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중투, 쟁중쟁
대영제국 의회당은 욕설이 난무했다. 일부 귀족과 대마법사들이 일본 정벌 명단에서 한자리 차지하려고 침 튀기며 논쟁을 하고 있었다. 평소 고상을 떨던 대마법사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사람들 앞에서 항상 고고한 모습만 보여주던 귀족이 최하층 평민들이나 입에 담을 욕설을 내뱉었다.
두 시간에 걸쳐, 상대의 할머니가 오십 년 전에 바람을 피운 사실까지 폭로하며 논쟁을 했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때 의장이 느티나무로 만든 망치를 가볍게 내리쳤다.
"인류의 더 나은 생존을 위해 헌신하려는 그대들의 의지를 똑똑히 보았소. 그래서 내가 고귀한 상의원의 여러분에게 양해를 구했소. 상의원의 마법사와 귀족분들이 여러분을 위해 자신들의 몫을 내놓을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소."
서로 멱살을 잡았던 자들이 이제는 얼싸안고 환호를 했다. 열렬한 박수 소리가 의회당에 퍼졌다. 망치로 다시 한번 정숙을 요구한 의장은 말을 이어갔다.
"이번 출정의 평가는 두 단계로 나뉘오. 일본 정벌에 얼마나 많은 자원을 지원했는지, 일본 정벌 과정에서 얼마나 큰 공을 세웠는지 두 가지요. 자원에는 원정군에 참여한 사람도 포함되오. 점수를 매기는 방법은 다음과 같으니 이견이 있으면 말씀하시오."
개인이 아닌 단체의 이름으로 지원해야 한다. 예를 들면 앙헬 백작의 이름으로 지원하면 안 되고 백작가의 이름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 단체에 소속된 자들이 지원한 돈과 물자가 얼마인지, 이번 정벌에 얼마나 파견했는지에 따라 공헌도를 따진다.
대마법사를 파견하면 5점, 고위 마법사는 3점이다. 상급 전사는 2점, 중급 전사는 1점이고 특급 전사는 4점이다. 일본 정벌의 공은 대한제국의 군부에서 매기는데, 특등 공은 100점, 1등 공부터 20점씩 적어져서 3등 공은 40점이다.
마음이 맞는 귀족이나 마법사끼리 서로 연합을 하면서 세력을 만들었다. 점수가 가장 높은 세력부터 지역을 고를 수 있다. 유럽에서 영국의 본토와 북유럽 3국의 땅을 제외한 모든 땅을 보상으로 내놓았다.
"이럴 때 보면 마법사나 귀족이나 하층민과 크게 다를 게 없소."
수염이 허연 대마법사들과 눈빛이 온화한 대귀족들이 마법으로 의장이 철없는 마법사와 귀족들을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유럽의 땅을 저들에게 나눠주는 대신 대영제국의 이름으로 북아메리카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았다.
이들은 양보라는 아름다운 핑계로 자신들의 세력을 보전했다. 그리고 국가의 이름으로 권리를 확보한 북아메리카의 땅을 자신들이 차지할 예정이다. 7등급 괴수를 물리친 후 대영제국은 다시 여왕을 옹립할 예정이다.
세력이 없는 여왕을 옹립한 후, 이들은 북아메리카의 땅을 차지하고 왕으로 살 것이다. 물론 서로 연합해서 꿀을 향해 달려드는 벌과 개미들을 처단해야 한다. 세상은 넓고 지배해야 할 땅은 많다. 능력보다 욕심이 많은 자를 배제하고, 실질적으로 대영제국을 지배하는 자들끼리 손을 잡았다.
"솔직히 대한제국의 의도가 명확하지 않소.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고 자기들끼리 해결해버린 후 세력을 확장하면, 준비 못 한 우리를 멀리 떨궈놓을 텐데."
"내부에 문제 있는 거 아니겠소. 귀족들이 황실의 말을 안 들으니 우리까지 끌어들인게지. 대한제국 12만, 러시아 6만, 우리가 10만, 대한민국 2만이니, 꿍꿍이를 부릴 가능성이 작소."
대한제국은 검사와 술법사를 12만이나 투입하기로 했다. 원래는 15만에 아시아의 모든 지역에 대한 권리를 요구했다. 대한민국과 일본 땅을 제외하고 말이다. 대한민국은 대한제국으로부터 뭔가 받아먹은 것이 있는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결국, 12만을 파견하고 아시아의 동부와 남부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았다. 서부 아시아는 러시아가 50%의 권리를 가지고 대한제국이 30%, 대영제국이 20%를 가져가기로 했다. 영토가 아닌 석유에 및 천연자원에 대한 권리를 말하고 있다.
