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스토리 아닌가요?
“이제 한국에서도 잠잠해진 것 같은데 진혁 선수 시합을 잡는 것이 어떨까요?”
“진혁 선수라면 이미 계약이 파기가 되어 시합을 하려면 다시 계약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저희 측에서는 진혁 선수를 생각하고 있지 않아서 말입니다.”
글로벌 기업인 뮤라스에서 시작한 엔터 사업이 생각보다 잘 풀리는 가운데 스포츠 매니지먼트 사업도 본격적으로 시작할 요량으로 UFC 관계자를 만나 진혁의 시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진혁의 전담 매니저로 로렌스라는 여성이 배정이 되었는데 그녀는 스포츠 매니지먼트 업계에서는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진혁 선수가 UFC에서 거둔 성적이 2전 2승이에요. 이전 계약에서 누비아 마르틴과 한 번 더 붙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UFC에서 진혁 선수를 생각지 않고 있다고 하지만 페더급 흥행을 위해서는 새로운 선수가 필요하지 않아요?”
페더급 챔피언인 루아 산체스의 장기집권과 강력한 기술과 파워를 가진 톱10 안의 선수들이 버티고 있는 가운데 UFC에서 페더급의 인기는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다만 챔피언인 루아 산체스의 시합만 기형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수많은 사람들이 시합을 찾지만 그 외의 시합은 사람들에게 조금 시들해졌다.
워낙 쟁쟁한 선수들이 포진하고 있어 좀처럼 순위가 바뀌지도 않을뿐더러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경기 결과가 사람들의 흥미를 많이 떨어뜨렸다.
그리도 선수들 역시 위험을 감수하고 페터급으로 데뷔하기 보다는 한 체급 낮은, 혹은 높은 체급으로 도전하고 있어 페더급에서는 새로운 얼굴을 찾는 것도 힘들었다.
그나마 격투계의 신성이라고 할 수 있는 아리라나 스톰이 페더급에서 데뷔를 하여 2번의 시합을 치러 승리를 하였지만 중간에서 받쳐 줄 선수층이 너무 약한 것도 흥미를 잃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였다.
“진혁과 누비아 마르틴이 다시 시합을 가지고, 진혁 선수가 이긴다면 그 후에 페더급의 신성인 아리라나 스톰과 시합을 가진다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겁니다.”
“진혁 선수가 아리라나 스톰 선수의 상대가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왜요? 진혁 선수가 질 것 같은가요?”
UFC 소속 관계자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생겼다가 사라졌다.
“저는 정 반대인데 아리라나 스톰 선수가 진혁 선수에게 압살당해 자신감이 떨어져 그대로 주저앉을까 싶어 걱정이거든요.”
“하하, 아리라나 스톰이요?”
“진혁 선수의 별명이 무엇인지 모르는 모양이군요.”
그는 로렌스의 말을 듣고 잠깐 멈칫하더니 진혁의 별명이 통관문이라는 걸 떠올렸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아리라나 선수가 미국 출신으로 UFC에서 데뷔를 하였으니 사람들이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을 하지만 진혁 선수가 이룬 업적에 비교하면 아리라나 스톰 선수는 애송이나 다름이 없는 것 아닌가요?”
진혁이 아시아 선수로 아시아에서 데뷔를 하여 UFC에 진출하여 서구권의 사람들에게 덜 알려져 있지만 아시아권에서는 아리라나 스톰은 명함도 내밀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하였다.
“아시아에서 제 아무리 대단한 선수라고 해도 진혁 선수 앞에서 다 막혔습니다. 그래서 챔피언들도 진혁 선수와 붙기를 거부할 정도였죠.”
UFC의 관계자도 이 사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지금 UFC에서는 흥행 카드가 필요하지 않나요? 다른 체급은 몰라도 페더급은 이대로 가면 향후 5년 동안은 재미가 없을 텐데.”
“음······.”
“아리라나 스톰을 밀든지, 아니면 우리 진혁 선수를 밀든지 일단 시합을 붙여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야 할 것이 아닌가요?”
로렌스의 말대로 페더급은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긴 하였다.
“진혁 선수와 아리라나 스톰 선수를 바로 붙여 달라는 것도 아니고, 일단 다른 선수들과 붙여 놓고 진혁 선수의 기량을 보고 판단하면 되지 않나요? 아니, 저보다는 UFC에서 진혁 선수의 기량을 더 잘 알고 있겠죠.”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챔피언에게는 조금 역부족이겠지만 그 외에는 다 붙어 볼만한 실력이에요. 진혁 선수가 UFC에서 다시 시합을 뛰고, 한 명씩 이기고 올라가는 스토리도 괜찮지 않나요? 물론 아리라나 스톰 선수가 그런 스토리로 랭킹을 올리는 것도 괜찮죠.”
일종의 서열 깨기 방식으로 톱10 안에 진입을 하는 순간 자신보다 순위가 높은 선수들과 시합을 붙어 차례대로 격파하는 스토리를 말하였다.
