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신 너프 당하다
나이스는 계속 경기할 수 있다고 고집부렸다. 그러나 분명 나이스는 잠깐의 블랙 아웃을 겪었다. 초반에 팀닥터의 질문에 횡설수설했다. 뇌진탕이 걱정된다.
우선 나이스를 밖으로 옮겨 지혈을 시도했다. 유벤투스의 코너킥에 헌터도 수비에 참여했다. 끔찍한 사고 때문에 선수들의 집중력이 하락했는지 노츠 카운티의 문전에서 혼전이 벌어졌다.
지혈을 끝낸 후 나이스의 머리에 압박 붕대를 감았다. 팀닥터는 당장 병원에 이송해 뇌를 검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이스는 경기를 끝내고 가겠다고 고집부렸다.
"범수야, 이제 이 경기는 너에게 맡기마."
차범수는 책임감이 클수록 더욱 힘내는 선수다. 그래서 기신은 굳이 돌려 말하지 않았다.
"나이스, 내 질문에 대답해. 고개를 끄덕이지 말고 눈만 깜빡여."
기신은 나이스의 머리를 두 손으로 꽉 잡았다.
"경기에 출전하고 싶지?"
나이스는 고개를 끄덕이려다 기신에게 제지당하고 눈을 깜빡였다.
"너 내가 주술사인 거 믿어?"
나이스는 눈을 부릅떴다.
"난 지금 주술로 네 상처를 살필 거야. 위험하지 않다면 너를 계속 경기하게 할 거야."
기신은 뇌진탕만 치료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졌다. 효과가 있는지 모른다. 치유는 제멋대로 모든 병을 치료한다. 물론 실험대상은 기신 본인이다.
- 미약한 뇌진탕을 치료했습니다.
- 이마의 상처도 조금 치료되었습니다.
피로감이 느껴졌다. 부상이 원래 크지 않았던 건지 방금 다쳐 활력 소모가 적은 건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힘이 빠졌지만 기절은 면했다.
"나이스, 조금 전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기억이 나?"
"네, 슈팅을 터너가 막아냈습니다. 상대 선수가 슈팅하려 했고 저는 헤딩으로 공을 쳐 내려고 했습니다. 공이 상대의 발에 맞은 후 제 머리를 쳤고요. 그다음 축구화의 바닥이 제 이마를 스치면서 살가죽만 찢어졌습니다. 저는 머리가 차이지 않았습니다. 아까 팀 닥터가 나이를 물었는데 저는 제 나이를 모릅니다."
보통 이름, 나이, 지금 상대 팀이 누군지 아느냐 등을 질문한다. 나이스는 비록 생일을 얻었지만 그건 진짜가 아니다. 그래서 나이스는 자신의 나이를 정확하게 모른다.
"나이스는 고아입니다. 그래서 본인 나이를 정확하게 모르죠. 뇌진탕은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팀닥터는 싱글벙글 웃음 짓는 나이스를 보다가 결국 고집을 꺾었다. 발음도 똑똑하고 초점도 전혀 흐려지지 않다. 자신이 겪은 일은 정확하게 서술하고 있고 말에 논리도 충분하다.
나이스가 다시 경기에 투입되자 노츠 카운티의 팬들은 기립박수로 격려를 보냈다. 노츠 카운티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보나비치가 공을 잡자 호넨은 습관적으로 터치라인 쪽으로 달렸다. 그러다 자신의 임무를 깨닫고 다시 중앙으로 달렸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선발로 출전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초반에는 꽤 돌파에 성공했지만 골 두 개 넣은 후부터 돌파가 어려워졌다. 다른 선수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혼자 힘으로 돌파해야 하기 때문이다.
토마스가 상처를 입지 않았다면 원래 호넨이 교체될 것이다. 르노가 후반전에 몇 번이나 벤치에서 일어나 워밍업을 했다. 호넨은 엑토르와 워드 그리고 르노의 드리블을 흉내 내다 몇 달 전부터 자신의 드리블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 드리블 실력이 오히려 PSG를 상대할 때보다 못하다.
'후안 꼬맹이에게 질 수는 없지.'
호넨은 후안의 빠른 속도가 무척 부럽다. 호넨도 빠른 편이지만 후안의 속도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호넨은 자신의 드리블과 돌파 능력을 더욱 키우기로 했다.
밖으로 달리다 안으로 향한 호넨의 움직임은 예상외로 훌륭한 결과를 낳았다. 유벤투스의 왼쪽 풀백이 호넨을 따라 중앙으로 향하며 공간이 생겼다.
김시웅은 차범수의 정확한 패스를 받았다. 후안과 호넨은 합리적인 움직임을 취하지 못했다. 헌터는 드리블이 안 된다. 보나비치는 자신의 예측과 다른 후안과 호넨의 움직임에 빠른 공격을 포기하고 차범수에게 패스했다. 차범수는 공을 끌지 않고 곧바로 김시웅에게 주었다.
