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오랫동안 날 가지고 놀아라.
네피럼의 던전에 소환된 하급전투마족 벨트루는 던전의 문지기 격인 하급마족 네피럼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존재였다.
전투마족이란 말 그대로 싸우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였다.
벨트루는 진혁과 같은 무투가로 격투에 특화된 그런 전투마족으로 격투기 마스터나 다름이 없었다.
진혁은 벨트루와 싸우면서 곤죽이 될 정도 얻어터지는 중이었다.
벨트루 앞에서 너무나 무기력하였다.
‘루아 산체스가 싸우면 이런 느낌일까?’
진혁은 벨트루와 싸우면서 UFC 페더급 챔피언인 루아 산체스를 떠올렸다.
모든 면에서 진혁보다 전투 기술이 앞선 벨트루였고, 그와 싸우면서 거대한 벽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진혁은 자신이 무엇을 해도 벨트루에게는 통하지가 않음을 알고 처음으로 몬스터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그 동안 약간의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래도 승승장구하면서 인더스 월드 안에서는 격투라면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는데 벨트루를 만나면서 그 자신감이 산산이 부서졌다.
벨트루는 진혁이 자신을 두려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진혁을 죽이기보다는 자신의 유희를 위해서 가지고 놀았다.
자신의 손에서 빠져 나가기 위해서 발악하는 진혁의 모습을 보며 어떻게 하면 더 괴롭힐 수 있을까? 농락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처럼 진혁을 천천히 요리하였다.
‘마력을 사용하면 이길 수 있을까?’
진혁은 거대한 벽을 만나 고전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태고의 흑마력으로 진화 중인 자신의 마력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마나 피스트, 마나 킥, 마나 필링과 같은 패시브 스킬은 물론이고 일루젼 스탭, 그림자 밟기, 오러 피스트와 내가중수법과 같은 회피와 강력한 대미지를 줄 수 있는 액티브 스킬도 사용할 수가 없으니 손발을 다 묶고 싸우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도 힘들겠지. 내가 자신의 목숨을 위협할 정도가 된다고 생각을 하면 빠르게 날 죽여 버리겠지.’
전투에 특화된 벨트루를 마력을 사용한다고 해도 이길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벨트루가 진혁의 앞에 순간이동 하여 나타나 주먹을 휘둘렀다.
퍽. 퍽퍽. 퍽퍽퍽. 퍽퍽퍽퍽.
진혁이 벨트루의 주먹을 막기 위해서 가드를 올렸지만 순식간에 십 연타로 두들겨 맞았다.
권투선수가 샌드백을 향해서 스트레이트, 훅, 어퍼컷 등을 사용하여 두들기듯 벨트루는 진혁을 세워 놓고 무차별적으로 두들겼다.
벨트루에게 진혁은 세워 놓은 샌드백이나 다름이 없었다.
진혁이 벨트루에게 엄청나게 두들겨 맞지만 실상 대미지는 그렇게 많이 입지는 않았다.
물렁한 주먹을 솜방망이라 표현하며 상대를 깎아 내리곤 하는데 벨트루의 공격이 솜방망이처럼 큰 대미지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벨트루의 공격력이 약한 것도 아니었다. 아니 전투마족답게 그의 공격력은 엄청나지만 자신의 비해 너무나 약한 진혁이었기에 유희를 위해서 그를 가지고 노는 중이었다.
진혁은 그런 벨트루에게 농락당하면서도 견디는 중이었다. 아니, 진혁이 견디게 아니라 벨트루가 조절을 하는 중이었다.
진혁이 챙겨 온 체력 포션이 인벤토리에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 아마도 제법 오랜 시간 동안 벨트루에게 두들겨 맞으며 시달릴 것이 분명하였다.
진혁은 벨트루가 움직이는 걸 보고 발을 올려 찼지만 그는 진혁의 생각보다 더 빨랐다.
진혁의 발이 허공을 가르자, 벨트루는 바닥을 지지하고 있는 진혁의 발을 잡고 들어 올렸다.
종합격투기에서 흔히 보는 싱글 렉으로 진혁을 들어 올린 후에 바닥에 냅다 꼽아 버렸다.
쿠웅.
“윽!”
입에서 절로 옅은 비명이 흘러나왔다. 진혁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지자, 본능적으로 상대가 마운트 포지션으로 올라오지 못하게 몸을 움직였다.
그 동안의 훈련으로 인한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그런 진혁의 움직임에 반응이라도 하는 듯 벨트루가 움직였는데 그의 행동이 너무나 빠르고 완벽하였다.
순식간에 진혁의 몸 위로 올라 앉아 마운트를 포지션을 잡은 벨트루가 진혁의 얼굴을 향해 파운딩을 하였다.
