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상관없어.
진혁은 자신의 소환수인 동동일과 동동이를 앞장세우고, 백호와 리틀 백호, 그리고 스켈레톤 병사들과 함께 베르도 산을 다니면서 변종 몬스터를 사냥하러 다녔는데 뜻하지 않게 몬스터를 토벌하기 위해서 베르도 산 초입부터 중턱, 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여정이 되어버렸다.
베르도 산의 중턱에서는 딱히 상대하기 힘든 몬스터가 없어 소환수들만으로 충분히 처리가 가능하였다.
그러는 가운데 동동일과 동동이, 백호, 리틀 백호가 레벨을 하나씩 올릴 수가 있었다.
베르도 산 중턱의 몬스터를 모두 정리하면서 변종 몬스터를 열 마리를 사냥할 수가 있었는데 산 중턱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몬스터가 블랙 페이몬트였다.
블랙 페이몬트는 베르도 산 중턱에서 서식하고 있는 놈으로 산 중턱에 자리를 잡은 놈들 중에서는 가장 강력한 몬스터였고, 놈은 일족인 페이몬트를 100마리나 이끄는 우두머리가 되어 있었다.
페이몬트는 일종의 대형 지네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그와 흡사하게 닮았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독을 품어내고 물어뜯는 것은 덩치가 큰 코끼리라도 뱀처럼 상대의 몸을 휘감아 조르는 힘으로 뼈를 으스러뜨리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였다.
다른 페이몬트의 색은 붉은 색이나, 한 놈만 검은색으로 강력한 마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진혁은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구울병사들을 소환하였고, 그 동안 변종 몬스터를 사냥해서 만든 스켈레톤 병사들을 앞세웠다.
페이몬트는 구울 병사와 스켈레톤 병사, 그리고 소환수들에게 맡기고, 진혁은 블랙페이몬트를 상대하였다.
사라라락!
수많은 발을 이용하여 빠르게 이동하는 건 물론, 단단한 등껍질로 인해서 방어력 또한 대단하였다.
블랙 페이몬트의 입에서 독이 뿜어져 나왔고, 진혁이 얼른 자리를 피하자, 독이 바닥을 적셨다.
치이이이익!
연기와 함께 바닥의 흙이 타들어가며 작은 흔적을 만들었는데 이걸로 보아 독의 위력이 상당하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이상상태 면역이 있어 괜찮을 것이라 생각을 했는데 이 정도면 그냥 마법 한 방 맞는 것이나 다름이 없겠네.”
진혁은 독을 맞아 1차 피해를 입고, 중독으로 인해서 지속적으로 체력이 깎이는 2차 피해까지 가능한 공격임을 알고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블랙 페이몬트가 레벨이 그리 높은 몬스터가 아니었기에 진혁이 상대하기에 그리 어려운 몬스터는 아니었다.
물론 진혁보다 레벨이 높았지만 이제까지 상대한 몬스터나 플레이어들과 비교하면 중간 레벨의 수준에 있는 놈이었다.
“무식한 방법이 때로는 최고의 방법이 될 수도 있지.”
진혁은 그때부터 블랙페이몬트의 전신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자세를 낮추어 빠르게 다가오는 블랙페이몬트를 본 진혁은 허리의 힘을 이용하여 오른손 어깨를 뒤로 뺐다.
진혁의 허리를 깨물려고 날카로운 이빨을 벌리는 블랙페이몬트를 향해 크게 한 발을 내딛으며 뒤로 뺀 오른 손 주먹을 휘둘렀다.
진혁의 주먹이 블랙페이몬트 얼굴에 적중 되면서 몸이 찌그러지면서 뒤집힐 만큼 큰 충격을 받은 놈은 수많은 발을 이용해 빠르게 뒤로 물러났지만 진혁은 일루전 스탭을 사용해서 빠르게 블랙페이몬트를 따라 잡으며 다시 한 번 주먹을 휘둘렀다.
“강력한 일격!”
