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독립 만세
신기는 전화벨이 울리자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여기는 기신입니다."
"애비다."
신기의 직관력이 적절하게 발동되었다.
"네가 잘 있는지 궁금해서 전화했다. 네가 뉴스에 나왔다고 해서 이 애비가 깜짝 놀랐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애비 노릇도 제대로 못하고 염치없이 잘 지냈다. 한 번 얼굴을 보고 싶은데 언제 한국 들어오냐? 듣기로는 지금 월드컵인가 뭔가를 해서 휴가라고 하던데."
"곧 들어가겠습니다. 한국에 도착하면 전화할게요."
곧바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편을 알아보았다. 에릭 헌터는 한국에서 광고제의 하나가 들어왔다면서 협상이 어느 정도 되면 자신도 한국으로 가겠다며 신기에게 다른 데로 가지 말고 한국에서 자신의 전화를 기다려달라고 요구했다.
한국에 도착한 신기가 기신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핸드폰이 꺼져있었다. 어쩔 수 없이 서울에 가서 호텔을 잡았다.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기신의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미안하다. 핸드폰을 꺼놓고 숨겨둬서 겨우 찾았구나. 내일 점심에 집에 와서 함께 식사를 하자꾸나. 주소는 이따가 문자로 보내줄게."
신기는 TV를 켜서 채널을 돌리다가 미식축구에서 멈췄다. 격렬한 부딪힘이 딱 신기의 취향이었다. 리모컨을 한쪽에 던져놓고 미식축구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 나는야 분주한 분계선 ###
백유한이 대한제국 황실과 협상하고 신도가 러시아와 협상하고 김원견이 대영제국 마법사들과 협상을 했다. 백유한은 최대한 싼 가격으로 대한제국의 국영공장들을 사들이기 위해 노력을 했고 김원견은 마법 아카데미 관련해서 대영제국과 새로운 원조 협상을 벌였다. 마법 아카데미의 수준이 낮아서 일방적인 원조만 받을 뿐 협력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신도는 러시아와 군사 연맹에 관해 협상을 벌였다. 부러진 검을 대만이라는 곳에 가져다 놓을 수 있다면 다음 목표는 대마도이다. 대마도를 되찾아서 일본인들에게 넘겨 조선을 대신해 괴수들을 수비하게 할 것이다. 북해도를 러시아에게 넘기는 조건으로 러시아를 대마도 탈환 작전에 끼워 넣을 생각이다.
러시아는 현재 대영제국과 협력하여 괴수들을 몰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쪽으로 러시아의 중심이 이동한다면 대한제국과 조선 러시아 그리고 일본이 협력해서 인간의 영역을 넓히고 일본에서 어떤 방식으로 괴수들이 생겨나는지 연구하여 싹을 자르고 뿌리까지 뽑을 수 있다.
백유한은 4개월 뒤에 독립하는 조건으로 황실로부터 많은 양보를 얻어냈다. 4개월 뒤면 겨울이 된다. 괴수들이 여름보다 더 약해지기 때문에 한반도에 쏟아붓던 자원들을 대한제국의 옛 영토를 복구하는데 쏟아붓는다면 큰 성과가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김원견 역시 만족스러운 성과를 얻어냈다. 대영제국은 조선을 대한제국을 견제해줄 동맹으로 키우기 위해 적극적인 협조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대마도를 점령하고 괴수를 연구하려는 조선의 계획에 적극 동참할 것을 약속했다.
러시아와의 협상은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 러시아는 북해도의 땅에 관심이 없었다. 다만 대마도를 점령한다면 대마도를 수비하는데 적극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약조했다. 어릴 때부터 귀족보다는 군인으로 키워진 신도는 러시아에서 전쟁의 냄새가 나는 것을 확인하고 또 한번 내전이 발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을 내렸다.
시간이 흘러 거북선 한 척이 완성되었고 이름은 이순신 호로 지었다. 부러진 검을 옮기는 계획이 성공했으면 하는 모든 관계자들의 소원을 담은 이름이다. 엄격한 절차를 통해 뽑은 일본 유민과 조선의 후손들이 선원을 맡았다. 이순신 호의 함장을 맡은 자는 감격에 눈물을 흘리며 이름을 장보고로 개명했다.
