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스토커의 생활
“살신성인!”
진혁은 스킬 살신성인의 쿨 타임이 끝날 때마다 곧장 사용하여 그린포스의 어그로를 끌었다.
어그로가 풀려 소환수를 공격하면 소환수가 꼼짝없이 당할 수도 있어서였다.
진혁이 그린포스가 공격한 후에 생기는 잠깐의 빈틈을 이용해서 공격을 하고 있지만 체력을 깎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그린포스의 어그로를 자신에게 고정시킨 후에 놈에게 달라 붙어 있는 소환수들이 공격하여 체력을 깎아내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화르르르륵!
피란체바의 파이어 볼이 그린포스의 몸통을 강타하였다.
무식할 정도의 방어력을 지닌 그린포스였지만 화염속성의 공격에는 조금 더 큰 대미지를 입는 것 같았다.
도찐개찐이란 말이 있듯 실상은 그리 차이 나지 않지만 그래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진혁은 그린포스를 상대하면서 이리저리 구르며 나뭇가지, 줄기, 잎, 뿌리 공격을 피하면서 이제까지 경험했던 것 배 이상으로 두들겨 맞고 넘어지고 피하고 하며 생고생을 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고생이 마냥 의미가 없는 건 아니었다.
진혁이 그린포스의 공격을 피하면서 아크로바틱한 동작들에 익숙해졌고, 허공에서 몸을 비틀거나, 긴 체공을 시간을 이용하여 다양한 동작을 완벽하게 사용하거나 혹은 제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만 보더라도 실보다는 득이 더 많았다.
쉐이익!
나뭇가지가 일직선으로 뻗어오자, 진혁은 지면을 박차고 도약하여 공격을 피하였고, 그 상태에서 나무줄기가 진혁을 향해 휘둘러져 왔다. 공중에서 허리에 힘을 주고 몸을 뒤집어 텀블링을 하여 그 공격 또한 피해 내었다.
곧이어 나뭇잎이 날아와 진혁의 온 몸을 노렸는데 다이빙 선수가 허공으로 점프를 하여 몸을 트위스트 하는 것처럼 진혁도 허공에서 몸을 비틀어 나뭇잎까지 피한 후에 바닥으로 착지를 하였다.
쿠르르르르!
나무뿌리가 땅속에서 올라오자, 진혁은 텀블링으로 그 자리를 피하였는데 뾰족한 뿌리가 계속해서 올라오자, 진혁 역시 연속으로 텀블링을 하여 뿌리를 피하였다.
“타앗!”
반발력을 이용하여 높게 점프를 하며 텀블링을 하는 동시에 다크 스피어로 나무뿌리를 공격하여 그린포스의 공격을 저지하였다.
처음 그린포스와 싸울 때와는 달리 몹시 안정적이었다. 그렇다고 위험스러운 장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싸우면서 회피하는 기술이 크게 늘어난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게 진혁이 네임드 몬스터인 엘더 킹 그린포스와 치열한 공방을 시작한 지 10시간이 되었을 때, 그린포스의 체력이 20% 이하로 떨어뜨릴 수가 있었다.
‘피로감이 계속해서 쌓이는데.’
진혁은 피로감은 40,000이었는데 이 엄청난 수치임에도 불구하고 진혁은 그린포스와 싸우면서 피로가 쌓이는 걸 느꼈다.
피로가 쌓이면 행동이 둔해지고, 반응속도가 느려지는데 피로감이 0이 되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 결말을 내어야 했다.
진혁이 그린포스를 만나 싸운 지 딱 10시간이 흘렀다. 만약 다른 플레이어들이 이와 같은 사실을 알았다면 분명 진혁이 버그를 이용하여 피로감을 늘렸다고 주장을 할지도 모른다.
-엘더 킹 그린포스의 체력이 20% 이하로 하락하였습니다.
진혁은 시스템 알림을 듣고 눈을 좁혔다.
‘역시 광폭화가 일어나는 건가?’
광폭화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공격력, 방어력이 강해지는 대신 체력을 불꽃처럼 태우기 때문에 잘 피해서 다닌다면 스스로 자멸할 것이니 어쩌면 진혁에게 더 낳은 결과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엘더 킹 그린포스가 자신의 수호목인 엘더 장로들을 소환합니다.
