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게 있어
두 사람은 티격태격해도 함께 몬스터를 사냥하다보니 의외로 합이 잘 맞았다.
“야, 무작정 그렇게 마법을 난사하면 어떻게 해!”
진혁은 프라다에서 소리치며 그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프라다를 공격하려고 하는 몬스터의 등을 향해 몸을 날려 어깨로 찍어버렸다.
쿠에에엑!
비명과 함께 넘어지는 몬스터를 향해 주먹으로 얼굴을 강하게 내리친 후에 일어나 프라다와 몬스터 사이에 자리를 잡고 그에게 외쳤다.
“뒤로 빠져.”
프라다는 진혁의 말대로 뒤로 물러났다.
“조심해라.”
프라다는 눈앞에 있는 사내를 다시 생각하였다.
파티를 맺어 사냥을 하거나, 혹은 친구끼리 함께 사냥을 해도 온 몸을 던져가며 파티원을 보호하려고 하는 플레이어는 이제까지 단 한 명도 보지 못하였다.
자신의 눈앞에서 몬스터와 싸우고 있는 진혁은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알 게 되었다.
“내가 한 방에 날려 줄게.”
“기다려. 나도 쿨 타임이 있다고 말했잖아. 난 버틸 수 있으니까 내가 신호 보내면 한 방에 날려!”
프라다는 진혁의 말에 광역 마법을 사용하려다 멈추었다. 그는 홀로 수많은 몬스터들과 싸우면서 자신을 보호하는 중이었다.
애초가 그가 말한 것처럼 자신이 돌아가고 혼자 범람의 탑으로 들어와 사냥을 했다면 이렇게 힘들진 않았을 것이다.
악전고투, 고군분투 이런 말들은 지금 자신을 보호하며 몬스터들과 싸우는 있는 사내를 두고 하는 말이라 생각하였다.
악연으로 시작했지만 좋은 인연으로 계속해서 이어가고 싶을 정도로 멋진 사내였다.
“쿨 타임 돌았어.”
진혁은 포션을 사용한 후에 프라다에게 외쳤고, 프라다는 곧장 파이어 링을 사용하였다.
불의 고리가 동심원을 그리면서 몬스터를 쓸어버렸다.
“헉. 헉··· 확실히 마법 대미지가 사기야.”
시원하게 쓸어버리는 불의 고리를 볼 때마다 진혁은 이런 마법 공격력이 부러웠다.
‘5서클이 되기 전까지는 참아야겠지.’
진혁은 광역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5서클의 흑마법사가 되면 자신 역시 몬스터를 한 방에 쓸어버릴 수가 있지만 그 전까지는 흑마법사라는 숨기는 것이 좋다.
“광호한 자신감!”
진혁은 어그로가 프라다에게 튀는 걸 막기 위해서 몬스터 도발 스킬을 사용하여 프라다에게 가지 못하도록 하였다.
자신에게 붙은 몬스터들을 모두 처리한 진혁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이고, 힘 들어라. 조금만 쉬자.”
프라다 역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넌 현실에서 뭐하냐?”
갑작스러운 물음에 그건 왜, 물어보느냐는 눈으로 프라다를 보았다.
“그냥 궁금해서.”
“그러는 넌?”
“난 디자이너. 프라다 그룹의 수석 디자이너이자 오너야.”
“프라다면··· 가방?”
진혁이 명품에서는 관심이 없지만 그래도 몇몇 명품의 이름 정도는 들어 봐서 알고 있었다.
“그래. 넌?”
“난 UFC선수. 이제 막 한 게임 데뷔해서 승리했지. 그 전에는 아시아 대회에 출전하였고.”
“전 유도세계챔피언?”
“알아?”
“알지. 격투기 대회 자주 보거든. 지난 번 라스베이거스에서 시합하는 것도 가서 봤는데.”
“그래? 하여간 그래. 지금은 쉬는 중이고, 한 번 더 그 선수랑 붙을 거야. 계약이 그렇거든.”
“게임에서 유명한 선수를 만나니 반갑네.”
“뭐가. 나보다 네가 더 유명한 거 아니야? 그런 이야기는 그만 두자.”
“친구 맺을까?”
진혁은 나쁠 것 없다 생각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템 이야기만 안 하면.”
“야! 안 한다고. 안 해. 다른 거 산다고 그랬잖아.”
진혁은 프라다의 말에 히죽 웃으며 그와 친구를 맺었다.
“너랑 대화하려면 영어 공부 많이 해야겠네.”
“요즘은 통역 어플이 있으니까 답답해도 그걸로 하면 되지. 안 그래?”
