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신, 아카데미에서 방출되다
"마나친화력이 0인 사람이 마법 아카데미의 학생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당장 방출해야 합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검사기에 무언가 수작을 부린 게 틀림없습니다. 미리 알리지 않은 상황에서 검사하니 0으로 나왔습니다. 지난 세 번의 검사에서 뭔가 수작을 부린 게 확실합니다."
"저, 신기 학생은 원래 전술학부를 지원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마나친화력이 9로 나와서 마법학부 입학을 제가 권유했죠. 전술학부로 옮겨서 내년부터 1학년을 다시 다니게 하는 게 어떨까요?"
용두천이 애써 옹호했지만 그간 신기는 너무 막 살았다. 기신은 초월적인 힘의 개입을 의식하여 감독 공부에 힘쓰며 차근차근 준비를 해 나갔지만 신기는 초월적인 힘의 개입을 의심하며 오히려 더 막무가내로 행동했다. 상대의 DPP 혹은 세이브/로드 횟수를 소모하려는 생각이었다.
신기가 변경백의 직계가 아니었어도 이렇게까지 큰 반발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다. 평민이 대다수인 마법 아카데미에서 고위 귀족의 직계가 전설적인 친화력 수치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질투를 받기 좋은데 거기에 안하무인으로 행동하기까지 했으니 그 눌려있던 반발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다.
"이렇게 합시다. 마법 아카데미 마법학부 1학년 학생 신기는 마법 아카데미에서 방출을 합니다. 만약 이 학생이 다시 마법 아카데미 전술학부에 입학하려고 하면 다른 응시생들과 마찬가지로 시험을 봐야 합니다. 변경백 신씨 가문의 추천권은 신기에게 두 번 다시 사용할 수 없음을 발표합니다."
귀족 가문들은 마법 아카데미나 군사 아카데미 중 한 곳에 한 명의 자식을 시험이 없이 입학시킬 수 있는 추천권이 있다. 그래서 시험을 보고 들어온 평민들보다 귀족가의 자식들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초반에는 비리로 귀족들이 대영제국으로 많이 유학을 갔고 돌아온 자들이 협회와 아카데미의 요직들을 차지했다.
하지만 대한제국의 마법력을 어느 정도까지 키워줘야 할 필요성을 느낀 대영제국이 자격 미달의 유학생들을 귀국시키고 직접 아카데미에 와서 유학생을 선별했다. 하지만 대한제국 마법 협회의 강력한 항의로 아카데미에서 추천하고 대영제국에서 그 자질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평민들의 세력이 점점 강해졌고 지금 마법사 사회에서 귀족들과 평민들의 대립이 가장 첨예한 시기이다. 마법 협회는 아직까지 귀족의 세력이 더 강성하지만 마법 아카데미는 이미 귀족 출신들이 큰 힘이 없다. 신기의 마나친화력이 놀라운 9나 10이 아닌 8만 되었어도 아카데미에 있는 동안 평민 출신의 교사들의 견제를 받았을 것이다.
신기의 방출 소식과 마나친화력 조작 소식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진도에서 신기가 일으킨 기적과도 같은 일을 아는 몇몇은 뭔가 오해가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내려진 결정을 뒤집을 능력은 누구에게도 없다. 짐을 싸는 신기를 배웅하러 온 차문수가 주저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형, 집에 돌아가면 게임을 하기도 힘들 테니 게임기를 저한테 주시면 안 돼요?"
수많은 책이 있는 도서관을 더 이상 이용할 수 없게 되어 잔뜩이나 심기가 불편했던 기신은 차문수가 철없이 게임기를 달라고 하자 화가 났다. 하지만 억지로 참고 평온한 어조로 대답했다.
"무슨 게임기 말이냐?"
"형이 암시장에서 산 게임기 있잖아요. 매니저가 되어서 대영제국에서 감독하는 그 게임. 제 덕분에 형이 암호화를 풀어서 그레이랑 헌터랑 영입했잖아요."
짐을 싸던 기신의 손이 멈췄다. 기신이 대답이 없자 차문수는 계속해서 졸랐다.
"형은 이제 마나도 없어서 배터리를 충전하지 못한단 말이에요. 대영제국의 배터리는 사기 힘들어서 배터리만 방전되면 형은 더 이상 게임을 못 해요. 저는 충전이 가능하니 게임기를 저한테 주세요. 은자 다섯 냥 드릴게요."
"나 사실 게임기 없어. 그간 했던 말은 다 꾸며낸 거야. 네가 게임을 좋아하니 너랑 친해지기 위해서 거짓으로 꾸며냈던 말이야."
