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프리미어리그 감독이야
축제 이튿날 기신은 에릭 헌터와 함께 아프리카로 향했다. 중남미 쪽은 마르코에게 맡기고 아시아는 S 전자를 통해서 일단 선수 수급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아프리카는 프랑스 리그에 선수를 수출하는 아프리카 최대 규모의 에이전트와 협약을 맺었다.
기신과 에릭은 비행기를 타고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 도착했다. 아프리카 최대 에이전트의 사장이 직접 둘을 접대했다. 의외가 아닌 의외로 사장은 프랑스계 벨기에인이었다. 첫날은 사장의 접대를 받아 맛있는 음식과 술로 시간을 보냈다.
"여기 대부분 선수는 이 에이전트가 유럽에 보유한 클럽들과 계약을 했어. 괜찮은 선수들은 이미 유럽 국적을 취득하기 위한 조건들을 만족하고 있지. 상대적으로 유럽 국적을 가지지 않은 선수들의 몸값이 많이 싸."
에릭 헌터는 이 에이전트에 대해 꽤 많이 알고 있었다. 프랑스의 하부리그 팀들이 매년 이 에이전트로부터 수십에서 백이 넘는 선수들을 수급받는다. 물론 그중에서 돈이 되는 선수의 숫자는 열 명을 넘지 못한다. 하지만 한 명만 성공해도 몇 년의 투자에 맞먹는 돈을 회수한다.
"여기 선수들이 이적할 때마다 그 선수가 있었던 구단들에 이적료의 5%의 금액을 보상으로 나눠주는데, 외질이 아스널로 이적할 때 5%를 독일의 세 구단이 나눠 가졌어. 그중에 하부리그 구단은 그 돈으로 훈련시설을 전부 리모델링 했지."
12세부터 23세까지 이 선수를 키워준 클럽들에 주는 연대기여금이다. 흑인 선수들의 충성도가 낮은 것은 이런 에이전트들이 어릴 때부터 이적료와 주급만이 선수의 가치를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이라는 교육을 하기 때문이다. 이적을 자주 할수록 이들의 이득은 커진다. 이 연대기여금에는 기한이나 횟수의 제한이 없다.
"아프리카 구단들이 부유해지기 힘든 것이 조금 괜찮은 선수들은 이런 식으로 유럽 구단들이 싹쓸이해. 돈을 벌어줄 선수가 너무 적으니 이곳 구단들이 규모를 키울 수 없어.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리그는 선수 수출로 부자 구단들이 꽤 많은데 말이야."
기신은 프로축구 감독이 된 후에도 경제 논리를 마주해야 할 줄을 생각 못 했다. 결국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해도 자본주의 논리를 벗어나기 힘든 것 같다. 그래도 이런 에이전트 덕분에 유럽 구단들은 좋은 선수를 편하게 찾을 수 있다.
기신은 경기보다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선수를 볼 때 훈련 태도도 중요하게 본다는 핑계가 먹혔다. 기신은 에릭 헌터와 간간이 대화하면서 선수들을 하나하나 지켜보았다. 괜찮은 선수들이 꽤 있지만 프리미어리그 기준으로 보면 부족함이 많은 선수다.
차범수와 김시웅도 육체적인 부분 때문에 꽤 손해를 본다. 차범수는 덩치가 작고 몸무게가 덜 나가고 김시웅은 몸싸움이 부족하다. 몸싸움 기술은 나아졌지만, 호전성이 부족하다. 얌전하기만 하던 왕후이가 능력치 이상의 성과를 낸 것은 기신의 첫 조언인 몸싸움을 이겨야 상대를 이길 수 있다는 말을 깊이 새기고 실천했기 때문이다.
종합적인 수비 능력이나 안정성은 김시웅이 훨씬 낫지만, 몸싸움 하나 때문에 왕후이보다 못해 보인다. 육체적인 조건도 김시웅이 왕후이에 비하면 힘이 조금 약하다. 뼈가 더 굵어지고 경험이 쌓이면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주전 경쟁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곳의 선수 대부분이 육체적인 능력이 부족하여 프리미어리그에서 버티기 힘들어 보인다. 이들은 프랑스 리그를 주요 타겟으로 하기에 속도가 빠르고 기술이 좋은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선수들의 훈련을 한참 지켜본 후 기신은 다른 곳으로 향할 것을 요구했다.
"골키퍼와 수비수 쪽으로 가보자."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십의 몸싸움은 큰 차이가 없다. 챔피언십의 몸싸움이 오히려 더 격렬하다. 하지만 프리미어리그는 템포가 빠르고 전술이 다양하며, 선수 개개인의 능력도 특출난다. 약팀의 입장인 노츠 카운티는 반격 위주로 전술을 펼쳐야 하므로 확실한 선수가 아니면 공격 쪽에 투자할 생각이 없다.
