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니카 후작령
진혁은 뮤라스와 계약을 하기 위해서 본사를 방문하였다. 그의 안내를 맡은 사람은 엘리스 강이었고, 뮤라스 본사의 곳곳을 다니며 인더스의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 눈으로 보고 들을 수가 있었다.
“그럼 메인에피소드1은 시작이 되었지만 엔딩은 어떻게 될지 모르네.”
“그래. 플레이어들이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달라. 그렇기에 우리도 설정만 해 놓았을 뿐 그 끝은 알 수가 없어.”
“만약에 잘못되면 어떻게 해? 그로 인해서 막대한 손해를 입을 수가 있잖아.”
“하다하다 안 되면 리셋을 하면 돼.”
“리셋?”
“그래. 프로그램을 다시 시작하는 거야. 그에 따른 플레이어들의 불이익은 어느 정도 감수해야겠지만 어쩔 수 없지.”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방법이 있으니 다행이다.
“여기야. 안에 들어가면 이사님이 계실 거야. 대화를 나누어 보고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했으면 좋겠어.”
“고마워.”
“난 1층 로비에 있는 카페에서 업무를 보고 있을 테니까 이사님이랑 대화를 많이 나누어 봐.”
진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엘리스 강은 한 팔을 아래로 내리며 파이팅을 하라는 시늉을 하고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갔다.
진혁은 문 앞에서 크게 심호흡을 한 후에 노크를 하였다.
“들어와요.”
진혁이 안으로 들어가자, 서구적인 얼굴이 아닌 동양적인 얼굴을 한 중년의 사내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서 와요. 진혁 선수.”
유창한 한국말을 하는 그의 모습에 내심 안도를 하는 진혁은 그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진혁이라고 합니다.”
“자, 이리 와서 앉아요.”
진혁에게 자리를 안내한 후에 그는 맞은편에 앉았다.
“이사님이 한국어를 할 줄 알아 정말 다행입니다.”
진혁의 말에 머쓱하게 웃는 그였다.
“제가 한국어를 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요?”
“그럼요. 제가 계약을 잘못하더라도 대화를 충분히 나눈 후에 계약을 하는 것이니 조금이라도 덜 억울하니까요.”
“하하, 그렇겠군요.”
두 사람은 사적인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눈 뒤에 계약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뮤라스에서는 웬만한 건 진혁이 요구하는 걸 다 들어 주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는 걸로 합시다. 저희도 최선을 다해서 진혁 선수가 챔피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물어 봐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십시오.”
“저에게 왜, 이리 잘해 주시는 겁니까? 사실 저보다 더 대단한 사람들도 많이 있고, 제가 격투기 선수로는 아직 제대로 된 커리어를 쌓지도 못하였는데 말입니다.”
“미래를 보는 겁니다. 지금의 선수들은 한계를 서서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챔피언 루아 산체스가 아직 건재하니 아마도 그들은 은퇴할 때까지는 2인자로 머물러 있어야 할 겁니다.”
진혁은 말없이 들었다.
“하지만 진혁 선수는 아직 젊습니다. 그리고 대회 경험도 많고, 이대로 4년, 5년 정도 지나면 챔피언에 도전할 수 있는 커리어를 쌓게 될 겁니다. 무엇보다 진혁 선수가 그들보다 계약금이 적게 들어갑니다.”
계약금이 적게 들어간다는 말이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고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들 중 하나이고, 또 회사의 입장에서는 광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을 하였기에 진행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그 믿음에 실망시켜드리지 않습니다.”
“열심히 해서 꼭 챔피언이 되어 주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진혁은 뮤라스와 계약서에 사인을 한 후에 1층 카페로 갔다. 그곳에서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하고 있는 엘리스 강을 보고 그녀가 앉은 자리로 갔다.
“어때. 계약은 잘 했어?”
“어. 잘 한 것 같은데. 나에게 너무 잘해 주는 것 같아 조금 어색하기도 하고 그래.”
“잠재능력을 보겠지.”
“이사님도 그리 말씀을 하던데.”
“뮤라스는 허투로 투자를 안 해. 슈퍼컴퓨터가 수백, 수천만의 데이터를 수집, 분석해서 길을 제시하니까. 옛날처럼 그리 크게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
“그래?”
“그래. 기업이 손해 보고 장사를 할 것 같아?”
“그건 아니지.