'왼발은 먼 포스트를 향한다.'
김시웅의 크로스 스승은 그레이다. 그레이는 수다쟁이뿐 아니라 참견쟁이도 되었다. 수비형 미드필더인 그레이는 크로스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며 김시웅에게 크로스를 가르쳤다.
'왼쪽 엉덩이에 힘을 주며 왼 다리를 중심으로 몸을 회전한다.'
예상외로 그레이는 분할 동작을 정확하고 자세하게 가르쳤다.
'얼굴 정면이 골키퍼를 향할 때 오른쪽 엉덩이에 힘을 주며 동시에 오른 다리를 휘두른다.'
김시웅은 강한 희열을 느꼈다. 자신이 무언가 굉장한 짓을 하는 것 같았다.
'발과 공이 접촉하는 순간 허리에 힘을 주며 발을 바깥쪽으로 던진다.'
회전을 한껏 머금은 공이 유벤투스의 골대 앞에 떨어졌다. 그 위력은 거의 핵폭탄급이다. 예측하기 어려운 궤적에 얼어붙은 골키퍼는 감히 앞으로 나오지 못했다. 강한 회전으로 골대 앞에서는 거의 가로로 움직이는 공을 수비수들도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
바닥에 한 번 충돌한 공이 튕겨 올랐다. 회전이 강해서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공은 생각보다 높게 튕기지 않았다. 중앙수비수를 꿈꾸던 소년이 잽싸게 달려 들어가 헤딩을 했다.
보폭이 좁아 엑토르처럼 순간이동의 느낌이 나지 않았다. 만화에서 다람쥐 같은 작은 동물이 달리는 모습과 비슷했다. 후안의 헤딩이 골문에 들어갈 때도 골키퍼는 미동을 하지 못했다.
무언가 머리로 판단하거나 무의식이 판단해서 몸을 움직여야 하는데 미지의 세계가 펼쳐져서 혼란이 온 것이다. 무언가 판단을 내렸을 때는 이미 골이 선언되었다. 유벤투스의 골키퍼는 귀신에게 홀린 기분이었다. 누구도 골키퍼를 질책하지 않았다.
크로스를 올린 김시웅도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레이가 다가와서 번쩍 안아 올린 후에야 현실로 돌아왔다.
"제자, 이 스승은 무척 기쁘다."
김시웅은 그레이에게 안겨 허공에 번쩍 들린 상태에서 두 팔을 들어 환호했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훈련을 하면서도 자신의 선택을 늘 의심하고 불안해했다. 그래서 그레이가 가르쳐주는 크로스를 열심히 연습했다. 혹시 수비형 미드필더에 실패하면 다시 풀백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다.
기신은 김시웅이 수비형 미드필더가 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김시웅은 기신을 믿고 더 열심히 할 것을 마음먹었다. 고등학교 축구부에서도 후보 신세이던 자신을 프리미어리그 선수로 만들어준 감독님이다. 믿고 열심히 하기만 하면 된다.
유벤투스는 라니를 내리고 공격수 한 명을 올렸다. 블랙이 약 먹은 것처럼 날뛰면서 라니의 제공권을 방해했다. 끊임없는 도발로 라니의 평정심을 깨뜨렸다. 이미 카드 한 장을 받은 라니를 계속 두기에 위험했다.
유벤투스는 두 명의 수비수만 남기고 전부 공격에 투입했다. 남은 시간이 십 분도 안 된다. 후안과 헌터의 속도가 위협적이기는 하지만 모험을 해야 할 때다.
나이스의 태클이 정확하게 공만 빼냈다. 유벤투스 공격수가 뒤늦게 쓰러졌지만 주심은 고개를 돌렸다. 차범수의 패스를 받은 보나비치는 호넨에게 패스했다.
후안과 헌터와는 달리 호넨은 마크하는 수비수가 없다. 공을 잡고 호넨이 앞으로 빠르게 달리자 헌터를 지키던 수비수가 호넨에게 달려갔다.
"네가 잘하는 거 해."
보나비치의 외침에 호넨은 정신이 번뜩 들었다. 전술 이해가 부족하고 경험이 적다지만 지금 시간을 끌어야 함을 잘 알고 있다.
빠르게 달리던 호넨은 갑자기 급정거했다. 유벤투스 수비수도 경험이 풍부한 선수라 늦지 않게 몸을 멈춰 세웠다.
호넨은 오른발로 플리 플랩을 펼쳤다. 오른발에서 노닐던 공이 순식간에 왼발로 옮겨졌다. 왼쪽으로 한 번 툭 치니 헌터에게 향하는 패스 경로가 생겼다. 헌터는 아직도 무방비로 있었다.