거기에 대한제국은 아프리카에 대한 우선 개발권도 가져갔다. 대영제국이나 러시아가 아프리카에 진출하려면 대한제국에 허락을 받아야 한다. 다만 30년이 지나면 우선 개발권이 사라져서 누구든 자유롭게 아프리카에 진출할 수 있다.
호주는 계속 자유지역으로 남겨두기로 했고 남아메리카는 먼저 먹는 놈이 임자다. 호주는 영토의 3% 정도만 유용하고 나머지 지역은 쓸모없는 땅이다. 대한민국은 일본 땅과 알래스카의 권리를 받았다. 대신 대한제국이 대만과 조어도를 일본 유민에게 양도하기로 했다.
"캐나다의 토착민들이 다 떠나서 그쪽 왕족과 귀족들이 대영제국으로 이민을 원하고 있소."
"모두 받아들입시다. 대신 최대한 짜내죠."
대영제국으로의 이주를 원하는 왕족과 귀족들을 쭉쭉 빨아버릴 생각이다. 대영제국이 북아메리카에 진출할 생각임을 전혀 모르는 이들은 좋은 기회를 버리고 오히려 대영제국으로 향하려 하고 있다.
"혈통에 따른 대물림이 얼마나 안 좋은 것인지, 여러 나라의 귀족과 왕족들이 증명하고 있소. 우리는 저들을 거울삼아 항상 경계해야 하오."
이 자리의 대마법사와 대귀족들은 능력으로 지금의 위치까지 치고 올라온 자들이다. 평민 출신도 있고 몰락 귀족 출신도 있다. 고위 귀족 출신이지만 가문에서 추방당한 후 힘겹게 이 자리에 온 자도 있다. 밑바닥을 경험해 보았기에 이들은 다른 귀족이나 마법사들보다 훨씬 치밀하다.
"힘이 없는 명분이 얼마나 오래 가겠습니까. 저들이 힘을 잃고 명분만으로 땅을 차지하고 왕이 될 때 우리는 북아메리카에서 힘을 키워야죠. 그리고 마법과 검이 아닌, 문화와 경제력으로 저들을 지배할 것입니다."
"개인의 욕심은 버리고, 모두의 이익을 위해 하나로 뭉칩시다. 서로 경쟁을 하지 않고 미리 약속된 대로 협력만 합시다."
이들은 각자의 기호에 따라 석유, 채광업, 운송업, 문화와 예술 등 방면을 각자 독점하기로 협의를 보았다. 서로 협력하여 돕는 건 가능하지만 상대의 영역에 발을 들이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이 자리에 자신만 똑똑하고 다른 사람은 전부 멍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하오. 우리가 힘을 합쳤을 때 얻는 이득과 안정성이, 우리를 배신했을 때 얻는 것보다 훨씬 크고 오래갈 것이라는 걸 명심하기 바라오."
러시아에서 내전을 벌이던 3개 계파가 한자리에 모였다. 최근까지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벌였기에 분위기가 부드럽지 않았다.
"파견은 각자 2만씩 공평하게 하고, 나누는 건 어떻게 할지 토론해보자."
"우선 모스크바를 차지한 붉은 깃발 일파가 조금 양보하기 바란다. 너희가 협상을 개떡같이 하여 너무 적은 이득만 얻어냈다."
"멍청아, 서부 아시아의 땅을 전부 차지할 수 있는 이득을 얻었는데 뭐가 불만이냐?"
"땅에서 캐낸 절반을 대한제국과 대영제국에 곱게 가져다 바쳐야 한다며? 꼬리를 열심히 흔드니까 두 주인님이 뼈다귀를 던져주던?"
분위기가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수하들의 험악한 얼굴과는 달리 의자에 앉은 세 계파의 우두머리는 밥 먹었냐는 인사를 주고받은 것처럼 태연했다.
"병신아, 땅이 중요한 거다. 그리고 우리 셋이 힘을 합쳐도 대한제국이나 대영제국에 안돼. 땅을 차지하는 대신 천연자원 절반을 주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힘이 강해지면 그때부터 안 주면 되지."
"그럼 서아시아의 땅은 어떻게 나눌 거냐?"
"나누긴 뭘 나눠? 하긴 자기 이름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무식한 새끼에게 바랄 걸 바라야지. 이제부터 우리 셋은 형제다. 힘을 합쳐 러시아를 강하게 만들고 대한제국과 대영제국과 경쟁해야 한다."
"내 이름이 백서른여섯 개 자모로 되어 있어. 그걸 제대로 쓰는 새끼가 이상한 거지. 그리고 우리가 하하 호호하고 손잡고 땅 넓힐 사이는 아니지 않냐? 석유나 광산 지역은 같이 관리한다고 해도 영토 확장은 각자 따로 해야 할 거 아니냐?"
