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기다려. 내가 빼앗으러 갈 테니까.
진혁은 벌써 자신에게 사람이 붙었다는 사실에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였다.
진혁은 식당에서 술은 시켰지만 더 이상 술은 먹지 않고 고기만을 먹으면서 시간을 보내었는데 이 모습이 이상하여 주인 이모가 물었다.
“무슨 일인데?”
“아무 일도 아니에요. 혹시 제가 가고 누군가가 들어와 저에 대해서 물으면 사실대로 알려주시면 되요.”
“누구 널 미행해? 스토커인가 뭔가 하는 그런 거야?”
“아니에요. 최근에 일어난 일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러니 숨길 필요도 없고, 과장할 필요도 없어요.”
“그럼 왜, 이렇게 해? 그냥 집에 가지?”
“고생해 보라고요. 나의 뒤를 쫓아다니려면 어느 정도 고생은 각오를 해야 한다고 알려주고 싶어서요.”
“그래? 남의 뒤를 쫓아다니며 못된 하는 놈들은 혼이 좀 나야 해.”
“그러니까요. 일단 그렇게 말하세요.”
진혁은 한 시간 정도 더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손님도 없어 이모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니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이모님, 저 가요. 다음에 또 올게요.”
“그렇게 해. 몸조심하고.”
“알겠습니다.”
진혁이 가게에서 나와 길을 걸었는데 한 사람이 따라 붙었다.
진혁은 느긋한 걸음으로 걸어갔고, 뒤를 쫓던 사람은 진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뒤를 쫓았다.
진혁은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미행을 달고 술집이 많은 곳으로 가서는 사람 구경을 천천히 한 후에 집으로 향했다.
그때까지 진혁을 미행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는 진혁이 집에 들어가는 것을 본 후에 잠깐 동안 집 앞을 서성이다 돌아갔다.
진혁은 창을 통해서 이 모습을 지켜보다 피식 웃었다.
“몇 시간 동안 배곯아가며 뒤만 쫓아다녔으니 배가 고프긴 한가 보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거지.”
진혁은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오늘 UFC 페더급 챔피언인 루아 산체스의 챔피언 방어전이 중계되기 때문이었다.
“챔피언의 시합은 현장에서 봐야 하는데.”
최근 자신의 상황이 외국으로 나갈 처지가 되지 못하여 부득이 TV로 지켜보았다.
현 UFC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루아 산체스였기에 시합이 열리는 시카고의 레드미안 아레나는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많은 관중으로 가득 찼다.
챔피언의 소개가 끝나고 루아 산체스가 등장하니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고, 함성으로 인해서 경기장의 천장이 들썩일 정도였다.
“역시 대단하다니까.”
그가 육각형의 경기장 안으로 들어서는 것만으로 가득차 보였다.
오늘 루아 산체스에게 타이틀 도전을 하는 사람은 현 UFC 페더급 7위인 패산드라 오티즈였다.
그가 랭킹 7위라고 하지만 한 방이 있는 선수이고 타격과 그레플링의 균형이 잘 이루어진 선수라 평가를 받으며 스타일 자체가 루아 산체스와 비슷하여 그의 대항마라고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을 할 정도로 뛰어난 선수였다.
“패산드라 오티즈는 멘탈이 약한 것이 단점으로 지적되었는데 이번에는 그걸 고치고 나왔을까?”
패산드라 오티즈가 랭키 7위에 있는 것도 멘탈이 약하기 때문이었다. 그가 멘탈만 붙잡을 수 있다면 충분히 더 상위권으로 올라갈 수 있는 실력이 있었지만 항상 마지막에 멘탈이 붕괴되어 서두르는 경향 때문에 경기를 말아 먹곤 하였다.
진혁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두 사람의 시합을 지켜보았다.
선수 소개가 끝나고 심판이 두 사람을 불러 주의 사항을 이야기를 한 후에 양쪽 코너로 보낸 후에 두 사람과 시선을 맞추었다.
심판이 파이팅 신호를 하자, 두 사람이 케이지 중앙으로 뛰쳐나왔다.
“오늘은 서두르지 않네.”
패산드라 오티즈는 경기 초반에 휘몰아치는 장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오늘 상대가 챔피언이라 그런지 곧장 다가가지 않고 챔피언의 반응을 살피는 모습이었다.
“확실히 챔피언이 여유가 있어 보이네.”
현장에서 보지 못하고 TV로 지켜보지만 진혁의 눈에는 분명 그렇게 보였다.
요즘은 방송 화질이 좋으니 어쩌면 현장에서 보는 것보다 더 자세하게 선수들의 상태를 살필 수가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서서히 압박해 들어가는 챔피언의 모습이 오른쪽으로 케이지를 돌며 압박을 피하는 오티즈였고, 산체스는 서두르지 않고 서서히 압박해 들어갔다.
