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구나
진혁은 언제나 체육관에서 땀을 흘린다. 특히 시합이 잡히면 그의 훈련은 두 배, 세 배로 늘어난다.
“집중해. 5라운드까지 버티려면 힘을 허투로 쓰지 마!”
최달수 관장의 호통소리는 거칠어진 숨소리조차 목 안으로 넘어가게 만들었다.
종합격투기는 순간 많은 체력을 소모시키게 만든다. 상대와 싸울 수 있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최종라운드까지 싸움을 끌고 나갈 수 있는 체력, 집중력도 아주 중요하였다.
최달수는 진혁이 5라운드까지 버틸 수 있는 체력을 지니고 있음을 알고 있고, 또 이제까지 그걸 지켜보아왔다. 그럼에도 최달수는 진혁에게 체력 훈련을 시키면서 지구력 강화에 힘을 썼다.
“태웅이 교대해 줘.”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달리기와 같은 훈련이 아닌 스파링으로 진혁의 체력을 한계까지 몰아 붙였다.
잘하는 사람, 못하는 사람 할 것 없이 체육관 관원이면 한 사람씩 교대로 케이지 안으로 들어가 진혁과 스파링을 하였다.
진혁은 이를 악물고 버티면서 케이지 안으로 들어오는 상대들과 스파링을 하였는데 이게 무식하게 보여도 5라운드 동안 싸울 수 있는 체력을 기르거나, 유지하는 건 최고의 훈련이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선수들을 상대하니 자신이 익히고 있는 기술들을 고루 사용할 수가 있었다.
진혁은 케이지 안으로 들어오는 관원들을 상대로 자신이 연구한 누비아 마르틴의 루틴을 이용해서 그들과 스파링을 하였다.
관원들 중에는 프로 무대에 데뷔를 한 선수도 있었고, 아마추어 대회에 출전한 선수도 있었다. 또 운동을 위해서 종합격투기를 배우는 이들도 있었고, 프로 선수를 꿈꾸는 고등학생들도 있었다.
진혁을 그들을 상대로 자신의 루틴이 아닌 누비아 마르틴 루틴을 이용해서 스파링을 함에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다만 익숙하지 않아 체력적인 소모가 조금 심하다는 것 외에는 이들을 상대로 그럭저럭 쓸 만한 루틴이었다.
파아아앗!
원투 공격에 이은 하단차기로 태웅을 견제한 후에 그가 흠칫하는 모습을 보고 몸을 숙이며 양손으로 그의 발을 잡고 들어 올리려고 하자, 태웅이 힘으로 찍어 누르며 방어를 하려고 하였다.
진혁은 그 힘을 이용해 자신의 몸을 뒤집으며 한쪽 발을 태웅의 가랑이 사이로 넣으며 잡고 있던 발을 비틀어 버리자, 태웅이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진혁은 재빠르게 양 다리 사이로 잡고 있던 발을 넣어 고정 시킨 다음 왼손팔뚝과 오른손을 이용해 아킬레스건을 누르며 발목을 옆으로 비틀어버렸다.
앵클락이라는 서브미션 기술이었다. 기술이 너무 깔끔하게 들어가자, 태웅이 곧바로 탭을 쳐서 스파링을 포기하겠다는 신호를 보내었다.
진혁이 자세를 풀어 주자, 태웅이 발목이 고통스러운 듯 인상을 쓰며 일어났다.
“어떻게 1분도 못 견뎌!”
최달수의 잔소리에 이번에는 봉수가 케이지 안으로 들어갔다.
봉수가 케이지 안으로 들어오자, 진혁은 긴장을 하였다.
자신보다 체급이 높은 봉수는 정말 쉽지 않는 상대였기에 다른 관원들보다는 더 신중하게 접근을 해야 했다.
‘어쩌면 봉수 형은 누비아 마르틴의 기술을 파악하고 반격할 수 있을 거야.’
진혁의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곧바로 행동에 옮겼다.
*
진혁은 케이지에 누워 체육관의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체력의 완전 소진되어 일어날 힘도 없어서였다.
“무식한 자식. 오늘은 몇 분 버틴 거예요?”
“56분!”
최상호도 진혁의 체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무려 56분 동안 쉬지 않고 스파링을 하였다. 그 중에는 상대가 안 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56분을 쉬지 않고 싸운다는 건 엄청 대단한 일이었다.
“곧 1시간 채우겠네요. 그럼 시합 중에 체력이 떨어져 당하는 일은 없겠네요.”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싸우면 체력소모가 많아 우리의 체육관의 관원들로는 못해도 1시간 30분은 버텨야 해.”
“그렇게나?”
“만약에 너 정도 실력이 되는 선수가 진혁이랑 1라운드 5분 경기를 했어. 그럼 체력을 얼마나 빼놓을 것 같아?”
봉수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였다.