“다른 방식도 있죠. 아리라나 스톰 선수와 진혁 선수가 경쟁하는 방식도 있어요. 일단 둘 다 톱10에 근접하면 한 선수는 홀수, 한 선수는 짝수 순위의 선수들에게 도전하여 격파해서 올라가는 거죠. 그래서 그들이 이긴다면 챔피언 도전권을 걸고 시합을 가지면 아마도 엄청난 흥행을 몰고 오겠죠.”
이야기처럼 이루어진다면 최상의 시나리오겠지만 객관적인 전력에서 페더급 톱10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선수들이 더 강하다고 평가를 받고 있어 로렌스의 말처럼 이루어지는 건 어렵다.
“어렵다고, 힘들다고 생각하시나요? 하지만 말이에요. 그게 당장 이루어질 일은 아니잖아요.”
“그러면?”
“한 사람이 1년에 많으면 5번, 적으면 2, 3번의 시합을 가지죠. 그럼 진혁과 아리라나 스톰 선수가 톱10에 근접하려면 최소 1년에서 2년 뒤가 될 것예요.”
로렌스는 당장이 아닌 3, 4년 뒤를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그 후 시합을 랭킹 전으로 1년에 2번 정도만 치른다고 생각하면 4년의 시간은 걸릴 거예요.”
“음.”
“기존의 톱10에 있는 선수들은 나이를 먹으니 기량이 조금씩 떨어지겠죠. 반면에 진혁 선수는 전성기를 막 지나는 시점이고, 아리라나 스톰 선수는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는 거죠.”
이렇게 듣고 보니 가능성이 보이긴 하였다.
“그때는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어요. 물론 그 기간 동안 톱10의 선수들에게도 변화가 생기겠지만 중요한 건 그들의 변화가 아닌 진혁 선수와 아리라나 스톰 선수가 치고 올라가는 스토리니까 사람들의 관심은 두 사람에게 쏠리게 될 거예요.”
“진혁 선수나 아리라나 스톰 선수가 승승장구한다는 보장이 없지 않습니까?”
“상관있나요? 그들을 이긴 선수가 그 스토리를 이어나가면 되죠. 그리고 전승으로 챔피언에게 도전하는 것도 재미가 있지만 고난과 역경을 견디고 이겨낸 후에 챔피언에게 도전하는 것도 재미있는 스토리가 되지 않을까요?”
*
진혁은 마적단의 소굴에서 블랙 바바리안 족장 모라스를 쓰러뜨린 후에 스켈레톤 나이트로 만들어 그를 앞세워 마적들을 소탕하고 무사히 로드리안 백작을 구해 베로니카 후작령으로 돌아올 수가 있었다.
로드리안 백작의 상인회를 찾아가 그를 상인회에 인도해 준 후에 진혁은 은행으로 가 마적단을 소탕하면서 얻은 아이템들을 모두 맡기며 직원에게 물었다.
“영지에 분위기가 어두운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아, 후드 백작이 다크엠버서더의 서드 오더라는 사실을 알고 영지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그를 잡으러 갔는데 오히려 당했다고 합니다.”
“기사들과 병사들이 당했다고요?”
“네. 그래서 후드 백작을 잡기 위해서 용병들을 모집하고 있어요. 대규모 용병 클랜에 의뢰도 넣고 해서 지금 후작령이 조금 어수선해요.”
진혁은 직원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스토리 상 기사들과 병사들이 실패하고, 플레이어들을 모아서 후드 백작을 잡는데 공적치가 가장 많은 이들에게 큰 보상과 함께 메인스토릴르 풀어 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지 않을까 하였다.
“이렇게 난리를 치면 세컨드 오더가 몸을 숨길 수도 있을 텐데.”
“그래도 서드 오더를 잡으면 그를 통해서 세컨드 오더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 테니 그가 숨더라도 금방 찾아낼 수가 있을 거예요.”
직원이 이렇게 말을 하지만 진혁은 그렇게 허술하게 스토리를 진행시킬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다 처리 되었습니다. 맡긴 물품은 한 달 동안 경매를 통해서 가장 높은 가격에 팔릴 것입니다.”
“네. 고마워요. 그리고 저 은행에 잔고가 얼마나 있죠?”
“잠시만요?”
은행직원이 진혁의 잔고를 확인하며 놀란 눈으로 보았다.
“왜요?”
“아니, 아니에요. 지금 진혁 님의 잔고는 일억팔천사백삼십만 골드가 있습니다.”
진혁은 골드를 골드상인에 팔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돈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미소를 지을 수가 있었다.
“경매에 맡겼던 아이템들이 다 팔려나 보죠.”
“잠시만요. 그것도 확인해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은행 직원이 진혁에게 그 결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이템은 모두 팔렸습니다. 오늘 맡긴 것을 제외하고는 경매에 남아 있는 아이템은 없습니다.”
“아, 고마워요.”
진혁은 그 동안 플레이어들에게 얻은 아이템이 싹 팔렸다는 말에 은행 잔고의 금액이 이해가 되었다.
