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친구해요
진혁은 이드라실 강의 수적 퇴치 의뢰를 받은 후에 몽크 클래스 길드를 나왔다.
-수적 잡으러 가는 거야?
언제 나타났는지 피란체바가 나타나서 물었다.
“그래. 하지만 그들과 싸우기 전에 우선적으로 몇 가지 알아보고 또 적응을 해야 할 것 같아.”
“적응?”
“물에 떠 있는 배 위에서는 중심을 잡기 힘들다고 알고 있거든.”
-알아. 그래서 마법사들은 마법을 이용해서 무게 중심을 잡아.
“마법을 이용해서?”
-응, 자신의 중심을 아래로 두고 배의 갑판에 붙어있는 마법이라고 그랬는데··· 그게 뭐지.
피란체바는 마법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는지 고민을 하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마그네틱 마법을 말하는 거야?”
-맞다. 마그네틱 마법!
마그네틱 마법은 서로 끌어당기는 성질을 이용하여 붙게 만드는 마법으로 대상은 상관없이 원하는 모든 물체에 다 사용할 수가 있었다.
-마그네틱 마법을 사용하면 흔들리는 갑판에서도 중심을 잡을 수가 있어.
“그렇구나. 그런데 난 마그네틱 마법을 안 배웠는데.”
-배우면 되지. 기본적인 마법은 흑마법사와 원소마법사가 공통으로 배울 수 있으니까.
“아, 그렇지. 난 흑마법사만 생각을 했어. 고마워. 피란체바!”
-진혁도 나처럼 생각을 못하구나.
“하하, 그런가 봐. 그럼 일단 영지의 광장으로 가보자. 그레비티 마법서를 파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니까.”
-응.
진혁은 피란체바와 함께 광장으로 가니 많은 생산직 플레이어들이 가판을 열어 재료 아이템, 혹은 아이템을 사거나 팔고 있는데 진혁은 그런 플레이어들 사이를 다니며 필요한 마법서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많이 있네.”
기본적인 마법은 1서클의 마법에 해당되는 것들이었는데 대부분 마법사 길드에서 사서 익히거나 사냥을 통해서 주워 사용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이, 다양한 마법서들을 볼 수가 있었다.
진혁은 필요한 1서클의 마법서들을 사서 익혔다. 초창기에 형성된 가격보다 싸게 마법서를 살 수 있어 많은 돈을 아낄 수가 있었다.
-마법을 많이 익혔어?
“그래. 1서클 마법은 거의 다 익힌 것 같아. 이제 나중에 날씨변환마법서 보이면 그걸 사서 익혀야겠어.”
날씨변환마법서는 비, 안개, 폭염과 같은 날씨를 조정할 수 있는 마법인데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함보다는 일상 생활에 필요한 마법들이었다.
흑마법사가 흑마법이 아닌 일반 마법을 배울 수 있는 공통 마법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해. 그럼 이제 이드라실 강으로 가는 거야?
“그래. 하지만 다른 용병들도 이드라실 강에서 수적들과 싸우니까 우리는 서두르지 말고 조금 더 자세하게 알아 본 후에 움직이자.”
진혁은 피란체바와 함께 이드라실 강 유역의 나스만 영지로 향했다.
강 유역에 자리를 잡은 영지들은 대부분 강을 중심으로 생업에 종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고기를 잡는 어부, 배를 만드는 목수부터 배를 수리는 수리공에 강의 물길을 따라 오가는 상인들과 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이들까지, 나스만 영지의 사람들은 강을 삶의 터전 삶아 살아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진혁은 앞서 아르헨 강의 유역 사람들도 그랬듯 이드라실 강 유역의 영지인 나스만 영지도 그럴 것이라 생각을 하였는데 아르헨 강과 이드라실 강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
“마치 바다처럼 넓구나.”
분명 강이 분명한데 그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넓고 물살도 제법 강하게 느껴졌다.
“이드라실 강에 비하면 한강은 강도 아니구나. 중국의 황하 강이나 장강 정도는 되어야 여기에 비할 수가 있겠다.”
-웅장하지.
“그래. 가슴이 뻥 뚫리는 그런 기분이야.”
-어서 가자.
진혁은 피란체바와 함께 강을 따라 걸었고, 얼마가지 않아 나스만 영지에 도달할 수가 있었다.
나스만 영지는 본령보다 작은 도시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교역 도시라 그런지 정리가 안 되는 것 같은 분주함이 사람들의 모습에서 묻어났다.
그럼에도 질서가 잡혀 있는 것이 진혁의 눈에는 신기할 정도였다.
