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에 대한 보답
“봉수의 키가 180센티미터만 되었어도 챔피언에 도전해 볼만 할 텐데.”
최달수와 최상호는 봉수를 볼 때마다 그의 키가 조금 아쉬웠다.
봉수의 키는 170센티미터에서 조금 못 미쳤는데 그의 체급에서는 큰 키가 아니었다.
피지컬로 상대선수에게 밀리니 아무리 그래플링 기술이 좋아도 치고 빠지는 상대 선수와의 대결에서 한계가 들러날 수밖에 없었다.
“봉수가 선수로는 성공하지 못하였지만 코치로는 성공할 겁니다.”
최상호 역시 안타까운 시선으로 봉수를 보았다.
“그래야지. 처자식 먹여 살리려면 열심히 해야지.”
“봉수처럼 열심히 사는 놈도 없습니다. 그런 건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그런 놈이 인더스인가 뭐가 하는 것에 빠져 있어.”
못 마땅한 표정으로 툭 쏘아 말하였다.
“하하, 관장님도 인더스를 해 보시면 그리 말씀을 못할 겁니다. 왜, 챔피언 루아 산체스도 인더스 게임을 즐긴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건 무결의 챔피언이니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고.”
“오래전 기사에 루아 산체스가 인더스의 세상에서 훈련을 한다고 그랬습니다.”
“그건 나도 들어 알고 있어.”
“중요한 건 인더스를 한 이후로 산체스는 챔피언에 올랐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습니다. 8차 방어까지 성공하였고, 3, 4년 안에는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을 것 같은 기량을 보여주고 있으니 인더스가 문제라고 말을 하기에는 조금 그렇습니다.”
“그래?”
최상호는 분석가 출신으로 선수들에 대해서 분석하고 그들의 장점과 약점을 파악하여 진혁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산체스의 나이가 곧 삼십 대를 바라보니 전성기에서 꺾일 나이이지만 갑자기 기량이 하락하지 않는 이상 최장 5년 정도는 정상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안토니 반데라와 리틀 좀보아는 구경만 할까?”
UFC 페터급 2위와 3위를 언급하였다.
“그들도 죽어라 훈련을 해서 산체스에게 도전을 하겠지만 공방의 밸런스가 좋고, 경기 운영에 있어 완벽하리만큼 리드를 잡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어 두 사람은 챔피언에 도전을 해도 챔피언이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최상호는 자신이 바라보는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였다.
“최고의 타격가에게는 그래플링으로, 최고의 그래플링 선수에게는 요리조리 빠지면서 타격으로 승부를 하는 사람이 산체스입니다.”
듣고 있는 최달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우리 진혁이가 챔피언이 되어야 하는데 5년은 너무 길어.”
그 말에 최상호가 웃었다.
“진혁이는 다르죠. 진혁이도 산체스처럼 공수의 밸런스는 물론 타격과 그래플링의 능력도 출중하니까요. 진혁이라면 못해도 3년 안에 도전은 할 수는 있을 겁니다.”
“도전은? 그럼 챔피언은 못 된다는 거야?”
“그야 붙어 봐야 알겠죠.”
*
진혁의 일상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훈련하고, 게임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다 UFC대회가 열리는 태국으로 출국을 하였다.
진혁은 태국에 가서도 가상현실게임 인더스를 하였다.
비록 파테우스가 준 퀘스트를 하는데 시간을 다 보내었지만 최근 파이어 길드의 길드원들과 자주 부딪치면서 나름 만족하는 즐거움을 얻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현실에서도 긴장이 풀리니 태국에 와서도 인더스 세상에 접속하는 건 하루도 그르지 않았다.
그렇게 진혁이 UFC 무대에 데뷔를 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비록 이산데야 선수 대신하여 하리 홈과 싸우지만 자신의 실력이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도 통할 것이라 확신을 하였다.
UFC 태국 대회에서 여덟 체급의 선수가 시합을 가졌는데 남자가 다섯 채급, 여자가 세 체급이었다.
이 중 TV로 중계가 되는 건 6개의 체급으로 남자 4체급, 여자 두 체급이었다.
진혁이 데뷔전을 하는 페더급 경기는 전통적으로 UFC대회에서 인기가 많은 체급이라 TV 중계를 하는 시간에 편성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UFC 홍보전략 팀에서는 한국 팬들의 관심을 끌기 위함도 있었다.
진혁은 선수 대기실에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긴장하지 마. 넌 충분히 이길 수 있어.”
“저 긴장 안 하는데요. 관장님이 더 긴장하는 것 같은데요.”
진혁의 말처럼 누가 보면 진혁이 데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최달수가 데뷔를 하는 것처럼 긴장하고 있었다.
“관장님, 진혁이가 세계 유도 챔피언 출신이에요. 종목은 달라도 챔피언을 했던 사람이 이 정도에 긴장을 탈까요. 걱정 말고 관장님이나 긴장을 풀어요.”
봉수의 핀잔에 최달수가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이 또한 긴장을 풀기 위함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봉수는 피식 웃었다.
