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잘못 고른 것 같은데
“시X 놈아, 이리로 도망치면 우리가 그냥 둘 것 같았냐?”
진혁이 두 번째 수련을 위해서 이피아 골짜기의 모래밭으로 이동하였는데 파이어길드의 길드원이 이곳까지 쫓아와서 시비를 걸었다.
보자마자 으르렁거리는 파이어길드의 길드원들이었고, 진혁은 그런 놈들을 보며 속으로 웃었다.
아이템을 가지고 스스로 찾아와주니 자신에게 있어 이렇게 고마운 길드도 없었다.
“아가리 파이터냐? 나 죽이러 왔으면 그냥 덤벼. 남자 새끼가 말이 많아. 드루와, 드루와!”
진혁이 양손을 앞으로 내밀어 손가락을 까닥거리자, 파이어길드의 길드원들이 일제히 진혁을 향해 달려들었다.
모래밭이라 다른 곳에서 움직이는 것보다 둔해진다는 걸 알지 못한 파이어길드의 길드원은 순간 당황하였지만 어차피 상대도 같은 상황이라 생각을 하여 그대로 돌진하였다.
진혁은 함께 온 자들 중에서 궁수, 마법사와 같은 원거리 딜러나, 힐러를 먼저 찾았다.
궁수와 마법사는 근거리 딜러인 자신에게는 상극과 같은 존재들이라 우선적으로 제거할 수 있으면 그들부터 제거해야 싸움을 유리하게 이끌어 갈 수가 있었다.
검으로 어깨를 향해 찔러오는 자를 보고 권투의 기술 중 하나인 위빙 동작으로 피한 후에 주먹을 쥐고 왼손 훅으로 상대의 옆구리를 때렸다.
손에 전달되는 묵직한 느낌은 수련의 효과를 확실하게 느끼게 해 주었다.
그 충격에 등이 접히는 것처럼 옆구리가 접히면서 몸이 허공으로 떠서 모래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이런······.”
전신을 마비시킬 정도의 강력한 대미지에 의한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얼굴을 향해 무엇인가 다가오는 걸 보고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다.
-진혁님의 의해 사망하셨습니다. 선제공격의 패널티를 받습니다. 1레벨의 다운이 됩니다. 레벨 다운으로 인해서 스킬 사용이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아이템 본 실드를 땅에 떨어뜨렸습니다.
플레이어는 알림 메시지를 듣고 자신이 죽었다는 것과 아이템 본 실드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0초 뒤에 입력해 두신 스타팅 포인트에서 리스폰이 됩니다.
‘나의 레벨이 100레벨인데 아이템을 모두 착용하고도 두 방에 죽는다고? 도대체 이 새끼의 레벨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는 죽으면서 진혁의 레벨에 대한 의구심을 가졌다.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이나 이름이 검은색으로 표시되는 걸로 봐서는 분명 나보다 20레벨 이상 낮은데.’
플레이어는 자신이 죽으면서도 이해를 할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으악. 아악··· 살려 주세요. 도망쳐!”
리스폰을 기다리는 10초 동안 들려오는 소리는 길드원들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소리였다.
-스타팅 포인트로 리스폰 됩니다.
알림메시지와 함께 시야가 다시 밝아지면서 두라스 왕국의 남부 발리칸 산맥의 페리 전진기지 내에 있는 광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아.”
한숨부터 나왔다.
그를 시작으로 길드원들이 스타팅 포인트에서 한명, 두 명 모습을 드러내었다.
진혁을 죽이기 위해서 열 명이 길드원이 갔지만 오히려 모두 그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들은 한 사람에게 당했다는 사실에 얼굴을 들지 못하였다.
“시X, 보스 레이드 가서 죽은 것도 아니고. 쪽팔려서.”
이들이 곁을 지나가는 플레이어가 낮은 소리로 말하였다.
“병X들, 또 당했나보네.”
페리 전진기지 내에서는 파이어길드와 진혁의 싸움을 모르는 플레이어들이 없을 만큼 유명하였다.
파이어길드가 대형 길드는 아니지만 소형길드에서 막 벗어나 중형길드로 성장하고 있는 길드였고, 길드원의 인원수만 해도 이제 100명에 육박할 정도였다.
파이어길드의 마스터인 알시아드는 불꽃의 마법사란 이명을 스스로 지어 사용하고 있는데 그 이름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AI, 즉 NPC나 플레이어들도 알시아드를 부를 때, 불꽃의 마법사란 이명을 앞에 붙여서 불러주며 그를 어느 정도 인정해 주는 분위기였는데 진혁과 엮이면서 그의 명예가 조금씩 실추되어가는 중이었다.
“체드린 님.”
“말하지 마.”
진혁과 싸우기 위해서 온 이들은 고개를 숙인 채로 스타팅 포인트를 벗어났고, 광장에서 가판을 깔고 장사를 하는 생산직의 플레이어들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이기지도 못하는 싸움을 왜, 미련하게 계속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 플레이어도 정말 대단해. 혼자서 파이어길드를 다 벗겨 먹네.”