양손을 번가라가며 진혁의 얼굴을 향해 무차별 공격을 하였고, 진혁은 양손으로 가드를 올려 얼굴을 가리고 상체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벨트루의 주먹을 피해보려고 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컴퓨터로 잰 것처럼 정확하게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벨트루의 주먹이었다.
‘어차피 대미지는 많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차라리 맞아가며 공격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진혁 역시 자신도 벨트루에게 농락당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차라리 방어보다는 공격을 하기 위해서 움직였다.
벨트루가 주먹으로 얼굴을 향해 내리치자, 진혁은 허리의 힘을 이용하여 다리를 높게 들어 올려 몸 위에 올라 탄 벨트루의 목을 걸으려고 하였다.
벨트루는 진혁의 의도를 파악하였는지 상체를 숙이더니 엘보를 이용해서 진혁을 공격하였는데 그의 행동은 MMA 선수와 다를 바가 없었다.
벨트루에 깔린 진혁은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고, 벨트루는 그런 진혁을 보며 자신의 유희를 즐기는 중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진혁을 깔아뭉갠 후에 갑자기 상체를 일으키더니 일부러 진혁의 의도대로 자신의 목을 내어주었다.
진혁은 양발로 벨트루의 목을 감아 조르며 그의 팔을 잡고 끌어 당겼다.
종합격투에서 가끔 볼 수 있는 트라이앵글 초크 기술이었다. 트라이앵클 초크 기술은 완벽하게 들어가지 않으면 목이 완전히 조여지지 않기 때문에 실패할 경우가 많다.
진혁은 벨트루의 팔을 당겨 내린 후에 함께 목을 졸랐다.
진혁이 이렇게 용을 쓰는 것에 비해서 벨트루의 표정은 너무나 평온하였다.
마치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보란 뜻으로 진혁의 의도대로 따라 주었다.
진혁이 완벽하게 트라이앵글 초크를 넣고 벨트루의 목을 졸라 숨을 쉬지 못하게 하였다.
처음에는 여유가 있던 벨트루 역시 숨 쉬는 것이 불편해지니 조금은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동맥을 졸라 숨을 쉬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니 타격해서 고통을 주는 것과는 달리 벨트루에게도 통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통했다.’ 그 뿐이었다.
벨트루는 두 발을 바닥에 딛고 허리에 힘을 주고 트라이앵클 초크를 건 진혁을 들어올렸다.
자신의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진혁을 사정없이 바닥에 내리꽂아 버렸다.
쿠우웅!
큰 소리와 함께 강한 진동이 바닥에 일어났다. 그것만으로도 이번에는 제대로 대미지가 들어갔음을 알 수가 있었다.
“커어억!”
진혁은 고통 속에서도 크라이앵글 초크를 풀지 않고 버텼다.
그런 노력이 가상하였는지 다시 진혁을 들어 올리려고 하는 벨트루는 힘이 빠지는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를 보고 진혁은 이를 악물고 양발에 힘을 주고 더 강하게 목을 졸랐다.
벨트루는 다시 일어나려다 무릎을 꿇고, 또 일어나려다 무릎을 꿇는 걸 반복하였다.
진혁은 어쩌면 자신이 이길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악착같이 트라이앵글 초크를 걸어 유지하였다.
붉어진 얼굴이 터질 것만 같은 벨트루의 모습은 당장이라도 숨이 멈출 것만 같았다.
벨트루의 입에서 침이 진혁의 몸 위로 뚝뚝 떨어졌지만 진혁은 개의치 않고 끝까지 버텼다.
벨트루의 두 무릎이 땅에 닿았다.
“날 가지고 놀 때는 좋았지?”
진혁은 벨트루가 곧 쓰러질 것이라 생각하고 말하였다.
터질 것처럼 붉어진 얼굴을 하고 고개를 든 벨트루는 진혁을 보았는데 숨을 쉬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역역하였다.
“이건 호랑이도 제대로 걸리면 죽는 거야.”
진혁은 자신의 승리를 직감하고 벨트루에게 말을 하였는데, 그의 입에 옆으로 살짝 벌어졌다.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자신을 보고 웃는 듯한 모습에 진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혁이 그 웃음의 의미를 알고 벨트루에게 소리쳤다.
“너, 이 새끼!”
바닥에 꿇었던 벨트루의 두 무릎에 펴짐과 동시에 진혁은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놀이동산에서 번지드롭을 타는 것처럼 허공에서 수직으로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쿠우우웅··· 쿠우우웅··· 쿠우우웅······.
“커어어억!”
세 번이나 강하게 바닥에 내리 꽂히니 진혁이 잡고 있던 트라이앵글 초크가 절로 풀렸다.
이전과 달리 한 번에 체력이 많이 내려가자, 인벤토리에 있는 체력회복 포션이 자동으로 사용되어 대미지로 인해 소모된 체력을 천천히 회복시켰다.
