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정보 패치
월드컵의 열기가 뜨겁다. 수많은 새로운 영웅이 탄생하고 늙은 영웅이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월드컵에서 훌륭한 활약을 한 선수들이 팬과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아직 열리지 않은 이적 시장을 뜨겁게 달궜다.
그 열기에서 노츠 카운티는 한 발 비껴갔다. 차범수와 김시웅의 활약은 평범 그 자체다. 본인의 수비는 착실하게 해냈지만 팀을 구원하지는 못했다. 둘이 한국팀의 모든 빈틈을 메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엑토르 역시 골 하나 넣는 것으로 월드컵 여정을 끝냈다. 윙으로 출전한 엑토르는 직접 공격보다 크로스를 올리는 경우가 더 많았다. 동료들의 지원이 부족해 득점능력을 뽐내지 못했다.
16강에서 영국이 놀랍게도 독일을 이겨버렸다. 물론 며칠 뒤 영국은 4강 진출에 실패하고 보따리를 쌌다. 스위스 이탈리아 등 전통적으로 수비를 중시하는 팀들이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
"감독님, 제 위치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바꾸려 합니다. 감독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휴가를 반납하고 팀에 일찍 복귀한 김시웅이 기신을 찾았다. 김시웅은 지난 시즌 토트넘과의 원정 경기에서 에릭센을 마크하는 임무를 맡으며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한 적이 있다. 그 경기에서 느꼈던 해방감을 김시웅은 잊을 수 없었다.
- 수정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 김시웅의 최적 위치는 수비형 미드필더입니다. 잠재력은 56에서 66으로 상향 평가합니다.
'게임이냐? 느닷없는 이 패치는 뭐야?'
밸런스 엉망인 게임들이나 한다는 긴급 패치가 뜬금없이 발생했다. 기신은 조금 고민해보고 답을 주겠다며 김시웅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오후에 블랙이 찾아왔다.
"감독, 중앙수비수 두 명을 영입했다면서요?"
기신이 고개를 끄덕이자 블랙은 말을 이어갔다.
"그럼 나 왼쪽 윙백 할게요."
- 블랙의 최적 위치는 왼쪽 윙백입니다.
- 잠재력을 71에서 79로 상향 조정합니다.
'도대체 뭐냐고? 게임 아니고 현실이잖아. 갑자기 뭐하는 짓인데?'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기신은 크게 화가 났다. 지난번 신기와의 만남에서 지금 상황이 게임일 가능성이 다시 제기되었다. 그러고 지금 게임 같은 상황이 나타나자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
- 본 정보 단말은 정보의 수집, 분석, 결과 출력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평가 방식에서 오류를 발견하고 수정하였습니다.
예전에 선수의 적합 위치와 잠재력 등을 평가할 때 선수의 성격을 넣지 않았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성격이 선수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을 발견했고 그에 따른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평가를 달리했다는 것이다.
김시웅은 오른쪽 풀백 자리에서 많은 질타를 받았다. 어쩔 수 없이 오른쪽 풀백으로 경기를 뛰었지만, 수비에만 전념하고 공격에 가담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오른쪽 풀백 자리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해 마음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이다.
나쁘지 않은 수비 능력을 보유한 후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하고 해방감을 느꼈다. 풀백 자리를 벗어나니 훨씬 자유로워진 것이다. 그리고 에릭센을 꽁꽁 묶으면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 경기 이후로 공격적인 성향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다.
블랙은 영웅심이 강한 선수다. 공격수를 지망하다 현실을 인정하고 중앙수비수로 위치를 바꾸었지만, 영웅심이 사라지지 않았다. 강한 책임감으로 그 영웅심을 억누르고 있었지만, 블랙에게 가장 적합한 위치는 공격과 수비 모두 잘해야 하는 윙백이다.
스리백 전술에서 윙백은 홀로 한쪽의 공격과 수비를 담당해야 한다. 다른 선수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한다 해도 혼자 감당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책임감도 강하고 영웅심도 강한 블랙에게 가장 적합한 위치다.
'더 없어?'
불행인지 다행인지 두 명으로 끝났다. 두 선수의 잠재력이 높아져서 더 발전의 여지가 생겨 다행이지만, 둘이 새로운 위치에 적응하고 경기에 출전할 수준이 되는 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지 알 수 없다.