골키퍼들은 신체 조건은 괜찮았으나 잠재력이 지난번에 봐둔 두레이를 초과하는 선수가 없었다. 그리고 훈련 태도도 그다지 진지하지 않았다. 잠시 지켜본 후 걸어서 수비수들이 훈련하는 곳으로 향했다.
- 나이스, 나이 미상, 키 186 몸무게 92
- 현재 능력 21, 잠재 능력 79
- 위치는 중앙수비수
적정 몸무게가 92킬로인데 지금 몸무게는 80도 안 되어 보인다. 조금 더 기다리니 주요 스텟 다섯 개가 보였다. 수비 위치 선정 1, 대인 마크 2, 팀워크 1, 트래핑 2, 몸싸움 8의 다소 처참한 수치다.
'보이는 수치들이 김시웅보다 못한데도 현재 능력이 더 높은 것은 육체 능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뜻이겠지.'
"영어 가능해?"
"물론, 매일 영어 연습 열심히 하고 있어. 나는 나이스라고 해."
훈련을 쉬는 시간이 되자 기신은 나이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나이 미상은 무슨 영문인지 알고 싶었다.
"나는 기신, 너 나이가 얼마야?"
"나이 몰라. 아빠 엄마 몰라. 이름 나이스 내꺼."
아마 고아라서 나이를 모르고 있고 나이스라는 이름도 본인이 직접 지었다는 뜻으로 이해되었다.
"나이스는 팀에서 무슨 위치를 뛰고 있어?"
"나이스 팀 없어. 다들 나이스 싫어해."
팀워크가 1이니 원하는 구단이 없는 모양이다. 기신은 시종일관 웃음을 짓는 나이스가 싫지 않았다. 훈련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남들과 똑같은 훈련을 하니 효과가 없다. 우선 몸을 만들고 거기에 맞춰 훈련해야 한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미드필더들이 훈련하는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차범수는 고사하고 그레이보다 나은 선수조차 없었다. 기신을 안내하는 직원도 프리미어리그 팀이라는 말에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것도 감독이 직접 와서 훈련만 잠깐 지켜보는 식이라서 말이다.
다시 수비수들의 훈련 장소에 가서 나이스와 대화를 나누었다.
"이름이 왜 나이스야?"
"사람들이 나이스를 말할 때는 항상 웃거든. 나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웃으며 말했으면 해."
"좋아, 나이스. 나는 여기 선수를 데려가려고 온 사람이야. 네가 괜찮다면 너를 영국으로 데려가고 싶은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스카우트야? 너무 젊어 보이는데."
"감독이야. 프리미어리그 팀 노츠 카운티의 감독이지."
나이스는 입과 눈을 최대한으로 벌리고 기신을 바라보았다. 중후한 멋이 있는 에릭이 오히려 감독 같았다.
"두 가지 문제가 있어. 우선 네 나이를 알아야 해. 그리고 확실한 신분도 있어야 해."
아프리카에서는 확실한 신분이 없어도 크게 문제가 없다. 심지어 계약마저 법의 보호를 받는다. 물론 계약 자체가 보호를 받는 것이 아니라 에이전트 회사가 보호를 받는 것이다. 많은 세금을 내고 권력자들과 사이도 좋으므로 가나에서는 초법적인 단체이다.
에이전트 회사는 만 파운드로 나이스에 대한 권리를 포기했다. 뼈 나이를 측정하니 17세로 나왔다. 아프리카에서 신분을 만드는 것보다 유럽 국가로 입양시키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에이전트가 추천했다. 4천 파운드의 비용으로 나이스의 입양에 관련된 자료를 전부 준비해 주었다.
상의 끝에 에릭 헌터가 나이스를 입양하기로 했다. 괜히 돈밖에 모르는 양부모를 만나면 선수 생활에 지장을 받을 수 있다. 리차드 헌터는 상상해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 동생을 갖고 싶은 소원 말이다.
"나이스, 너는 곧 나이스 헌터가 될 거야. 그리고 매일 고기를 먹어야 해. 너 참을 수 있겠어?"
나이스는 우선 몸을 만들어야 한다. 그 과정에 탄수화물을 멀리하고 양념이 제대로 되지 않은 고기만 먹어야 한다.
"나이스 고기 좋아해. 매일 먹을 수 있어."
나이스는 자신이 고기를 고무 씹듯이 억지로 씹게 될 것이라는 상상을 하지 못했다. 고기를 먹으며 감격의 눈물이 아닌 고통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원래 멕시코로 에릭과 함께 가기로 했지만 기신만 먼저 출발하고 에릭은 나이스의 문제를 전부 해결한 후 상황을 보면서 멕시코로 가기로 했다.
