 상태여서 워크 퍼밋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17세인 몽겔로는 잠재력 69에 현재 능력은 11밖에 되지 않는다. 빠른 속도로 인해 윙으로 키워졌지만, 크로스의 질이 너무 낮다. 기신도 당장 써먹기 어려워서 계약할 생각이 없었는데, 적합한 위치가 왼쪽과 오른쪽 풀백이라고 하여 계약을 결심했다. 2만 유로의 이적료를 지급했다.
멕시코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맥스가 화난 말투로 기신에게 가나의 회사를 성토했다. 맥스는 놀랍게도 스페인어에 프랑스어 및 독일어까지 가능한 인재였다.
"무지한 놈들이 우리를 엄청 비웃더군요. 잘 하는 선수들이 있는데 쓸모없는 선수만 데려간다고 대놓고 비웃어요. 기 감독님의 위명을 잘 모르나 봅니다."
그러고 보니 기신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평판이 궁금해졌다. 기초가 부실한 자신이 높은 건물을 쌓아놓은 데 대해 항상 불안감을 가지고 있고, 자신을 채찍질하는 데 집중하면서 외부의 평가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맥스, 외부에서 나를 어떻게 평가하지? 나는 솔직히 인터넷도 잘 안 하고 TV도 별로 안 봐."
"동양에서 온 신비의 주술사,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놓치지 않는 매의 눈, 자신의 약점을 교묘하게 감출 줄 아는 곰의 지혜, 상대의 약점을 날카롭게 후벼 파는 늑대의 예리함, 부당한 언론과 당당하게 맞서는 사자의 용감을 겸비하고, 선수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을 줄 아는 최고의 사령관이죠."
기신은 맥스의 말에 입을 크게 벌렸다. 본인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듣기 원했는데 맥스는 서사시의 구절을 읊고 있었다.
"기적을 창조하는 주술사, 축구 경기를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손, 늘 예상을 벗어나는 창조적인 예술가, 소외당하고 저평가된 선수들의 구세주, 천 가지 전술을 머릿속에 저장해 둔 지략가."
눈치가 무딘 기신과 시를 읊는 데 정신이 팔린 맥스는 곁에 있던 승무원의 얼굴에 선명하게 스쳐 지나가는 비웃음을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기신은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듣는 것을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 했다.
멕시코에 도착한 이튿날 후안의 아버지인 로베토가 운전을 했다. 맥스와 마르코는 뒷좌석에서 잠을 잤다. 영국인과 멕시코인의 술에 관한 자존심 대결이 벌어졌고, 승리자는 한국인이었다. 로베토는 술을 아예 입에 대지도 않기에 온두라스는 기권패로 처리되었다.
"다음 해에는 이쪽을 먼저 들리시기 바랍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에이전트들이 이미 한 번 다녀갔습니다."
남미의 선수들은 보통 에이전트와 계약을 한다. 그래서 괜찮은 선수들은 소유권이 팀이 아닌 에이전트에 있다. 이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용납할 수 없는 방식이다. 남미의 탐욕스러운 에이전트들을 만족시키려면, 실제 시장가격보다 훨씬 높은 돈을 지급해야 한다.
노츠 카운티는 재정 상황이 나쁘지 않지만 일단 선수의 몸값에 거품이 끼고 주급에 거품이 끼기 시작하면 재정이 악화하는 건 한순간이다. 팀의 응집력도 깨질 수 있기에 이미 에이전트가 있는 선수들은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포기해야 한다.
첫날 멕시코의 선수들을 돌아봤지만, 마음에 드는 선수가 없었다. 챔피언십 수준의 선수들은 가끔 있지만, 그 이상의 선수는 좀처럼 없었다. 다음날 온두라스로 가서 선수들을 지켜봤지만 역시 마음에 드는 선수가 없다. 그때 로베토가 조심스럽게 자신이 봐둔 선수 한 명이 있다고 말했다.
