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정지 처분
왼쪽에 나타난 데 브라위너는 오른발 바깥쪽으로 크로스를 올렸다. 이런 크로스는 왼발 안쪽으로 올린 크로스와 비슷한 궤적을 그린다. 다만 바깥쪽으로 차면 공에 더 많은 힘이 실려 헤딩하기 편하다. 컨트롤이 어려워 자주 사용되지 않아서 그렇지 발 바깥쪽으로 올리는 크로스는 잘 차기만 하면 훨씬 위력적이다.
골대를 버리고 나온 터너가 두 주먹으로 공을 쳐 냈다. 가슴으로 공을 트래핑한 그레이는 몸을 돌리는 것으로 달라붙은 맨시티의 선수를 바닥에 쓰러뜨렸다. 그레이의 패스를 받은 보나비치는 빠르게 앞으로 달리는 차범수에게 패스했다.
무승부를 원하지 않는 것은 맨시티뿐이 아니다. 선수들은 기신이 무언가를 해줄 것이라 믿으며 수비를 하며 때를 기다렸다. 깊은 생각에 잠긴 기신이 무언가 묘한 수를 내서 팀을 승리로 이끌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차범수는 앞으로 드리블하다 맨시티 선수가 막아서자 르노에게 패스했다. 르노는 즐기는 드리블을 포기하고 바로 침투 패스를 찔렀다. 엑토르는 순간 가속으로 오타멘디를 뿌리치고 공을 잡았다. 에데르송이 적절하게 앞으로 나와 슈팅 각도를 좁히는 바람에 엑토르는 슈팅을 포기하고 안으로 돌파를 시도했다.
골키퍼를 제치고 슈팅할 예정이었는데 오타멘디가 어느새 쫓아왔다. 엑토르는 적절한 시기를 엿보다가 급작스레 왼쪽으로 방향을 꺾었다. 쫓아오던 오타멘디와 엑토르의 다리가 엉켰고 엑토르가 쓰러졌다.
주심은 페널티킥을 판정했고 맨시티 선수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침을 튀기며 주심에게 항의하던 오타멘디는 두 번째 노란 카드를 받고 퇴장당했다. 엑토르를 진찰한 팀닥터는 교체를 의미하는 수신호를 보냈다. 인대가 늘어나서 닷새 정도는 휴식해야 한다.
기신은 곧바로 제레미를 올렸다. 그리고 수비 라인을 최대한 뒤로 물릴 것을 요구했다. 공격을 포기한 수비를 선언한 것이다. 르노의 침착한 슈팅으로 페널티킥에 성공했다. 3:2로 승리를 눈앞에 둔 노츠 카운티는 10명밖에 남지 않은 맨시티를 상대로 극단적인 수비를 했다.
노츠 카운티는 77점으로 리그 1위를 차지했고 첼시가 75점으로 그 뒤를 따랐다. 맨시티는 2경기를 적게 치른 상황에서 70점으로 3위를 차지했고 아스널은 67점으로 66점의 리버풀과 4위 경쟁을 해야 했다.
4월 17일 맨시티는 26라운드 보충 경기에서 2:2로 왓포드와 무승부를 냈다. 오타멘디의 결장으로 맨시티의 수비가 불안했다. 맨시티가 한 경기 덜 치른 상황에서 노츠 카운티와 6점 차이가 나게 되었다.
하지만 노츠 카운티에 좋은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엑토르는 다이빙으로 페널티킥을 유도한 혐의가 인정되어 2경기 출장 정지를 받았다. 36라운드에 있는 2점 차이로 뒤를 쫓는 첼시와의 경기에 출전할 수 없게 되었다.
출전 여부를 떠나 손에 사용할 카드 하나가 더 있으면 상대의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 상대에게 더 많은 생각을 강요하고 그로부터 이득을 얻을 수 있다. 강팀이 약팀을 상대로 손쉬운 승리를 하는 것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엑토르라는 빅 카드 한 장을 손해 본 기신은 선발진에서 지고 들어갈 확률이 높다.
4월 22일 원정에서 3:2의 아슬아슬한 점수로 승리했지만 노츠 카운티의 팬들은 기뻐하지 못했다. 제레미가 경기 마지막에 골키퍼와 일대일 가능한 돌파를 반칙으로 막은 후 직접 붉은 카드를 받아버렸다.
누적으로 인한 붉은 카드가 아니라 직접 붉은 카드를 받았기 때문에 남은 세 경기 전부 출전할 수 없다. 노츠 카운티의 수비는 나이스와 블랙 둘에게 맡겨야 한다. 새옹지마라는 말이 적합하지 않지만, 맨시티를 이기고 엑토르를 두 경기 출전시키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제레미의 출장 정지의 불행과 함께 첼시가 홈에서 리그 꼴찌팀에 패하는 행운이 찾아왔다.