“하긴 그럼 되겠네. 1층 거의 다 돈 것 같지?”
“그런 느낌인데 아직 워프게이트가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1층 어두운 곳에 있겠지. 포션은 얼마나 있어?”
“조금.”
“그럼 일단 이걸 가지고 있어.”
진혁은 프라다에게 체력포션과 마나포션을 나누어 주었다.
“너는?”
“나는 내가 쓸 건 챙겨 뒀으니까 걱정 말고. 일단 쉬고 있어. 난 추출 좀 할 테니까.”
진혁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추출하는 도중에 응고된 검은 마력이 하나 더 나왔다.
“이건 네가 가지고 있어. 너도 퀘스트 하려면 필요하잖아.”
진혁은 프라다에게 응고된 혈액을 건네주곤 다시 몬스터의 부산물들을 추출하였다.
“대충 다한 것 같으니까 움직여보자.”
진혁과 프라다는 1층 지도를 모두 밝히 위해서 조심스럽게 다녀보았지만 더 이상 1층에는 몬스터가 존재하지 않았다.
-워프게이트를 발견하였습니다. 워프게이트를 활성화 시키겠습니까?
“활성화!”
-범람의 탑 1층 워프게이트가 활성화됩니다. 범람의 탑 1층 워프게이트를 통해서 범람의 탑 2층과 아르헨 마을로 이동할 수가 있습니다. 반대로 아르헨 마을과 범람의 탑 2층 워프게이트를 통해서 범람의 탑 1층으로 이동할 수가 있습니다. 단 플레이어가 워프게이트를 활성화시키지 않은 곳은 이동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할래? 일단 돌아가서 보고를 하고 다시 올래?”
“그러는 편이 좋을 것 같아. 포션이랑 다른 필요한 것도 사야하니까.”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워프게이트를 이용해서 아르헨 마을로 이동하자.”
*
진혁은 프라다와 함께 아르헨 마을에 있는 레인저 길드를 찾았다.
“어서 오십시오.”
“메리슨 장로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메리슨 장로님요?”
“지금 아르헨 습지로 나갔다가 행방불명이 된 길드원들을 대한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프라다가 나서서 이야기를 하였다.
“아, 이층 워프를 이용하여 3층 303호 방으로 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함께 워프를 타고 303호로 간 그곳에서 메리슨 장로를 만날 수가 있었는데 아주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그녀가 인간과 조금 다른 점은 귀가 눈에 있었는데 귀는 뾰족하고, 눈은 푸른색이었다.
정령마법과 활, 단검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인더스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또 하나의 인류인 엘프라 불리는 존재였다.
“어서 오세요.”
그녀가 자리를 권하여 자리에 앉았다.
“이 분은 처음 뵙는 분이시네요.”
“몽크 길드와 정령사 길드에서 의뢰를 받아 아르헨 습지를 조사 중입니다.”
“아, 그렇군요. 전에 용병님들을 만났을 때는 안 계셨죠.”
“경험이 부족하여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랬군요. 경험이 중요하지만 절대적인 건 아니지요. 더구나 이질적인 기운을 품고 계시는 분이라는 더더욱 말이에요.”
장로 메리슨은 진혁의 짙은 사령의 깃든 마력을 알아보았다. 엘프 특유의 마나 감응력으로 인해서인데 그걸 두고 딱히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느낄 수가 있습니까?”
“엘프들 중에서 하이엘프들은 마나 감응력이 뛰어나 주변의 마나에 대한 반응이 민감하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프라다가 진혁을 보았다.
“그런 게 있어.”
진혁은 말을 하면서 프라다의 옆구리를 툭하고 쳤다.
“아, 아르헨 습지를 조사하다가 흑마법사의 흔적을 찾았고, 몬스터의 몸에서 이걸 추출할 수가 있었습니다.”
프라다와 진혁은 메리슨에게 응고된 검은 마력을 건네주었다.
“흑마력의 흔적이군요.”
메리슨은 응고된 검은 마력을 보면서 표정이 심각해졌다.
“웅크리고 있던 그들이 다시 등장한 모양이에요.”
“그들이라면?”
메리슨은 호흡을 한 번 크게 한 후에 입을 열었다.
“흑마법사에 대해서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사실 흑마법사들은 그리 나쁜 존재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류에 도움이 되는 존재들이지요.”
메리슨은 오래전에 있었던 사건 하나를 이야기해 주었다.
“흑마법사의 치료술은 신전의 치료술과는 정반대가 되는 의술로······.”