진혁의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우두두두둑!
그린포스 주변으로 엘더 장로 몬스터가 네 마리가 나타났다.
엘더 장로의 덩치는 그린포스에 비해서 작았지만 일반 엘더에 비하면 큰 편이었다.
“광호한 자신감!”
진혁은 엘더 장로가 모습을 드러내자, 광호한 자신감을 사용하여 놈들도 자신에게 어그로를 시켰다. 소화수들이 이들을 상대하였다간 죽도 밥도 되지 못하고, 지금까지 투자한 시간이 허투로 돌아갈 수도 있어서였다.
진혁은 몬스터를 자신에게 몰빵시킨 후에 소환수들이 엘더 킹 그린포스를 빨리 잡아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진혁, 괜찮겠어. 물러났다가 다시 올까?”
피란체바가 진혁이 걱정되어 말하였다
“아니, 괜찮아. 피란체바, 넌 나에게 힐을 집중 해 줘.”
“알았어. 조심해야 해!”
엘더 장로들이 진혁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진혁은 엘더 장로들을 보며 심호흡을 한 후에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떴다.
‘물러났다가 다시 오면 놈을 잡지 못한다. 차라리 여기서 죽더라도 결정을 봐야 한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
진혁은 자신의 감각과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이것이 수치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간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진혁은 지금의 상황에 최대한 집중해서 몬스터들을 상대하였다.
그린포스와 엘더 장로가 함께 진혁을 향해 공격을 시작하였고, 진혁은 더 빠르고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
글로벌 그룹인 뮤라스의 한국 지부 다니는 박은서는 가상현실 게임 인더스의 서비스 부서의 모니터 팀에서 일을 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직장에 다니면서 한 가지 취미가 생겼는데 어떻게 보면 그 취미는 범죄에 가까운 것이지만 현실이 아닌 가상현실 게임인 인더스 세상 안에서의 취미가 이것이라면 꼭 범죄라고 단정을 지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역시 가상현실 게임 인더스에 접속하여 게임을 즐기고 있지만 그녀는 게임보다는 한 사람을 관찰하고 그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는 것이 더 즐거운 사람이었다.
박은서가 모니터링을 하며 지켜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진혁이었다.
그녀는 회사에 입사를 하였을 때, 모니터링 팀원들에게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하고 있는 진혁을 모니터링 하는 일을 도맡아 하였다.
이제는 플레이어들끼리의 시비가 자연스러울 정도로 별 것 아닌 것처럼 넘어가니 진혁을 꼭 집어서 모니터링을 하지는 않지만 회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녀는 회사 아이디를 이용하여 진혁을 모니터링 하였다.
그녀가 진혁을 모니터링 하는 이유는 간단하였다. 그가 하는 모험은 다른 플레이어와 달리 재미가 있었다.
일반적인 몬스터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정말 상대하기 힘든 몬스터, 다수의 플레이어들, 그리고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던전을 찾아 모험하는 그가 자신에게 대리 만족을 주고 있어서였다.
수많은 크리에이터들이 세계 최초, 우주 최초라는 말로 어그로를 끌어 자신의 콘텐츠를 팔려고 하지만 진혁은 그들과 달리 진짜 모험을 하기에 더 재미가 있고, 깊은 대리 만족을 할 수가 있었다.
살고 있는 곳이나, 혹은 크리에이터처럼 은행 구좌의 번호라도 알고 있다면 매달 들어오는 월급에서 일정 금액을 후원해 줄 마음이 있을 정도로 대리 만족을 통해서 큰 만족감을 얻을 수가 있었다.
“정말 대단하다. 벌써 네 시간 째 싸우고 있어. 진혁 플레이어는 피로감이 무한이라도 되는 걸까?”
박은서는 진혁이 엘더 킹 그린포스를 만나 싸우는 걸 회사에서부터 지켜보았다.
현실과 게임 시간 비율은 1:3이니 현실에서 4시간은 인더스의 세상에서는 12시간이란 뜻이었다.
