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정령 피란체바
진혁은 메리슨의 말대로 루드산포드 백작령에 있는 푸른거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간단한 절차를 마친 후에 장로인 옵티마를 만나기 위해서 그의 방으로 워프하였다.
“어서 오게.”
옵티마가 진혁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자네의 활약 덕분이 길드의 정령사를 구할 수가 있었다고 들었네. 고맙네.”
“아닙니다. 의뢰를 받았으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였습니다.”
옵티마의 입가에 미소가 생겼다.
“사실은 메리슨 장로님께서 저에게 또 다른 힘이 느껴진다면서 정령사의 시험을 한번 받아 보라고 하여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메리슨 장로님께서 그리 말씀을 하셨던가?”
“그렇습니다.”
“음······.”
옵티마는 진혁을 유심히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하이 엘프이신 메리슨 장로님께서 그리 느꼈다면 자네에게 무엇인가 특별한 힘이 있음을 느끼신 것이겠지. 아마도 흑마법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여 그리 말씀을 하신 것 같네.”
옵티마는 진혁이 흑마법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걸까요? 그럼 정령사의 시험은 안 받는 걸로······.”
“아닐세. 우리 길드원도 구해주고 하였는데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다네. 지금 받아 볼 텐가?”
“그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겁니까?”
“적성자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하루를 넘기지 않는다네.”
전직 퀘스트처럼 몬스터를 잔뜩 잡아오라고 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물어 보았는데 그럴 일은 없으니 다행이라 생각을 하고 정령사의 시험을 받겠다고 말을 하였다.
“알겠네. 함께 가세.”
진혁은 옵티마를 따라 정령사의 시험을 받기 위해서 장소를 이용하였다.
‘여기가 정령사가 되기 위해서 적성 테스트를 한다는 그곳이구나.’
플레이어들은 버프를 받아 정령사가 되고 싶으면 정령사가 될 수 있지만 NPC들은 그렇지 못하다.
정령계와 통하는 마법진을 이용해 먼저 정령 친화도라는 걸 테스트 한 후에 정령의 친화도가 어느 정도 있음이 확인되면 정령이 찾아와 그와 계약을 맺는다.
이런 걸 보면 플레이어들은 NPC들에 비해서 엄청난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정령사의 시험을 받는 곳은 푸른거탑의 가장 위에 있는 종탑이었다.
휘리리리링!
바람이 불어 두 사람의 사이를 빠져 나가자 시원함을 넘어 조금은 춥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곳이라네.”
“높은 곳이네요.”
“정령사의 탑마다 다르지만 우리 푸른거탑은 이곳에서 정령의 시험을 받는다네.”
“네. 저기 종 아래로 가서 편안하게 앉아 보게.”
진혁은 옵티마가 시키는 대로 하였다.
“눈을 감고 아무 생각이나 떠올려 보게. 즐거웠던 것도 괜찮고, 신나는 일, 슬픈 일 아무거나 상관이 없다네.”
“알겠습니다.”
진혁은 옵티마가 시키는 대로 눈을 감고 어릴 적 자신이 유도를 처음 시작했던 때를 떠올렸다.
그러자 진혁이 앉아 있는 바닥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며 하나의 마법진을 완성하더니 허공에 달려 있던 종이 천천히 내려와 진혁과 마법진을 덮어버렸다.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진혁은 어릴 적의 기억을 떠올리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진혁과 마법진을 온전히 덮은 종의 겉면에도 은은한 빛의 실선들이 생겨나더니 종 전체에 하나의 마법진을 완성되었다.
“허허!”
그 모습을 보고 옵티마는 웃음을 흘렀다.
“몽크에 흑마법사인 그가 정령 친화도까지?”
옵티마는 종의 겉면에 형성되는 마법진을 유심히 보았다. 마법진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가느다란 빛의 실선들이 움직이는 중이었다.
“음···, 어떤 정령이 그를 반겨 줄까?”
정령은 기본적으로 흙, 바람, 불, 물의 정령이 있고, 이 외에 엘리멘탈 정령이라 불리는 빛과 어둠, 숲, 별, 동물의 정령이 있다.
원소 정령은 성장을 하면서 자신의 특성에 맞게 능력을 개발하는데 가령 흙의 정령은 철이나 다이아몬드 등의 광석이나 보석의 성질을 띨 수도 있고, 순수 흙의 성질을 더 강화되어 성장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엘리멘탈 정령의 경우에는 따로 알려진 것이 없었다. 다만 그들 역시 정령이니 정령이 가진 힘을 사용할 수 있고 그 힘은 원소 정령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옵티마는 흥미롭게 종의 겉면에 만들어지는 마법진을 살펴보았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음에도 여전히 종의 겉면 마법진은 빛을 발하며 조금씩 변형되었다 원상태로 돌아오곤 하였다.