“그러게 돈을 제법 벌었다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저들에게서 벗겨 먹은 아이템을 은행에 판매 대행을 맡겨 골드 등급까지 올라갔다고 그러던데.”
“대박이네. 전문 장물아비라고 해도 힘들 텐데.”
가판을 깐 플레이어들의 말이 귀를 간지럽히자, 절로 주먹이 쥐어졌다.
“야, 그거 알아?”
“뭐?”
“알시아드가 그 플레이어에게 털린 아이템을 다시 구입하기 위해서 집 한 채 팔았다고 하던데.”
“무슨 소리야? 건물주라 건물의 월세를 올렸다고 그러던데.”
이와 관련하여 카더라 소식도 몇 가지 전해지고 있었다.
파이어 길드의 마스터인 알시아드가 진혁에게 죽고 잃어버린 길드원들의 아이템을 다시 구입하기 위해서 집을 한 채 팔았느니, 건물주인데 임대료를 올려서 받은 돈으로 아이템을 구입한다느니 하는 소문들이었다.
그 외에도 파이어길드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나돌면서 플레이어들의 조롱거리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분명한 건 파이어길드의 마스터인 알시아드 입장에서는 파이어길드의 남부지부와 진혁과의 싸움이 자금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여관으로 가서 방을 빌려 휴식을 취했고, 그러는 동안 100레벨의 플레이어가 통신수정구를 사용해 길드에 보고를 하였다.
-그래서 함께 간 열 명이 다 죽고, 아이템도 떨어뜨렸다고?
통신수정구에 비친 파이어길드의 마스터 알시아드는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도대체 그 놈의 레벨이 얼마나 높기에 너도 당한 거야?
“분명 저에게는 검은 색으로 그 자의 네임이 표시되었습니다.”
-검은 색이면 20레벨 이상 낮다는 소리잖아.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런 놈을 못이···, 잠깐? 그 놈의 네임이 검은 색이었다고?
“정말입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플레이어들끼리 싸우면 네임이 표시가 되나?
마스터인 알시아드의 말을 들어보니 그랬다.
“아, 그러고 보니 처음에는 네임이 표시가 되지 않았는데 PVP가 성립이 되자, 네임이 표시가 되었습니다.”
-그럼 그놈, 히든 클래스 아니야? 일반 플레이어가 가지고 있지 않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면 히든 클래스인 경우 말고는 없잖아.
“그렇긴 합니다.”
-아무리 히든 클래스라고 해도 20레벨 이상 차이나는 플레이어를 이긴다. 거기에 10레벨과 비슷한 플레이어들도 함께 있었는데.
“제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길드원들에게 물어보면 그의 레벨 대가 나올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 그리고 당분간은 그 녀석은 그냥 둬.
“지켜보란 말씀입니까?”
-아니, 그냥 내버려 둬. 지금은 길드 연합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니까 괜한 소문이 나면 악영향을 미칠 수가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잃어버린 아이템은······.”
-은행을 통해서 팔려고 하겠지. 그때 구입해서 돌려 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체드린은 고맙다는 말을 하고 통신을 끝냈다.
“잠시 모여 봐.”
어깨가 쳐지고, 풀이 죽은 모습으로 길드원들이 그를 중심으로 모였다.
“마스터께서 중대한 일을 앞두고 있으니 당분간은 행동을 자제하라고 한다.”
“그럼 그 놈을 그냥 두는 겁니까?”
“당분간이라고 말을 했잖아. 길드 연합과 합병 문제가 끝나면 다시 놈을 잡을 거니까 걱정 마.”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잃어버린 아이템은 은행에서 경매로 올리면 구매해서 돌려준다고 하니까 너무 걱정 하지 말고.”
아이템을 모두 돌려준다는 말에 길드원들은 반색을 하였다.
“그리고 혹시 그자와 싸울 때, 검은 색 네임을 본 사람 있나?”
길드원들은 그것에 대해서 크게 신경을 안 썼는지 잘 모르겠다는 대답들을 내어 놓았다.
“그래?”
“저는 봤습니다. 저에게는 흰색으로 보였습니다.”
흰색이라면 자신의 레벨과 -9레벨에서 +9레벨 차이에 있는 몬스터에게 나타나는 색깔이었다.
“흰색? 너의 레벨이 얼마나?”
“55레벨입니다.”
그의 레벨을 듣는 순간 채드린은 눈을 좁혔다.
‘그럼 최소 46레벨에서 최대 64레벨 사이란 말이잖아.’
70레벨도 안 되는 플레이어에게 자신이 당했다는 생각이 들자, 심함 모멸감이 들었다.
‘도대체 무슨 직업인데 30레벨이나 차이가 나는 단 두 방에 쓰러뜨릴 수 있었던 거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고 높은 스탯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레벨이 높아봐야 70레벨이었다.
