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치의 활용
현재 기신의 선수단 관리는 9이고 일정 관리도 9이다. 명확한 답안지를 알려주는 현장지휘 10과는 달리 9의 수치는 은은한 느낌만 든다. 주의하지 않으면 소변이 잘 나가서 기분이 좋은 건지, 사탕이 달아서 기분이 좋은 건지, 아니면 일이 잘 풀려서 기분이 좋은 건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손톱이 깨져서 기분이 나쁜 건지, 날씨가 우중충해서 기분이 우울한 건지, 팀에 문제가 생겨서 기분이 찝찝한 건지 구별이 된지 않는다. 그래서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없다. 다만 수치로 9라고 표시되니, 내 능력이 이 정도라는 위안을 얻을 뿐이다.
헌터는 이미 강도가 꽤 높은 훈련을 하고 있다. 거기에 슈팅 훈련을 더 하겠다는 뜻인데 분명 신체에 무리가 가서 경기에 지장을 주게 된다. 하지만 기신은 이런 생각을 다 한쪽에 몰아내고 헌터의 말을 들은 후 자신의 기분 변화에 집중했다.
사실 이 방법을 발견한 것은 챔피언십에 있을 때였다. 선수의 영입 시 기분이 나쁜 경우, 데려오려는 선수가 팀에 맞지 않았다. 화합을 위해 가끔 양보해서 스카우트들의 의견대로 선수를 영입했지만 정작 경기에 자주 내보내지 않게 된다.
하지만 기신은 여태껏 이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다. 현장지휘는 10이라 어찌할 방법이 없다. 머릿속에 답안지를 명확하게 펼쳐놓는 데 무시할 수 없다. 눈앞에 펼치면 눈을 감는 반항이라도 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팀이 위기에 처하고, 선수단의 분위기도 아직 뒤숭숭한 지금 기신은 능력치에 휘둘리기 싫다는 자존심 따위는 버려야 했다. 속으로 이것도 타고난 능력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자신에게 끊임없이 암시했다.
'귀족으로 태어나 아무것도 안 하고 대마법사가 된 사람도 있는데 나 정도는 양반이지.'
"동의한다. 다만 몸 상태가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경기에 출전하지 못할 각오는 되어있지?"
"네, 감독님."
기신을 찾아오면서 헌터도 많이 긴장했나 보다. 용건을 말하기 전에 위대한 주술사님이라고 과장되게 호칭하면서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기신이 동의하자 긴장이 풀렸는지 감독이라는 정상적인 호칭을 했다.
기신은 문득 자신이 훈련 중인 젊은 선수들에게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 코가 석자라 전술을 공부하고 다른 팀들의 경기 영상을 연구하고 전문가들의 전술 해석을 듣는 데 시간을 다 사용했다. 이적시장이 닫힌 지금도 선수단의 분위기가 제대로 잡히지 않는 게 이런 이유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기신은 오후가 되자 일들을 잠깐 놓고 실내 훈련장으로 향했다. 하비와 두 명의 조수가 선수들의 훈련을 돕고 있었다. 두 조수는 선수들이 정확한 지시에 따라 훈련을 하는지 감시하는 역할이다.
헌터가 기술 코치의 지도로 슈팅 훈련을 하고 있었다. 혼자서 훈련을 했었는데 헌터가 요청하고 나서 기신이 코치 한 명을 붙여줬다. 헌터의 슈팅은 공에 회전이 붙지 않고 속도도 괜찮지만, 방향은 눈이 감길 정도다. 바람이 전혀 없는 실내에서 이러니 바람의 영향을 받는 실외에서는 당연히 더 정확도가 낮아질 것이다.
"헌터, 힘을 빼고 동작 느리게, 굳이 강한 슈팅을 할 필요가 없어."
기술 코치의 말에 헌터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코치, 훈련을 실전처럼 하라고 하지 않았어?"
기술 코치는 말주변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헌터의 역습에 말문이 막혔다.
"헌터, 너는 지금 훈련을 하고 있는 게 아니야. 너는 교정을 하고 있어. 네 부정확한 슈팅을 고치는 거지. 평소 네가 하던 대로 하면 정확도가 조금 더 올라갈 뿐이야. 너는 슈팅을 하는 동작 전체를 새롭게 익힐 필요가 있어."
기신의 말에 기술 코치는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헌터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는데 잘 정리되지 않았다. 헌터도 기신의 말에 크게 깨닫는 바가 있는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일 년에 몇 번 보기 힘든 희귀한 장면이라 기신과 코치는 입을 다물고 헌터를 지켜보았다.