로베토가 소개한 선수는 앤디 차베즈라는 이름을 가진 19세 선수이다. 이미 온두라스 리그에서 선수로 뛰고 있는데 주전은 차지하지 못했고 백업으로 뛰고 있었다. 잠재력 78에 현재 능력 32인 선수인데, 몸무게가 적정 체중보다 8킬로나 적었다. 육체가 받쳐주지 않아 본인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프리미어리그 레벨로 만들려면 일 년 이상의 담금질이 필요하다. 하지만 미드필드의 모든 위치가 가능한 멀티 자원이라는 데 기신은 혹했다. 능력치가 평균적인 보나비치와 달리 드리블이나 돌파는 부족하고 패스와 활동 범위 그리고 체력이 괜찮았다.
30만 유로의 이적료를 지급하고 차베즈는 노츠 카운티와 계약하게 되었다. 차베즈의 구단은 감사의 의미로 로베토에게 5천 유로를 사례금으로 주었다. 기신은 후안의 동생들에게 사탕과 여러 선물을 전달한 후 마르코와 맥스와 함께 아르헨티나로 향했다.
마르코의 안내로 향한 팀은 아르헨티나의 산로렌소 팀이다. 아르헨티나 전통 5강이지만 보카 주니어스나 리버 플레이트처럼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계약 기간이 일 년밖에 남지 않은 선수들을 처리하려 하고 있다. 최근 재정이 좋지 않아서 재계약에 애먹고 있다.
스렌 바기오는 26세의 윙이다. 몇 번이나 유럽의 구단들과 연결된 적이 있지만 결국 아르헨티나에 남았다. 마르코의 말로는 다른 선수의 몸값을 올리는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바기오에게 모 구단이 얼마의 이적료를 제시했다는 기사를 내고, 그 이적료를 기준으로 다른 선수의 이적료를 높이는 것이다.
능력치 66의 바기오는 특별함이 없는 윙이다. 보나비치의 윙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오른발잡이인 바기오는 오른쪽 윙으로 출전하면 돌파 후 크로스, 왼쪽 윙으로 출전하면 컷인 후 패스 혹은 슈팅이 패턴이다. 패턴이 단조롭지만 날카로운 돌파나 대단한 크로스를 장착한 게 아니라서 여태 유럽으로 향하지 못했다.
그러나 팀워크 9라는 수치가 기신을 흡족하게 했다.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헌터나 엑토르와 발을 잘 맞출 수 있을 것이다. 경기 영상을 확인해보니 남미 출신치고는 드물게 아주 헌신적인 선수였다. 보나비치와 여러모로 비슷한 선수다.
또 한 명의 선수는 브라질 출신의 중앙수비수이다. 칸투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이 선수는, 예전에 유럽에서 5년간 축구를 하다가 다시 아르헨티나로 왔다. 동유럽에서 축구를 했는데 심한 인종 차별을 당했다고 한다. 흑인과 인디언의 혼혈인 칸투는 확실히 보기 드문 얼굴구조다.
육체 능력이 뛰어나고 경험도 풍부하며 체력도 뛰어나다. 능력치는 65로 나쁘지 않다. 패스 능력이 조금 부족하지만, 어차피 노츠 카운티는 아스널이나 맨시티처럼 중앙수비수에게 강한 패스 능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문득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호세가 생각난 기신은 쓰린 속을 달랬다.
두 선수의 이적료는 합쳐서 550만 유로가 들었다. 바기오는 이탈리아 국적을 가지고 있고 칸투 역시 영주권을 보유하고 있어 워크 퍼밋이 필요 없다. 다섯 선수를 영입했고 그중 두 명은 즉전감이다.
기신이 없는 상황에서 노츠 카운티는 FA컵에서 2:1로 승리를 했다. 그리고 기신이 노팅엄에 도착하자 구단은 기신에게 늦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달했다. 700만 유로와 두두를 주고 샬케에서 베노 쾬을 영입했다. 베노는 5만6천 파운드의 주급에 만족했다고 한다.