"에릭, 아프리카에 더 많은 파트너가 필요해."
기신은 선수를 오래 지켜보고 결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파트너가 많을수록 좋다. 하지만 아프리카에는 치안이 좋은 나라가 얼마 되지 않아서 이들처럼 한꺼번에 많은 선수를 볼 수 있는 에이전트는 없다.
"차라리 돈을 좀 쓰더라도, 이들을 통해 다른 곳의 소규모 에이전트나 청소년 팀의 선수들을 이곳으로 불러오는 것이 나을 거야."
노츠 카운티는 구장의 증축을 위해 이번 시즌에는 많은 영입을 하지 않기로 했다. 시즌 초반에 리그 16위까지 떨어지며 승급의 가능성이 작았다. 팀도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말이다. 그때 미리 구장의 증축을 기획하고 진행했기 때문에 프리미어리그로 승급했음에도 많은 돈으로 선수를 영입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당장 프리미어리그에서 뛸 수 있는 선수를 구하기는 힘들어. 그러니까 길게 보고 아프리카나 남미에서 가능성이 있는 어린 선수들을 많이 수급해야 해."
기신의 장점이라면 선수의 잠재력과 적합한 위치를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점이라면 이 선수가 그 잠재력을 다 터뜨릴 수 있는 선수인지 판단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원석의 산지인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최대한 많은 원석을 찾아내려는 것이다.
하비 에르난데스의 존재가 이런 구상이 가능하게 해주었다. 작년 엑토르와 김시웅 그리고 르노를 혼자서 지도하며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말귀를 잘 알아듣는 조수를 두 명만 붙여주면 더 많은 선수도 문제가 없다.
에릭 헌터는 기신을 배웅한 후 나이스의 입양을 위한 절차를 진행했다. 에릭의 수입이나 범죄기록 유무 등 필요한 자료들의 준비에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이곳처럼 돈으로 하루 만에 자료를 뚝딱 할 수 없다. 한가한 시간을 보내며 에릭은 기신에 대해 생각했다.
팀의 감독일 뿐이지만 기신은 구단주처럼 팀을 위해 헌신하고 노력했다. 아프리카에서의 비용이나 멕시코로 가는 비용 전부 회사가 부담하고 있다. 그 열정에 감복하여 에릭도 노츠 카운티를 위해 많은 헌신을 하고 있다.
기신이야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퀘스트가 있기 때문에 이해와 득실을 따지지 않고 있지만 그것을 아는 사람은 다른 세상의 신기밖에 없다. 기신의 헌신적인 모습 덕분에 구단의 스텝이나 선수의 충성도도 대우보다 무척 강한 편이다. 기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두의 힘을 한곳에 모으는 핵이 되었다.
"기 감독, 진짜 놀라워. 은퇴한 게 막 후회될 정도야."
마르코는 프리미어리그에 출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며 탄식을 했다. 살집이 넉넉해진 마르코를 보고 기신은 고개를 저었다.
"마르코, 일은 안 하고 매일 놀고먹기만 한 것 같은데?"
마르코는 고개를 크게 저었다.
"일을 너무 해서 이렇게 된 거야. 이곳에서는 술이 없이는 일이 진행이 안 되거든. 오늘은 일단 시차에 적응할 겸 나랑 술 한잔하고 내일부터 일하자고."
시차의 피로도 없고 술에 취하지도 않는 기신이다. 그래도 마르코와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싫지 않았다.
"최근에 대단한 미친놈 한 명 발견했다. 지금 14살인데 속도가 엄청나. 그런데 키가 160도 안 되는 주제에 중앙수비수만 고집하고 있어. 계약서에 다른 위치가 아닌 중앙수비수를 위치로 정해야 한다고 고집해서 누구도 계약하지 못하고 있어."
- 작가의말
오후에 한잠 푹 잤습니다. 깨고 보니 앞의 두 화의 흐름이 뜬금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딱딱한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목적이었는데 분량을 조금 많이 투자한 느낌입니다. 지난 시즌에는 동창회, 연예인, 방송 출연 등을 매우 짧게 압축했는데 말이죠. 조금은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더 짧게 썼어야 했습니다. 제 글이 삭막하다는 생각에 분위기를 풀어보려 했는데 흐름이 약간 삐끗한 느낌입니다. 다행히 글의 방향에 영향을 주는 에피소드가 아니므로 언제든 수정해도 이미 읽은 분들에게 영향이 가지는 않습니다. 더 많은 의견을 들어보고 수정 여부를 결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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