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이 이게 아닌가 보네.
단숨에 마운트 포지션을 잡자, 관중들이 함성을 질렀다. 허나 진혁의 귀에는 그 함성이 들려오지 않았다.
‘인더스의 효과야.’
마운트 포지션에서 팔꿈치를 이용한 엘보 공격을 하면서 진혁은 인더스의 세상, 듀얼 공간에서 속도를 높여 기사와 싸우는 것이 미련한 짓이 아님을 깨달았다.
반응속도가 달라진 것이다.
스파링을 하면서도 어렴풋이 느꼈지만 노구치 히데오랑 싸우면서 확신을 할 수가 있었다.
진혁에게 이 시합은 현 UFC 페더급 챔피언 루아 산체스의 말대로 가상현실 공간에서의 수련이 현실에서도 도움이 된다는 걸 확인하는 시합이 되었다.
진혁이 이러한 생각을 하며 본능적으로 엘보 공격을 하고 있을 때, 노구치 히데오는 빠져 나오기 위해서 노력하였지만 쉽지 않았다.
‘어디서 이런 괴물 같은 놈이······.’
노구치 히데오는 한 번씩 치고 들어오는 진혁의 엘보 공격이 너무나 위협적이라 이를 방어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패하게 될 것임을 직감하였다.
‘누가 타격기에 약하다고 그랬지.’
단순히 서서 싸우는 것만 타격기가 아니다. 서브미션이 아닌 이처럼 마운트 포지션에서의 주먹, 엘보, 무릎 등으로 공격하는 것도 일종의 타격 기술이다.
이렇게 공격을 퍼붓다가 자신이 지치게 된다면 상대는 무차별 폭격을 가하게 될 것이다. 그 전에 빠져 나가야 했다.
“허엇!”
이러한 생각을 할 때, 진혁이 갑자기 상체에서 내려와서는 자신의 팔을 잡았다.
‘암바?’
노구치 히데오는 진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서 몸을 비틀었다.
‘윽!’
그 순간 복부로 파고들어오는 진혁의 무릎에 큰 데미지를 입었다.
‘암바가 아니다.’
진혁이 암바를 걸어 자신에게 서브미션으로 승리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을 때, 이미 늦어버렸다.
한쪽 팔은 진혁의 양쪽 발에 묶여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고, 남은 한 팔마저 진혁의 한 손에 붙잡혀 봉쇄되어버렸다.
상체에 비스듬하게 누워 손과 발을 이용해 상대의 양손을 봉쇄하니 자연스럽게 얼굴을 무방비가 되어버렸다.
그때부터 진혁의 무차별 폭격이 시작되었다.
퍽··· 퍽··· 퍽··· 퍽······.
심판이 달려와서 진혁을 말릴 만큼 노구치 히데오는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패하고 만 것이다.
“와아아아아!”
비록 관심에서 벗어난 시합이지만 승리자에게 축하하는 함성은 그 간 노고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였다.
관장인 최달수는 진혁이 승리하자, 두 팔을 들어 올리며 케이지 안으로 들어와 그를 번쩍 안아 들었다.
“잘 했다.”
“관장님이 잘 가르쳐 준 덕분이죠.”
“이번 시합 이후로 많은 시합이 잡힐 것이니 그리 알고 있어.”
“알겠어요.”
잠시 후, 승자의 선언이 끝나고, 자신의 무대였던 케이지를 떠나 선수 대기실로 걸어오며 진혁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무조건 최고 단계까지 간다.’
@
휘리리릭!
검이 허공을 가르며 지나갔다.
진혁은 상체를 살짝 숙여 한 걸음을 크게 내딛으며 기사의 가슴을 어깨로 밀쳐 낸 후에 기사를 바라보았다.
“이봐, 그것 밖에 안 돼? 이전에 날 때리는 실력은 다 어디 간 거야? 배속을 조금 더 올려 줘?”
진혁의 모습에서 여유가 흘렀다.