“그럼 또 그놈들 아이템 벗겨 먹으러 가야 하나?”
진혁은 이런 행복한 고민을 하면서 은행을 나왔다.
“진혁, 어떻게 할 거야? 후드 백작을 잡으러 갈 거야?”
피란체바가 진혁의 어깨 위에 앉아서 물었다.
“아니, 난 피란체바랑 크로만 후작령으로 갈 건데.”
“크로만 후작령?”
“그래. 후드 백작은 다른 플레이어들이 잡으라고 그래. 난 왕국지도를 다 밝힌 후에 산타나 왕국으로 넘어갈 거야.”
“그래. 그럼 우리 얼른 크로만 후작령으로 가자. 그곳에 가서 몬스터를 사냥하자.”
진혁은 피란체바와 함께 크로만 후작령으로 가기 위해서 광장으로 갔다.
위프를 이용하여 로칸 영지로 가서 그곳에서 육로를 통해서 크로만 후작령으로 넘어갈 계획이었다.
광장에서는 많은 플레이어들이 가판을 열고 물건을 사고파는 중이었는데 진혁이 한 플레이어가 구하고 있는 재료들을 보고 반색하며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라판의 이빨과 파르곤하피의 피부는 어디에 쓰는데 구하는 겁니까?”
“연금술에 들어가는 재료에요. 용기의 물약을 비롯해서 많은 비약을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죠.”
“아, 그렇군요. 저에게 조금 많이 있는데 이거 다 사 주실 수 있습니까?”
“얼마나 있는데요?”
“각 만 개 정도씩 있습니다.”
플레이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만 개나요? 그라판과 파르곤하피는 침묵의 숲에서 한두 마리밖에 볼 수 없는 놈들인데···, 혹시 그놈들의 서식지라도 발견한 것입니까?”
“그건 영업비밀. 어떻게 모두 다 사주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전량 매입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지금은 돈이 없어서 은행가서 대출을 받아 오겠습니다.”
대출을 받아온다는 말만 남기고 그는 곧장 어디론가 달려갔다.
“신용 등급이 좋은가 보네. 은행에서 대출을 해 줄 정도도 골드 등급인 모양인데 연금술사도 꽤 돈이 되는 모양이구나.”
진혁의 은행 신용등급은 골드 등급을 넘어 플레티넘 등급으로 은행에서 주최하는 각종 행사나 파티에 참석할 수 있는 초대장을 받을 수 있는 등급이었다.
잠시 후, 그 플레이어가 오더니 진혁에게 값을 치른 후에 그라판의 이빨과 파르곤하피의 피부를 모두 매입을 하였다.
“좋은 거래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들고 있어 봐야 쓸 일도 없는데. 혹시 듀라한의 피는 안 필요합니까?”
“듀라한의 피도 가지고 계십니까?”
“그것도 한 만 개 정도 있는데.”
“잠시만요. 은행에 한 번 더 다녀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는 또 다시 은행으로 달려갔다.
“재미있는 친구네. 그럼 저 친구 올 때까지 잠시 다녀볼까?”
진혁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있나 없나 확인을 하며 광장에 가판을 열고 있는 플레이어들 사이를 다녀보았다.
“어?”
진혁은 한 플레이어가 팔고 있는 플라이 마법서를 발견하고 가격을 보았다.
“천만 골드?”
아무리 희귀마법사라고 하지만 천만골드는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금으로 10억은 너무 비싸다. 조금 아쉽긴 하지만 다음에 사는 걸로 하자.’
하늘을 날아다니는 건 정말 멋진 일이긴 하지만 10억이란 돈을 들여서 굳이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을 하였다.
‘백호를 타고 다니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니까.’
진혁은 아쉬웠지만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그런 후에 조금 더 플레이어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필요한 것이 있나 없나 살펴보았는데 몽크와 마법사인 자신에게 필요한 건 없었다.
가판을 열어 장사를 하는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연금술사라 그들이 연금할 재료를 사거나 혹은 연금한 물건을 파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진혁 역시 비약에 관심은 가지고 있었지만 비약을 통해서 신체능력이 향상되면 실시간 성장 스탯을 올리는데 방해가 되어 비약을 사용하지 않고 사냥하는 중이었다.
“여기 계셨군요.”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온 연금술사가 진혁에게 와서는 듀라한의 피도 모두 구입을 하여 거래를 마칠 수 있었다.
“또 필요하면 연락해도 되겠습니까?”
연금술사가 묻자, 진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전 이제 크로만 후작령으로 넘갈 생각이라 베로니카 후작령에는 오지 않을 생각이거든요.”
“아, 아쉽군요. 혹시 이놈들이 있는 사냥터라도 가르쳐 줄 수 있습니까?”
진혁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그놈들 안 나와요. 내가 클리어해 버려서. 그럼 수고하세요.”
진혁은 광장에 가판을 펴고 있는 플레이어들 사이를 지나 베로니카 후작령의 외성 문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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