그러는 순간 챔피언의 맹수다운 사나운 본능이 몸으로 표출되었는데 전광석화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빠른 왼발 하이킥으로 오티즈가 오른쪽으로 도는 것을 봉쇄하더니 왼손 훅으로 갈비뼈를 노리고 주먹을 내질렀다.
순간적으로 타격에 들어간 오티즈는 본능적으로 산체스의 공격을 막았지만 대미지를 조금 입어야 했다.
이어 오티즈가 반격하려고 하는 순간 거리를 벌려 뒤로 물러나 오티즈의 공격 거리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야.”
그 모습을 본 진혁은 감탄을 하였다.
“그 짧은 순간에 오티즈의 움직임을 끊고 유효타를 먹이고 빠져 나오네. 저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오늘 약을 바짝 올릴 것 같은데.”
이전 같았으면 오티즈가 챔피언에게 달라 들었을 텐데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대신 한 발 앞으로 나와 케이지를 따라 도는 것이 아니라 챔피언과 마주선 상태에서 서로 견제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다 오티즈가 먼저 움직이는 것이 화면에 보였다.
진혁은 속으로 시작되었다는 생각을 하였고, 오티즈의 강력한 주먹이 챔피언의 얼굴을 향해 날아가는 챔피언의 허리가 숙여졌다.
“태클!”
진혁이 화면을 보며 태클을 외칠 때, 산체는 양손으로 오티즈의 양발 허벅지를 안고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면서 어깨로 밀어 그를 넘어뜨렸다.
너무도 깔끔한 동작이었고, 오티즈는 제대로 방어도 하지 못하고 넘어졌다.
오티즈가 랭킹 7위라고 하지만 챔피언인 산체스와 기량 차이가 분명하게 보이는 장면이었다.
넘어진 오티즈는 산체스의 공격을 빠져 나오기 위해서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탑 포지션을 잡지 못하게 방어를 하였다.
그레플링 실력이 수준급에 있는 선수라 그런지 챔피언을 상대로 탑 포지션을 빼앗기지 않고 그런대로 방어를 하는 모습이었지만 그렇다고 쉽게 빠져 나오지도 못하였다.
“챔피언이 봐주는 것 같은데.”
-오티즈가 챔피언과 상대하기 위해서 타격보다는 그레플링 훈련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였다고 하였는데 챔피언을 상대로 방어를 잘 하고 있습니다.
해설의 말에 진혁은 오티즈를 다시 보았다.
“코치가 바뀌었나? 오티즈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만큼 순둥이가 아닌데?”
오티즈는 순둥이 보단 악동 이미지가 강한 캐릭터였다.
챔피언을 상대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확실하게 그라운드 방어를 하자, 챔피언은 더 이상은 그라운드로 탑 포지션을 차지하기 힘들다고 판단을 하였는지 그에게서 떨어졌다.
“확실히 랭커란 말이지.”
톱10에 드는 랭커들은 기본적으로 재능이 충만한 자들이었다. 그러한 재능이 노력과 멘탈의 조화로 인해서 순위가 결정이 될 뿐 최소한 톱10에 드는 이들은 누가 챔피언이 되어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실력자들이었다.
그런 실력자들의 대결을 보면서 진혁은 부럽기도 하였다.
“확실히 저들은 내가 상대한 포비아와는 클래스가 다른 사람들이다.”
브라운관 화면만 봐도 그걸 충분히 느낄 수가 있었다.
오티즈를 상대로 저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선수는 아마도 챔피언 루아 산체스뿐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톱10에 들려면 최소한 지금보다 한 단계는 더 성장해야 해.”
단순히 톱10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한 단계 더 성장하여야 하지만 산체스에게서 챔피언 밸트를 빼앗으려면 한 단계가 아닌 두 단계, 혹은 그 이상의 성장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두 사람의 대결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다.
이럴 경우 좌절할 수도 있겠지만 하린은 좌절하기보다는 의욕을 불태웠다.
1라운드가 끝나자, 화면에는 산체스의 모습이 비추어졌는데 너무나 여유롭게 보였다.
2라운드 시작과 동시에 오티즈가 중앙으로 뛰어나오며 산체스를 향해 점프를 하며 플라잉 니킥으로 공격을 하였다.
너무도 눈에 보이는 공격이라 산체스가 빠르게 옆으로 발을 움직여 오티즈의 공격을 피한 후에 왼손 주먹을 오티즈의 옆구리를 향해 뻗었다.
“윽!”
왼손이 정확하게 들어가자, 오티즈가 인상을 쓰며 산체스를 향해 강하게 주먹을 휘둘렀다.
반격을 한다기보다는 연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견제를 하는 의도에서 주먹을 휘둘렀지만 그 의도를 파악한 산체는 허리를 숙여 오티즈의 주먹은 피한 후에 다시 한 번 왼손 주먹으로 옆구리를 공격하였다.