이전에 두들겨 맞기만 하던 진혁이 아니었다. 그는 기사의 공격을 완벽하게 피해낸 후에 반격까지 할 만큼 성장을 하였다.
듀얼공간의 지박령!
가상현실게임 인더스를 개발한 뮤라스의 한국지부 고객대응 모니터링 부서의 직원들이 진혁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듀얼모드를 건너뛰거나, 혹은 몇 시간정도에서 끝내고 인더스의 세계를 모험하기 위해서 떠나는데 진혁은 듀얼 공간를 떠나지 않고 있어서였다.
“저 지박령이 또 지랄을 하네. 저거 완전 또라이 아니야?”
모니터링을 하는 박수철이 어이가 없어 불만을 토로하였다.
“또 왜? 지박령이 또 배속을 올렸어?”
팀장인 최대식이 물었다. 그도 지박령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네 지금 막 마지막 배속인 128배속까지 올렸습니다.”
“완전 미친놈이네. 그게 클리어가 가능한 거야?”
진혁이 인더스의 접속기를 구입한 후 딱 1년이 지난 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시 말을 하면 1년 동안 인더스의 듀얼 공간 안에서만 놀고 있는 중이었다.
“세상에는 미친놈들이 정말 많다고 하던데, 저런 미친놈은 또 처음이네. 전에 그 누구지? 듀얼공간에서 버티다가 나간 놈 말이야.”
“챔피언 루아 산체스 말입니까?”
루아 산체스도 듀얼 공간에서 오랫동안 있어서 그를 미친 놈이라 부르며 수군거렸는데 그 보다 더 미친놈이 나타난 것이다.
“그래. 그놈, 그놈 이야기듣고 미친놈이라고 얼마나 놀렸어?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그놈보다 더 미친놈이 나온 거잖아.”
“그랬죠. 산체스도 한 1년 정도 듀얼 공간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했으니까요. 그는 64배속을 클리어하고 나갔다고 들었습니다.”
“하여간 그놈도 미친놈이야. 지금 산체스의 레벨이 얼마지?”
“54레벨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듀얼 공간을 나온 뒤로 무섭게 다른 플레이어들의 레벨을 따라 잡고 있는 중입니다.”
가상현실게임 인더스가 베타테스트를 거쳐 정식 서비스를 한 것이 벌써 2년이나 되었다.
산체스가 가상현실게임을 시작한 건 것이 1년 4개월 정도였고, 그 정도에서 시작한 플레이어들의 레벨대가 85에서 95레벨군을 형성하고 있었다.
가상현실게임 인더스의 최고레벨은 108레벨로 상대적으로 레벨 업을 하는 속도가 그리 빠른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레벨이 높다고 하여 능력치가 전부 높은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바로 실시간 성장 시스템으로 인해서인데 레벨이 낮아도 맷집, 민첩과 같은 일부 능력치는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보다 더 높은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여간 돈 많고 미친놈들은 많다니까. 저 놈 관심 끄고, 다른 사람들 모니터링 해.”
“알겠습니다.”
*
진혁은 듀얼 공간에서 기사와 실랑이하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었다.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을 땐, 짜증이 나고 화도 났지만 스탯이 조금씩 쌓이고, 늘어나면서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는 재미가 쏠쏠하였다.
물론 본격적으로 게임을 즐긴다면 더 매력적이겠지만 진혁의 목적은 게임을 통한 훈련이지, 인더스의 세상을 즐기면서 모험하는 건 부수적인 것이었다.
진혁은 기사와 대련을 하는 것이 지금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걸 현실을 통해서 확인을 하였고, 이로 인해서 대회에 나가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어서 기사와 실랑이 하는 것에 나름 만족하였다.
진혁이 인더스를 시작한 후 지금까지 현실에서 4번의 시합을 치렀는데 모두 1라운드 TKO승이 아니면 서브미션 승으로 끝을 내었다.