“쉽지는 않겠지만 지금으로선 꾸준하게 체력을 끌어 올려야 나중에 편해. 관장님도 이걸 알고 있으니 계속해서 진혁에게 체력을 키우라고 닦달하는 것이겠지.”
“쉬운 게 없네요. 진혁아, 언제까지 그리 누워 있을 거야?”
“이제 일어날 거예요.”
“그래? 씻고 삼겹살 먹으러 가자. 내가 쏜다.”
봉수가 삼겹살을 산다고 큰소리를 치자, 곁에 있는 최상호가 무슨 일? 하는 시선으로 보았다.
“어제 아이템 팔았어요. 저레벨이 사용하는 레어템이라 많이는 벌지 못했지만 이것저것 팔아서 이백 벌었어요.”
“그래?”
“집에 백육십 가져다주고 사십 남겨 뒀거든요. 그걸로 삼겹살 사드릴게요. 대신 20인분 넘게 먹으면 안 됩니다.”
“야, 셋이서 20인분을 어찌 먹냐?”
“진혁이 저건 먹거든요.”
“고기잖아요. 고기!”
“그래도 안 돼. 15인분에 밥 먹어.”
“그럼 나머지는 제가 내면 되죠. 형이 15인분에 밥. 그 이상은 제가.”
진혁이 돈이 더 나오면 자신이 부담하겠다고 했지만 봉수와 상호는 반대하였다.
“그냥 15인분만 먹어.”
진혁은 입이 한 자나 튀어 나왔지만 두 사람의 강경한 말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알았어요.”
고기를 먹는다는 생각에 진혁은 서둘러 샤워를 하고 함께 체육관을 나섰다.
단골이라고 할 수 있는 식육식당에 들어가며 진혁이 사장님께 말했다.
“사장님, 20인분 같은 15인분 주세요.”
삼겹살, 목살, 혹은 소고기란 말도 없이 그냥 15인분을 주문하자, 사장님이 알았다면 대답을 하였고, 일을 하시는 이모님이 다가와서는 물었다.
“술도 한 잔 할 거지?”
“늘 먹는 걸로.”
“알았어.”
잠시 기다리자, 상차림이 시작되고, 늘 먹던 술도 함께 배달되었다.
일인일병, 각자 술은 각자가 알아서 따라 마시고, 부족한 술은 술을 잘 못하는 사람 술 빼앗아 먹는 것이 이들의 술 먹는 방법이었다.
진혁과 봉수는 경우 한 병을 다 못 마시지만 최상호는 한 병을 다 마신 후에 진혁과 봉수의 술을 빼앗아 먹을 정도의 주량은 되었다.
술을 먹을 때도 진혁은 한 잔을 세 번 나누어 마시고, 봉수는 두 번을 나누어 마신다.
최상호는 원 샷으로 술잔을 비우는데 그리 빨리 마시는 편은 아니었다.
세 사람 다 운동 선수 출신이라 술보다는 고기에 조금 더 주력하는 스타일이었다.
상차림이 끝나고, 숯불이 설치되니 고기가 나왔는데 생각보다 양이 적었다.
고기는 사장님이 이들을 배려해서 5인분씩 나누어서 그때그때 잘라서 주었다.
찌이이이익······. 찌익!
고기가 뜨거운 불판에 닿자 고기가 익는 소리가 났고, 그 소리에 세 사람은 살짝 몸을 꼬았다.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행동과 같았다.
“그런데 형, 아이템이 잘 나오는 편이에요?”
“아니, 잘 안 나와. 그리고 플레이어들이 많으니까 경쟁도 심하고.”
진혁은 봉수에게 인더스에 대해서 물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로운 사냥터를 개척하려고 하는데 그게 쉽지는 않거든.”
“왜요?”
“인더스의 특징이 일정 레벨 구간이 넘어가면 같은 사냥터에 다양한 몬스터를 만날 수가 있거든. 가령 100레벨의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는데 갑자기 150레벨의 몬스터가 튀어 나올 수도 있다는 말이지.”
진혁은 봉수의 말을 듣고 이해를 하였다.
자신이 있는 그린우드 역시 몬스터의 레벨 군이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가장 약한 임프의 레벨의 40레벨이고, 가장 높은 오우거의 레벨이 170레벨이었다.
뿐만 아니라 오크들의 레벨은 100레벨이지만 집단생활을 하니 실상 100레벨보다 더 높은 레벨의 플레이어가 와야 사냥이 가능하였다.
“그런데 사냥터를 개척해서 사냥하면 좋은 점이 있나요?”
“일단 몬스터를 독점할 수가 있지. 독점하는 만큼 내가 아이템을 먹을 확률이 높아지니까 한 사람만 같이 있어도 확률은 반반이 되잖아.”
“그렇게 되는 거구나.”