일본 유민들로부터 비롯된 미신으로 역사에 업적을 남긴 사람의 이름으로 바꾸면 그 사람의 가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북극해를 통해 대영제국으로 가는 길은 바다가 얼어붙는 상황만 피하면 된다. 하지만 지금 대만이라는 미지의 섬으로 향하는 여정에는 괴수들도 존재한다. 그래서 대영제국에 몇 번이나 왕래한 적이 있는 함장도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이동문은 나무로 만든 문이다. 마법 처리를 한 나무에는 수많은 마법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동문은 드루이드들의 전송술과 대한제국의 축지법을 결합하여 만들어낸 물건으로 결함은 한 쌍의 문이 서로 통하고 다른 문과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후 좌표에 의해 다른 이동진들과 자유롭게 연결될 수 있는 이동진이 이동문을 전면적으로 대체했다. 하지만 이동문이 아무런 장점도 없는 것은 아니다. 설치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이동진과는 달리 이동문은 미리 만들어서 가지고 다닐 수 있다. 필요할 때 마력석으로 활성화시키면 된다.
이동문의 파손을 염려하여 십수 겹으로 포장을 하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배의 선창에 넣고 포장에 사용된 나무틀을 고정시켰다. 비밀스러운 출항이기에 가족들의 배웅도 받지 못했다. 북극해의 항로를 다니는 노련한 선원들의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지만 그들 대부분은 조선인이 아니다. 함장은 경험이 풍부하지만 선원들은 초짜나 다름이 없어서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고위 귀족들과 별 세 개를 단 군 장성들의 배웅을 받고 이순신 호는 제주도를 떠나 남으로 향했다. 괴수의 주의를 끌지 않도록 설계된 거북선이지만 배이기 때문에 구조상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가시거북만큼의 효과는 보지 못한다. 다만 함장의 실력과 행운이 결합되어 이들이 성공하기를 바랄 뿐이다.
이순신 호가 출발했지만 조선장에서는 새로운 거북선이 건조 중에 있다. 실패에 대비해 성공할 때까지 배를 파견할 생각이다. 그리고 더 이상 버티기 힘들 때면 무리해서라도 손뼈와 칼자루를 분리할 계획이다.
또 한 달의 시간이 흘러 독립일이 되었다. 12월 12일 집집마다 삼족오기를 내 걸었다. 동그라미가 몸통이고 앞에는 까마귀머리 뒤에는 꽁지가 있고 발이 세개인 까마귀를 국기로 삼은 것이다. 고구려의 삼족오는 동그라미 안에 까마귀가 들어가 있지만 기신의 의견에 따라 대한민국이라 이름 지은 이 나라의 삼족오기는 동그라미 밖에 머리와 꽁지 및 발이 나와 있었다.
삼족오는 태양 속에 사는 신령한 새라는 전설이 있어 삼족오를 항상 동그라미 안으로 그려 넣는다. 하지만 새로운 삼족오는 태양을 삼킨 새라는 의미로 태양이 삼족오의 몸통이 되어버렸다. 물론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은 김원견과 신도 그리고 아이디어를 짜낸 기신밖에 없다.
거리 곳곳에서 조선 만세, 조선 독립 만세 등등의 구호가 울려 퍼졌다. 이미 보름 전부터 대한제국으로 가기를 원하는 자들은 대한민국의 영토를 떠났다. 옛 왕조의 이름을 가져다 쓰면 왕가의 핏줄이라며 분란을 일으키는 자들이 나오기 마련이기에 새로운 국가명을 지었고 충분히 선전했지만 아직도 대한민국이라는 새 이름보다는 조선이라는 이름을 외치는 자들이 더 많다.
한편 수도로 정해진 평양에서 대관식과 작위 수여식이 이루어지고 있다. 신도가 대한민국의 왕이 되었다. 대관식이 끝난 뒤 작위 수여식이 시작되었다. 김원견이 대공의 작위를 받고 충청도의 땅을 영지로 받았다.
장자 신현은 왕세자로 책봉 받고 황해도 지역을 영지로 받았다. 차자 신무는 공작의 작위를 수여받고 함길도를 영지로 받았다. 기신은 경기도를 영지로 받고 백작의 작위를 수여받았다. 강원도까지 포함하면 팔도 중 네 개를 가져갔기 때문에 기신의 작위를 백작으로 한 것이다.