오티즈는 팔을 내려 산체스의 주먹을 막았다. 그 후 이어지는 산체스의 오른손 쨉과 왼손 스트레이트의 공격은 너무나 깔끔하였고, 가드를 올린 오티즈는 그런 산체스의 공격을 방어하였지만 온전히 막아내지 못하였다.
그러자 오티즈는 하이킥으로 산체스의 오른쪽 얼굴을 노려 찼는데 산체스는 허리를 뒤로 깊숙하게 젖혀 피하는 스웨이 백이라는 기술을 이용하여 가볍게 피하였다.
오티즈는 자신의 공격을 피한 후에 산체스의 상체가 원상태로 돌아올 것이라고 예상이라고 하였다는 듯 백스핀 블로우를 이용하여 손등으로 산체스의 얼굴을 향해 휘둘렀다.
“이야, 저걸 피하네.”
산체스는 권투의 기술 중에서 위빙이란 기술로 허리를 중심으로 상체를 살짝 아래로 숙이면서 U자를 그리듯 움직여 오티즈의 백스핀 블로우 공격을 피하였다.
진혁이 감탄하는 순간 산체스의 왼손 주먹이 다시 한 번 오티즈의 옆구리를 향해 날아갔고, 이번에는 제대로 충격이 들어갔는지 오티즈가 몸을 웅크리고 뒤로 물러났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이 모습을 보고 먹이는 노리는 맹수처럼 달려들어 카운트를 뻗어 끝장을 내려고 하였을 텐데 산체스는 그러지 않았다.
“저걸 쫓아가지 않네. 물러나며 뻗어 나오는 뒷손을 염두에 둔 건가?”
물러나는 오티즈를 향해 천천히 접근하는 산체스였고, 오티즈는 충격이 가시기를 바라며 케이지 뒤로 물러나 벽을 타고 오른쪽으로 돌며 산체스의 사정거리를 피해 움직였다.
“굳이 급하게 하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건가? 너무 여유를 부리는 거 아닌가?”
진혁은 자신이었다면 빠르게 쫓아가 공격해서 오티즈를 더 어렵게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을 하였다.
산체스의 발이 허공을 가르자, 오티즈는 두 손으로 얼굴을 방어하며 산체스의 공격을 막았고, 그로 인해서 케이지의 벽에 붙어 멈추어서자, 산체스의 왼손이 오티즈의 허리를 향해 움직였다.
오티즈는 그 모습을 보고 몸을 웅크리며 오른팔을 내려 방어하려고 하는 순간 산체스의 왼손 궤적이 대각선으로 솟구치며 오티즈의 턱을 그대로 강타하였다.
-이번에는 제대로 충격이 들어간 것 같습니다. 오티즈가 비틀거립니다.
해설자의 말대로 오티즈에게 제대로 충격을 준 것 같았다.
“왼손으로 계속해서 복부를 노려서 오티즈를 세뇌시켰구나.”
격투기 대회에서 가끔 나오는 모습이었다.
대부분은 로우킥으로 공격하여 상대가 로우킥에 대한 방어를 하도록 유도한 후에 로우킥으로 공격하는 척하면서 브라질리언 킥으로 변형하여 상대를 얼굴을 노리는 패턴인데 산체스는 왼손 주먹으로 오티즈의 허리와 복부를 노려 계속 공격을 하였고, 마침 큰 충격을 받은 오티즈는 산체스의 왼손이 움직이자, 본능적으로 손이 아래로 내려오면서 얼굴 쪽이 노 가드가 되는 상황이 발생을 하게 되었고, 산체스는 그 빈틈을 정확하게 공략을 한 것이다.
“결국 알아도 당할 수밖에 없는 완벽한 계획이었고, 경기 운영이었다.”
오티즈는 산체스의 주먹에 결국 무너졌고, 산체스는 타이틀을 방어할 수가 있었다.
가장 완벽한 선수, 70억분의 1이라 불리며 페더급에서는 더 이상 적수가 없다고 알려진 루아 산체스는 이번 경기를 통해서 자신의 연승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UFC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무패니 23연승인가?”
UFC대회만 23연승이지, 아마추어, 프로 대회를 모두 합치면 100연승이 넘는다.
지금까지 단 한 번의 패배도 없는 사나이가 바로 챔피언 루아 산체스였다.
“산체스를 이기려면 나이가 들어 신체능력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건가?”
나이가 들면 신체 능력 중 가장 먼저 떨어지는 것이 맵집이라 불리는 내구성이고, 그 다음이 동체시력, 스피드 , 체력 순이고, 가장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순간 대미지를 줄 수 있는 파워였다.
하지만 스피드와 체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파워만 유지한다고 기량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아니니 이대로 4, 5년은 더 흘러야 루아 산체스가 가지고 있는 챔피언 밸트를 빼앗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화면에 루아 산체스의 손이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진혁은 환하게 웃었다.
“내가 도전할 때까지 챔피언 밸트를 잘 간수하고 있으라고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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