차문수를 돌려보낸 후 기신은 침실을 전부 뒤집었다. 끝내 게임기를 찾아낸 기신은 게임기를 짐 속에 넣었다. 그러다 뭔가 생각이 나서 배터리를 따로 분리해 몸에 간직했다.
'그 마녀가 배터리를 물어봤어. 게임기가 아니라 이 배터리가 핵심일 가능성이 높아. 그리고 내 게임기는 CPU가 핵심이겠군. 행여나 돌아가면 CPU를 한번 연구해 봐야겠다.'
짐을 거의 다 쌌을 때 불청객이 들어왔다. 이틀 전에 마법 아카데미를 떠나 북경으로 향해야 했을 코레아가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기신에게 마법을 건 코레아는 짐을 들춰서 게임기를 찾아냈다. 게임기 안에 배터리가 없는 것을 확인한 코레아는 마법으로 방안을 스캔했다.
코레아는 대마법사이다. 만약 드래곤의 심장이 이 방안에 있다면 코레아의 스캔에 무언기 이상함이 걸려야 한다. 물론 드래곤의 심장이 이 방안에 있는지만 확인 가능하고 그 위치는 특정할 수 없다. 하지만 코레아의 스캔에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특별한 파장을 내보냈어야 할 블루 드래곤의 심장이 기신의 영혼으로부터 안정을 얻었다. 수백 년 동안 처음 평온을 얻은 심장은 오랜만에 휴면에 들어갔다. 그래서 코레아의 스캔에 걸리지 않을 수 있었다.
북경으로 향하다가 마녀 엘리사가 백치가 된 일이 갑자기 생각이 난 코레아는 몰래 마법 아카데미로 돌아왔다. 마나친화력이 0인 신기가 엘리사를 백치로 만들었다면 숨겨진 뭔가가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게임기 가격을 물었을 때 굳이 파운드로 대답한 것도 이상하다. 대한제국 사람이라면 은자로 대답하는 게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헛걸음을 한 코레아가 다시 가속 마법으로 동쪽으로 달릴 때 기신은 뒤늦게 마법에서 깨어났다. 코레아가 이번에는 기신의 마법을 풀어주는 것을 깜빡 잊은 것이다. 차라리 일반인이었으면 직접 손으로 여기저기 들추면서 배터리를 찾았겠지만 자신의 마법에 너무 자신하고 자신의 지식에 너무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에 코레아는 오히려 드래곤의 심장을 회수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마법에서 깨어난 기신은 싸던 짐을 마저 정리한 후 용두천의 배웅을 받으며 마법 아카데미를 떠났다. 엔진마차라는 이름을 가진 승용차에 앉아 이동하는 며칠 내내 기신은 말을 극도로 아꼈다. 혹시라도 자신의 정체가 들통날까봐 걱정된 것이다.
가문에 도착하니 으리으리한 장원이 기신의 눈앞에 펼쳐졌다. 신분으로만 따지면 대한제국에서 50위 안에 겨우 들 정도이지만 위세는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신씨 가문이다. 전쟁 시 독립 작전권을 가지고 한반도와 북쪽 옛 고구려 땅의 모든 군사 지휘권을 가진다.
집사(執事)는 기신의 짐을 하인에게 옮기라 명한 뒤 기신이 예전에 살던 방으로 안내했다. 미리 청소를 잘 해놓아 비워두었던 방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기신의 짐은 하인이 직접 헤쳐서 대신 정리해 주었다. 방을 구경하는데 정신이 팔려 기신은 게임기를 발견한 하인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저녁때가 가까워지자 기신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되었다. 가족들이 다 함께 모여서 밥을 먹는지 각자 알아서 먹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모여서 먹는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신의 고민은 아주 쉽게 해결되었다. 대리 가주인 신현이 몸소 기신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신현은 다짜고짜로 신기의 뺨을 때렸다.
"모자란 놈. 마법 아카데미에서 불명예스럽게 방출 당하면 부족함을 알고 더욱 정진해야 하거늘. 천민들의 놀이인 게임기를 버젓이 가지고 다녀?"
책 어디에도 귀족이 게임을 하면 안 된다는 말이 없다. 게임이 생겨난지 아직 수십 년밖에 안 되었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대한제국 귀족들이 대영제국 귀족들을 비하하기 위해 게임은 천민들의 놀이라며 멀리한 것뿐이다. 평민들 중 게임기를 구매할 능력이 되는 자들이 얼마 되지 않는다. 게임기는 철저히 귀족 계층을 위해 만든 장난감이다.
"가주께서 돌아올 때까지 이 방을 벗어나지 못한다. 대리 가주의 이름으로 명하니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다."