스턴 효과가 있는 강력한 일격에 적중당한 블랙페이몬트가 충격을 받고 움직이지 못하자, 진혁은 연속해서 놈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퍽, 퍽, 퍽······.
스턴이 걸려 움직이지 못하는 그 시간 동안 진혁이 주먹이 놈의 얼굴에 다섯 번이나 제대로 적중되었다.
진혁에게 강력한 충격을 받은 블랙페이몬트가 스턴에서 풀려나 달아나려고 하자, 진혁은 놈의 꼬리를 잡아 힘을 주고 허리를 비틀어 몸을 돌렸다. 그러자 블랙페이몬트가 딸려오며 원심력에 의해서 허공으로 몸이 떴다.
무식한 힘을 앞세운 진혁의 공격에 블랙페이몬트는 속절없이 당해야 했다.
허공을 한 바퀴 돌아 바닥에 내동댕이쳐졌고, 진혁은 허공으로 도약하여 놈의 머리 위로 떨어지면서 무릎으로 얼굴을 찍어 버렸다.
“네놈이 드로이 영지의 사냥꾼들을 힘들게 했다며? 고이 죽을 것이란 생각은 버려야. 네놈을 마디마디 해체시켜 줄 테니까.”
블랙페이몬트는 마치 진혁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구슬프게 울었다.
“쿠오오오!”
놈의 비명이 베르도 산에 구슬프게 울렸지만 그를 도와 줄 몬스터는 주변에 존재하지 않았다.
블랙 페이몬트는 진혁의 손에 의해 마디마디 분리가 되어 운명을 달리하였고, 그에게 핵을 얻은 진혁은 인벤토리에 챙긴 후에 산 정상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이왕 시작했으니 끝을 내어야겠지.”
진혁은 베르도 산 중턱에서 왕 노릇을 하던 블랙 페이몬트를 사냥한 후에 조금 더 위로 올라갔다.
“저게 아자스 나무인가?”
열매를 맺은 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걸 발견하고는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니 바닥에 도토리와 같은 것이 몇 개 떨어져 있었다.
“이게 아자스 나무 열매인가?”
떨어진 열매를 하나 주워 확인을 해 보았다.
아이템: 아자스 나무 열매.
설명: 회복 포션을 만드는데 사용된다.
간단한 설명이었다.
“이거 다 따서 연금술사에게 팔면 돈이 되겠네. 피란체바!”
“응?”
“나 여기 과일 따야 하니까 네가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신나게 놀아.”
“넌 안 가?”
“난 여기 열매 다 딴 후에 갈게.”
“그래. 천천히 따도 돼. 내가 몬스터들을 싹 정리해 놓을 테니까.”
“그래. 변종 몬스터에게서 핵을 수거해야 해. 그거 퀘스트 아이템이라 필요한 거야.”
“알았어. 염려 붙들어 매고 채집이나 열심히 해.”
피란체바는 자신 있게 말을 하고는 진혁의 소환수와 스켈레톤 병사, 구울 병사들을 이끌고 아자스 나무 군락을 떠났다.
진혁은 손에 착용한 아이템을 벗은 후에 주먹을 쥐고 아자스 나무를 강하게 때리자, 큰 진동과 함께 나무에 달려 있는 열매가 아래로 우수수 떨어졌다.
진혁은 이러한 방법으로 손쉽게 나무에 열린 열매를 딸 수가 있었는데 떨어진 열매를 줍는 것이 더 힘든 일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소환수 몇 마리는 남겨 놓을 걸.”
후회라는 건 언제나 그렇지만 일찍 하여도 늘 늦은 법이었다.
“알았으니 앞으로는 적극 활용해야지.”
진혁은 아자스 나무 열매를 주우면서 상처가 난 것들은 한쪽으로 제쳐두고 상품성이 있는 것들로만 모아 무한 주머니에 담았다.
