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파리그 결승전
보통 컵대회의 결승전은 재미가 없다. 우승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 선수들의 집중력이 매우 높아 실수를 잘 하지 않는다. 축구경기는 실수를 적게 하는 팀이 승리한다는 말이 있다. 서로 실수하지 않으니 골이 나오지 않고, 골이 나오지 않으면 경기의 과정이 아무리 치열해도 통쾌한 맛이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 유로파리그의 결승전은 기대가 된다. 도르트문트의 지그날 이두나 파크에서 대결할 두 팀은 노츠 카운티와 유로파리그의 제왕 세비야 FC이다. 세비야는 유로파리그 우승 최다 팀으로 5회의 우승에 빛난다. 하지만 아스널과의 피 튀기는 준결승으로 인해 다섯이나 되는 주전이 결승전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노츠 카운티는 3부리그 팀이고 수비가 그나마 안정적인 마르코와 안투이가 결승에 출전하지 못한다. 세비야 역시 팀의 핵심인 공격수와 중앙수비수가 출전하지 못하고 주전 키퍼 역시 카드 누적으로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대다수 전문가는 이번 경기에 골이 많이 날 것으로 예측했다.
"오늘 경기는 노츠 카운티의 승리로 끝날 것입니다. 비록 마르코와 안투이가 출전하지 못하지만 우리에게는 터너가 있습니다."
이번 경기의 결과에 따라 재계약을 할 때 주급의 액수가 조금 달라진다. 기신은 이미 구단에게 터너와 헌터 그리고 차범수는 꼭 재계약할 것을 요구했다. 이 세 명과 그레이가 현재 팀에 대한 충성도가 10이다. 물론 그레이도 재계약할 것이지만 그 중요도는 위의 셋에 비교해 밀리고 있다.
현재 능력치만 보면 에두아도가 59로 팀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에두아도는 능력이 평균적이어서 헌터나 터너처럼 특별한 무언가가 없다. 그리고 잠재 능력이 61로 발전할 여지가 없는 에두아도에 비해 헌터와 터너는 아직도 발전할 공간이 무척이나 크다.
잠재 능력은 터너가 88로 가장 높고 헌터가 83으로 2위이다. 그다음은 호세와 차범수가 81로 3위에 머물렀다. 야망이 3인 터너와 달리 호세는 야망이 10이어서 팀에 남겨두기 힘들 것 같다. 구단에서 재계약 의사를 밝혔는데 호세의 에이전트는 확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기신은 충성도 10인 셋을 팀의 핵으로 키우기로 했다. 그레이는 활동 범위가 서서히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도 물음표가 사라지지 않은 선수이다. 야망 1에 프로정신이 1이라 더 발전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기신은 결승전에서 5-3-2의 진형을 내세웠다. 중앙수비수로는 딕슨과 블랙 그리고 호세가 출전했고 왼쪽에 왕후이 오른쪽에 튜틀이 출전했다. 미드필더로는 차범수와 그레이 및 에두아도가 출전했고 공격수로는 헌터와 스벤이 출전했다. 보나비치는 용도가 다양하므로 보험 삼아 벤치에 앉혔고 워드는 후반전 적당한 상황에서 투입할 작정이다. 드리블이 예술인 워드는 노츠 카운티가 앞선 상황에서 상대의 애간장을 제대로 태울 것이다.
세비야는 4-5-1로 주 공격 루트를 양측으로 잡았다. 튜틀과 왕후이는 거의 자동문 수준으로 돌파를 당했다. 하지만 이 둘은 끈질기게 상대의 컷인을 막으며 크로스만 허용했다. 중앙에서 딕슨과 호세 그리고 블랙이 세비야의 크로스를 안정적으로 수비했다.
핵심 공격수가 출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비야의 공격은 단조로웠다. 윙들이 컷인을 할 수 있다면 다양해지겠지만 왕후이와 튜틀은 기신의 지시대로 컷인은 반칙을 사용해서라도 막아냈다. 공격 횟수는 세비야가 훨씬 많지만 실효성은 하나도 없었다.
세비야 윙의 돌파에 이은 크로스를 딕슨이 헤딩으로 클리어했다. 차범수는 빠르게 공을 잡은 후 그레이에게 패스했다. 그간의 훈련을 통해 그레이는 차범수에게만 패스하는 문제점을 개선했다. 그레이의 패스를 받은 에두아도는 곧바로 공을 차범수에게 돌려주었다.