그로 인해서 UFC에서도 관심을 받게 되었고, 에이전시를 통해서 곧 UFC와 계약할 것이란 소문도 생겨났다.
진혁은 128배속이 마지막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앞으로 두들겨 맞아야 하는 것보다, 이걸 끝으로 기사랑 더 이상 대련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더 했다.
나의 눈보다 빠르다는 건 못 피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능력치가 부족하다는 것임을 깨달았기에 진혁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기사와 대련을 통해서 자신의 기술까지 정립을 할 수가 있어 듀얼 공간에서의 생활도 나름 만족을 하면서 128배속을 클리어 하기 위해서 열심히 스탯을 올렸다.
-통증을 100%는 현실과 똑같은 고통을 느낍니다. 최대 통증 30%로 설정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100%!”
통증을 50%로 올렸을 때도 이와 같은 알림이 떴다. 그 이후로 통증을 올릴 때마다 알림 메시지가 나왔지만 모두 무시를 하고 결국 100%까지 올렸다.
진혁은 듀얼 모드에서 알게 된 것이 있는데 바로 통증을 겪는 난이도가 높으면 맷집이 빨리 올라간다는 것이었다.
진혁은 선천적으로 통증을 잘 느끼지 못하는 체질이라 100%라고 하여도 일반인들이 경험하는 통증보다 덜 했다.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진혁은 통증 100%로 올린 이 후 128배속으로 공격하는 기사와 대결을 하였다.
“커억, 아악, 윽, 아야. 아씨. 더럽게 빠르네. 아아야.”
온갖 비명을 지르면서도 진혁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마치 맞는 것이 즐거운 사디스트처럼······.
128배속은 좀처럼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진혁은 끈기를 가지고 기사와 대련을 하였다.
-스탯 맷집이 올랐습니다.
-스탯 회피가 올랐습니다.
-스탯 집중이 올랐습니다.
-스탯 인내가 올랐습니다.
-스탯 순발이 올랐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스탯이 많이 오르게 되니, 보이지 않았던 128배속의 움직임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하였다.
“좋아. 노가다는 만변하는 세상에서 불변의 진리와 같은 거지. 누가 이기나 한 번 해 보자.”
@
*이름: 진혁 *레벨: 1
*직위: 부랑자 *직업: 무
피로감: 500/500
체력: 20 마나: 10
*캐릭터의 전투에 영향을 주는 스탯
공격력: 32 방어력: 185 민첩함: 80
*성장 시스템에 의한 캐릭터 스탯
맷집: 120 회피: 80
집중: 53 인내: 65
순발: 32 행운: 10
진혁이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듀얼 공간의 최고 단계를 모두 클리어 하고 얻은 성적이었다.
성장 시스템에 의한 캐릭터 스텟이 공격, 방어, 민첩에 서로 작용을 하면서 스탯을 올려 주는 것 또한 확인을 하자, 진혁은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2년 동안 듀얼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었다는 걸 아는 지인들은 미친놈이라고 욕하며 놀렸지만 상관이 없었다.
인더스의 시작은 호기심과 여가시간을 보내기 위함이었지만 기사와의 대련이 훈련도 된다는 걸 알았다.
그 덕분에 지난 2년 동안 총 11번의 시합에서 전승을 하는 좋은 성적을 거둘 수가 있었기에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그에 대해서 기분이 나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인더스 세상의 모험도 좋지만 진혁에게는 나름대로 성과를 얻어서 이 또한 후회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서 정보도 꾸준히 모았고, 인더스의 세상에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나름 감을 잡았다.
시작은 느리겠지만 그만큼 준비를 했으니 결국 끝에 가서는 모두가 같아 질 것이라 생각을 하였다.
듀얼 공간의 모든 수련을 끝내고 인더스의 세상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딛는 진혁은 현실 같은 세상에 또 한 번 놀랐다.
