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수복 작전
신기의 편지를 받은 김은결과 연아는 빅토르에게 도움을 줄 것을 약속했다. 일정 지역의 기온을 낮춰 괴수들의 전투력을 떨어뜨린다는 발상에 흥미가 생겼다. 마법병기 연아의 범위는 지역이라고 말하기에는 몹시 부족하다. 그리고 마법에 눈이 달린 게 아니기에 그 범위에 포함된 사람들도 똑같이 공격을 받는다.
하지만 냉기를 통해 기온만 낮춘다면 사람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는다. 성공한다면 괴수와의 전쟁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다만 지금까지 누구도 가능하리라 생각하지 않았었다. 마법의 범위를 늘리는 것은 매우 고차원의 마법학에 속한다. 대영제국에서도 제대로 된 연구 결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기신이 보여주었던 천재적인 모습들을 기억하는 둘은 신기의 편지를 받고 연구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
편지를 받은 백유한 역시 김은결과 연아와 함께 빅토르를 돕기로 했다. 신기가 백유한에게 편지를 보낸 것은 그때 자리에 함께 있었던 김원견이 아버지와 형과 한패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법사들의 연구를 지원할 귀족이 한 명은 있어야 하기에 백유한을 선택했다.
마법사들의 연구 과제는 백작 이상의 고위 귀족 한 명이 심사인으로 있어야 한다. 다만 심사인은 하나의 과제밖에 참여하지 못한다. 이는 마법사들의 연구 과제를 제한하기 위해 만들어낸 정책이다. 김은결이나 연아는 서로의 연구 과제를 심사인의 명목으로 지원해 줄 수 있다. 하지만 그 외의 연구 과제들은 귀족의 통제를 받는다. 심사인을 자처하는 귀족이 없으면 연구 과제가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백유한은 둘과는 달리 신기의 생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렸다. 그 사람은 은밀히 동맹을 맺은 김원견이다. 김원견은 신기의 생존을 알게 되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후 다음 왕으로 밀고 있는 신무에게 알렸다.
"불가사의하군요. 대만에서 곧바로 배를 타고 도망쳤다고 해도 러시아까지 가는 건 불가능할 텐데요."
"무언가 있다고 봐야 하지 않겠소. 신기를 버린 건 왕과 왕세자의 생각이고 공작은 사전에 몰랐다고 하지 않았소?"
"내게는 얘기해주지 않더군요."
신무는 어릴 때 신기를 많이 괴롭혔다. 신무는 성인이 되기 전부터 백작을 따라 군에 입문했다. 집안에서 가신들에게 떠받들려 사는 신현이 싫었고, 귀족의 의무 따위는 버리고 맨날 놀기만 하는 신기도 싫었다. 하지만 신현은 건드릴 수 없기에 주로 신기를 괴롭혔다.
그러다 나이를 먹어 현실을 직시한 후에는 괴롭힘을 멈췄다. 아마 신현의 눈에는 둘이 사이가 좋아진 것으로 비추어졌나 보다. 신무는 쓸모가 많은 신기를 버리기로 한 부친과 형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신기는 심약한 아이라서 잘 다독이면 가문에 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결심을 내리지 못했소?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바란다고 공작에게 욕심내라고 하겠소. 다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서요."
신무는 김원견의 말이 대부분 진심임을 알고 있다. 김원견은 신현이 왕이 되면 대한민국의 장래가 밝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 왕실은 백성을 잡아두기 위해 친민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름도 대한민국이라고 지었고 말이다.
하지만 신현이 왕이 되면 귀족을 위한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 귀족의 의무와 권리를 책으로만 배운 신현은 현실감각이 많이 떨어진다. 모든 귀족과 백성들이 각자 자리에서 자신의 직책을 당연히 수행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신기의 생존을 왕세자에게 알리겠습니다. 왕세자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 결정하죠."
신무는 어릴 때부터 군에 있으면서 상명하복의 군대가 아주 편하다. 그래서 왕실의 정치판에 끼어들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신기를 진짜 버린 것이 아니고 무언가 꾸미는 것이 있다면 다시 생각해야 한다. 자신을 제외하고 남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꾸민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신무는 신중한 성격이다. 함길도의 해안 수비를 책임지면서 자신의 경솔한 결정 때문에 사람들의 목숨이 위태해진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다. 그래서 충분히 고민한 다음 신현을 찾아갔다.