변형이 되었다가 원상태로 돌아왔다는 말은 정령이 접근을 하였다가 진혁과 계약을 맺지 않고 그냥 돌아갔다는 말이었다.
옵티마는 여전히 흥미로운 표정으로 마법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음··· 6시간이 흘렀는데도 정령이 정해지지 않았다면 정령들도 고민을 하고 있다는 말인데, 진혁 군이 품은 흑마법사의 기운 때문인가?”
흑마법사라고 하여 다 악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진혁이 온전한 인간이 아닌 인체 개조를 통해 만들어진 키메라의 성향도 가지고 있어 정령들이 선뜻 나서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는 옵티마는 그가 단순히 흑마법사이니 정령들이 진혁과의 계약을 하지 않고 그냥 돌아간다고 생각을 하였다.
종의 겉면에 흐르는 마나의 선이 계속해서 움직이는 걸 보면 정령들도 진혁을 놓치기에는 아쉬운 모양이었다.
“지금껏 살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군.”
옵티마는 어떻게 결정이 날지 궁금하여 종의 겉면에서 시선을 땔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다시 6시간이 흘렀다.
종의 겉면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마법진과 마나의 실선이 처음처럼 활발하게 움직이지는 않지만 간혹 마나의 실선이 움직이며 정령들이 진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음을 간간히 알려 주었다.
“허허, 그래? 정령계가 지금 난리가 났다고?”
옵티마의 정령이 나타나 지금 진혁으로 인해서 정령계가 소란스럽다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정령왕이 정령들을 진정시키고 있다고?”
물의 정령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리곤 뭐라고 말을 하는 듯 옵티마에게 입을 벙긋거렸고, 옵티마는 놀란 눈으로 자신의 정령을 바라보았다.
“엘리멘탈 정령들까지 움직였다고?”
정령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 불만이 많은 표정을 지었다.
“음···, 어둠 속에 있는 놈들까지 움직인 건가?”
정령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종 안에 있는 진혁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투덜거리듯 입으로 옹알거렸다.
정령이라고 다 착한 놈들만 있는 건 아니다.
옵티마가 말을 한 어둠 속에 있는 놈들 역시 정령을 지칭하는 말로 사람들은 이를 두고 악령이라 부른다.
악령 역시 정령이라 기본적으론 소환자의 명령을 따르지만 성향의 악이라 의로운 일보다는 자신의 즐거움을 우선으로 행동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로 인해서 큰 사고를 칠 때도 있고, 그 사고로 수백, 수천의 생명이 죽음을 맞을 때도 있었다. 무엇보다 악령의 소환자는 끝이 모두 비참하였다.
“진혁군이 현명한 선택을 하였으면 좋겠군.”
악령들이 움직였다는 말을 듣고 걱정과 근심스러운 시선으로 종의 겉면을 바라보았다.
종의 아래에서 생겨난 마나의 실선이 마법진을 타고 올라가며 마법진의 변형을 이루어내었다.
“오······!”
그 모습을 보고 옵티마는 감탄을 하며 변형된 마법진을 살폈다.
“이런 마법진은 처음 보는데.”
지금까지 푸른거탑에 있으면 수많은 정령사들이 정령들과 계약을 하면서 만들어 낸 마법진을 보아왔지만 진혁이 만들어 낸 마법진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엘리멘탈 정령인가?”
자신의 정령도 그런 것 같다며 어둠의 속에서 살고 있는 것들과 계약을 했을 것이라고 말을 하였다.
“보기에는 선한 사람 같았는데 악령과는 계약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모르는 것이라며 자신이 보아온 사람들 중에서는 위선의 가면을 쓰고 앞으로는 선한 척, 뒤로는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인간들을 많이 보아왔다며 옵티마에게 말을 하였다.
“그래. 그게 인간이지. 하지만 순수하고 착한 인간들도 많이 있단다.”
정령이 입술을 삐죽였다.
완성이 된 마법진에서 강력한 빛이 뿜어져 나와 종 전체를 감싸더니 종 안으로 스며들어가는 것처럼 안으로 스며들어 사라졌다.
진혁이 자신을 선택한 정령과 성공적으로 계약을 끝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서서히 종이 올라가고 진혁의 모습이 보였는데 진혁은 여전히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그런데 있어야 할 정령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정령은?”
옵티마가 자신의 정령에게 물어 보았다.
물의 정령은 분명 정령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모습이 보이지 않아 당혹스러운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옵티마는 진혁이 깨어나기를 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진혁이 깨어나자 옵티마가 성급한 마음에 물었다.