12시간 동안 일반 몬스터가 아닌 네임드 몬스터를 상대로 단 1분도 쉬지 않고 싸울 수 있는 플레이어의 피로감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진혁을 모니터링 하지만 진혁의 능력치나 스킬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다.
글로벌 기업인 뮤라스에서는 개인의 정보를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어 아무리 뮤라스의 직원이라고 해도 이 부분만큼은 알아 낼 수가 없었다.
“진혁 플레이어는 게임을 하면서 뭔가 계속해서 배우고 익히고 하는데 나는 왜, 저렇게 되지 않을까?”
몸치에 가까운 박은서는 몬스터와 싸우는 주 직업보다 무엇 인가를 만들고 생산하는 보조 직업인 연금술사에 더 집중하며 인더스 세상의 구성원 중 한 명으로 플레이를 하는 중이었다.
몸치인 자신에 비해 진혁의 플레이어는 화려하면서도 간결하고, 신속하면서도 무겁게 움직이는 모습이 그저 부러울 뿐이었다.
빔 프로젝터를 이용하여 거실의 벽면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영상을 쏘아 진혁의 플레이를 모니터링 하는데 보고만 있으면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엘더 장로들은 그냥 두고 그린포스만 집중 공격하는구나.”
박은서는 왜, 진혁이 엘더 장로부터 처리하지 않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였지만 뭔가 다른 노림수가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하였다.
“저 스킬은 정말 대단해. 네임드 몬스터는 어그로가 잘 되지 않는데 혼자서 네임드 몬스터는 물론 엘더 장로들까지 어그로를 끌어 상대하니 말이야.”
박은서의 입가에 미소가 생겼다.
평소에는 검은 고양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가 전투가 시작되면 상황에 맞게 몸을 변형하여 싸우는 정령이 너무 귀여워서였다.
지금은 고양이의 모습을 하고 있고, 몸에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날개가 달려 있는 모습이었다.
만화에서 자주 보는 그런 캐릭터라 진혁의 모험에서 대리 만족을 얻는다면 피란체바의 행동을 보며 힐링을 받는 그런 셈이었다.
그런 피란체바가 진혁을 위해서 열심히 싸워주고 있으니 박은서의 눈에는 너무 대견하고 귀엽게 보였다.
“장난 안치고, 진혁 플레이어를 잘 도와주네. 나도 저런 정령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앗!”
진혁이 엘더 장로의 공격에 맞고 나뒹굴자, 그녀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피란체바가 진혁에게 힐을 넣어주었지만 위기를 벗어난 건 아니었다.
“이를···, 우와!”
그녀의 옅은 비명은 곧 감탄으로 바뀌었는데 그 이유는 진혁이 몸을 옆으로 굴러 그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가까이에 있는 엘더 장로를 향해 두어 발 뛰어 도약하며 놈의 몸통을 발로 차며 허공으로 뛰어올라 몸을 비틀어 재차 공격해 오는 엘더 장로의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이번에는 다른 쪽에 있는 엘더 장로의 몸통을 발로 차며 반발력을 얻어 뛰어 오르는 모습을 보아서였다.
설명은 길었지만 이 모든 동작들이 한 번에 깔끔하게 이루어졌다.
그로 인해서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오는 그린포스의 굵은 나뭇가지가 엘더 장로의 몸에 박혔다.
엘더 장로는 그린포스의 공격에 당해 잠깐 멈칫하였지만 크게 개의치 않은 모습이었다.
진혁은 아래로 떨어지면서 그린포스의 굵은 나뭇가지 위로 내려 섰다.
휘리리릭!
나무줄기가 사방으로 휘몰아치며 진혁을 향해 날아오자, 나뭇가지 위에서 텀블링을 하여 공격을 피하며 아래로 내려 섰다.
마치 영화에서 화려한 CG를 이용하여 주인공을 돋보이게 만들 목적으로 촬영하는 것처럼 완벽하게 동작을 완성 시키며 바닥으로 내려서는 모습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정말 대단하다. 허공에서 어떻게 몸을 저렇게 자유자재로 쓸 수가 있지? 체조 선수 출신인가?”