“이 정도면 많이 싼 편입니다. 그럼요. 공짜나 다름이 없다니까요.”
“오늘 경매에서 받은 물건을 정말 이윤 하나 안 붙이고 보내는 겁니다. 가격 후려치려면 미리 말씀하십시오. 다른 곳에 팔아버릴 테니까. 말도 마십시오. 요즘 수적들이 얼마나 설치고 다니는지 어부들이 조업을 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상인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거나, 통신구슬을 이용하여 거래처와 거래를 하는 모습에서 옛날 어릴 때 부산 자갈치 어시장 공판장에서 상인들이 흥정을 하는 모습과 겹쳐 보여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데 이들의 삶의 터전을 수적들이 빼앗아가려고 한단 말이지?”
진혁은 영지를 다니면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NPC라고 하나 이들에게도 정해진 범위 내에서 자유의사가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NPC, 혹은 플레이어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곤 하는 모습이 정겹기도 하였다.
“피란체바.”
-응?
“마그네트 마법을 익혔다고 해도 흔들리는 선박 위에서 적응을 조금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도 좋은 생각이야. 뭐든 적응하면 쉬운 법이니까.
“그래. 그럼 우리 고기잡이 배 며칠만 타 보자.”
-고기잡이 배?
“여객선이 아닌 고기잡이배가 물 위에서 롤링도 심하고 힘을 쓰는 법도 배울 수도 있고 하니 말이야.”
-난 싫은데.
“싫어?”
-응, 난 생선 비린내가 싫어.
피란체바는 호불호가 확실하여 자신이 싫은 건 될 수 있으면 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래. 알았어. 그럼 다른 배를 타면 되니까 상관없어.”
-아니야, 진혁이는 고깃배를 타 난 정령계에서 놀다 올게.
“그렇게 해도 괜찮겠어?”
-상관없어. 진혁이 다른 놈들과 싸우면 정령계에 있어도 내가 알 수 있으니까 금방 올 수 있으니까.
“그래. 그럼 그렇게 해. 난 한 삼, 사일 정도 일을 해 볼게.”
-알았어. 그럼 열심히 해. 난 정령계 간다.
피란체바가 사라지자, 진혁은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다른 정령들과 달리 자신의 주장이 강한 피란체바였다.
“일자리를 구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 클래스 길드는 의뢰만 있을 텐데. 일단 클래스 길드에 가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그들의 추천으로 고기잡이배를 타서 적응을 하자.”
*
“이런 쇼 구경은 처음이지?”
진혁은 이탈리아에 와서 프라다를 만났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이탈리아에 온 진혁은 프라다 그룹에서 주최하는 스페셜 컬렉션 런웨이에 참석하기 위해서 우선 이탈라이 현지에서 정장을 맞춰서 입은 후에 프라다의 손에 이끌려 행사장으로 갔다.
런웨이는 초청된 사람들, 즉 프라다에서 엄선한 VVIP고객들과 엠버서더로 활동하고 있는 유명인들이 참가하였는데 행사장에서 한국의 유명 연예인들 몇 명을 볼 수가 있었다.
“나야 처음이지. 기회도 없을 뿐더러, 이런 걸 왜, 구경하고 있나 싶기도 하고 그래.”
“다들 그렇게 생각을 해. 하지만 여기는 일종의 사교 모임장이야.”
“사교 모임장?”
“그래. 초대된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의 한 분야에서 나름 이름을 알리고 있거나, 혹은 돈이 많은 부자들이지.”
프라다는 진혁에게 이런 런웨이 모임에 대한 목적을 알려 주었다.
“내가 저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혹은 도움이 필요한데 쉽게 만날 수가 없는 경우가 있잖아.”
“그렇겠지.”
“그럴 때면 이런 행사장을 이용을 해.”
“그 사람이 올지 안 올지 어떻게 알아?”
진혁이 묻자, 프라다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발송되는 명단이 있잖아. VVIP가 우리 측에 문의를 해 와. 그럼 초대장이 발송되었는지, 혹은 발송을 하는지 문의하지.”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워낙 바쁜 사람들이라 안 오는 경우가 많아. 하지만 그들의 지인이 대신 와서 쇼를 관람하고 그들을 대신하여 비즈니스를 하고 돌아가곤 해.”
“그렇구나. 쉽게 사는 사람들은 없구나. 다들 치열하게 사는구나.”
“그렇지. 대다수의 사람에게 그 치열함이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해.”
진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너의 말이 맞는 것 같아.”
“어, 진혁씨!”
진혁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엘리스 강이 화사한 옷을 입고 서 있었다.
