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예의는 차리지 마.
침묵의 숲은 말 그대로 고요하였다.
숲에 들었을 때, 개방되는 25%의 숲은 그나마 여느 숲과 다름없이 산새의 지저귐도 있고, 작은 동물들이 움직이는 소리도 들려오곤 하였지만 침묵의 숲 안으로 들어갈수록 고요할 뿐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소리가 새어나가는 것을 막는 것처럼 너무나 고요하여 숲을 헤매는 진혁과 피란체바의 피도로는 극도로 올라갔다.
주변의 소리가 없으니 예민함이 극에 다다라서였다.
“진혁, 이 숲은 너무 조용해서 재미가 없어.”
“그렇지. 나도 피곤하긴 한데. 우리 조금 쉬었다가 갈까?”
“응. 너무 조용해서 기분이 나빠.”
진혁은 그 자리에 간이천막을 친 후에 잠깐의 휴식을 취했다.
“너희들도 안으로 들어와.”
진혁은 소환수들까지 천막 안으로 불러들인 후에 편안하게 쉬도록 하였다.
소환수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자연스럽게 동동일과 동동이는 천막 앞에서 경계를 서듯 서 있었고, 백호와 리틀백호는 천막 안으로 들어와 웅크리고 앉았다.
진혁은 그런 백호를 등받이를 하듯 기대어 편한 자세를 취하였고, 피란체바는 진혁의 어깨 위에 자리를 잡았다.
“어디 보자.”
진혁은 지도를 켜고 침묵의 숲을 보았다. 자신의 지도에는 침묵의 숲이 절반 정도 밝혀져 있었는데 물음표로 표시가 된 곳이 열 곳 정도가 있었다.
“이곳에서 사냥을 해야 할 몬스터가 열 종류나 되는구나.”
“내가 다 사냥해 줄게.”
“그래.”
피란체바는 항상 자신이 다 사냥을 한다고 말하지만 늘 한 마리만 가지고 놀았다. 그러다 소환수들이 위험하면 그들을 도와주는 정도였고, 몬스터들은 대부분 진혁과 소환수들이 처리하는 중이었다.
그 덕분에 소환수들의 레벨을 제법 많이 올릴 수가 있었다.
“침묵의 숲은 너무 조용해서 재미가 없어. 용병들의 모습도 많이 보이지 않아.”
“내가 알기로는 침묵의 숲으로 들어오는 용병들이 많다고 하는데. 아마 우리와 다른 쪽으로 움직이나 봐.”
“그럴까?”
“지도가 절반 밖에 밝히지 않았으니 다른 쪽으로 갔을 거야.”
피란체바는 나의 어깨 위에 앉아 고개를 끄덕였다.
“용병들이 많아야 재미있는데. 진혁 우리 용병들이랑 언제 싸워?”
“글쎄, 케빌로스 길드나 아틀란티스 길드 소속 용병들이 아니면 우리가 먼저 용병들을 공격하는 건 좀 그렇지 않아?”
“그래. 그건 나쁜 일이니까.”
진혁은 피란체바가 많이 심심한 모양이라 생각을 하고 10분 정도 쉬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란체바, 우리 숲을 부지런히 다니면서 몬스터를 찾아서 싸우자.”
“응. 내가 다 잡을 거야. 그러니 진혁은 보고만 있어.”
“그래. 알았어. 자, 움직이자.”
*
“빌리, 조금 더 빨리 움직여.”
스트리트 짐의 관장인 트라빌러스는 자신이 가르치는 선수를 향해 소리쳤다. 그는 진혁에게 완전히 봉쇄되었다.
빌리는 진혁보다 두 체급이 낮은 플라이급 선수로 UFC 체급 중에서는 가장 낮은 체급이었다.
그런 빌리가 진혁의 움직임에 압도되어 장기인 스피드를 살리지 못하는 중이었다.
“역시 프로의 세계에서는 체급을 무시할 수 없나 봅니다.”
진혁의 묵직한 주먹과 빠른 몸놀림, 그리고 동체시력이 좋으니 제 아무리 빠른 플라이급 선수라고 해도 진혁에게는 먹히지가 않았다.
“진혁이 좋은 선수지. 수많은 강자가 버티고 있는 페더급에서 나름대로 좋은 성적을 내고 있잖아.”
“3전 3승 TKO 2번, 서브미션 1번이면 아주 준수하죠.”