80점의 노츠 카운티는 75점의 첼시와 74점의 맨시티를 밑에 두었다. 맨시티가 한 경기 덜 뛰었다고 하지만, 그 경기를 맨시티가 승리한다고 해도 77점이다. 3경기만 남은 상황에서 노츠 카운티는 매우 유리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4월 27일 첼시를 홈에서 맞이한 노츠 카운티는 4-5-1의 진형을 펼쳤다. 나이스와 블랙이 중앙수비수로 출전했고 김시웅과 베노가 풀백으로 출전했다. 차범수가 그레이와 함께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했고 산시스와 그루이치 그리고 보나비치가 미드필더로 출전했다. 가장 앞에는 헌터가 자리했다.
남은 2경기는 크리스탈 팰리스와 뉴캐슬이다. 둘 다 유로파리그는 불가능하고 강등의 걱정도 없는 중위권에 놓여 있다. 이번 경기를 비기고 남은 두 경기에 승리하면 안정적으로 우승할 수 있다. 특히 다음 경기부터는 엑토르도 출전할 수 있으므로 기신은 코치들과의 거듭된 회의 끝에 첼시와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겨냥했다.
첼시는 수비수 두 명을 남겨 헌터를 지키게 하고 남은 선수들은 전부 공격에 투입했다. 블랙과 나이스가 가끔 실수했지만 다른 선수의 협력과 터너의 선방으로 노츠 카운티는 안정적인 수비를 선보였다.
야신 존이라고 불리는 사각으로 향하는 공을 낚아챈 터너는 천천히 일어서다가 선 자리에서 공을 급하게 찼다. 도움닫기를 한 후 공을 차는 게 보통인데 터너는 시간을 끄는 척 첼시 선수들을 방심시킨 후 불의의 기습을 획책했다.
먼저 골키퍼의 위치를 한 번 확인한 헌터는 빠르게 달려가 공을 앞으로 툭 내 찬 후 고개를 숙이고 달렸다. 사람마다 달리는 습관이 있는 데 헌터는 고개를 숙여야 속도가 제대로 나오는 유형이다. 공을 잡기 전에 다시 고개를 들어 키퍼의 위치를 확인한 후 헌터는 또 한 번 치고 달리기를 펼쳤다.
첼시의 수비수도 속도가 그렇게 느리지 않아 슈팅 준비 동작을 하는 헌터를 따라잡았다. 슈팅을 방해할 목적으로 슬라이딩을 했는데 몸으로 헌터의 디딤발을 건드렸다. 헌터는 슈팅을 채 완성하지 못하고 무게 중심이 흔들려 바닥에 넘어졌다.
주심은 두 팔을 가슴 앞에 모았다가 옆으로 벌렸다. 반칙이 아니라는 표시다. 딕슨이 노팅엄 사투리로 상욕을 퍼붓다가 노란 카드 한 장을 받았다. 쓰러져서 일어나지 않는 헌터를 체크하던 팀닥터가 교체 수신호를 보냈다.
헌터는 훈련의 강도는 낮췄지만 결코 훈련을 쉬지 않았다. 늘 무언가 느껴지는 게 있다고 입에 달고 다닌다. 경기 전날과 다음날에만 가볍게 하고 다른 날에는 꽤 강도 높은 훈련에 매진한다.
육체적으로 버텨낼 수 있다고 해도 정신적인 피로함은 방법이 없다. 헌터는 육체와 정신의 피로가 누적되어 반응이 느려져서 제대로 된 보호 동작을 못 했다. 큰 부상은 아니지만 지금 상태로 강도 높은 몸싸움을 하면 크게 다칠 수도 있다.
기신은 고민 끝에 후안을 올렸다. 속도 9에 가속 능력 8이던 후안은 몸을 다 만들고 정규적인 훈련 끝에 속도 10에 가속 능력 9의 어마어마한 수치를 달성했다. 헌터와 속도가 비슷해 보이는 것은 헌터는 치고 달리기로 뛰고 후안은 공을 발아래 두고 드리블하며 뛰기 때문이다.
후안을 올리자 첼시는 속도 빠른 풀백을 수비로 남기고 두 중앙 수비수를 공격에 투입했다. 기신은 첼시의 배짱이 무척 부러웠다. 노츠 카운티는 약한 팀을 상대하더라도 블랙이나 나이스를 공격에 투입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
그레이의 정확한 태클이 첼시 선수의 공을 건드렸다. 주인 없는 공을 향해 첼시와 노츠 카운티의 선수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가장 빠르게 발을 내밀어 공의 소유권을 차지한 선수는 나이스이다. 나이스는 순간적으로 시야가 좁아지며 중앙선에 서 있는 후안만 보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공은 이미 발을 떠나 앞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나이스는 헌터의 정신을 초월한 육체의 슈팅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패스를 끝내버린 것이다.