-스탯 맷집이 +1만큼 올랐습니다. 스탯 맷집은 방어력에 영향을 줍니다.
강한 대미지를 입으니 스탯이 올라가는 건 좋지만 이 상황을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앞이 보이지 않았다.
진혁은 인상을 쓰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마치 진혁을 향해 공격해 보라고 가만히 서 있는 벨트루였다.
“까짓 꺼 한 번 죽으면 되지. 일단 죽을 줄 테니까 나 오랫동안 가지고 놀아라. 그래야 나도 배우는 것이 있을 테니까.”
진혁은 이길 수 없는 적에게 두려움과 공포심으로 몸을 움츠리기보다는 이를 악 물고 벨트루에게 달려 들었다.
그의 말처럼 뭔가를 배우기 위함 보단 자신을 가지고 노는 벨트루에게 악에 받쳐 달려드는 것이다.
주먹을 이용해 원투 스트레이트 공격에 이어 하이킥으로 벨트루의 얼굴을 공격하였다.
벨트루는 그런 진혁의 공격을 가볍게 피하고 손을 이용하여 막은 후에, 진혁과 똑같이 원투 스트레이트 공격에 이은 하이킥으로 진혁을 공격하였다.
“커어억!”
벨트루의 하이킥에 머리를 맞은 진혁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넘어졌다.
“시바, 이제 이렇게 날 농락하냐? 그래 어디 한 번 해 너 하고 싶은대로 다 해 봐라.”
진혁은 벨트루의 의도를 알아채고는 그를 향해 소리친 후에 다시 공격을 하였다.
벨트루는 진혁이 하는 공격을 그대로 따라하였고, 진혁은 마치 밀러전을 하는 느낌으로 싸움, 아니 벨트루에게 두들겨 맞았다.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한참을 그렇게 농락당하면서 진혁은 문득 벨트루와 자신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였다.
분명 같은 방법으로 공격하지만 자신과 벨트루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진혁은 원투 스트레이트 공격에 이은 발로 로우 킥, 혹은 하이 킥을 몸이 기억하는대로 움직이며 공격하지만 벨트루는 아니었다.
벨트루는 원투 스트레이트 공격에서 두 번째 공격은 자신을 타격하기 위한 공격이 아닌 시야를 가리기 위한 공격임을 알게 된 것이다.
진혁은 벨트루가 공격해 오면 상체를 살짝 숙여 공격을 피하였는데 그때는 어김없이 발이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그런데 벨트루의 주먹 궤적이 시야를 가려 발이 어디로 날아오는지 볼 수 없게, 혹은 늦게 캐치하여 반응 속도를 늦추게 만들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진혁은 벨트루에게 그가 공격한 것처럼 똑같이 공격을 해 보았다. 그러자 벨트루는 진혁처럼 상체를 좌우로 숙여 피하는 것이 아니라 허리를 젖혀 뒤로 피하면서 시야를 넓게 가져갔다.
진혁은 그 모습을 보고 그 동안 자신이 경기를 잘못 운영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루아 산체스가 인더스 월드를 모험하면서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하더니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구나.’
진혁은 이번 깨달음으로 인해서 이제까지 자신을 농락하는 벨트루에 대한 분노가 말끔하게 사라졌다.
벨트루가 자신에게 가르쳐 준 건 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중한 깨달음이었다.
인더스 월드의 제작진과 기술개발자들은 세계의 많은 무술, 격투기 기술들을 프로그램 하여 몬스터들이 구현할 수 있게 만들었지만 이를 통제하는 슈퍼컴퓨터는 만들어진 프로그램에 만족하지 않고 이를 더 진화를 시켜 놓은 것이다.
AI의 학습효과를 통해서 수백만, 수천만의 대전격투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가장 효과적인 격투 방법들을 몬스터에게 대입시켜 놓았다.
몬스터의 레벨에 따라 격투방식의 난이도가 다 달라지도록 설정을 해 놓고 레벨이 높은 몬스터일수록 고차원의 격투대전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진혁이 이러한 시스템을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지만 분명한 건,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벨트루는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격투가이고, 그에게서 배울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래서 모험하는 것이 좋다니까.”
분노가 고마움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이전의 마음가짐이 싹 변하였다.
이제는 농락당하건 말건, 자신을 장난감취급하든 말든 상관이 없었다.
진혁은 벨트루가 가진 기술들, 전투 방법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걸 목표로 잡았다. 그러는 과정에서 벨트루에게 얼마나 많이 죽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건 자신이 지금보다 더 강해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 생각을 하였다.
“죽으면 사라지는 퀘스트가 아닌 것이 정말 다행이다. 제발 나를 오랫동안 가지고 놀아라.”
진혁은 벨트루가 큰 소리로 외친 후에 그를 향해 도약하여 발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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