“진혁이 넌 초등학교 때부터 유도를 했고, 고등학생 때, 국가대표 상비군을 했고, 대학교에 들어가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수많은 매달을 땄고, 대학 시절에 65킬로그램 급에서 세계챔피언, 무제한급 세계랭킹 3위를 했어.”
무제한급은 실제로 진혁의 몸무게 2배 이상 나가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 체급에서 한국도 아닌 세계랭킹 3위를 할 정도면 진혁의 유도 실력은 탑 중에서도 탑에 속할 만큼 대단한 실력자란 말이기도 하였다.
“유도에서 종합격투기로 전향할 때, 유도 전적이 154전 140승 14패. 그 14패도 무제한급에 도전해서 패한 게 전부잖아.”
진혁은 자신보다 자신을 더 잘 알고 있는 듯 말하는 엘리스 강을 보고 눈만 깜빡였다.
“종합격투기 대회에서 한국에서 10전10승, 아시아 무대에서 50전 45승 5패. 그리고 UFC에서 3전3전. 이 정도면 세계 어떤 선수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화려한 전적이야. 다만 아시아 무대라 주목을 받지 못하였을 뿐이지. 뮤라스의 슈퍼컴퓨터는 진혁이 세계 챔피언이 될 확률이 무려 48.43%라고 했어.”
“내가?”
“그래. 챔피언이 될 확률이 45%가 넘는 사람은 진혁이랑 아리라나 스톰 단 두 사람이었어.”
아리라나 스톰은 최근 UFC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신성 중에 신성으로 많은 사람들이 루아 산체스의 뒤를 이어 그가 차기 페더급 챔피언이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할 정도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선수이다.
“그럼 안토니 반데라는? 리틀 좀보아와 같은 선수들이 더 가능성이 있는 거 아니냐?”
“우리도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슈퍼컴퓨터는 루아 산체스가 건제하니 그들이 챔피언이 될 가능성은 5% 밖에 안 된데. 같이 나이를 먹고 기량이 떨어지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슈퍼컴퓨터가 대단하긴 대단한가 보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었으니까. 지금 미국에서는 AI가 진료를 하고 수술을 결정하고 약 처방을 하고 그래. 물론 수술은 사람이 하겠지만 그만큼 많은 사례를 데이터로 저장해서 보다 정확한 진단을 할 수가 있지.”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체육관은 어떻게 할 거야?”
“당분간은 한국에서 연습해야지. 집도 새로 옮겼고, 집에 훈련할 수 있는 기구들을 들여 놓을 거야. 그리고 스파링을 하는 건 아는 사람들한테 부탁해 봐야지.”
“그러지 말고 미국으로 와. 여기서 생활하면서 훈련도 하면 되잖아.”
진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나는 도망자가 될 거야. 한국에서 그리 나쁜 놈이라고 소문이 났는데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선수생활을 하면 사람들이 더 손가락질을 하겠지.”
“그렇긴 하겠다.”
“걱정 마. 훈련하다가 시합 한 달 전에 현지로 가서 적응 훈련하면 되니까.”
“한 달 전에?”
“회사일은 엘리스가 잘하지만 시합하는 건 내가 더 잘 알아. 그러니 크게 걱정 하지 마. 그리고 나도 나름대로 계획도 있고.”
“그래. 그렇게 해. 그럼 우리 잠시 나가자.”
“어딜?”
“갈 데가 있어.”
“그런데 넌 일 안해?”
“비서가 하는 일이 이런 일들이야. 오너 대신해서 여러 사람을 만나는 거. 그리고 정리해서 보고하는 거.”
진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가자.”
*
진혁은 엘리스 강의 손에 이끌려 뮤라스가 지금 추진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보고 들으며 GC엔터테인먼트보다는 자신을 더 챙겨 줄 것 같은 확신을 가졌다.
그러면서 자신도 이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여 운동하고 해서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좋은 관계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엘리스 강과 함께 시간을 보낸 후에 호텔로 돌아온 진혁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런 걸 보면 아직 한국은 많이 부족하구나.”
문화콘텐츠의 강국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이지만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아직 부족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돈이 우선이 아닌 사람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데. 한국은 그게 안 되니······.”
진혁은 잠깐 동안 누워 있다가 가상현실 인더스에 접속하기 위해서 접속기를 찾았다.