'점점 더 헷갈리네. 게임이든 현실이든 일단 최선을 다하자.'
끊임없이 의심하다가 현실로 결론을 내린다. 그러다 다시 의심하고 또 결론을 내린다. 그런 과정을 이미 몇 번이나 겪었다. 그 과정들이 있었기에 기신은 흔들리지 않았다.
훈련 경기에서 김시웅은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했고 블랙은 윙백으로 출전했다. 오른쪽 윙백은 카스퍼가 담당했다. 둘 다 수비에는 조금 부족한 점이 있지만 공격력은 큰 문제가 없다.
한국에서 데려온 선수들은 전부 유스 계약을 체결하고 유스팀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 기신과 하비가 가끔 가서 훈련을 봐주고 있다. 노츠 카운티는 새로운 코치들을 영입하여 새롭게 계약한 16명의 선수를 집중적으로 지도했다.
본인의 성격에 알맞은 위치여서 그런지 블랙과 김시웅은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처음 노츠 카운티에 왔을 때보다 경험도 많아졌고 능력도 좋아져서인지 낯선 자리에서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블랙은 자신감에 비교해 실수가 좀 잦았다.
조금 늦게 차범수가 복귀했다. 끝내 능력치가 70을 넘은 차범수를 확인하고 기신은 자신감이 조금 더 생겼다. 월드컵이 차범수와 김시웅에게 좋은 자극이 된 것 같다. 김시웅은 위치 변경을 결심했고 차범수는 더 나아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베노가 돌아왔다. 월드컵에서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한 베노는 심리 상태가 불안했다. 독일팀의 감독은 독일 국내에서 활약하는 선수들 위주로 출전시켰다. 베노가 프리미어리그에서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였고 영국 선수들에 대해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과의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분데스리가로 돌아가고 싶지만 베노의 이적료와 주급을 감당할 수 있는 팀이 몇 없다. 바이에른 뮌헨과 라이프치히 그리고 도르트문트만 감당이 된다. 하지만 이 세 팀은 현재 왼쪽 풀백에 안정적인 주전이 있어 굳이 베노가 필요하지 않다.
베노는 며칠간 다른 선수의 훈련을 지켜보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마음이 뒤숭숭해 집중이 잘 안 되는 상황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하면 다칠 위험이 크다. 그것을 잘 아는 베노는 팀 훈련만 최대한 집중해 완성한 후 개인 훈련은 하지 않았다. 마음을 다잡고 나서야 맹훈련에 돌입했다.
가장 마지막에 팀으로 복귀한 것은 헌터다. 월드컵에서 딱 한 경기에 교체로 출전해 14분을 활약했다. 이미 승부가 기울어진 상황에서 헌터의 속도를 이용할 요량으로 올린 것이다. 베노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대우이지만 헌터는 월드컵 경기에 출전했다고 기고만장해 있었다.
'이놈은 진짜 천재인가?'
5였던 기본기가 8이 되었고 6이던 골 결정력이 9가 되었다. 드리블은 여전히 3이지만 트래핑이 5에서 8이 되었다. 슈팅 정확도가 5에서 7이 되었고 공격 위치 선정이 10이 되었다. 다만 과감성이 9에서 7로 하락했다.
시즌이 끝날 때 헌터의 능력치는 69였다. 그런데 월드컵을 끝내고 갑자기 81이 되어서 돌아왔다. 기신은 헌터가 너무 낯설었다.
"주술사, 월드컵 기간 내내 다른 선수들 훈련을 훔쳐봤어요."
'너 축구 안 하고 무협지 찍고 왔냐?'
독문 무공도 아니고 훈련을 훔쳐볼 필요가 무에 있겠냐만 기신은 헌터의 말을 끊지 않았다. 갑자기 발전한 이유가 무척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글쎄 해리 케인을 비롯한 선수들이 기본기 훈련을 엄청 열심히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 천재적인 두뇌로 분석했죠. 내가 기본기가 부족해서 발전을 못 하는구나 깨달았어요. 그래서 매일 몰래 기본기 훈련을 열심히 했어요."
큰 경기를 앞두고 컨디션을 점검하고 조정하기 위해 기본기 훈련을 한다. 별로 특별할 게 없는 일이다. 몸 컨디션을 점검하는 데 가장 유효한 수단이 기본기 점검이다.