백유한이 후작으로 임명받고 전라도를 영지로 받았다. 물론 백유한이 홀로 전라도를 다 가져가는 것은 아니다. 소위 독립군을 자칭하던 몰락 귀족들에게 적당히 나눠줘야 한다. 이제 정치에 조금 눈을 뜬 기신은 백유한에 대한 견제의 의미가 들어가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대마법사 김은결은 후작 위를 받고 경상도를 영지로 수여받았다. 대한민국 마법 협회의 협회장이 되었고 용두천이 마법 아카데미의 교장이 되었다. 괴수와의 투쟁의 최전선인 경상도 전체를 통 크게 김은결에게 떼어준 것은 마법사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괴수와의 전투 및 괴수 연구에 참여하게 하기 위한 조치이다.
연아는 여자의 몸으로 백작의 작위를 수여받았다. 그리고 육부의 하나인 공부의 수장으로 임명되었다. 기신의 제안으로 대한제국의 관직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장관이라 명명했다. 밑에 두명의 차관이 있었고 그 밑의 관직들의 이름은 김원견에게 맡겼다. 기신도 장관과 차관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대한제국 황실이 연아를 포기한 것은 세가지 이유 때문이다. 연아가 평민이고 마도 공학자이고 여자이기 때문이다. 대한제국의 귀족들이 연아의 존재를 불편해했고 마법 협회에서도 연아를 거부했다. 조정에 임관한 관리들 역시 여자가 관리가 되는데 큰 거부감을 표했다.
그리고 연아는 블리자드가 가능한 마법병기 연아를 만들어낸 후 더 이상 똑같은 마법병기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것으로 연아의 실력이 폄하된 부분도 있어 대한제국 황실은 결국 연아를 포기했다. 검사들 위주로 돌아가는 대한제국이기에 마법사에 대한 배척이 심한 것이다.
군부의 장군들과 귀족들에게 작위와 영지를 나눠주는 작위 수여식이 끝나자 연회가 벌어졌다. 술도 풍족하지 못하고 음식도 다채롭지 못하지만 사람들은 즐겁게 연회를 즐겼다. 넉 달 사이에 일곱 권의 책을 완결한 기신은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과일음료를 마셨다.
"신 백작님, 보내주신 책은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다가온 여자는 연아였다. 노비의 딸이라서 성이 없다. 아비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쁜 외모는 아니고 매우 정갈하게 생겼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것 같다. 그리고 누가 봐도 조선의 피가 흐르는 외모이다.
"장관님의 칭찬을 들을 정도는 아닙니다."
기신의 책은 출판을 위해 마법 아카데미로 보내졌다. 그래서 연아는 출판되기 전에 미리 기신의 책들을 읽어볼 수 있었다.
"부러진 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군요. 이순신 장군님의 손뼈가 지금도 칼자루를 놓지 않는다고 소문이 돌고 있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그리고 어떻게 그럴 수 있죠?"
부러진 검이 괴수들을 끌어들인다는 사실은 기신을 포함해 세명만 알고 있다. 이순신 호에 탑승한 선원들이나 이번 일에 관여된 사람들도 그저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밖에 모른다. 기신은 그 점을 상기하며 말을 조심했다.
"사실입니다. 백성들을 지키려는 의지가 아직도 남아 계시더군요. 섣불리 뜯어내려 하던 자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신 백작님이 마법뿐 아니라 많은 학문에 깊은 이해를 가지고 계시더군요. 제가 우연히 블리자드가 가능한 마법병기를 만들어냈는데 그 뒤로는 똑같이 해도 전부 실패했습니다. 저는 의지와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혹시 백작님이 어떤 고견을 가지고 계신지 알고 싶습니다."
- 세상의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 의지와 힘이 결합하면 정령이 탄생합니다.
- 괴수들은 정령의 힘만 미세하게 가지고 있고 정령의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 부러진 검은 의지만 있고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정령이 되지 못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마법의 힘과 어떠한 의지가 맞물려서 마법병기 연아가 탄생된 게 아닌가 생각되는군요."
기신의 말에 연아는 급하게 연회장을 벗어나서 엔진마차를 타고 연구실로 향했다. 최근 어슴푸레 깨닫기는 했지만 명확하지 않았는데 기신의 말에 갑자기 머릿속이 환해진 것이다. 기신의 대단하지 않은 말에 영문 없이 확신이 생겨버렸다.
- 조건만 알맞으면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힘내십시오.
- 작가의말
연아는 30대입니다. 로맨스 기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 그런 거 키워본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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