현재 22세인 베노는 독일 국가대표이다. 아직 주전은 아니지만 젊은 선수 중 독일 대표팀 왼쪽 풀백의 가장 유력한 경쟁자이다. 현재 독일팀은 왼쪽 풀백 자리를 두고 여섯 선수가 경쟁하는 구도이다. 베노는 명예욕이 강한 선수라 무언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베노는 개인 수비 수준이 김시웅과 비슷하다. 하지만 공격 능력은 김시웅과 비교가 미안할 정도로 훌륭하다. 김시웅은 44의 능력치가 전부 수비에 몰려 있어 프리미어리그에서 버틸 수 있었다. 오른쪽 윙으로 출전하는 엑토르가 김시웅의 공격력까지 다 커버해줘서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칸투와 바기오는 팀에 빠르게 융화했지만 적응하는 기간 출전할 수 없었다. 13일 기존 선수들에 베노만 추가해서 홈에서 웨스트햄을 상대했다. 터너가 드물게 실수를 많이 하면서 예상외로 1:4의 대패를 당했다. 20일 한 달 전에 만난 적 있는 스토크시티와 다시 만나서 원정에서 0:2로 패했다.
27일 경기에서 칸투와 바기오를 FA컵에서 출전시켰다. 두 선수는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2:0으로 승리한 경기에서 바기오는 골 하나를 넣었다. 곧바로 31일 홈에서 리버풀에 0:3으로 패하며 리그 13위에 자리했다. 꼴찌와 7점, 강등권과는 4점 차이로 다시 간당간당한 상황에 놓였다.
이러한 상황에 부닥친 것은 기신이나 누구 하나의 탓이 아니다. 이적 시장이 열린 동안 수많은 루머가 양산되었다. 그리고 규정을 어기고 친인이나 친구를 통해 높은 주급을 언급하며 선수를 흔들려는 시도도 있었다. 헌터나 그레이와 같이 무조건 충성을 외치는 선수들이 있고, 차범수나 김시웅처럼 기신을 믿고 흔들리지 않은 선수도 있다.
터너나 엑토르처럼 마음이 흔들렸지만, 팀에 대한 충성과 기신에 대한 고마움으로 마음을 다잡은 선수들도 있다. 몇몇 선수는 강력하게 이적을 요구했지만, 구단이 단호하게 거부했다. 다만 여름 이적시장에 이적을 허락할 것이라고 구두로 약속을 했다.
출전이 적은 담케이와 곤살레스가 이적을 원했다. 오른쪽 풀백인 랜 샤프 역시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해 불만이 있다. 스티븐 테일러는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요구했다. 테일러와 에두아도는 능력이 비슷한데 테일러보다 에두아도의 팀워크가 나아서 테일러는 출전 기회가 적었다.
베르베는 구즈믹스와 함께 주전으로 출전한 경기가 꽤 되지만 프리미어리그의 몸싸움에 꽤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프리미어리그 선수라는 도금이 생긴 이들을 양심을 매일 면도를 해야 하는 에이전트들이 꼬셔서 아시아의 부자 구단에 팔려 시도하고 있다.
베르베는 여름에 중국으로 이적하기로 얘기가 되었다. 테일러 역시 중국의 2부리그와 연결되었다. 남은 선수들은 챔피언십 팀들과 루머가 있다. 여름에 이적을 허락하기로 구두로 약속을 하고, 젊은 선수들을 딕신과 코치들이 잘 다독인 덕분에 팀은 천천히 안정을 찾아갔다.
2월 3일, 관성적으로 원정에서 맨유에 0:2로 패했다. 15위로 강등권과 3점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노츠 카운티의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선수의 유출이 없었고 오히려 3명의 선수를 보충했지만, 팀의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위대한 주술사님, 슈팅 훈련을 매일 한 시간 늘렸으면 합니다."
젊은 선수들은 잘 다독일 수 있지만, 나이가 있고 자아가 확고한 선수들에게는 기신의 심리학 지식이 먹히지 않았다. 선수단의 분위기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기신에게 헌터가 불쑥 찾아와 폭탄 하나를 던졌다.
- 작가의말
요즘 사이다 지향이지만 겨울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고구마죠. 압축한 고구마는 덜 퍽퍽하다고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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