이미 인터넷으로 많이 접해 보았기에 놀람은 적을 것이라 생각을 하였지만 직접 느끼는 건 또 달랐다.
“좋은데.”
진혁은 저 멀리 보이는 방책을 바라보았다.
부랑자들이 모이는 사냥꾼 마을, 인더스의 사용자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마을들 중 하나이기도 하였다.
방책 앞에는 기다란 줄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모두가 인더스를 경험하고자 하는 플레이어들이었다.
인더스가 서비스를 한 지 3년이 흐른 지금 폭발적으로 플레이어가 늘어나 전 세계 1억 명이 넘은 이들이 인더스의 세상을 즐기는 중이었다.
지금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으니 얼마나 플레이어가 늘어날 것인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할 정도였다.
진혁도 방책으로 다가가 줄을 섰다.
이 줄은 입국심사와 비슷한 절차라고 보면 되었다.
“어서 오라. 우리 사냥꾼 말에 온 것을 환영한다. 허나, 온다고 해서 다 받아 줄 수는 없다.”
키는 2미터 정도에 전문 보디빌더를 압도하는 덩치와 근육들, 허리에 차고 있는 검으로 인해서 보는 것만으로 위축이 될 정도였다.
사냥꾼 마을의 경비 책임자인 드라켄트라는 NPC였다.
“너는 우리 사냥꾼 마을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나?”
“저는 사냥을 잘 합니다. 사냥을 해서 고기와 가죽을 생산할 수가 있습니다.”
정해진 답 같은 것이다.
사냥, 채집, 채굴 등등······.
실제로 이곳 사냥꾼 마을에서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았다.
인더스는 사냥뿐만 아니라 퀘스트를 통한 생산 활동을 하여도 레벨 업을 위한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기에 이곳을 벗어날 수 있는 레벨인 10레벨을 달성할 때까지는 비슷한 경험치를 획득할 수가 있었다.
다만 10레벨이 넘어가면 생산 활동으로 얻을 수 있는 경험치가 사냥으로 얻는 경험치보다 많이 줄게 되어 갈수록 격차가 심해져 일정레벨이 되면 생산 활동으로 경험치를 얻어 레벨 업을 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플레이어들은 저마다 준비를 해 온 대답을 하며 사냥꾼 마을로 들어갔고, 오랜 기다림 끝에 진혁에게도 앞서 플레이어들에게 물었던 질문을 하였다.
“제가 뭔가를 하기보다는 마을에서 필요한 일을 찾아 열심히 할 수가 있습니다.”
진혁의 대답에 사내는 잠깐 그를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우리 마을에서는 수동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필요가 없네. 마을에서 뭔가를 원하기 전에 마을을 위해서 뭔가를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네.”
진혁은 사내의 말을 듣고 자신이 대답을 잘못했음을 깨닫고는 급하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전······.”
“자네는 아직 우리 마을의 일원의 되기에 부족한 듯하니 일주일 뒤에 다시 오게. 다음!”
축객령에 진혁은 황급하게 말을 하려고 하였는데 뒤에 있던 사람이 밀쳐 내는 바람에 옆으로 밀려났다.
“하아.”
자신을 밀친 사내를 잠시 보다 체념을 하고 돌아섰다.
“일주일을 어떻게 버티지. 이럴 줄 알았다면 모범 답안을 선택할 걸.”
인터넷에 떠도는 여러 개의 답안 중에 모범 답안과 시크릿 퀘스트를 받을 수 있는 답안들이 있었는데, 진혁이 선택한 시크릿 답안은 누군가가 장난으로 써 놓은 그런 답안인 듯 하였다.
“일단 어쩔 수 없지.”
무작정 기다린다고 마을로 들여보내 줄 것 같이 않아 일단 자리를 벗어났다.
진혁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몇 명 만났고, 자신만 그런 멍청한 대답을 한 것이 아니라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한 대답을 하여 쫓겨났음을 알게 되었다.
“그럼 이제부터 뭘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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