"형, 할 말이 있어."
"체통을 지켜라. 신 공작."
"왕세자 저하, 독대를 청하오."
신현은 시종과 하녀들을 전부 물렸다. 단둘이 남게 되자 신무는 다시 입을 열었다.
"러시아에서 신기를 봤다는 사람이 있는데."
신현은 심기가 깊지 않다.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자랐기에 누구의 눈치를 보지도 않는다. 신무의 말을 들은 신현은 코웃음을 쳤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차라리 대한제국에서 봤다면 믿겠다만 러시아라니."
"실제 신기와 대화를 한 사람도 있어."
신현은 이마를 찌푸렸다. 신무가 실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신무도 신현이 신기의 생존을 모르고 있음을 확인했다. 굳이 자신 앞에서 연기할 형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신무가 왕궁을 떠난 후 신현은 어머니를 찾아갔다.
"왕후마마, 소자 문안을 올립니다."
"어서 오너라. 대추차를 올리고 너희는 다 물러가라."
따뜻한 대추차를 올리고 하녀들이 전부 물러났다. 신현은 대추차로 속을 덥힌 후 입을 열었다.
"신기가 살아있다고 합니다. 신무의 말이니 믿을 만 합니다."
"명도 참 길구나. 네 아버지가 손을 쓴 것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아라."
"저도 뭔가를 보여줘야 할 것 같습니다. 이대로는 왕이 되어도 위엄이 설 것 같지 않습니다."
"혹시 생각해 둔 것은 있느냐?"
"대마도를 수복할 생각입니다. 이 정도 공적을 세우면 백성들에게도 제 위엄이 전해질 것 같습니다."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한 번 해보아라."
왕후의 지원을 약속받은 신현은 곧바로 아버지를 찾아갔다.
"전하, 세자 문안 올립니다."
"그래 무슨 일이냐?"
"소자 불민하지만 책임지고 대마도를 수복해 대한민국과 왕실의 위엄을 사해에 널리 알리겠습니다. 왕후마마께서도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신도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왕후는 조선인이 아닌 대한제국 공작가의 장녀이다. 대한제국에서 황실 다음으로 강대한 세력인 공작가는 대한민국이 독립한 뒤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신기를 버리기로 한 결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 것이 사실 공작가의 지원 때문이다.
"아직 대만의 작전이 성공했는지 확인을 하지 못했다. 대한제국의 괴수 이동 경로를 기록하고 분석하고 있지만, 아직 확실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대마도에 부러진 검과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도 정하지 못했고 말이다. 대마도에 집결한 괴수 중 얼마나 우리 땅으로 향하는지 분석이 끝나지 않았다."
"대마도를 수복한 후 일본 유민들에게 수비를 맡기면 됩니다. 조선인으로 살지 않으려는 모든 불온분자을 조선의 땅에서 쫓아내야 합니다. 왕의 은혜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자들이 왕을 섬기지 않음은 옳지 않습니다. 현재 우리는 전력과 자원에 여유가 있습니다. 문제가 생겨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지금 행동하는 것이 가장 적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부러진 검을 대만으로 옮기는 시도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3년 정도밖에 버티지 못한다. 3년이 지나면 다시 더 넓은 영토를 수복하고 더 강해진 대한제국에 알아서 기어들어 가야 한다. 하지만 부러진 검을 옮기는 작전에 성공했기 때문에 여유가 생겼다. 신현에게는 아직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고 했지만 사실 괴수들이 대만으로 몰려가는 것을 이미 확인했다.
대마도로 향하는 괴수들도 예전보다 적어져서 매우 편해졌다. 그래서 신도는 굳이 대마도를 수복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일본인 수십만이 빠져나가면 공장이나 식량 수급에 당분간 차질을 빚는다.