*
진혁은 베르도 산의 몬스터를 피란체바와 소환수들에게 맡겨 놓고 자신은 퀘스트인 아이드의 부탁에 필요한 재료들, 즉 아자스 나무 열매, 프레타의 잎, 그리고 푸스퀴의 수액을 구하기 위해서 베르도 산을 돌아 다녔다.
“지도에 이런 재료들을 구할 수 있는 서식지나 군락이 표시되면 참 좋을 텐데.”
진혁은 알아서 찾아 다녀야 하는 불편함으로 인해서 지도를 보며 투덜거렸다.
“그런데 난 아직 지도를 개미 눈곱만큼도 밝히지 못했구나.”
이제 겨우 자신이 활동하고 있는 두라스 왕국의 10%정도 밝혀 놓았다.
“초보 마을을 시작해서 발리칸 산맥, 루드산포드 백작령, 페루산디스 백작령, 그리고 여기 리베인 백작령. 게임을 시작한 지 5년이 다 되어 가는데 겨우 다섯 곳만 다녔다니.”
진혁은 지도를 보면서 새삼 놀랐다.
“메인 퀘스트를 할 때가 아니구나.”
자신과 비슷한 레벨의 플레이어나, 혹은 더 높은 고레벨들은 최소한 이 두라스 왕국의 지형은 다 밝혔으리라 생각을 하니 진혁은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도 메인 퀘스트를 유지하고 왕국을 좀 돌아다녀야겠어. 그러려면 퀘스트를 다른 누군가와 공유를 해야 하는데.”
진혁은 잠깐 생각을 하다 피식 웃었다.
“그 동안 케빌로스 애들 아이템 많이 벗겨 먹었는데 그 놈들 중 한 놈에게 퀘스트를 공유해 줄까? 그럼 알아서 퀘스트를 풀긴 하겠지만···.”
퀘스트를 공유하니 자신이 퀘스트를 포기만 하지 않으면 자신 역시 퀘스트를 푸는 것이고, 그때마다 다른 퀘스트를 받아 다른 누군가와 공유를 하여 퀘스트는 계속해서 진행을 하면 된다.
다만 이렇게 할 경우 명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가 있고, 이 일로 인해서 NPC들에게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어 페널티를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명성에 영향을 받으면 지금 거래하고 있는 귀족들과 거래에도 영향을 미칠 수가 있으니 이게 참 문제이긴 하네.”
지금 300레벨 이상의 고레벨의 플레이어들은 두라스 왕국을 넘어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산타나 왕국을 모험하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자신은 한참 뒤쳐지고 있는 셈이다.
“차라리 에피소드1의 메인 퀘스트를 포기하고 왕국을 모험하러 다닐까?”
시간이 흘러 에피소드1의 메인 퀘스트를 홀로 완료하지 못할 경우에는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럴 바에는 메인 퀘스트에 집착하는 것보다는 인더스 대륙을 모험하면서 레벨을 올려 고레벨의 플레이어들과 격차를 줄이는 것이 더 자신에게는 더 이로울 수도 있었다.
“에피소드가 하나만 있는 건 아닐 것이니 1은 포기를 하고 왕국을 돌아다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인데.”
진혁은 어떤 선택이 자신에게 더 도움이 될지를 생각해 보았다.
“인더스 월드의 세계관은 이제 15%정도 개방되었고, 그 상태에서 에피소드1을 시작하였으니 에피소드1을 완료해도 보상이 그리 크지는 않을 거야. 지금까지 나온 아이템 중에서 가장 좋은 아이템이 전설급이니 최고 좋은 아이템을 준다고 과정을 해도 고대급 정도.”
인더스 세계의 아이템은 노멀, 레어, 유니크, 전설, 고대, 신화, 유일 등급으로 나뉘고, 이 등급에서 고대 아이템부터는 등급이 세분화가 되어 C급, B급, A급, S급, SS급, SSS급으로 나뉜다.
그러니 단순히 7등급이 아니라 더 세분화로 나뉘어 있었다.
“고대급이라고 해도 그리 좋은 아이템은 주지 않을 거야.”