기신이 스텟을 보는 능력을 갓 얻었을 때 팀의 코치들 능력을 확인했다. 전술 코치는 전술 이해가 7이었고 지금은 8로 상승했다. 수비 코치의 수비 훈련은 8이었고 공격 코치는 공격 훈련은 9였다. 하비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공격형 선수들의 발전이 훨씬 빠른 이유다.
새롭게 코치가 된 딕슨은 수비 훈련이 6밖에 안 되지만 심리 지도가 8이고 신체 훈련이 9이다. 하지만 역시 스텟은 절대적인 게 아니어서 젊은 선수들에게나 심리 지도가 먹히고, 나이가 어느 정도 된 선수들에게는 딕슨의 상담이 먹히지 않았다.
지금 옆에 있는 기술 코치는 처음에 기술 훈련이 5밖에 되지 않았다. 기본기, 드리블, 패스, 슈팅, 프리킥 등이 전부 기술 훈련에 포함된다. 하비와 붙어 다니며 그간 많이 배웠는지 지금은 8이 되었다.
'불공평하면서 공평하군. 스텟치로 스텟을 강제로 올린 대신 한계가 존재하는 나와 노력으로 수치를 올릴 수 있는 이들 중 누가 더 나은 걸까?'
"코치, 다시 훈련 시작. 천재적인 두뇌로 문제점을 찾아냈어."
헌터는 느린 동작으로 슈팅을 하면서 몸의 감각을 느끼려 애썼다. 공은 느리지만 정확하게 헌터가 원하는 곳으로 향했다. 헌터는 정확한 슈팅이 될 때의 느낌을 몸과 머리에 각인했다. 정확도가 아주 높아진 후 조금씩 힘을 싣고 다리를 휘두르는 속도를 빠르게 하면 정확하고 빠르고 강한 슈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헌터의 결론이다.
'천재는 맞군.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을 홀로 깨닫다니. 정말 재앙적으로 강한 자아다.'
김시웅이나 블랙 등이 이미 거쳤던 과정이다. 헌터가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였다면 굳이 혼자서 고민하면서 깨달을 필요가 없는 상식이다. 수많은 사람이 아는 상식을 굳이 홀로 고민해서 깨닫는 헌터의 천재성에 기신은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기신도 예상하지 못한 것은, 남이 알려줘서 머리로 알고 훈련하는 것보다 본인이 직접 깨닫고 몸에 새긴 후 훈련하는 것이 성과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 쓸데없어 보이는 고민의 과정 덕분에 헌터는 훈련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후안은 성장통 때문에 훈련을 잠시 쉬고 있다. 키가 이미 168로 자라서 매우 흥분하고 있다. 기신만 이제 1센티만 남은 것을 알고 있다. 이 부분이 기신에게 매우 큰 고민을 안겨주었다.
의사도 175 정도까지 문제없으리라 판단하고 있다. 그만큼 성장세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신이 보는 후안의 기본 정보에는 여전히 키가 169로 나오고 있다. 갑자기 성장판이 닫힌다는 말이다.
'혹시 안 좋은 일 때문에 성장판을 다치는 것일까? 그렇다면 미래를 예견했다는 뜻이 되는데, 이게 말이 되나? 운명이 정해졌다는 말이나 무슨 다름이 있지? 제발 후안의 키가 169를 넘었으면 좋겠다.'
사고가 없이 169에 머물면 초월적인 힘으로 정보를 수집해서 분석한 결과가 된다. 현장지휘의 최선이 기신의 최선과 달랐던 것처럼 초월적인 존재라기보다는, 인류보다 훨씬 발달한 정보 생명체 혹은 정보 단말로 보면 된다.
운명에 휘말린 게 아니라, 주어진 도구를 최대한으로 사용해서 운명을 개척한다는 확신이 기신에게 필요하다. 만약 정해진 운명에 따라 걷고 있는 것이라면 기신의 자아는 산산이 부서질지도 모른다. 자신의 인생이 누군가의 꼭두각시라는 것이 견딜 수 없다.
초월적인 힘을 접하지 못한 상태에서, 상상으로 이러면 어떨까 생각한다면 오히려 반가울지도 모른다. 노력이 없이 유용한 도구의 도움을 받아 남들이 이룰 수 없는 큰 성과를 이루고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자신이 게임 캐릭터처럼 남의 조종을 받는 게 아닌지 자꾸 걱정되었다.