"산동의 공작가에서 충분한 식량을 지원한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기회에 대마도를 복속하여 왕실의 위엄을 알리고, 불온분자들도 이 땅에서 쫓아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왕후가 동의한 일이니 어떻게든 진행이 될 것이다. 신도가 군의 일에 몰두하는 사이 백작 부인이 가문을 휘어잡았다. 지금 대신들의 삼할이 백작 부인을 따르던 가신이기에 결국 대마도를 수복해야 할 것이다.
"자신이 있느냐?"
"소자 불민하나 최선을 다해 왕실의 위엄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신현은 왕의 허락까지 얻어내고 희희낙락하며 돌아갔다. 신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신도는 큰 후회가 들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자식은 신무다. 그리고 가장 쓸모가 있는 자식은 신기였다.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민해 신기를 버렸지만 시종 마음에 걸렸다.
'적당한 때에 대만의 일을 대한제국 황실에 알려야겠다. 신기의 단독 행동이라고 하면 대한제국도 트집을 잡기 힘들 것이다. 신현이 언제까지 외가에 비밀로 할지 모르니 우리가 먼저 알려야 한다.'
만약 신현이 먼저 왕후에게 말하면 공작가가 황실보다 앞서 정보를 입수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의 처지가 난처해진다. 아직 인구의 규모나 군사적 역량이나 차이가 크게 나기 때문에 대한제국의 눈치를 봐야 한다. 그래서 적당한 시기에 먼저 황실에 알릴 작정이다.
'김원견에게 적당히 힘을 실어주어야겠군. 왕후의 세력이 너무 강하다. 아직 국가의 기틀이 제대로 잡히지 않고 수백 년간 대한제국 사람으로 살다 보니 어쩔 수 없지만, 기분이 상하는구나. 혹시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나라를 버리고 도망칠 자들이니 기회가 되면 깨끗이 숙청해야겠다.'
신도는 왕이라기보다는 군인이다. 정치적 감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힘으로 해결 가능한 일을 굳이 머리를 쓰려고 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현재 왕권이 강하다기보다는 신권이 약하다고 해야 한다. 그래서 신도의 행보에 딴지를 걸만한 사람은 왕후와 김원견밖에 없다. 김원견은 정치적 감각이 탁월하므로 괜찮은데 권력을 쥔 미욱한 왕후가 문제가 되고 있다.
'그래, 이 기회에 신현의 그릇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야겠다.'
신도는 또 한 번 신기가 그리웠다. 항상 새로운 시각으로 문제를 보면서 기상천외한 해결방법을 꺼내 들었다.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만약 그 전까지 일부러 멍청한 척을 한 것이라면 심기가 너무 깊다는 생각에 꺼려졌다.
당시 신기의 재능과 쓸모를 제외하고, 모든 상황이 신기를 버리라고 종용했다. 그래서 버렸지만 정작 지금 마음에 들지 않는 일들이 생기니 신기가 그리웠다.
"다 내가 부덕한 탓이구나."
며칠이 지난 후 대마도 수복을 왕실이 결심했음을 알게 된 일본 유민들은 축제를 벌였다. 하지만 풍신수길을 비롯한 젊은 지도층은 근심에 빠졌다. 어렵게 대영제국을 통해 아프리카로 사람들을 보냈다. 그곳에서 마력석을 가공하는 공장과 무기 공장을 만들고 있지만, 아직 자원수급이 안정적이지 않다.
대마도를 수복한 후 대한민국 왕실의 그늘을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이 대한민국의 식민지가 될 것이다. 지금 준비가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대마도를 수복해버리면 얼마나 큰 피해를 입어야 하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이미 결정된 일이니 다른 생각을 하지 말고 어떻게 피해를 최소화할지 생각해보자."
"아프리카에서 온 정보에 의하면 이순신 장군님의 손뼈를 대만이라는 곳에 가져다 묻었다고 한다. 그 이후부터 괴수들이 제주도로 몰려오지 않았다. 만약 대마도에도 비슷한 것이 있다면 대한민국 왕실보다 먼저 찾아서 파괴하든지 다른 곳으로 빼돌리든지 해야 한다."
"제주도로 옮기는 것이 최선이다. 안된다면 파괴하자. 지금부터 계획을 세운다."
- 작가의말
신기가 벌인 난장판입니다. 생각 없는 주인공급이 이렇게 무섭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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