에피소드1를 완료하고 받는 보상이 고대급이라고 하면 A급 정도일 것이라 생각을 하였다.
진혁의 마음은 이미 에피소드1보다는 왕국을 여행하고 모험하는 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그러니 주관이 많이 들어간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안하거나, 혹은 메인 퀘스트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하였다.
“어느 정도 레벨이 올라가면 고대급 아이템은 자연스럽게 풀릴 것이니 그때 가서 고대급 아이템을 구해도 늦지는 않아. 정 안되면 등급을 올려주는 룬 석을 이용해서 지금의 아이템 등급을 올려도 되니까. 메인 퀘스트는 잠시 접어 두고 레벨 업을 하는 동시에 왕국을 돌아다녀 보자.”
마음속으로는 이미 결정을 한 상태에서 스스로 이렇게 결론을 낸 진혁은 활짝 웃었다.
“일단 베르도 산에서의 퀘스트는 끝내고 왕국을 다니면서 모험을 하면 피란체바도 틀림없이 좋아할 거야.”
*
진혁은 베르도 산의 중턱에서 아이드의 퀘스트에 필요한 아자스 나무열매, 프레타의 잎, 푸스퀴의 수액을 모두 구할 수가 있었다.
그러는 동안 피란체바는 진혁의 소환수들을 이끌고 베르도 산의 몬스터를 제압하면서 변종 몬스터를 사냥하며 산 정상으로 천천히 올라가는 중이었다.
진혁이 피란체바와 합류를 하였을 때, 제법 많은 변종 몬스터를 쓰러뜨리고 핵을 모아둔 상태였다.
“수고 했어.”
“수고는 나야 재미만 있으면 그만이지.”
“그래서 말인데 피란체바.”
“응?”
“퀘스트 하는 거 잠깐 접어두고 왕국을 여행하려고 하는데 너의 생각은 어때?”
“퀘스트를 접는다고? 그럼 싸움은 언제 해?”
“싸움은 왕국을 여행하면서 할 거야. 다만 우리가 클래스 길드에서 시키는 일에 너무 열중하고 있으니까 모험을 할 수가 없잖아.”
“음······.”
“다른 용병들은 벌써 왕국을 다 모험하고 다른 왕국으로 넘어가는데 나는 아직 왕국의 10%도 다녀보지 못했어.”
피란체바는 리틀백호의 등위에서 곰곰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진혁이 하고 싶은 대로 해. 난 상관없어.”
“그래. 우리 베르도 산에서 변종 몬스터만 처리해주고 리베인 백작령을 돌아다니다 크로만 후작령으로 넘어가자.”
“후작령이 백작령보다 더 크지.”
“아마도 2배 정도는 될 걸.”
“그럼 더 재미난 일도 많이 일어나겠다. 그치.”
“그렇지. 더 신나고 재미난 모험이 될 거야.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도 재미날 테고, 우리가 상대할 수 없는 몬스터를 만나 어려움도 겪을 수도 있을 거야.”
피란체바의 입가에 미소가 생겼다.
“재미있겠다. 사실 지금까지는 조금 심심했어. 막 소멸을 각오하고 아슬아슬 싸워서 이겨야 스릴도 넘치고 배우는 것도 있고, 강해지고 그러는데 지금은 조금 밋밋했어.”
피란체바의 말에 진혁은 웃음이 나왔지만 억지로 참고 말을 하였다.
“그럼 이번 일 빨리 끝내고 크로만 후작령으로 가자.”
“리베인 백작령 먼저 다녀 보고.”
“그래. 어째든 빨리 일을 끝내자. 내가 소환수들을 데리고 가서 베르도 산에 있는 몬스터들을 싹 쓸어버릴 테니까 진혁은 나의 뒤만 따라와.”
진혁의 소환수들을 움직이는 피란체바는 조금 들뜬 모습으로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다만 진혁의 이러한 결정이 훗날 인더스의 세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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