'그래서 메시지가 플레이어 어쩌고 호칭하는 거구나. 배려심이 철철 넘치시네.'
한쪽에서 차범수와 김시웅이 딕슨의 지도로 육체 훈련을 하고 있었다. 차범수는 본인의 적정 체중을 유지하고 있기에 근육을 과하게 키우지 못하고 코어 운동만 하고 있었다. 힘을 쓰는 근육이라기보다 힘을 전달하는 근육들을 단련하고 있다. 몸싸움 기술이 뛰어난 차범수이기에 가능한 선택이다.
김시웅은 크로스가 아무리 훈련해도 나아지지 않자 포기했다. 어정쩡해서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은 김시웅은 차라리 부족한 몸싸움을 보완해서 완전히 수비형 선수로 나가기로 했다.
두레이와 캐리어가 한쪽 구석에서 훈련하고 있다. 신체가 완성된 캐리어는 반응속도 훈련을 하고 있고 두레이는 아직도 육체 훈련을 하고 있다. 캐리어가 온 이후로 두레이의 훈련 태도가 훨씬 나아졌다. 예전에는 시키는 훈련만 했는데 이제는 본인이 주동적으로 훈련량을 추가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앤디 차베즈는 현재 몸을 만들고 있다. 달리기나 가벼운 기본기 훈련만 하면서 체중을 불렸고 이제는 근육을 만들고 있다. 나이스와 두레이의 몸을 만들어줬던 트레이너가 또 한 번 고용되었다. 그러나 둘과 달리 고기 체질인 차베즈는 트레이너와 친하게 지냈다.
다음 구역은 시커멨다. 그레이, 블랙, 나이스 세 명의 흑인 선수가 하비의 지시에 따라 훈련하고 있었다. 야망 1에 프로 정신이 1밖에 안 되어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레이는 예상외로 훈련도 열심히 했다.
훈련을 열심히 하는 차범수도 프로 정신이 7밖에 안 되는 걸 보니 프로 정신이 훈련이나 경기에만 국한되지 않는 것 같다. 그레이는 활동 범위도 예전보다 넓어졌고 협력 수비도 곧잘 한다. 패스도 급하게 하지 않으면 실수가 없다. 다만 공격 가담과 위치 선정은 아직도 차범수의 도움이 필요하다.
블랙은 수비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이제 블랙의 문제는 수비 기술이 아니라 공격적인 성향이다. 공격수가 제대로 된 슈팅이나 패스를 못 하게 괴롭히기만 해도 된다. 하지만 블랙은 항상 상대의 공을 빼앗으려고 시도한다.
심리상담사의 말로는, 영웅심과 책임감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이 영웅이 되고 싶고, 자기 때문에 실점하기 싫은 감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블랙은 수입의 절반을 보육원에 기부하는 보기 드문 건실한 청년이다. 그레이와 헌터, 차범수, 김시웅, 터너 등도 블랙을 따라 적게나마 기부를 하고 있다.
나이스의 능력치를 확인하는 기신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반년 조금 넘는 시간 안에 나이스는 39의 능력치를 달성했다. 훈련만으로 능력치를 이 정도로 끌어 올렸다는 것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특히 아무리 힘든 훈련도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임하는 나이스 덕분에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비록 고기를 먹으며 눈물을 흘렸던 나이스지만, 힘든 훈련은 항상 웃는 얼굴로 임했다. 훈련이 힘들수록 더욱 잘 웃는 게 나이스의 특징이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서 묵묵히 하체 운동에 전념하고 있는 워드가 보였다. 시즌 초반에 몇 경기 교체로 출전했지만 아무것도 못 한 워드이다. 몸싸움 4에 주력 5 순발력 5의 워드는 동료들의 지원이 부족하여 프리킥 상황을 제외하면 한 사람 몫을 해내지 못했다.
기신은 워드를 바라보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4이던 체력 수치가 어느새 5가 되었다. 5라면 미드필더가 45분에서 60분을 뛸 수 있는 체력이다. 수비수라면 풀타임 소화가 가능하다. 선수들의 노력을 보면서, 기신은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 혹은 도구를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이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 작가의말
여러분, 노츠 카운티의 앞날이 이렇게 밝습니다. 그러니 지난 편의 고구마는 훌훌 털어내시기 바랍니다. 희망찬 미래를 향해 5초간 함성 발사하시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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