그리고 기본기 훈련을 하라고 지난 시즌 후반기에 기신이 헌터에게 분명히 당부했다. 물론 진짜 기본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기본기나 트래핑이나 수치 5로 그렇게 나쁜 수치는 아니다. 그저 슈팅 훈련을 줄였으면 하는 목적으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천재적인 헌터는 기신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물론 기신의 말대로 기본기와 트래핑 훈련에 시간을 좀 더 투자했다. 하지만 더 많은 시간을 슈팅 훈련에 쏟았다.
그러다 해리 케인이 슈팅 훈련을 거의 안 하고 기본기 훈련만 하는 것에 충격을 받고 슈팅 훈련을 접어두었다. 기본기와 트래핑 훈련을 열심히 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슈팅 훈련을 중단하니 슈팅 정확도가 높아졌다.
헌터는 계속 불에 달구고 두드리는 과정만 반복했다. 담금질의 시간을 가지지 않은 것이다. 슈팅 훈련을 멈추고 기본기 훈련을 한 기간이 담금질의 시간이 되면서 슈팅 정확도가 올라갔다.
기본기, 트래핑 그리고 위치선정과 슈팅 정확도 수치가 올라가며 골 결정력도 9가 되었다. 헌터는 이제 드리블을 제외하고 흠잡을 데 없는 공격수가 되어버렸다.
해리 케인도 13~14시즌까지 넣은 골이 17개밖에 안 된다. 5개는 3부리그에서 9개는 2부리그에서 넣었다. 그러고도 4년에 총 17골밖에 넣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14~15시즌부터 매 시즌 20골 이상 넣었다.
기신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짓눌렀다. 올해 헌터가 큰 사고를 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드리블을 제외하고 전면적으로 성장한 헌터다. 엑토르를 제외하고 또 하나의 안정적인 득점원이 생겼다.
커다란 변화를 보인 선수는 한 명 더 있다. 바로 그레이이다. 산시스와 그루이치의 경기를 아무리 지켜봐도 느껴지는 게 없자 그레이는 직접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수많은 선수의 동영상을 찾아보다가 가투소의 영상에 흥미를 느꼈다.
그레이는 멈추지 않고 항상 달리는 가투소의 모습에 흥미를 느꼈다. 축구가 즐겁지 않으면 아무리 체력이 훌륭하다고 해도 저렇게 달릴 수 없을 것이다. 그레이는 카투소의 환한 미소가 나오는 장면에서 영상을 멈춘 후 회상에 잠겼다.
자신이 왜 축구를 하는지, 왜 축구를 하고 싶어 했는지 회상했다. 자폐증으로 또래보다 말이 서툰 그레이는 아이들과의 교류가 두려웠다. 그레이에게 축구를 하는 시간은 유일하게 타인과 교류하는 시간이다. 축구는 언어가 없어도 타인과 대화할 수 있다.
보육원에서 말을 잘 못 하는 그레이는 억울함을 당해도 호소할 데가 없다. 그레이가 나이를 먹으며 건장한 육체를 가지기 전까지 많은 핍박을 당했다. 말이 서툴고 타인과의 대화가 두려운 그레이는 축구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일방적으로 교류했다.
그레이는 가투소의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며 눈물을 펑펑 흘렸다. 팀이 승리할 때, 동료가 골을 넣었을 때, 팀이 우승컵을 따낼 때 분명 즐거웠다. 그러나 그레이를 진정으로 즐겁게 했던 것은 동료들과 마음으로 대화를 주고받던 순간들이다.
그레이는 해마다 자신의 노력으로 활동 범위를 넓혀갔다. 차범수가 없어도 수비는 한 사람 몫을 해낼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레이의 노력으로 이룬 것이다. 하기 싫은 일을 팀을 위해 억지로 해낸 것이다.
그레이는 가투소의 경기들을 계속해서 찾아봤다. 가투소는 승리할 때 환하게 웃었고 패배하면 풀 죽은 얼굴이 되었다. 우승을 놓쳤을 때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레이는 영상 속의 가투소가 되어 함께 경기장을 뛰었다. 그레이의 가슴에 맺혀있던 차가운 얼음이 가투소의 열정에 천천히 녹아내렸다.
- 작가의말
몇몇 선수를 업그레이드했습니다. 물론 큰 변화를 보인 선수들만 언급했습니다. 기신이 그토록 부러워하던 스리백을 이번 시즌에는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2편으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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