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내가 운이 좋았구나.
진혁은 4주차 이벤트가 끝나고 곧장 사우디아라비아로 가서 현지 시차 적응과 훈련을 이어나갔다.
가상현실 게임 인더스에서 진행하는 이벤트로 인해서 현실에서 스파링 훈련은 조금 덜 했지만 나름 체력 훈련을 비롯하여 개인 타격 훈련은 평소보다 더 열심히 하였을 뿐만 아니라 양종국에게 배운 레슬링 기술과 주짓수 수련 역시 게을리 하지 않았다.
다만 상대가 UFC에서 잔뼈가 굵은 반데라스 포비아라 쉽지 않은 경기가 예상이 되지만 그래도 자신이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현지 체육관에서 소속 선수들과 스파링을 하는 진혁은 자신보다 덩치가 큰 상대에게도 밀리지 않는 싸움을 하였고, 이를 본 스태프들은 진혁이 한 달 동안 놀고만 있지 않았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역시 타고났어. 나이가 들면 몸이 점차 굳어가야 하는 게 정상인데 어떻게 더 유연해질 수가 있지.”
최상호는 진혁이 스파링을 하는 모습을 보고 말을 하였고, 봉수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을 하였다.
“감각이 좋으니까 몸을 계속해서 사용하게 되잖아요. 큰 근육, 작은 근육 할 것 없이 계속해서 자극을 주니까 그런 거죠.”
“양종국 선생님께 레슬링 기술을 배우더니 주짓수 연계도 더 좋아 보이네.”
상대를 연구, 분석하는데 특화된 최상호의 눈에는 미세한 변화지만 그게 확실하게 눈에 들어왔다.
종합격투기에서 주짓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나다.
타격에는 무에타이, 그라운드에서는 주짓수라는 말이 있듯 종합격투기 선수들 중 주짓수와 무에타이를 수련하는 비중이 높다.
간혹 복싱, 레슬링을 베이스로 깔고 태권도, 킥복싱, 유도의 기술들을 첨가하여 자신만의 격투 스타일을 만든 선수들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무에타이와 주짓수의 비중이 높다.
진혁 역시 마찬가지, 그는 유도 세계챔피언을 해 본 경험이 있지만 종합격투기 선수로 전향하면서 주짓수와 무에타이, 그리고 복싱을 배우고 익혔다.
최근 레슬링을 배워 레슬링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그라운드 싸움으로 이끌어가려고 하는 그래플링에 뛰어난 선수들에 대한 대비도 착실하게 준비해가며 나름 자신만의 격투 스타일을 완성해 나가는 중이었다.
육중한 몸으로 밀고 들어오는 상대를 보고 옆으로 빠지면서 오른손 주먹을 상대의 턱을 향해 뻗었다.
퍼억!
주먹에 전달되는 묵직한 느낌은 제대로 들어갔다는 생각과 함께 시선이 상대 선수에게 고정이 되었다.
상대가 충격을 받은 모습을 보이면 곧장 달려 들어가 주먹세례를 퍼부을 요량이었는데 진혁의 주먹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커다란 덩치의 선수가 앞으로 그대로 꼬꾸라지며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본 상대 선수의 코치가 달려와서 상태를 살폈고, 다행이 충격으로 인해서 잠시 기절하였음을 알고 안도하였다.
어떻게 보면 운이 좋다라고 말을 할 수도 있지만 진혁이 스파링을 하는 걸 지켜 본 사람은 운이 아닌 진혁의 실력으로 체급이 높은 선수를 쓰러뜨렸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현직이라 그런지 체급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경기를 잘 운영하다니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현지 체육관의 코치가 최승수에게 말을 하였고, 그는 스태프들에게 통역을 해 주었다.
“아직 부족한 것이 많다고 전해 주세요. 이번에는 운이 좋아 얻어 걸린 거예요. 운이 아니었다면 제가 졌을 거예요. 체급 차이는 무시할 수가 없으니 말이에요.”
진혁은 겸손하게 말을 하였지만 상대의 움직임이 눈에 훤히 들어왔다. 물론 상대의 덩치가 있으니 그보다 가벼운 진혁의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움직임을 볼 수 있는 동체시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늘처럼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인더스의 잊혀진 사원에서 사냥한 것이 도움이 된 것 같은데.’
잊혀진 사원에 나타나는 몬스터들은 지금 플레이어들이 사냥할 수 있는 최고의 레벨의 몬스터들이었다.
특히 네임드 몬스터인 다크 나이트 반데시는 최고 레벨의 플레이어라도 쉽게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강한 놈이었다.
그런 상대를 사냥하면서 이미지가 각인이 된 것 같았다.
‘저레벨의 몬스터를 사냥할 때는 대충 설렁설렁하는 기분으로 사냥을 하였다면 잊혀진 사원의 몬스터를 사냥할 때는 최대한 집중해서 사냥을 하였고, 벨리아 마을을 지키지 위해서도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 올려서 몬스터를 막았는데. 아마도 그게 도움이 된 것 같은데?’