"그런 건 참모 새끼들한테 맡기고, 우리는 큰 것만 결정하자고. 자기가 먼저 밟았다고 그 땅을 자기꺼라고 우기는 새끼만 없으면 돼."
"이거 하나는 확실하게 하자. 바다보다 육지의 이동이 당분간은 우선일 것이다. 대한제국과 유럽을 잇는 육로는 셋이 함께 관리하고 이득은 똑같이 나눈다. 그리고 땅은 나라의 것이다. 누구도 자기 땅을 차지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 뿌리가 없는 나무가 없듯이, 나라가 없으면 너나 나나 똑같은 병신이다."
우두머리들이 직접 결정해야 할 큰 것이 없는 관계로 이들의 회의는 빠르게 끝났다. 애국자는 없지만 바보도 없다. 나라라는 명분이 없으면 이들의 행동에 제동을 걸 세력이 넘쳐난다. 솔직히 대한제국의 군벌 중 두셋만 연합해도 하나의 세력을 깨끗이 지우는 게 가능하다.
험한 말이 오가는 러시아의 계파들과는 달리, 대한제국의 군벌들은 용정차를 마시며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황실의 혈통이 묘족이 확실하오. 은의 피를 검측하는 방법을 몰라서 검증할 방법이 없지만, 황궁에 들여보낸 세작의 정보를 종합해보면 가능성이 매우 크오."
"황실에서 은을 좋아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명나라가 은본위를 주장하는 바람에 경각심을 가지지 못했소."
괴수가 발생하기 전 마지막 왕조인 명나라는 은을 기준으로 물건의 가치를 매겼다. 그래서 황실이 은을 끌어모을 때 이들은 딱히 의심하지 않았다.
"숨겨둔 마붕탄이 없는지 확인은 제대로 하셨소?"
"나는 발견하지 못했소. 내가 데리고 있는 술법사가 마붕탄을 감지하는 법보를 만들었는데, 의심 가는 지역들을 다 둘러봐도 반응이 없었소."
"지난 2백 년 간 황궁의 장부를 전부 필사해서 검증해봤는데 빼돌린 자원으로 기껏해야 마붕탄 다섯 개가 가능하오."
"자칫하면 대영제국과 러시아도 적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항상 조심스러웠던 황실이 그런 극단적인 수를 쓰겠소? 내 생각에는 다른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되오."
산동을 차지한 공 씨 공작이 입을 열었다. 황실과 가장 가까이 있고 가장 많은 마찰을 빚는 가문이다. 귀족들은 공작이 아니라 대공이라고 불러주었다.
"공 대공은 혹시 무슨 정보를 얻은 것이오?"
"만약에 말이오. 7등급 괴수를 물리치고 돌아오는 길에 거북선이 전부 침몰하면 어떻게 되는 것이오?"
서늘한 기운이 장내를 스쳐 갔다.
"황실은 일부러 마붕탄을 소모하며 우리의 주의력을 마붕탄으로 몰아갔소. 그래서 우리는 그간 모든 주의력을 숨겨둔 마붕탄에 허비했소. 내 딸이 대한민국 왕후인 것을 다들 알고 계실 것이오."
"이번에 대한민국이 2만의 병력을 파견하기로 했는데, 인솔자가 왕세자인 신무가 아니라 폐세자인 신현이라고 하오."
이 정도만 말하면 다들 알아서 상상할 것이다. 공작은 각자 눈알을 굴리는 귀족들을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시오. 신현은 내 외손이오. 이미 거북선에 문제가 없도록 신경을 쓰고 있소. 그리고 우리는 한꺼번이 아니라 몇 번에 나눠서 움직이면 되오. 내가 이미 귀공들의 무사 귀환을 위해 몰래 안배를 해 놓았소. 황실의 수작질이 먹히지 않을 것이오."
귀족들은 분분히 자리에 일어서서 공작에게 공치사했다. 마찬가지로 일어서서 겸양을 표한 공작은 자리에 앉아 용정차의 향을 음미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모든 세력에 빚을 지웠구나. 황실에 무슨 수작을 부릴 여력이 있을 리 만무하다. 내가 황실에 심어놓은 세작이 얼마나 많은데. 설혹 수작을 부리더라도 모든 세력을 적으로 돌리면 황실은 자멸할 것이다.'
- 작가의말
오후에 한숨 자느라 늦게 올립니다. 황실이 음모를 꾸미는데 모든 나라의 귀족들이 멍청하게 당해주는 게 말이 안 될 것 같아서 이번 화를 기획했습니다. 만약 수작질에 걸려들었다면, 그것은 미끼가 너무 유혹적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욕심이 판단력을 흐린 것이겠죠. 그리고 그 상황을 이용해 이득을 챙기거나 다른 수작을 부리는 자들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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