신현은 게임기를 잡아들어 바닥에 팽개쳤다. 게임기가 산산조각이 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기신은 배터리를 미리 빼낸 것이 참으로 잘한 일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물론 그게 얼마나 잘한 일인지는 기신도 전부 파악하지 못했다.
### 나는야 피곤한 분계선 ###
밤에 총격전이 벌어졌지만 호텔 근처는 아니고 조금 먼 곳이었다. 호텔 근처의 치안은 비교적 괜찮은 편이다. 개인들이 총화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지만 신기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호텔 직원에게 유럽에서 축구를 하는 30대 초반의 수비수에 대해 물었고 영입 대상으로 의심되는 선수 한 명의 정보를 알아냈다. 하지만 부모의 집 주소만 알아냈고 다른 연락방식을 알아내지 못했다. 기신이 집 주소를 찾아갔지만 그 선수의 부모는 이미 이사를 가고 없었고 그 선수의 나이도 29세로 서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온 신기는 침대에 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지난번에 상해에서도 한번 몸이 아주 불편했던 적이 있다. 다른 육체라서 그런가 가볍게 생각했는데 그간 아무 일 없다가 오늘 또 같은 현상이 생겼다.
"전설의 대마법사의 직관력에 의하면 이건 우연이 아니야. 분명 뭔가 공통점이 있어."
한참 고민하던 신기는 어렵지 않게 그 답을 찾아냈다. 계속 신경이 쓰이던 게임기가 바로 그 범인이다. 게임기와 일정 시간 동안 떨어져 있으면 괴로워지기 시작하고 다시 게임기의 곁으로 오면 점점 나아진다. 게임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신기는 갑자기 손뼉을 쳤다.
"그렇군. 내게 게임기가 있는 것처럼 기신에게도 게임기가 있었어. 역시 마법사의 직관력은 대단해."
기신이 게임기의 존재를 발견하자마자 유출해낸 결론을 신기는 마법사의 직관력으로 며칠 뒤에 겨우 알아냈다. 마법 5단계 이론을 만들어낸 아인슈타인은 한 자릿수 숫자의 더하기도 자주 틀린다고 한다. 검사기를 발명하고 마법병기의 제작법을 체계화시킨 에디슨은 홀로 면도도 할 줄을 모르고 몬스터 등급을 7단계로 나눈 다윈은 양말을 항상 다른 색으로 신는다고 한다.
직관력이 너무 뛰어나서 논리적 사고가 제한된 것이다. 대한제국의 군사력이 가장 강한 이유가 군의 총책임자가 마법사나 주술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마법사들의 힘 덕분에 대영제국이 번영했지만 마법사들의 과도한 간섭으로 인해 그 발전이 정체되고 있다.
게임기를 항상 가지고 다녀야 하지만 그 크기가 너무 크다. 신기는 게임기를 분해한 후 CPU만 따로 분리해서 몸에 지녔다. 보자마자 무엇을 챙겨야 하는지 확연히 느껴졌다. 호텔 안에서 식사를 해결한 신기는 호텔 직원에게 10달러의 팁을 주고 30대 초반의 유럽에서 축구를 한 센터백의 정보를 최대한 많이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밤이 되자 또 총격전이 발생했다. 소리에 잠에서 깬 신기는 유리가 총알을 막아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실드 마법을 시전했다. 1단계라면 여러 원소들이 섞여서 평범한 방패가 되었을 것이다. 2단계부터는 주력 원소에 따라 방패의 성질이 달라진다. 땅 원소가 많으면 물리력 방어에 효과가 좋고 불 원소가 많으면 원소력 방어에 효과가 좋다. 물 원소가 많으면 평균적인 방어력을 보이고 바람 원소가 많으면 투사체 방어에 효과가 좋다.
하지만 신기가 무의식중에 만들어낸 방패는 투명하고 깨끗한 얼음으로 만들어진 방패였다. 그 아름다운 모습에 신기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정확히는 기신의 심장이지만 말이다.
- 작가의말
예전에 대마법사들이 회의를 하면서 드래곤의 심장인지 아닌지 알아볼 능력이 없다는 말을 했습니다. 스캔 마법으로 뭔가 이상함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드래곤의 심장이 원인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상함을 감지하더라도 그 위치를 특정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심장이 배터리들과 함께 섞여 있는 상황에서 스캔 마법을 사용하면 뭔가 이상함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배터리를 다 가져가도 그 안에 심장이 있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눈에 안 보이는 곳에 숨겨져 있을 수도 있거든요. 그리고 배터리가 아닌 다른 형태를 취했을지도 모르니 마법에 의지해서 심장을 찾는 건 모래사장에서 바늘 줍기와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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