진혁은 흑마법사의 길드인 사령의 탑에서 들었던 내용이었다.
“이에 반감을 가진 흑마법사들이 길드를 탈퇴하고 나와 새로운 길드를 만들어 활동하였습니다. 그들은 오직 자신들을 탄압한 신전과 신전을 지지한 귀족들, 그리고 무지했던 백성들을 대상으로 복수를 시작했지요.”
“그들이 지금 이번 일을 벌였다는 것입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이 드는군요. 그 길드의 이름은 ‘다크 앰버서더!’ 흑마법사, 리치 마법사, 다크 엘프들이 가입이 되어 있습니다.”
진혁은 메리슨 장로의 말을 들으면서 흑마법사가 음지가 아닌 양지로 나올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범람의 탑까지 가신 건가요?”
“그렇습니다. 외부의 몬스터에게서 얻은 것도 있지만 범람의 탑 안에 있는 몬스터에게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다크 앰버서더가 범람의 탑의 몬스터를 이용할 계획인 모양입니다.”
“범람의 탑의 몬스터를 이용한다면?”
“말 그대로 몬스터를 탑 밖으로 내보내는 것입니다.”
“몬스터 아웃 브레이크가 일어난단 말씀입니까?”
프라다가 물자, 메이슨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행방불명이 된 길드원들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봐야 확실히 알 것 같습니다.”
메이슨에게 보고를 하였지만 아직 퀘스트가 끝났다는 말이 없으니 결국 행방불명이 된 길드원들을 찾아야 처음 받았던 퀘스트 ‘아르헨 습지에서 실종된 몽크 길드원의 상황을 알아보자.’가 완료되는 것이었다.
“그럼 12층의 범람의 탑을 모두 올라가 봐야겠군요.”
아르헨 습지에서 찾을 수 없다면 그들은 다크 앰버서더란 길드의 길드원들에게 붙잡혀 범람의 탑 꼭대기로 끌려갔을지도 모른다.
“최대한 그들을 빨리 찾아야 합니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그들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탄광에 갇힌 사람들도 그랬어. 7일이라는 시간 동안 목재를 구해 달라고 한 것처럼 아르헨 역시 마찬가지야. 기간은 없지만 그들의 생명이 경각에 달렸을지도 모른다.’
진혁은 프라다를 보았다.
숨겨둔 또 하나의 직업을 꺼내어 들어야 할지, 아니면 계속해서 숨겨야 할지 고민이 되어서였다.
“범람의 탑으로 가 주세요.”
“다른 길드에서 오신 분들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아직 연락이 없습니다.”
연락이 없다는 말에 프라다는 눈을 좁혔다. 아마도 플레이어들의 욕심 때문에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럼 그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길드로 찾아오면 알려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연락할 방법이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우리는 범람의 탑으로 가서 조금 더 알아보겠습니다.”
“서둘러 주십시오.”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그녀의 방을 나온 진혁은 프라다에게 물었다.
“친구야.”
“왜?”
“전에 나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일이 있다. 그때 막 초보시절이었는데······.”
진혁은 프라다에게 나무를 했던 이야기와 NPC들이 살 수 있는 기한이 얼마였다는 것까지 모두 하였다.
“그러니까 너의 말은 처음에 탐사를 간 길드원들의 생명이 위험하다는 말이지.”
“그래. 메리슨 장로의 목소리나 톤, 그리고 걱정하는 얼굴 표정을 보면 임박했어.”
“그래서?”
“최대한 서둘러야겠는데 그러면 내가 널 보호해 줄 수가 없어.”
“그래서 빠지라고?”
프라다는 섭섭하게 들렸다.
“아니, 그래서 내가 너에게 호위를 붙여 줄 테니까 너 알아서 일단 버텨 보라고. 포션이랑 많이 사두고.”
“호위?”
“있어. 가서 놀라지 말고.”
-이질적인 기운을 품고 있는 분이시라면 더더욱······.
프라다는 메이슨 장로가 한 말이 생각났다.
“너 혹시 듀얼 클래스야?”
“어. 그래서 전직도 두 배로 해야 하고, 경험치도 두 배로 먹어야 해. 그래서 레벨이 낮아.”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이런 이유로 진혁이 다른 플레이어들에 비해 레벨이 낮을 수도 있었다.
“그랬구나.”
“정령사 길드에서도 의뢰를 받았으면 몽크랑 정령사인가 보구나? 정령몽크?”
“가서 봐. 놀라지 말고. 일단 오늘 안에 12층 다 돌파할 테니까 최대한 챙길 수 있을 만큼 포션을 챙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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