차범수가 앞으로 길게 찔렀지만 힘 조절에 실패해서 상대 키퍼의 품에 들어갔다. 스벤은 무표정하게 돌아섰지만 헌터는 차범수에게 엄지손가락을 뽑아 들었다. 다른 경기보다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간 것을 의식한 차범수는 앉았다 일어나기를 몇 번 반복하면서 몸의 긴장을 풀었다.
스페인의 선수들은 덩치가 상대적으로 작아 상대하기가 참으로 편했다. 리그에서 몸싸움할 때 차범수는 기술과 악으로 버텨냈다. 하지만 세비야의 선수들과의 몸싸움은 3부리그 선수보다 더 상대하기 쉬웠다. 특히 윙과 미드필더들은 날렵한 몸매의 선수들이 많아 차범수는 물 만난 고기와 같았다.
세비야 키퍼의 킥을 차범수가 헤딩으로 에두아도에게 패스했다. 체격이 비슷한 상황에서 힘이 더 강하고 몸싸움이 능숙한 차범수가 항상 우위를 점했다. 에두아도는 짧게 드리블을 하다 왕후이에게 패스했다. 왕후이는 익숙하게 급정지 급가속으로 수비를 떨쳐내고 빠른 크로스를 올렸다.
헌터가 가까운 포스트로 달리고 스벤이 먼 포스트로 달렸다. 두 명의 수비수가 헌터에게 끌려갔고 한 명이 스벤을 따랐다. 헌터는 헤딩으로 공을 먼 포스트로 보냈고 스벤이 시저스킥으로 슈팅을 했다. 키퍼의 얼굴에 맞은 공이 포스트 바를 넘어 코너킥이 되었다.
코너킥은 차범수가 차게 되었다. 워드의 도움으로 프리킥을 연습하면서 킥의 정확도가 점점 높아졌기 때문이다. 직접 프리킥은 호세나 튜틀 등에게 양보하고 있지만 간접 프리킥과 코너킥은 차범수의 지분이 점점 많아졌다.
슬쩍 그레이와 눈이 마주쳤지만 차범수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오른손을 위로 들어 흔들자 선수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훈련한 상황대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차범수가 공을 띄우자 헌터가 등으로 상대 수비수를 막았다. 앞으로 달려가는 그레이를 쫓으려던 수비수는 헌터의 방해로 그레이를 놓쳤다.
가까운 포스트에서 높게 뛰어오른 그레이는 슈팅이 아닌 패스를 했다. 훈련 상황에서 기신은 그레이에게 먼 포스트를 노리라고 강조했다. 먼 포스트를 노린 그레이의 슈팅은 패스가 되었다.
딕슨은 출전 기회를 충분히 보장받지만 실질적으로 마르코와 블랙 그리고 호세에게 밀려 4번째 선택이 되어버렸다. 결승전에서 선발의 기회를 얻은 딕슨은 어떻게든 경기에서 실수하지 말아야겠다고 홀로 끊임없이 다짐했다.
코너킥 상황에서 그레이의 헤딩이 먼 포스트로 향하자 딕슨은 망설일 겨를도 없이 몸을 날리고 머리를 들이밀었다. 딕슨의 머리에 맞은 공이 골인되었지만, 딕슨의 머리도 세비야 선수의 축구화 바닥에 스쳐 이마가 갈라졌다.
피가 철철 흐르자 팀 닥터가 급히 투입되었다. 다행히 혈관이 다친 것은 아니라서 지혈이 빠르게 되었다. 하지만 헤딩을 하는 데 자주 사용해야 할 이마가 찢어져서 경기에 지장을 주게 되었다. 딕슨의 이마를 걷어찬 세비야 선수는 노란 카드 한 장을 받았다.
"주술사, 나는 괜찮습니다. 헤딩을 할 수 있습니다."
기신은 오랜만에 듣는 호칭에 신선함을 느낄 정도였다. 팀 내에서 헌터와 그레이만 기신을 주술사라고 부르는데 그것도 사석에서만 부르고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감독이라 부른다. 현장지휘는 교체를 권했지만 기신은 딕슨의 의견을 존중했다.
'모든 경기가 기술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다. 저 투지가 필요하다.'
5분 후 딕슨은 헤딩하다가 이마의 상처가 터져서 다시 처치를 받았다. 주먹을 꾹 쥐고 경기장만 바라보는 딕슨의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 노츠 카운티의 팬들은 자신들의 충직한 캡틴을 연호하며 힘을 북돋워 주었다.
딕슨의 투지는 노츠 카운티의 전의에 철저히 불 질렀다. 차범수는 머리를 제외한 온몸에서 형언할 수 없는 열기를 느꼈다. 고삐에 매인 망아지가 이런 심정일까 싶을 정도로 날뛰고 싶었다. 앞에서 서성거리는 헌터와 눈이 마주쳤는데 헌터의 눈을 보고 자신의 눈이 지금 어떨지 상상이 되었다.