“준비 끝났으면 하리 홈을 잡으러 가 볼까요?”
시간이 되어 진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선수 대기실을 나섰다. 기다란 복도를 따라 걷는 진혁은 순간 온갖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자신에게는 이러한 경험들이 익숙한 것이었다.
‘무대가 다르고, 사람이 다를 뿐이다. 나의 노력은 언제나 그러하듯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진혁은 스스로를 믿었고, 그 동안의 노력을 믿었다. 그 믿음을 바탕으로 데뷔전에서 승리할 것이라 확신을 하였다.
터널 끝에 도착해서 잠시 기다렸다.
선수 소개가 끝나고, 화려한 음악과 함께 하리 홈이 먼저 등장하여 케이지로 향했고, 진혁이 나중에 소개가 되었는데 UFC무대에서도 코리아 몬스터라는 별명이 따라 붙었다.
멋지게 소개하는 장내 아나운서의 말이 끝나자, 진혁이 서 있는 터널을 향해 핀 조명이 비추어졌고, 그에 맞추어 진혁이 자신의 등장 음악에 맞추어 터널을 나왔다.
빰빠밤 바밤 바바담. 바바밤밤······.
진혁의 등장 음악은 아름다운 강산에서 나오는 중간 부분 연속해서 리플레이 하여 만든 등장 음악이었다.
음악에 맞추어 허공에 주먹질을 하며 등장하자, 관객들은 진혁의 이름을 외치면 환호를 하였다.
태국은 아시아에 속한 국가이고, 더원 대회가 자주 열리는 나라였다.
태국 사람들 중 격투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코리아 몬스터라 불리는 진혁을 대부분 알고 있었다.
하리 홈이 세계무대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그는 진혁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라 태국 사람들은 예상을 하였다.
물론 유럽, 아메리카, 남미의 많은 사람들은 진혁이 아닌 하리 홈의 승리를 점쳤지만 아시아의 사람들은 진혁의 승리를 점쳤다.
그만큼 진혁은 아시아에서는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다.
“오늘 하리 홈, 통관문을 넘지 못하고 넘어지겠네. 하필이면 진혁 선수를 지목해서.”
아시아 격투기의 통관문이 이제는 세계 챔피언이 되기 위해서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진혁이 케이지 안으로 들어서자, 최달수와 상호, 봉수는 밖에서 코치 대기 장소로 이동하였다.
코치 대기 장소는 케이지 안에서 선수 대기하는 곳 바로 뒤에 있어 관중의 함성이 크게 들려도 목소리를 전달할 수가 있었다.
“진혁아, 성급하게 승부를 내려고 하지 말고 무조건 1라운드는 상대가 어떤 작전으로 나오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
최달수가 진혁에게 당부를 하였다.
데뷔전이라 자칫 아드레날린이 많이 분비되어 흥분하여 날 뛸 것을 염려하여서였다.
“그런 걱정 말라니까요.”
봉수가 최달수에게 한 소리를 했다.
진혁은 두 사람의 아옹다옹하는 소리를 들으며 가볍게 몸을 풀었다.
심판의 손짓에 중앙으로 걸어간 진혁은 하리 홈을 보았다. 영상에서 본 것보다 체중이 더 많이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확실히 영상과 현장 느낌은 많이 다르다.’
진혁은 하리 홈을 보았고, 그는 진혁을 무시하는 행동으로 엄지손가락으로 케이지 바닥을 가리켰다.
그런 하리 홈에게 진혁은 손을 들어 올리는 척하며 주먹 감자를 날렸다.
그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심판이 이를 알아채지 못하였다. 만약 심판이 보았다면 경고를 하나 먹고 시작하였을 테지만 심판은 보지 못하였고, 하리 홈만 그걸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심판이 두 사람에게 주의 사항을 알려 준 뒤에 각자의 코너로 돌려보내었다.
“경고 먹으면 어떻게 하려고.”
“먼저 무시하니까 그렇죠. 세계무대에서 활동한다고 랭커라도 되는 것처럼 건방을 떨잖아요.
진혁은 대수롭지 않게 말을 하였다.
진혁의 말처럼 유럽과 남미, 아메리카의 격투기 선수들은 UFC에 입성하기 좋은 조건이지만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그것도 동아시아인들에게는 그 문턱이 높았다.
진혁이 하리 홈에 비해서 대회경험도 많고, 승리도 많이 하였다. 다만 그 무대가 아시아 무대라는 것인데 진혁은 자신이 하리 홈보다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를 듣보잡 취급을 하였다.
“랭커라면 몰라도 하리 홈에게 무시당할 만큼의 실력은 아니거든요.”
“얌마, 선수는 주둥이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싸우는 거야. 그리 생각하면 그런 행동보단 실력으로 눌러야지.”
“이건 관장님 말씀이 옳지. 특히 중계가 되는 상황에서 그런 행동이 마이너스가 될 거야.”
봉수도 이번만큼은 최달수의 편을 들어 주었다.
“아이, 왜들 그래요. 시합을 앞둔 사람에게, 진혁아 시합 끝내고 이야기하자.”