수비수는 급하게 패스 경로를 막았다. 그러나 오른발만 급하게 움직이고 왼발은 그대로다. 공 여섯 개 정도는 어깨동무로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가랑이로 공을 뺐다. 수비수는 정강이를 걷어차 호넨을 쓰러뜨렸다.
호넨은 벌떡 일어나서 수비수에게 시비 걸었다. 블랙을 흉내 낸 것이다. 그러나 유벤투스 수비수는 호넨을 무시하고 수비 위치로 돌아갔다.
차범수의 프리킥은 크로스바를 스치며 골이 되지 못했다. 조금만 더 낮았으면 골이 되었을 것이다. 워드에게서 프리킥과 패스를 배우고 있는 데 빠른 발전은 보이지 못하고 있다.
경기가 5분 정도 남았을 때 차범수는 갑자기 수비 라인을 끌어올렸다. 나이스와 블랙이 상대 공격수보다 더 빠르다. 김시웅과 카스퍼도 속도가 빠르다. 셋은 체력이 좋고 카스퍼는 교체로 출전했다. 유벤투스 공격수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노츠 카운티가 라인을 올려 선수들을 중앙선에 압축시켰다. 유벤투스의 수비진도 어쩔 수 없이 중앙선으로 진용을 밀고 올라왔다. 인원수에서 밀려 일방적인 공격을 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차범수가 침착하게 찌른 침투 패스를 헌터가 잡았다. 속도는 후안이 더 빠르지만 경험이 부족해 침투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한 번 치고 달리는 것으로 수비수를 떨쳐낸 헌터는 강하고 정확한 슈팅을 날렸다. 부폰이 다시 십 년 젊어져서 돌아와도 이 슈팅은 막지 못했을 것이다.
주심의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노츠 카운티 팬들의 환호가 경기장을 흔들었다. 그러나 그 높은 소리도 메시지가 울리는 소리를 방해하지 못했다.
선수와 코치들에 의해 헹가래 당하는 기신의 귓가에는 메시지가 연신 울렸다.
- 챔피언스리그 우승 퀘스트를 완성했습니다.
- 플레이어 신기에게 특전이 주어집니다.
- 플레이어 신기에게 특성 빙의가 주어집니다.
고생한 것에 비교해 메시지는 단출했다. 그러나 기신은 긴장을 풀 수 없다. 최종 퀘스트가 남아있다.
- 최종 퀘스트가 주어집니다. 세상의 운명이 걸린 퀘스트입니다.
- 대한민국 대표팀으로 2026년 월드컵 우승을 하십시오.
- 많이 승리할수록 통합 퀘스트의 완성에 유리합니다.
- 힘내십시오.
최종 퀘스트가 끝인 줄 알았는데 뒤에 통합 퀘스트가 있다고 한다. 신기의 최종 퀘스트와 기신의 최종 퀘스트를 다 성공해야 통합 퀘스트가 시작된다.
지금까지 1500회가 넘는 기회에 둘 다 최종 퀘스트에 성공한 일이 드물다. 마법사가 최종 퀘스트에 성공하여 신기의 세상으로 넘어간 횟수가 얼마 안 된다. 마법사의 도움으로 신기가 최종 퀘스트에 성공한 적은 아예 없다.
퀘스트의 상세 내용은 신기만 알 수 있다. 그러나 꿈이 깨져서 더는 만날 방법이 없다.
- 구미호 퀘스트의 실패로 제한이 생깁니다. 수치가 10이 아닌 능력이 소멸합니다.
선수단 관리와 일정 관리의 도움을 알게 모르게 받아왔다. 이젠 그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
- 전술 이해 스텟이 사라진 관계로 현장지휘는 현장 정보로 바뀝니다.
상세한 설명은 없지만 무슨 뜻인지 곧바로 알 수 있다. 현장지휘는 이젠 정보만 제공하고 조언을 하지 못한다. 그 정보라는 것도 상대 선수 누가 컨디션이 좋은지, 체력 상태가 어떤지 등이다. 경험이 많은 감독과 코치들이 초월적인 힘이 없어도 알아본다는 그것이다.
물론 현장 정보가 알려주는 정보는 확실한 정보다. 자신의 판단이 틀렸는지 의심할 여지가 없어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선수 잠재력과 능력치를 볼 수 있다는 게 어디야.'
한참 난리를 친 후 시상식을 위해 새 옷을 갈아입었다. 기신은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하나 보냈다.
[사장님, 계획대로 하죠. 잘 부탁드립니다.]
- 작가의말
기신은 초월적인 힘을 이용하면서 거부하고 거부하면서 이용합니다. 사내가 줏대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제가 설정한 기신은 자존심이 강하면서도 적당한 타협이 가능한 캐릭터입니다. 노츠 카운티 정들었는데 이젠 잠시 안녕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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