“준수한 것이 아니라 대단한 거지. 반데라스 포비아를 잡았잖아.”
“반데라스는 노장이지 않습니까?”
“그래도 승리를 챙기고 분위기를 좋게 올라왔어. 진혁을 만나지 않았다면 위로 더 치고 올라갈 수도 있었을 상황이었어.”
“그런데 진혁 선수는 시합이 안 잡히는 겁니까?”
“한국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잖아. 그 때문에 UFC랑 계약도 모두 날아갔고.”
“아, 저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키워준 은혜도 모르는 선수라며 그런 기사가 났던데.”
“키워준 은혜는 무슨, 체육관에서 돈맛을 보니 진혁을 이용하려고 했겠지. 운동하는 선수들이 뭘 알아서 관장 뒤통수를 치고 그러겠어.”
운동선수들 중에서는 우직한 사람들이 많다. 앞만 바라보고 운동에 전념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소위 슈퍼스타의 반열에 오르면 주변에 파리들이 꼬이기 시작하고, 이런저런 달콤한 말로 유혹을 한다.
이러한 경험을 몇 번 해 본 선수들 중에서 살아남은 선수들만이 자신의 부와 명예를 이용하여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길 원하며 예전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이용하였던 것처럼 타인을 이용하여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운동선수들은 은퇴 전까지, 아니 은퇴 후에도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트라빌러스는 선수로서, 그리고 체육관의 운영자로서 많은 선수들을 만나 보았지만 선수가 관장을 먼저 배신하는 일은 정말 드물었다.
물론 이기적인 선수들이 몇 있긴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실력보다는 언론이나, 혹은 거대 매니지먼트의 힘을 빌려 유명세를 얻으려고 하는 자들이라 실제로 선수생활을 오래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였다.
진혁이 자신의 체육관에서 운동을 시작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았지만 진혁이 운동하는 모습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을 할 수가 있었다.
“운동에 진심인 사람들은 절대 먼저 신의를 저버리지 않아.”
“그렇긴 하죠. 간혹 싸가지가 바가지인 놈들이 몇 놈 보이긴 하지만 그 놈들은 운동보다는 운동이라는 명함을 얻으려고 하는 자들이니까요.”
둘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진혁의 로우킥이 빌리의 장단지를 강타하였고, 빌리는 휘청거리면서 몸이 한쪽으로 기울며 불안한 자세로 뒤로 물러났다.
평소라면 달려들어 몰아 붙였겠지만 진혁은 한 템포를 쉬고, 천천히 압박하여 들어갔다.
‘저 눈빛은 내가 들어오길 기다리는 눈빛이야.’
진혁은 빌리의 눈빛만을 보고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침묵의 숲에서 만난 스타카토 킹의 눈빛이 꼭 저러했지.’
진혁은 어제 침묵의 숲에서 피터지게 싸운 네임드 몬스터 스타카토 킹 아즐과 싸움을 떠올렸다.
인더스 세상의 몬스터들이나, NPC들이 인공지능에 의해 만들어진 AI라고 하나 그들의 눈빛과 행동들은 전혀 AI라고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리얼하였고, 생동감이 있었다.
진혁은 수많은 싸움을 통해서 그들의 눈빛, 시선, 행동 등을 파악하며 싸워 왔기 때문에 상대가 무엇인가를 노리는 눈빛을 잘 알고 있었다.
빌리는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장딴지를 맞은 발을 한 번 털어내고는 게이지 벽을 따라 우측으로 돌아갔다.
진혁은 서두르지 않았다.
마치 포식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천천히 케이지의 중앙에서 빌리를 구석으로 몰아갔다.
빌리가 우측으로 도는 순간 진혁의 발이 우측으로 높게 올라갔다.
“허엇!”
자신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발이 들어오자, 빌리는 본능적으로 몸을 숙여 진혁의 발을 피하였다. 하지만 이것이 패착이었다.
몸을 숙일 때, 잠깐 동안 진혁이 빌리의 시야에서 벗어났고, 그 틈을 노리고 진혁은 빠르게 빌리에게 접근하여 허리를 안듯 잡았다.
부웅··· 쿠우우웅!