진혁은 그제야 왜, 자신이 아이템을 많이 습득하는지 알 수가 있었다.
‘플레이어의 방해 없이 사냥을 해서 좋은 아이템들을 많이 먹은 거구나.’
“그런데 그건 왜?”
“아, 저 아이템 조금 모아 놓은 게 있거든요. 그거 나중에 형한테 우편으로 보내줄 테니까 형 실적 올리라고요.”
“정말?”
“네. 나는 운이 좋아서 그런지 아이템이 잘 나오더라고요.”
“그래? 그런 캐릭터가 있긴 있어. 일명 축캐릭이라고 하는데 아이템을 잘 먹는 캐릭터도 있고, 강화가 잘 되는 캐릭터도 있고 그래. 넌 아이템을 잘 먹는 캐릭터인가 보다.”
“시합 준비 중에는 인더스 이야기 하지 마. 관장님 싫어하잖아.”
“밖에 나왔잖아요. 그리고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봉수 형이 나 많이 도와주는데 저도 이렇게라도 조금 도울 수 있으면 좋죠.”
“역시 의리 하면 진혁이!”
봉수가 엄지손가락을 세워 그를 추켜세웠다.
“진혁이는 알아서 잘 하니까,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니까 너무 깊게 빠지지 마.”
“게임이 재미있긴 한데 아직은 운동이 더 재미있습니다. 그러니 은퇴하기 전까지는 게임에 미쳐서 온라인 세상의 고인물은 안 될 것 같으니 너무 걱정 마십시오.”
“형도, 진혁이 알잖아. 얼마나 독종인데.”
최상호은 진혁이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걱정은 하지 않지만 그래도 선배로서 한 번 정도는 충고를 해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여 말을 하였을 뿐이었다.
“그래. 알지, 그런데 너 장물아비하면서 쏠쏠하게 벌면 등급 올라가는 거 아니야?”
“올라가지요. 방산업체도 인더스의 은행 시스템과 같은 등급을 사용하고 있는데 난 그래도 아이템 거래가 활발해서 골드 등급까지 올라갔어요.”
“골드 등급?”
“네. 레어템, 일반템 거래를 열심히 하면 골드 등급까지 올라가는데 그 위로 플레티넘부터는 유니크 아이템 거래가 있어야 해요.”
“그거 비싼 거잖아.”
“네. 그래서 사람들은 유니크 아이템은 개인 거래를 하거든요.”
진혁은 두 사람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럼 대출된다는 건 플레티넘 등급부터 가능하겠네?”
“네. 플레티넘 등급은 구백만원까지, 플레티넘 골드 등급은 오천만원, 그리고 플레티넘 블랙은 3억까지 대출을 해준다고 해요. 무이자로.”
“형, 무이자로 대출을 해주는데 돈을 벌어?”
“다른 아이템 팔아 수수료를 챙기니까. 이것 때문에 금융권에서도 말이 많아. 특히 대부업체들 말이야.”
진혁은 주먹을 보여주며 물었다.
“대부업체들은 이것들도 많잖아.”
“그건 완전 고리대금업자들 이야기고, 일반 대부업체는 정식으로 추심을 하는 곳이지.”
“저건 운동만 하니 세상물정을 잘 모르지.”
최상호가 진혁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래도 알 건 다 알지요. 모르는 건 모르고.”
“마셔라.”
최상호의 말에 봉수는 소리 내어 웃으며 말했다.
“늘 당하면서 또 당하네요.”
“늘 그렇지.”
“그런데 아이템은 어떤 것들이 있어?”
봉수가 진혁에게 물었다.
“레어 아이템 열 개정도에, 일반 아이템 수십 개.”
봉수와 상호는 진혁의 말에 눈을 깜빡였다.
“수십 개?”
“대박.”
진혁의 말에 봉수가 좋아하였다.
“진혁이 너 돈 많이 벌었네. 이거 봉수가 사야 하는 게 아니라 진혁이가 사야 하는 거 아니야?”
“아, 형 왜 그래. 이거 내가 살게. 그런데 어디서 사냥을 했기에 아이템을 그렇게 모은 거야?”
“발리칸 산맥 여기저기 다니면서 했지. 나는 레벨이 낮아서 높은 사냥터를 갈 수가 없어서 아이템 레벨은 낮아.”
“아이템 착용 레벨이 낮은데 레어 아이템이면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데. 레어 아이템은 은행에 팔고 일반 아이템만 나에게 줘. 난 어차피 유니크 템이 아니면 등급을 올릴 수가 없으니까 일반 아이템만 있어도 되니까.”
“레어 아이템 많이 가져다주면 등급도 올려주는 거 아니에요?”
“그런 거 없어.”
“그럼 그렇게 해요. 은행을 통해서 파는데 필요하면 나중에 이야기하세요.”
“그래. 그렇게 할게.”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