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이 있잖아.
“오, 진혁 선수!”
진혁은 엘리스 강과 할리우드에 있는 스트리트 짐이라는 체육관을 들렀다.
넓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낯익은 선수도 몇 명 보였다.
이 체육관의 관장인 트라빌러스가 진혁을 보고 반갑게 맞아 주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당신이 했던 마지막 경기는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제가 격투기 선수로 전향을 한 것도 당신의 시합을 본 후였습니다.”
트라빌러스는 UFC 헤비급 선수로 비록 그가 챔피언은 되지 못하였지만 그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고, 마지막 경기에서 챔피언에게는 패하였지만 그 경기를 본 많은 사람들이 트라빌러스가 챔피언이라고 말을 할 정도 감동을 선사한 경기로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나는 진혁 선수의 경기를 볼 때마다 내가 저렇게 경기를 했다면 챔피언이 되었을 것이란 생각을 하곤 하였어.”
“전 UFC에서 3전 밖에 치루지 못한 선수입니다.”
“아시아에서는 독보적이었잖아. 사람들은 동양보다 서양 사람들이 신체가 조금 더 크고 단단하게 보이니까 동양 사람들을 조금 얕보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정말 잘못된 생각이지.”
“그렇게 생각하세요?”
“물론. 중앙아시아 사람들은 서양인들과 체력차이가 나지 않아. 체격차이가 나는 건 동아시아와 한국을 포함한 극동아시아 사람들인데 한국인은 이들과 달리 체격도 좋지만 신체적인 밸런스가 너무 좋아. UFC를 거쳐 간 선수들을 보면 알 수가 있지.”
사실 한국에도 좋은 선수들이 많았다.
지금에야 조금 뒤쳐져 있지만 진혁이 격투기 선수로 전향하기 10년 전만해도 세계랭킹 톱10에 들어가는 선수가 무려 다섯 명이나 있을 정도로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진혁이 인기가 좋은데.”
“같은 선수니까 알아보는 거지.”
엘리스 강의 입가에 미소가 생겼다. 보통 여자들이 자신의 남자친구가 남들에게 인정을 받을 때, 절로 나오는 그런 뿌듯한 미소였다.
“미스터 트라빌러스, 한두 달 정도 진혁이 이 체육관에서 운동을 했으면 해요.”
“오, 그럼 우리 체육관에서도 대환영이지. 사실 우리 체육관에서는 페더급은 인기가 없는 체급이거든.”
“왜요?”
“챔피언이 워낙 강력하니까 그 밑에 있는 애들도 챔피언만큼 강해서 뚫고 올라가기 힘들잖아. 팬들에게는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는 체급이지만 선수들에게는 외면 받는 체급이 바로 페더급이야.”
진혁은 트라빌러스의 말을 이해하였다. 자신이 체육관 관장이라고 해도 살을 찌워서 한 체급을 올리거나, 아니면 빼서 한 체급을 낮추라고 권하고 싶을 만큼 지금의 페더급은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았다.
“저 친구가 좋아하겠어.”
트라빌러스는 한쪽에서 맨손 훈련을 하고 있는 사내를 가리켰다.
헤어 띠로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 얼굴이 훤히 보였는데 잘생긴 미남형이 얼굴이라 격투기랑은 조금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UFC보다 아래 단체에서 선수로 뛰고 있는 아인데 제대로 된 스파링 선수가 없어 힘들어 하고 있는 중이거든. 뭐, 실력도 조금 떨어지긴 하고 말이야.”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부터 나와서 운동하는 걸로 해요. 미스터 트라빌러스는 진혁이 운동하는데 필요한 것은 모두 제공해 주세요.”
“그렇게 하지. 그런데 엔터 한다는 소문이 있긴 하던데 스포츠 엔터인가?”
“이것저것, 돈 되는 건 다 손을 델 생각이에요. 나중에 가상현실 대전격투 게임이 나오면 그때 트라빌러스도 한 번 해 보세요.”
“그게 정말 나와?”
“한 5년, 길어도 7년 안에는 나오지 않을까 해요.”
뮤라스의 입장에서는 가상현실게임 인더스의 세상을 완벽하게 재현하였기에 대전격투 게임을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다.
다만 그게 수익성이 있으냐, 없느냐를 따져 보았을 때, 가상현실 인더스보다는 턱없이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을 하였기에 만들지 않을 뿐이었다.