빌리는 자신의 허리를 잡히는 순간 몸이 붕 뜬다는 것을 느꼈고, 곧이어 머리와 발의 방향이 거꾸로 되었음을 알 수가 있었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빌리였기에 진혁이 손쉽게 바닥에 매다 꽂을 수가 있었다.
목과 등으로 전달되는 충격에 인상을 쓰고 있을 때, 진혁이 자신의 몸 위로 올라온다는 것을 느끼고는 방어를 하려고 몸을 비틀었지만 오히려 그게 진혁이 사이드 마운트 포지션을 가져가도록 도와주었다.
진혁은 자신의 상체로 빌리의 상체를 완전히 덮은 후에 양다리로 빌리의 왼팔을 움직이지 못하고 붙잡았고, 오른손으로는 빌리의 오른손 손목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도록 봉쇄하였다.
이렇게 되니 자연스럽게 얼굴은 무방비로 노출이 되었고, 진혁은 왼손으로 빌리의 얼굴을 때리는 시늉을 하였다.
두 체급이나 낮은 빌리가 진혁에게 깔렸으니 그가 빠져 나올 길은 없었다. 빌리는 자신이 졌다는 것을 인정하여 케이지 바닥을 두들겼고, 진혁은 그제야 빌리를 풀어 주었다.
“어떻게 순식간에 그리 꼼짝도 못하게 그리 봉쇄를 할 수가 있습니까?”
“제가 체중이 많이 나가니 가능한 거였습니다. 체중이 비슷하거나 제가 적게 나갔다면 사이드 포지션을 잡기 전에 허리의 반동으로 충분히 빠져 나왔을 것입니다.”
“진혁의 말이 옳아. 프로의 세계에서는 체급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 더구나 진혁은 자신보다 두 체급이나 높은 웰터급 선수들에게도 밀리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 빌리 너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 볼 수 없었을 거야.”
빌리가 고개를 숙였다.
“빌리, 진혁과 스파링을 하면서 같은 체급인데 너보다 힘이 좋은 선수, 빠른 선수들을 만나면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고 매일 진혁과 스파링을 해 봐. 그럼 분명 좋은 성과가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진혁은 괜찮지?”
“물론입니다.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운동을 할 수 있게 해 주시는 것만으로 전 큰 도움이 되는 중입니다.”
“그리 생각해 주면 고맙고. 아, 그리고 엘리스 강이 말하던데 시합이 잡혔을 때, 스탭이 필요하면 우리가 그 역할을 해 줄 수 있느냐고 물어 보던데. 진혁 너의 생각은 어때?”
“그건 생각을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 시합이 잡힌 것도 아니고, 엔터 쪽에서는 이것저것 정리하면 못해도 6개월 정도 걸린다고 하니 일단 그 기간 동안은 훈련만 할 생각입니다.”
“그래.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이야기를 해.”
“그렇게 하겠습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혁이 트라빌러스에게 고개를 숙였다.
“배려가 아니야. 네가 좋은 성적을 거두면 우리에게도 도움이 되니까 하는 거야.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너무 예의를 지키려고 하는데 시합에서는 예의를 지키지 마.”
진혁은 왜, 그렇게 해야 하나 하는 눈빛으로 트라빌러스를 보았다.
“격투기도 멘탈 싸움이야. 상대의 멘탈을 먼저 부수는 쪽이 유리해. 그렇기에 공식 선상에서 도발하고, 체계중일 때, 주먹질도 하고 그러는 거야.”
“아······.”
“사람들이 그 당시에는 저 사람이 조금 못나 보인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국 시합에서는 이기는 쪽에 관심을 가지지 마련이야.”
“그렇게 했다가 지면요?”
“욕 한 바가지 얻어먹고 다시 시작하면 되지. 사람들은 슈퍼스타들의 행동을 보고 투덜거리나 혹은 칭찬하지. 이런 것들 모두가 팬들의 관심을 얻어내기 위한 장치에 불과해.”
진혁은 트라빌러스의 말에 공감을 하였다.
“그렇다고 꼭 나쁜 이미지를 쌓으라고 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상대보다 더 강하다는 건 너를 지켜보는 팬들에게 늘 인식을 시켜줄 필요가 있으니까.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트라빌러스!”
“그럼 러셀과 스파링 한 번 더 해 주던가.”
이름을 호명 당한 러셀이 재빠르게 달려와 진혁에게 손을 내밀었다.
“드디어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진혁도 얼떨결에 그의 손을 잡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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