70레벨이 가질 수 있는 스탯의 한계라는 것이 존재를 하고, 레벨의 차이에 따라 적용되는 인더스만의 시스템적인 기능들이 있어 아무리 좋은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다고 해도 자신을 이기기란 힘들었다.
아니, 이길 수는 있다고 쳐도 단 두 방에 자신을 때려눕힐 수는 없었다.
그런데 진혁이라는 그 플레이어는 단 두 방에 너무도 간단하게 자신을 때려 눕혔다.
‘주먹과 발을 쓰는 걸 봐서는 무투가 계열인데, 아무리 히든 클래스라고 해도 그렇지···, 혹시 버그를 이용하는 건거?’
하지만 이제까지 게임 상의 버그로 인해서 문제가 일어났다는 말은 한 번도 듣지 못하였다. 아니, 버그가 존재한다는 말조차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다음에 그 놈과 붙으면 이길 수 있을까?’
상대는 무투가 클래스이다. 마법사처럼 공격력에 특화된 플레이어가 아닌 근접전에서 최고의 효율을 보여주는 클래스이다.
근접전을 전문으로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무투가들은 공격력보다 방어력, 그리고 상대에게 스턴과 같은 이상상태를 걸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난 직업이다.
물론 이러한 특성상 무투가로 성장하는 것이 다른 클래스에 비해서 조금 뒤쳐질 수도 있지만 시간이 흘러 고레벨이 되면 어떠한 적과도 붙어 싸울 수 있는 탱커의 역할을 톡톡히 해 낼 수 있는 능력자이기도 하였다.
아무리 레벨이 낮다고 해도 자신을 두 방에 죽일 정도면 방어력 역시 그에 못지않을 것이라 생각을 하였다.
‘그러니 많은 길드원들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이겠지. 그와의 싸움이 장기화되면 우리가 불리해. 그럴 바에는 화해를 하거나 그를 우리 길드로 끌어들이는 것이 길드의 입장에서는 더 좋아.’
길드와 개인의 싸움에서 개인이 이길 수는 없다. 다만 개인이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길드의 입장에서는 피곤해지는 일이다.
특히 진혁과 같은 플레이어와의 싸움은 더욱 그렇다. 그가 길드의 길드원들 중 저레벨의 플레이어들만 노린다면 그들은 인디스를 하면서 상당히 피곤해질 것이다.
당장 자신만 해도 그렇다.
그가 자신을 노리기 위해서 사냥터에 들어와 공격해 온다면 자신은 막을 자신이 없었다.
개인이 작정을 하고 움직이면 길드의 입장에서는 그를 전담하기 위해서 한 사람을 배치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그 길드원은 당분간 레벨 업을 할 수가 없게 된다.
레벨 업을 하는 MMORPG 게임에서 레벨 업을 못하게 되면 그만큼 불리하고, 뒤쳐질 수밖에 없다.
그걸 길드에서 온전히 보상을 해 주느냐? 말은 해 준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한때, ‘그 레벨에서도 잠이 오나?’란 말로 상대를 조롱하던 시절도 있을 정도로 레벨을 올리는 일은 플레이어들에게는 중요하였다.
그렇게 같은 길드의 길드원들에게도 레벨이 추월당하면 그때부터는 무시당하고 괄시를 당할 수도 있으니 그와 같은 일을 오랫동안 하려고 하는 이들은 당연히 없다.
‘100레벨인 내가 두 방에 당했으니 그를 잡으려고 하면 최소 150레벨 이상의 플레이어가 와야 하는데 우리 길드에서 150레벨 이상의 플레이어들은 지금 왕국의 수도에서 용병을 하고 있으니 이런 벽촌으로 오진 않겠지.’
설령 이들 중 한 명이 진혁을 전담한다고 해도 그리 오랫동안 전담해서 쫓아다니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 인더스의 최고 레벨군에 속하는 250레벨에서 260레벨의 고레벨의 유저들을 쫓아가려면 그들도 갈 길이 바쁘기 때문이다.
자신 역시 길드 차원에서 위협하면서 한두 번 죽여주면 스스로 알아서 길 것이라 생각하고 움직였다가 반대로 자신이 당했다.
‘길드를 위해서 움직일 때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움직일 때인데··· 저레벨 구간의 사냥터라 너무 쉽게 생각을 했어.’
채드린은 한쪽에서 웃고 떠들고 있는 길드원들을 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풀이 죽어 있던 이들이었다.
길드에서 아이템을 복구해 준다는 말에 저들은 생각 없이 떠들고 있는 중이었다.
다음에 만나면 파이어 스피어로 심장에 구멍을 내 주겠다는 둥, 내가 스턴을 걸면 네가 와서 목을 날려버리라고 하는 둥,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이룰 수, 아니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이야기를 성공한 것처럼 떠들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하긴 저들에게 길드는 조금 더 쉽게 레벨 업을 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겠지.’
아직 정식으로 플레이어의 길드 시스템이 적용되지 않아, 저들은 언제든지 길드를 떠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길드의 일이 끝나면 마스터와 이야기를 해 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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