진혁은 인더스 세상 안에서 집중하고, 안 하고의 차이가 현실에서도 영향이 미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미지 트레이닝 역시 마찬가지야. 영상을 보고 대충 설렁설렁 따라하거나, 혹은 상대의 공격 패턴을 파악했다고 해서 집중력이 떨어지면 안 되는 거였어.’
진혁은 그 동안 자신이 상대를 해 온 선수들의 영상을 분석할 때, 인더스 세상의 고레벨의 몬스터를 상대를 하는 것처럼 집중을 하였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 동안 운이 좋았구나.’
“이번 대회에서 진혁 선수는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가 더 기대가 되는 선수인 것 같습니다.”
현지 코치의 목소리가 진혁의 상념을 깨웠다.
“열심히 할 테니 많이 도와 달라고 전해 주세요.”
*
진혁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인더스에 접속을 하며 잠깐의 여가 시간을 보내었다.
여가 시간에 술을 한 잔하거나, 혹은 클럽 같은 곳에서 가서 노는 것보다는 인더스 게임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진혁은 운동을 마치고 현실시간으로 4시간, 인더스 세상에서의 시간으론 12시간을 플레이어를 하였는데 나름 알차게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상태창
*이름: 진혁 *레벨: 200레벨
*직위: 모험가 *클래스: 어둠의 사냥꾼
*피로감: 20,000/20,000
*체력: 15.000/15,000
*어둠이 짙은 순수한 마력(상급흑마력): 12.000/12.000
*명성: 400
······.
진혁은 이벤트 기간 동안 미친 듯 레벨 업을 하여 3차 전직을 할 수 있는 200레벨에 도달할 수가 있었다.
200레벨이 되자마자, 진혁은 몽크 길드로 가서 전직을 하였는데 이전과 마찬가지로 무식하게 사냥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라는 전직 퀘스트를 주었고, 200레벨의 몬스터를 사냥하는 건 진혁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시간이 많이 걸렸을 뿐 아주 쉬운 일에 속하였다.
문제는 자신을 개조를 해 줄 흑마법사를 찾는 일이었다.
“왕국의 수도로 가야 하나? 아니면 다른 왕국으로 넘어가야 하나.”
진혁은 몽크 길드에 준 전직 퀘스트에 필요한 몬스터의 사냥을 끝내자, 절로 걱정이 되었다.
“아, 모르겠다. 어떻게해서든 되겠지. 일단 몽크 전직부터 끝내자.”
진혁은 루드산포드 백작령의 몽크 길드 파디스를 만났다.
“생각보다 일찍 일을 끝냈구먼.”
“이전에 한 번씩 사냥을 해 본 놈들이라 쉽게 사냥할 수가 있었습니다.”
“어찌되었건 수고하였네.”
-몽크 길드의 장로 파디스의 시험을 통과하였습니다.
-3차 전직을 하기 위해서는 흑마법사 길드의 전직 퀘스트를 완료하셔야 합니다.
시스템 알림을 듣자,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던 흑마법사 전직이 또 생각이 났다.
‘5서클의 리치 마법사 알리보다 더 높은 서클의 흑마법사를 찾아야 하는데. 과연 찾을 수 있을지.’
진혁에게 어려움은 이런 것들이었다.
다른 플레이어들처럼 몬스터를 사냥하고 필요한 것들을 구해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개조해 줄 흑마법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3차 전직이 이럴진대 4차, 5차 전직을 할 때는 마계의 마족이나 마왕을 찾아가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 적이 있었다.
“이걸 받게.”
파디스가 진혁에게 내미는 건 한 권의 스킬북으로 스킬이 3개가 수록이 되어 있는 유니크 스킬북이었다.
“감사합니다.”
진혁은 스킬북을 받고 어떤 스킬이 있는지 확인을 해 보았다.
‘유니크 스킬북이다.’
세 개의 스킬이 책 안에 기록되어 있음을 알고는 진혁은 스킬들을 확인해 보았다.
*강력한 일격(액티브 스킬)- 상대에게 강력한 일격을 가해 상대를 10초 동안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다.(쿨타임 3분)
탱커들의 필수 스킬이라고 할 수 있는 스턴이었다. 그런데 강력한 일격은 일반적인 스턴과 달리 강한 대미지도 함께 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단점은 다른 기사나 전사가 가진 일반적인 스턴은 쿨타임이 1분이지만 강력한 일격은 쿨타임이 3분이나 되었다.
‘3분이라는 단점이 있지만 대미지 자체가 강력하여 일대일 대결에서는 유용하게 사용할 수가 있겠어.’
이렇게 생각한 진혁은 두 번째 스킬을 확인해 보았다.
*도약(패시브 스킬)- 제자리에 3미터, 가속을 얻어 점프를 하면 최대 5미터까지 점프를 할 수가 있었다.
‘덩치가 큰 오우거와 같은 놈들과 싸울 때, 유용할 것 같은데. 한 번의 도약으로 5미터까지 뛰어 오를 수 있으면 오우거의 머리를 후려 차 버릴 수도 있겠다.’