체조 선수들이 가끔 마루 운동을 하는 것을 보면 텀블링, 트위스트, 공중 2회전, 비틀어 2회전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박은서의 눈에는 진혁이 그렇게 움직이니 체조선수로 오해를 할만도 하였다.
박은서는 집에서 진혁을 모니터링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켜보았다.
띠리리리링!
그때 전화벨이 울렸고,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친구에게서 온 전화였다.
“여보세요.”
-저녁에 뭐해? 또 집에서 인더스 하는 거야?
“나야 뭐 그렇지.”
-그러지 말고 나와. 술이나 한 잔해. 내가 오빠한테 너 남자 한 명 소개 시켜 달라고 말했거든. 오빠가 데리고 나온데.
“안 가.”
박은서는 귀찮은 듯 말을 하였다.
-야, 너 때문에 오빠가 친구를 데리고 나오는 건데.
이 친구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자신에게는 큰 도움이 안 되는 그런 친구라 이제는 그만 만나고 싶은 친구이기도 하였다.
“넌 부탁하지도 않은 걸 왜, 나서서 하는 건데.”
-내가 나 좋으라고 그러냐?
“하여간 안 가. 그리고 너 그런 쓸데없는 짓 좀 하지 마. 아무리 친구라고 하지만 이런 건, 선을 넘는 거야.”
박은서는 남자친구를 소개 시켜준다는 말에 짜증이 났다.
남자친구를 소개 시켜주는 척하면서 밥과 술이며 얻어먹으려고 하는 친구의 속셈이 눈에 보였다.
왜, 자신의 삶에 가족도 아닌 다른 사람이 개입하여 간섭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잖아.
“나를 위하면 그런 거 하지 마. 그리고 앞으로 나에게 연락하지 마.”
-야, 박은서!
“너 마음대로 생각하고 결정해서 일을 진행하는 행동들이 나를 위해서 말하는데 하나도 반가운 행동이 아니야. 그러니 그런 거 하지 말고 너의 일이나 생각하고 결정해.”
-그럼 이게 나를 위해서야?
“그러니까 나의 일은 내가 알아서 하니까 너는 그냥 너의 일이나 신경을 써. 그만 끊어.”
박은서는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짜증 나.”
소파에 기대어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말없이 한참을 진혁을 지켜보니 짜증이 났던 마음에 조금 풀렸다.
여전히 힘든 상황이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진혁이라는 플레이어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끔씩 가슴이 벅찰 때가 있었다.
“진혁 플레이어는 인더스의 세상에서는 자유롭게 모험을 즐기지만 게임이 아닌 현실에서는 어떤 삶을 살까? 나처럼 다른 사람들의 간섭을 받으며 살까? 아니면 게임에서처럼 자유로운 삶을 살까”
스크린을 보며 이러한 생각을 해 보았다.
아마 진혁이라는 플레이어는 현실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고 생활하지 않을까 하였다.
“그러니 게임에서도 저렇게 자유롭고, 당당하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겠지.”
박은서는 진혁의 엘더 킹 그린포스와 엘더 장로들과의 전투에 시선을 고정하였다.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진혁은 여전히 아슬아슬한 전투를 벌이는 중이었고, 그의 소환수들은 열심히 엘더 킹 그린포스를 공격하는 중이었다.
“부럽다. 나도 저렇게 신나는 모험을 해보고 싶은데.”
한 없이 부러운 시선으로 스크린 안의 진혁의 모습을 응시하다 피곤함을 느꼈다.
그녀는 습관적으로 휴대폰의 시간을 확인해 보았는데 21시 23분라 표시가 되어 있었다.
“허억···, 6시간 동안 싸우는 중이야.”
진혁이 인더스의 세상에서 18시간 동안 그린포스와 싸우고 있다는 사실에 박은서를 놀랐다.
“체력은 정령이 힐링으로 채워주고, 체력포션으로 어느 정도 회복을 한다고 해도 정말 대단한 집중력과 인내력이야.”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은 지금 진혁이 해내고 있는 중이었다.
“도대체 진혁 플레이어의 피로감은 얼마나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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