노츠 카운티의 템포는 한층 빨라졌다. 드리블을 자제하던 차범수도 가끔 드리블을 섞었고 튜틀과 왕후이는 공격 상황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오버래핑했다. 튜틀의 크로스를 스벤이 멈추지 않고 그대로 슈팅을 했고, 키퍼가 막아낸 공을 헌터가 강슛을 날렸다. 하지만 급하게 슈팅을 하여 몸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해 공이 좀 과하게 솟았고, 크로스바에 맞은 공은 에두아도의 발밑으로 흘렀다.
슈팅하려던 에두아도는 생각을 바꾸어 옆으로 패스를 했다. 공을 멈추기 전에 얼핏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차범수가 꽤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달리는 속도가 느리지 않은데 상체의 흔들림이 전혀 없었다. 중거리 슈팅이 장기인 에두아도는 저런 상태에서 좋은 슈팅이 나온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차범수가 슈팅을 하는 순간 세비야의 키퍼는 차범수가 실수했기를 속으로 기도했다. 자신이 절대 잡을 수 없는 공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그저 저 공이 골대 밖으로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세비야의 키퍼는 분명 평소에 헌금을 제대로 내지 않았을 것이다. 신은 그의 기도를 외면했다.
골을 넣은 차범수는 곧바로 딕슨을 향해 달려갔다. 다른 선수들도 곧바로 달려와 둘을 안고 한 무더기가 되었다. 드물게 터너도 골문을 버리고 팀 동료들과 하나가 되었다. 2실점을 한 세비야는 공격을 강화했다. 사실 이들의 공격은 처음부터 큰 방해를 받지 않았다. 두 윙은 황후이와 튜틀에게 막힌 적이 거의 없다. 다만 중앙에서 크로스를 골로 연결하지 못했을 뿐이다.
5명의 주전이 출전하지 못하게 되어 다소 삐걱대는 세비야에 비교해 노츠 카운티는 수비나 공격 상황에서 한 템포 빠르게 움직이며 우위를 점해갔다. 객관적인 실력의 차이 때문에 공 점유율이나 공격 횟수는 세비야가 더 많지만, 실속은 노츠 카운티가 다 챙겼다.
세비야의 감독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엄지로 지그시 눌렀다. 경기 비디오를 보면서 이들을 충분히 연구했다. 하지만 팀 전체가 어떤 계기로 갑자기 각성하여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세비야로서는 정말 재수가 없는 것이다.
세비야의 선수가 차범수를 앞에 두고 발재간을 부렸지만 차범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집중력이 높아지자 상대의 의도가 낱낱이 보였다. 상대 선수가 지쳤는지 잠깐 멈추는 순간 차범수는 스탠딩 태클로 공을 건드렸다. 공은 차범수가 원한 대로 에두아도에게로 흘러갔다.
에두아도는 오른쪽으로 드리블을 하다 공을 튜틀에게 넘겼다. 튜틀은 돌파가 여의치 않자 공을 딕슨에게 돌렸다. 딕슨의 패스를 받은 호세가 롱볼로 헌터의 머리를 찾았다. 골대와 35미터 정도 되는 거리에서 세비야의 수비수가 헌터를 상대로 반칙을 하여 프리킥을 얻어냈다.
"네가 차. 오늘 네가 느낌이 좋아."
호세는 프리킥 기회를 차범수에게 양보했다. 가끔 날을 잡는 선수들이 있다. 그런 날에는 메시 호날두가 부럽지 않다. 차범수는 경기 초반부터 평소와 다르게 흥분한 모습이었는데 딕슨이 부상을 당한 후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헌터가 자신을 바라보자 차범수는 오른발을 세우고 발끝으로 잔디를 툭툭 내리 찼다. 헌터에게 어디를 노릴지 알려주는 것이다. 주심이 호루라기를 불자 차범수는 도움닫기 없이 곧바로 킥했다.
그와 동시에 헌터가 달려 들어갔다. 키퍼가 열심히 몸을 날려 힘겹게 막아낸 공을 헌터가 빈 골대 안에 가볍게 밀어 넣었다. 헌터의 발정 난 망아지를 방불케하는 세리머니가 끝나고 몇 번의 공방을 주고받은 뒤 전반전이 끝났다. 하지만 3골을 앞선 기신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선수들의 체력소모가 너무 컸다.
- 작가의말
오래 썼습니다.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삭제하고 다시 쓰느라고요. 역시 경기묘사는 참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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