“엘리스 강, 이번에도 오너는 퇴짜를 놓을 건가?”
“회장님께서는 워낙 바쁘신 몸이라서요. 사실 저도 한 달에 얼굴 몇 번 밖에 보지 못해요.”
엘리스 강이 뮤다스 그룹의 총수이지만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룹의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프라다 역시 엘리스 강과 오랫동안 만나왔지만 그녀가 뮤다스 그룹의 비서실을 총괄하는 수석 비서로 알고 있었다.
“근데 진혁씨가 여긴 어쩐 일이에요?”
“그게······.”
“사고치고 왔지.”
진혁이 말하려는 순간 프라다가 끼어들어 고자질을 하듯 진혁이 이탈리아에 온 이유를 설명하였다.
“사고 제대로 쳤네요.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요? 그 정도의 사고면 수습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방송국에서는 소송까지 걸 수도 있어요.”
“그럼 어쩔 수 없죠. 저와 계약한 건 방송출연 2회일 뿐 다른 방송에 내가 출연하거나 촬영현장에 도움을 줘야 한다는 말은 없으니까요.”
진혁은 엘리스 강의 말을 듣고 뜨끔하였지만 따지고 보면 자신이 잘못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여 이리 말을 하였다.
“그럼 매니지먼트와 계약을 해지하면 앞으로는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설마 해지하겠어요. 만나서 이래저래 말을 하다보면 또 조율이 되겠죠.”
“이 친구가 이렇게 순진하다니까.”
프라다가 진혁을 향해 말을 하였다.
“내가 왜?”
“매니지먼트에서 선수 길들이기를 할 지도 몰라.”
“길들이기?”
“그래. 거대 매니지먼트일수록 이런 관행을 심심찮게 볼 수가 있는데 대부분, 선수를 자신들의 손아귀에 쥐고 입맛대로······.”
프라다가 매니지먼트사의 관행에 대해서 진혁에게 이야기를 하자, 곁에 있는 엘리스 강도 맞장구를 쳤다.
‘그럼 내가 뭔가 크게 잘못한 건가?’
“그래서 일부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들은 1인 기획사를 차리거나, 혹은 가족 기획사를 차려서 자신이 컨트롤을 하는 경우들이 많아요.”
“나는 아직 그 정도의 인기까지는 없는데.”
진혁이 걱정하는 얼굴을 하자, 프라다와 엘리스 강은 재미가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알아 봐줘?”
“아니, 일단 말을 잘 해서 한 번 풀어 봐야지. 두 사람의 말대로 길들이기를 하면 모르겠지만 아직은 만나서 이야기를 안 나누어 본 상황이니까.”
“그럼 그렇게 해. 아, 그리고 오늘 초대하신 분 중에도 매니지먼트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몇 명 있어. 쇼 끝나고 만찬 할 때, 내가 소개 시켜 줄게. 일단 안면을 익혀 둬.”
“고마워.”
“우리 그룹에서도 이번에 매니지먼트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대화가 잘 안 되면 저희랑 계약을 해요.”
“뮤다스에서?”
프라다가 물었다.
“네. 일단 인더스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플레이어들 중에서 몇 명을 뽑아 프로 게이머로 활동하게 할 계획이에요. 그룹의 프로 게이머로 활동하게 되면 뮤라스 관련 광고를 시작으로······.”
스포츠 쪽보다는 엔터테인먼트에 가까운 매니지먼트였지만 뮤라스 그룹에서 구상하고 있는 프로 게이머의 활동은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일단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고요.”
“그렇게 하세요. 그들이 강하게 나오면 더 강하게 나가세요. 그래야 길들이기를 못해요. 그리고 계약서대로 이행하고, 각종 특약들을 설정해서 넣고 어떻게 해서든 나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해요.”
엘리스 강이 조언이 아닌 조언을 해 주며 갑과 을의 관계에서 갑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알려 주었다.
“감사합니다. 엘리스 강.”
“진혁씨.”
“네?”
“우리 몇 번 봤잖아요.”
“그렇죠.”
“그럼 앞으로 편하게 말을 하는 것이 어때요?”
“편하게요?”
“네. 이 컬렉션 런웨이가 끝나는 순간 우리 편하게 말을 하기에요. 친구처럼 말이에요.”
진혁은 엘리스 강의 뜻에 따라 친구를 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해요. 그런데 엘리스 강은 몇 살이에요?”
“나이가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그냥 친구해요.”
엘리스 강이 진혁보다 2살 위였지만 그냥 편하게 만나기 위해서 친구를 하자고 제안을 하였다.
“그럼 그렇게 해요.”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