후안은 적절하게 방향을 바꾸어가며 빠른 속도로 드리블했다. 공을 잡고 뛰는데도 헌터가 치고 달리는 속도와 비슷하여 수비수는 후안과의 거리가 조금씩 멀어졌다. 방향을 바꾸지 않았으면 어찌어찌 따라갔을 테지만, 후안을 따라서 방향을 바꾸다 보니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
쿠르투아는 후안이 공을 차는 순간에 출격했다. 보통 어린 선수들은 무언가 동작을 할 때 키퍼가 갑자기 움직이면 영향을 받아 기술 동작을 제대로 못 한다. 그러나 후안은 자신감이 대단한 선수다. 160의 키에도 중앙수비수가 되겠다고 많은 프로 구단의 계약을 거절한 자아가 확고한 아이다.
골대를 버리고 출격한 쿠르투아는 후안이 빠른 방향전환으로 자신을 제치려 하자 슬라이딩하면서 공을 쳐 내려 했다. 하지만 공은 쳐 내지 못하고 팔로 후안의 다리를 건드려 넘어지게 했다.
뒤늦게 따라온 수비수가 공을 터치 라인으로 차 냈다. 주심은 스로인을 선언했다. 화가 치민 기신은 한국어를 섞어가며 욕을 퍼부었다. 젊은 선수들이 대다수인 노츠 카운티는 이런 편파 판정을 받으면 쉽게 흔들린다. 그리고 감독치고는 젊은 기신 역시 흔들리고 말았다.
기신은 주심이 붉은 카드를 꺼내 든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 어느 순간부터 우승에 대한 욕심이 가슴속에서 움트고 있었던 모양이다. 시즌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제발 4위라도 하게 해주세요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욕심이 생겼다. 그 욕심 때문에 판단이 흐려졌다.
"딕슨, 잘 부탁해. 수비 위주의 경기니까 나 대신 많이 선수들을 응원해줘."
기신은 딕슨에게 지휘를 맡기고 관객석으로 향했다. 전술이고 뭐고 없이 정신력의 싸움이다. 선수들과 가장 가깝게 지내는 딕슨이 최고의 선택이다.
결국, 기신은 관객석에 앉아서 노츠 카운티가 무력하게 0:2로 패배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거기에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경기도 직접 지휘하지 못하게 되었다. 2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80점으로 리그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78점의 첼시와 3경기를 남겨둔 77점의 맨시티가 노츠 카운티의 목을 조르고 있다.
37라운드 경기에서 노츠 카운티는 3:3의 점수로 원정에서 크리스탈 팰리스와 무승부를 이루었다. 역시 하늘은 공평한 것인지 첼시는 홈에서 페널티킥 한 개를 날리고 0:0 무승부를 했다. 노츠 카운티는 81점으로 리그 1위를 지켜냈고 맨시티가 80점으로 2위를 차지했다. 79점의 첼시는 3위를 차지하여 거의 우승 확률이 사라졌다.
5월 8일, 수많은 프리미어리그 팬들이 맨시티와 애스턴 빌라의 경기를 지켜보았다. 맨시티는 안정적으로 2:0의 승리를 거두어 83점으로 리그 1위를 탈환했다. 노츠 카운티는 마지막 경기에서 이기고 맨시티가 패배하기를 바라야 한다. 골 득실도 맨시티가 많다.
그리고 런던에서 크리스탈 팰리스와 무승부를 낸 날 기신은 꿈속에서 신기를 만났다. 오룡신기의 흡수를 끝낸 신기는 종교 지도자와 같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그리고 기신에게 충고해 주었다.
"한국 선수를 많이 키워. 지금까지 흐름으로 보면 챔피언스리그 우승 다음에는 월드컵밖에 없어. 난도가 높아졌다고 하니, 원래는 4강 정도인데 우승을 하라고 할지도 몰라."
목구멍까지 넘긴 리그 1위를 입안으로 토해낸 후 파김치처럼 늘어져 있던 기신은 신기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정상적인 감독이라면 리그 우승에 더 집착하는 게 맞지만 기신은 아니다. 정상적이지 않은 기신은 퀘스트의 완성을 1순위에 놓아야 한다.
- 작가의말
엑토르, 제레미, 기신의 출장 정지 처분입니다. 일타삼피의 고농축 고효율 소제목. 제목 학원에서 나 같은 사람을 왜 강사로 청하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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