이 스킬도 유용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 스킬을 보았다.
*동체시력(패시브 스킬)-움직이는 물체를 정확하게 빠르게 인지할 수 있다. 동체시력이 좋아질수록 신체 반응속도 역시 빨라진다.
진혁은 동체시력까지 확인한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파디스가 물었다.
“마음에 드는가?”
“그렇습니다. 저에게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
“자네가 익힌 마나 이론은 지금 우리가 가르치는 몽크들과는 조금 차이가 있네. 그래서 몽크들이 사용하는 기술들은 자네에게는 큰 의미가 없을 듯하여 준비한 것인데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군.”
진혁은 마르테우스의 일기장을 얻어 그의 마나 이론을 따르기 때문에 지금의 몽크들과 차이를 조금 보이고 있었다.
“다른 용병들과 파티를 맺어 의뢰를 하는 것이 아니니 혼자 다니는 저에게는 이런 기술들이 생존에는 더 유리합니다.
“그런가? 동료들과 함께 의뢰를 하는 것도 자네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쁜 마음을 가지고 저에게 접근하는 자들을 몇 번 겪고 난 후로는 혼자 다니는 것이 더 속편합니다.”
“그런 일이 있었는가?”
진혁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마음은 알겠지만 사람을 불신하게 되면 그 마음이 계속해서 커진다네. 자네가 모험가로, 또 용병으로 왕국을 다니면서 진정한 동료들을 만나기를 바라네.”
“감사합니다. 장로님의 조언을 늘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
“진혁이 조금 달라진 것 같지 않아?”
“형도 그렇게 느꼈어요?”
“분명 달라졌지?”
진혁의 스태프로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 온 상호와 봉수는 훈련하는 진혁의 모습에서 이전과는 달리 뭔가 다르다는 걸 느낄 수가 있었는데 그게 ‘이거다!’ 이렇게 말을 할 정도로 그 변화를 알지는 못하였다.
진혁은 실전 감각을 위해서 스파링을 하고 있었는데 자신보다 낮은 체급의 선수라 붙어서 그런지 시종일관 밀어 붙였고, 상대는 빠른 스피드를 이용해서 진혁의 압박을 벗어났다.
아무리 플라이급의 선수가 빠르다고 하나, 페더급 역시 경량급에 속하는 체급이었기에 진혁은 빠르게 자신의 압박을 벗어나는 상대를 쫓았다.
진혁이 케이지의 중앙을 장악하고 상대를 서서히 압박하는 그런 모습이었는데 상대는 케이지를 돌며 진혁의 압박을 벗어나며 가끔 잽과 발차기로 진혁이 밀고 들어오지 못하게 견제를 하는 모습이었다.
진혁은 서두르지 않았다.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가는 군인처럼 조금씩, 조금씩 상대와 거리를 좁혔고, 자신의 타격 사정권 안으로 들어오자, 번개와 같이 주먹을 뻗었다.
상대는 옆으로 빠지며 공격을 피하려고 하였지만 진혁은 오른발로 그의 옆구리를 공격하여 옆으로 빠져 나가지 못하게 막은 다음 상대의 안면에 연타로 주먹을 날렸다.
침착하게 정확하게 상대의 반응을 보며 상대의 가드를 부셔버리는 펀치로 인해서 상대의 머리가 크게 뒤로 젖혀졌고, 그 순간 진혁은 허리를 숙여 접근하여 상대의 다리를 양손으로 잡고 위로 들어 올려 몸을 비틀었다.
“어엇!”
상대는 반응할 틈도 없이 몸이 허공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며 충격을 입었는데 진혁의 움직임에 또 한 번 놀랐다.
진혁은 이미 이것을 계산이라도 한 것처럼 상대의 가슴 위로 올라가는 탑 포지션을 잡았다.
시합이었다면 여기서 무차별 폭격을 가했겠지만 스파링이니 그럴 필요가 없어 상대에게 미소를 지어 보여 준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고의 무대에서 경기를 하는 사람은 정말 다르군요. 아무리 체급 차이가 난다고 해도 이렇게 손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탑마운트 자리를 빼앗기다니.”
상대가 진혁에게 말을 하였지만 애석하게도 진혁은 영어를 길게 알아들을 정도의 회화 능력이 되지 못하였기에 어색한 미소만을 보여 주었다.
“잘한다고 하는데.”
스태프인 상호가 알려주자, 고맙다는 말을 하였다.
“어떻게 오늘 훈련은 끝?”
상호가 묻자,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합이 이틀 후니 지금부터는 컨디션 조절에 최선을 다할 차례이다.
사람의 컨디션이 그날그날 다르기에 얼마나 컨디션 조절을 잘하느냐에 따라 시합의 승패가 갈릴 수도 있으니 지금부터는 최대한 안정과 편안한 그리고 약간의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시간을 보내어야 했다.
“네. 호텔에서 쉴 테니까 시합 날 까지 저 찾지 마세요.”
“그렇다고 인더스만 주구장창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안 해요. 반데라스 포비아 영상 보면서 쉴 거니까 그렇게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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