최상호는 진혁이 시합 전에 기가 죽을까봐. 말을 했지만 이 정도로 기가 죽고 그럴 사람은 아니었다.
“선수 준비!”
심판이 외치자, 두 사람은 자신의 코너에서 서로를 노려보았다.
심판이 손을 아래에서 위로 올리자, 두 사람은 야수로 변하여 서로를 향해 달려 나갔다.
진혁이 날린 주먹감자가 제대로 먹혔는지 하리 홈 달려오며 체중을 실어 진혁의 얼굴을 노리고 라이트 훅을 크게 휘둘렀다.
진혁은 자세를 낮추고 허리와 고개를 움직여 위빙 동작으로 하리 홈의 주먹을 피하며 오른발로 카프 킥이라 불리는 발차기로 하리 홈의 왼쪽 종아리를 강하게 찼다.
하리 홈은 진혁이 이런 식으로 공격해 올 것이라 예상을 하지 못하였는지 피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왼쪽 종아리에 충격을 받았고, 달리는 속도와 맞물려 앞으로 구르며 넘어졌다.
진혁은 그 모습을 보고 맹수가 먹이를 보고 달려가는 것처럼 그를 향해 달려가 몸으로 넘어진 하리 홈을 누르며 오른손 주먹으로 얼굴을 사정없이 때렸다.
무차별 타격이 이어지자, 하리 홈은 두 팔을 올려 방어를 하려고 하였지만 진혁의 주먹이 그의 방어룰 뚫고 안면에 적중을 하였다.
하리 홈은 진혁의 파운딩 공격에 무방비로 당해야 했고, 급기야는 심판이 달려와서는 진혁을 하리 홈과 떨어 뜨려 놓았다.
순식간에 끝나버린 진혁의 승리였다.
진혁은 승리의 세리머니를 하기 위해서 케이지의 난간 위로 뛰어 올라가 앉은 후에 관중들을 향해 소리쳤다.
“내가 바로 코리아 몬스터 진혁이다!”
진혁이 세리머니를 하는 동안에도 하리 홈은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진혁의 파운딩 공격당한 충격보다는 처음 카프 킥에 의한 대미지로 인해서였다.
카프킥은 정강이 뼈 중에서 가장 단단한 경골 부위로 상대의 가장 약한 비골을 가격하는 게 핵심이고, 이게 기술이었다.
나의 대미지는 최소화하고, 상대의 대미지를 극대화시켜 한 방에 주저앉게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카프킥이었다.
격투기 선수 대부분은 이러한 카프 킥을 사용할 줄 알고 대회에서도 심심찮게 사용을 하곤 하였다.
공격이 있으면 방어하는 방법도 있기 마련이니 카프 킥을 방어하는 방법도 함께 익히지만 불식간에 터지는 카프 킥을 방어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하리 홈의 경우는 진혁을 향해 달려 나오며 라이트 훅으로 공격한 상태라 허리 아래쪽은 거의 무방비였기에 진혁의 카프 킥에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진혁은 세리모니를 끝낸 후에 주저앉아 있는 하리 홈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고 하리 홈은 진혁이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났다.
처음 진혁을 무시하는 행동과는 전혀 다른 행동이었다. 비록 짧은 격돌이었지만 하리 홈은 진혁이 오랜 훈련을 통해 실력을 쌓아 올린 강한 상대임을 인정을 하여서였다.
“미안합니다.”
진혁이 주먹감자를 날린 것에 대한 미안함을 전했다.
“아니, 너는 최고의 전략으로 나를 도발하였고, 나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도발에 넘어가서 너에게 달려들었어.”
하리 홈의 말에 진혁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진혁은 단순히 자신을 깔보는 하리 홈에게 이거나 먹어라 하고 던진 것인데 하리 홈은 그러한 행동을 하나의 전략으로 생각을 하고 칭찬을 하였다.
“이번에 경험을 했으니 다음에는 이런 실수는 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승리를 축하해.”
하리 홈이 진혁의 승리를 축하할 때, 심판이 두 사람을 불렀다.
심판은 자신의 양쪽에 두 사람을 세운 뒤에 손을 잡았다. 장내 아나운서가 올라와서 진혁의 승리를 공식적으로 발표 하였다.
“TKO스··· 응···. 코리··· 아 몬스터, 진··· 혁!”
아나운서 특유의 길게 빼는 소개가 끝나자, 최달수가 달려와 진혁을 번쩍 들어 올렸다.
“잘 했어.”
그가 기뻐하며 함박웃음을 짓자, 진혁도 따라 웃으며 자신을 비추고 있는 조명들을 보았다.
‘이번 시합은 나의 노력에 대한 보답을 받은 시합이었다.’
진혁은 그렇게 생각을 하였다.
자신이 승리를 하였기에 보답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을 무시하였던 하리 홈에게 인정을 받았기에 이 시합에서 보답을 받았다고 생각하였다.
진혁은 자신이 노력을 배신하지 않은 이상 노력은 자신에 걸맞은 보상을 줄 것이란 믿음을 확신하는 대회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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