대전격투 게임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닌 그들만의 리그, 즉 마니아들을 위한 게임이 될 수도 있고, 인더스처럼 게임 안에서 따로 수익을 창출해 낼 수 있는 건수를 만들 수가 없어 사실상 접은 사업이었다.
다만 이러한 사실은 내부적으로 결정이 난 상황이기에 다른 사람들이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 나도 열심히 운동해서 챔피언 한 번 해 봐야겠군.”
“그렇게 하게요. 나중에 진혁씨가 사용한 경비는 저에게 청구를 해 주세요.”
“아니, 괜찮아. 진혁이 우리 체육관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 우리 체육관을 무료로 이용하게 해 주지.”
“정말요?”
“대신 저치들이랑 좀 많이 싸워 줘.”
트라빌러스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진혁과 비슷한 체급의 선수들이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한두 체급이 높거나, 한두 체급이 낮은 선수들로 보였다.
“저야 좋습니다. 그럼 미국에 있는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나야 말로 잘 부탁하네.”
*
진혁은 운동을 다닐 체육관도 근처로 구했으니 엘리스 강의 말처럼 미국에 있는 동안 운동을 하면서 예전의 몸 상태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식단부터 조절하였다.
진혁이 다시 운동을 시작하자, 그만큼 가상현실 인더스에 접속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 반면 게임에 접속하여 몬스터와 싸울 때는 집중력이 엄청 올라갔다.
진혁은 현실에서도 시간 배분을 하여 생활하려고 노력하였지만 가끔 엘리스 강을 만날 때면 이런 시간 배분은 한 번씩 엇나가곤 하였지만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이러한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진혁은 인더스의 세상에서, 혹은 현실에서도 집중하며 조금이라도 시간을 허투로 쓰지 않으려고 하였고, 그 결과 체육관을 다닌 지 보름이 지난 시점에서 예전의 폼을 완전히 되찾을 수가 있었다.
타다다닥!
진혁은 체육관에서 상대선수와 스파링을 하는 중이었다.
상대가 앞으로 나오며 주먹을 뻗자, 어깨를 먼저 밀어 넣으며 자세를 낮추었다. 상대가 앞으로 나오면서 주먹을 뻗었기에 자연스럽게 그와 붙은 진혁은 두 팔로 상대의 허벅지를 감아 안듯 붙잡고는 밀어 넣었던 어깨로 상대의 배를 강하게 밀치며 두 발을 자신 쪽으로 끌어 당겼다.
쿠우웅!
그러자, 상대는 제대로 반격하지 못하고 그대로 뒤로 넘어졌고, 진혁은 그런 상대를 두고 마운트 포지션을 잡기 위해서 움직였다.
“너무 깔끔한데요. 유도 선수가 아니라 레슬링 선수라고 해도 믿겠어요.”
케이지 밖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은 진혁의 테이크 다운 기술을 보며 감탄을 하였다.
“눈이 좋은 거지. 그리고 두 체급이 위인 상대에게도 전혀 밀리지 않는 힘도 가지고 있고 말이야.”
“프로들 세상에서 두 체급이면 쉽지 않을 텐데 진혁 선수는 참 쉽게 상대하는 것 같습니다.”
진혁은 어느새 마운트 자세에서 몸을 낮추고 상대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내리치고 있었다.
“빠르잖아. 힘도 세고, 눈도 좋아. 그러니 상대적으로 둔한 체급이 높은 선수들이 애를 먹는 거지. 타이슨 알지.”
“핵이빨 타이슨을 말씀하는 겁니까?”
한때 핵주먹이라 불렸던 그가 말년에 상대의 귀를 물어뜯는 사건으로 인해서 핵주먹이 아닌 핵이빨이라 조롱을 당하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복싱계의 전설로 남아 있는 선수였다.
“그래. 그 타이슨이 한때 헤비급을 씹어 먹을 때가 있었어. 언제 질까? 언제 챔피언자리에서 내려올까 하는 것이 세계인의 최대관심사가 되기도 했을 때가 있었어.”
“루아 산체스처럼 말입니까?”
“그래. 그 당시 마이클 타이슨이 지금의 루아 산체스라고 생각하면 돼. 아니 더 대단했지.”
“그런데 타이슨이 왜요?”