엘리스 강이 진혁의 편의를 위해서 이것저것 구비를 해 놓은 터라 어렵지 않게 인더스에 접속할 수가 있었다.
접속기를 통해서 인더스에 접속을 하자, 간이천막 안에서 눈을 떴다.
베로니카 후작령으로 가는 도중에 뮤라스의 연락을 받은 터라 영지나 마을이 아닌 야영도구를 이용하여 안전지대를 만들어 놓고 접속을 해제하였다.
진혁은 간이천막에서 나와 천막을 정리한 후에 인벤토리에 넣고 베로니카 후작령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베로니카 후작령은 피르만 영지와 인접해 있었기에 피르만 영지까지는 워프로 이동을 하였고, 그곳에서부터 걸어서 이동을 하는 중이었다.
피르만 영지와 인접하였다고 해도 제법 먼 거리를 이동하였는데 언덕 위에서 베로니카 후작령의 본령을 내려 보다니 백작령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넓었다.
부채모양의 반원형의 성벽이 넓고 높게 쌓여 있었고, 성루에는 공성병기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저기 가면 드워프들이 운영하는 대장간이 있을지도 모르겠네. 무기를 업그레이드 시켜 동동일, 동동이에게 주고, 하나는 남겨 두었다가 동동삼이 될 아이에게 주면 되겠다.”
진혁은 혼자 말을 하며 언덕을 내려가 베로니카 후작령의 본령으로 향했다.
*베로니카 후작령.
설명: 아세프 진 베로니카 후작이 당대 로드로 베로니카 후작령을 관리하고 있다. 그의 아래에 있는 귀족들이 12개의 영지를 맡아 관리를 하고 있으며 본령의 병력은 기사 500명에 병사 5,000명이 상시 대기하고 있다. 또한 각 용병길드의 용병 3만5천명이 본령을 비롯하여 12개의 영지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유사시 3만5천의 용병들은 베로니카 후작령의 군사로 편입되어 몬스터를 비롯한 영지를 침공한 적들과 싸우도록 편성이 되어 있다.
“신분증을 보여 주십시오.”
진혁은 성문 앞에서 신분증을 검사하는 병사에게 자신의 용병표를 보여 주었다.
“진혁 님이시군요. 저희 베로니카 후작령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이전부터 이렇게 신분증을 검사하였습니까?”
“아닙니다. 최근 들어 다크엠버서더란 조직의 불순자들이 영지로 들어와 혼란을 주고 있어 감시와 정찰를 강화하는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아, 어딜 가나 그놈들이 문제이군요. 그럼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용병단의 사람들도 많이 들어와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최근에 대형 용병단으로 성장을 한 케빌로스 길드와 아틀란티스 길드, 바리온 길드와 같은 용병단의 용병들이 영지에 들어와서 도와주고 있습니다.”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이곳 베로니카 후작령에서는 그들과 마찰이 생겨 즐거운 모험을 할 것 같은 생각에 입가에 옅은 미소가 생겼다.
“그렇군요. 그럼 수고 하세요.”
진혁은 경비병에게 인사를 하고 후작령 안으로 들어왔다.
후작령이라 그런지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여기 집값은 백작령의 두 배는 되겠다.”
진혁은 후작령의 대로를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둘러 보았다.
진혁은 늘 새로운 영지에 도착을 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광장으로 가서 워프 포인트를 등록하는 일이다.
그런 후에는 광장에서 가판을 열어 장사를 하는 플레이어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이들이 무엇을 사고팔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트롤의 피, 아쿠아맨서의 피부, 다이아몬드 울프의 뼈······.”
진혁은 플레이어들이 사고파는 재료들을 보며 이곳 베로니카 후작령에 서식하는 몬스터들을 대충 파악할 수가 있었다.
“빅 스타카토도 있네.”
대충 몬스터의 종류가 40여종이 되었는데 베로니카 후작령에 딸린 영지가 12개라고 했으니 영지 한 곳에 3, 4종류의 몬스터가 나온다는 말이었다.
“피란체바가 좋아하겠다.”
싸울 상대가 있으면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는 피란체바를 떠올리는 진혁은 피식 웃고는 광장을 조금 더 돌아다녀 본 후에 자신이 살 것 없다 생각하곤 퀘스트를 얻기 위해서 몽크 길드로 향했다.
“일단 길드로 가서 침묵의 숲과 관련된 퀘스트가 있는지 확인한 후에 침묵을 숲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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