“타이슨이 헤비급을 씹어 먹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스피드였거든. 물론 주먹도 엄청 강했지. 하지만 헤비급이면서 웰터급, 미들급 선수의 움직임을 보이니 상대적으로 무거운 헤비급 선수들이 타이슨의 움직임을 쫓아가지 못하는 거야. 그러니 존나 얻어터질 수밖에.”
격투기를 하는 이들인 만큼 그 차이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 그래서 얻어터지기 전에는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말을 한 것이군요.”
“그 당시에는 그랬어. 체구가 작은 타이슨의 스피드와 주먹을 경험해 보지 못한 이들이 깔보고 그랬거든.”
“이해가 갑니다.”
“지금의 진혁이 그래. 체급은 페더급이지만 힘은 웰터급, 혹은 미들급이야. 뿐만 아니라 유도 세계챔피언을 했으니 유도로 다져진 신체적인 밸런싱도 좋아. 진혁이 포지션을 잡으면 상대는 빠져 나오기 쉽지 않아. 지금 깔려 있는 비수만처럼 말이야.”
두 체급이나 위에 있는 비수만은 진혁의 아래에 깔려 빠져 나오려고 하였지만 좀처럼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그는 거미줄에 걸린 작은 곤충처럼 진혁의 아래에서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진혁은 그런 비수만의 얼굴에 간간히 주먹을 날려 대미지를 주었고, 결국 비수만은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는 손으로 바닥을 세 번 두들겼다.
그제야 진혁이 잡고 있던 마운트 포지션을 풀고 일어나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비수만이 진혁의 손을 잡자, 일으켜 주었고, 고생했다는 의미에서 간단한 포옹을 하며 대결을 끝냈다.
“이 새끼야, 체급이 아깝다.”
비수만은 케이지에서 나오자마자 트라빌러스가 한 소리를 하였다.
“보스가 한 번 붙어 보십시오. 진짜 미치겠습니다.”
“그래도 체급이 있지. 힘으로 밀어 붙여야지.”
트라빌러스는 비수만이 힘으로도 진혁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소리치자,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파울러. 이놈 데리고 가서 오늘 왜, 진혁에게 밀렸는지 알려 주고 연습 시켜. 내일도 오늘처럼 힘 못쓰면 시합이고 뭐고 포기 해.”
“나만 미워하는 것 아닙니까?”
“너만 시합이 잡혔으니 그렇지. 시합 안 잡혔으면 나도 너 좋아해.”
진혁은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걸 보며 피식 웃었다.
“진혁, 체력은 어때?”
“괜찮습니다.”
“좋아. 그럼 잠깐의 휴식을 가진 후에 근력 훈련 하고, 스피드 훈련도 해. 그런 후에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알겠습니다.”
진혁은 한국에서 최달수에게 배웠던 것보다 조금 더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트라빌러스가 마음에 들었다.
흔히들 미국은 통계의 나라라고 부른다. 물론 통계가 모두 정확하고 맞는다고 말을 할 수는 없지만 그 통계로 인해서 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출 수 있었고, 그러한 시스템을 통해서 미국이 스포츠 강국이라 불리기도 한다.
진혁은 트라빌러스의 말대로 훈련을 모두 소화시킨 후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로 돌아온 진혁은 샤워부터 한 후에 TV를 켰다.
-가상현실 게임 인더스를 개발한 뮤라스 기업에서 최근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설립하고 프로 게이머들을 영입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받고 있는 인더스 게임이라 그런지 뮤라스에게 뭔가 하기만 하면 뉴스에서 그에 대한 기사를 들을 수가 있었다.
-모두 서른 명으로 구성이 된 프로 게임단 뮤라스는 가상현실 게임 인더스의 메인 퀘스트를 비롯하여 플레이어들이 보다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플레이어를 통해서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이 자리에 뮤라스 그룹의 기획실장인 저스틴이 나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저스틴!
-안녕하세요.
진혁은 TV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신의 일을 하였다.
간단히 샤워를 한 후에 옷을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가상현실 접속기에 편안한 자세로 누웠다.
“나도 접속기를 바꿀까? 최신형이라 그런지 엄청 편하게 느껴지는데.”
접속기 모델이 새로 나온 것으로 한국에 있는 접속기와는 그 차이가 조금 있었다.
진혁은 자신의 몸에 생체리듬 패드를 붙인 후에 헤드기어를 쓰고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 쉬었다.
“접속!”
-인더스 세상으로 접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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