“정령과 계약을 하였는가?”
“그렇습니다. 아주 멋진 친구를 얻었습니다.”
진혁은 자신의 오른쪽 어깨를 보며 말을 하였고, 그의 시선에 따라 옵티마와 그녀의 정령도 진혁의 오른쪽 어깨로 시선을 주었다.
“자신은 어둠의 정령이라고 하네요. 스스로 빛을 흡수해서 자신의 모습을 감추었다고 하네요. 부끄러움이 많은 친구입니다.”
진혁이 자신의 정령을 소개하자 그의 어깨에 앉아 있는 어둠의 정령은 잘했다는 시늉으로 진혁의 볼을 자신의 얼굴로 쓰다듬어 주었다.
어둠의 정령은 작은 새끼 고양이의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이는 진혁의 생각이 많이 반영이 된 모습이었다.
엘리멘탈 정령은 다른 원소 정령들과 달리 정형화된 모습이 아닌 소환자가 원하는 모습으로 앞에 나타나는데 진혁이 어릴 적 고양이를 좋았던 탓에 어둠의 정령이 고양이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의 모습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계약자가 다른 모습을 원하면 때, 혹은 자신의 의지로 모습으로 바꾸기도 한다.
“어둠의 정령이라면···, 엘리멘탈 정령에 속하는 정령인가? 어둠의 정령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네. 혹여 악령은 아니가?”
진혁은 자신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정령에게 물었고, 정령은 그렇다고 대답을 하였다.
“아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하찮은 일반 엘리멘탈 정령과 잡것들과는 비교하지 말라고 말을 하는데요.”
“그, 그런가? 지금까지 어둠의 정령과 계약한 사람은 없었다네. 내가 알기로는 자네가 처음인데 혹여 자네의 정령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싶은데 괜찮겠나?”
“물어 보십시오.”
“엘리멘탈 어둠의 정령도 원소 정령들과 같이 등급이 하급, 중급, 상급, 최상급으로 등급이 나누어져 있나?”
“아니라고 합니다. 엘리멘탈 어둠의 정령은 일반 정령들과 같이 성장은 하는데 등급이 올라가면서 모습이 바뀌거나 그러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아, 그런가? 성장은 하되 등급은 없다. 그럼 힘의 우위로 정령의 서열을 결정하는 건가?”
“그렇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엘리멘탈 정령들은 소환자의 능력도 힘으로 포함시키기에 소환자의 능력도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렇군. 이러고 물어 볼 것이 아니라 우리 내려가서 차를 한 잔 마시면서 대화를 조금만 더 나누어 보세.”
진혁은 그의 말을 듣고 잠깐 동안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그에게 양해를 구하였다.
“죄송합니다. 이 친구가 오늘 피곤한 가 봅니다. 오늘은 쉬고 내일 다시 이야기를 나누면 안 되겠습니까?”
“아, 그런가? 그렇게 하세. 내가 어둠의 정령을 처음 접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흥분을 한 것 같네.”
“아닙니다.”
“그럼 내일 나와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어 보세.”
“그렇게 하겠습니다.”
진혁은 엘프 장로인 메리슨의 조언으로 뜻하지 않게 정령사 길드에서 정령과 계약하는 행운을 얻을 수가 있었다.
계약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집이 깔끔하게 청소가 되어 있었다.
“이제 들어오십니까?”
“네. 이곳에서 생활하는 건 어떠세요?”
“아주 편합니다. 이렇게 편해도 되나 싶을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전 방에서 조금 쉴 테니까 그만 쉬도록 하세요.”
진혁은 집을 관리하는 알비스와 몇 마디 나눈 뒤 2층으로 올라갔다.
저택 1층은 알비스 가족이 사용하고 2층은 진혁이 사용하기로 하였는데 아무래도 진혁의 입장에서는 1층보다는 2층이 더 편해서였다.
방으로 들어서자, 진혁의 오른쪽 어깨 위에 앉아 있는 어둠의 정령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너무 좋아. 너무 좋아. 어둠의 마력, 그것도 사령이 깃든 마력이라니 너무 좋아. 어둠의 짙은 순수한 마력이 더 좋긴 하지만 그래도 사령이 깃든 마력을 얻어야 어둠의 짙은 순수한 마력을 얻을 수가 있으니 좋아. 정말 좋아.
어둠의 정령은 진혁의 어깨 위에서 기분이 좋은 듯 말을 하였다.
작은 고양이의 등에서 작은 날개가 생겨나더니 한 번의 날갯짓으로 몸을 허공에 띄워 방안을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정말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좋아?”
-너무 좋아. 더구나 네가 강해서 더 좋아.
“그래. 그런데 내가 너를 뭐라고 불러야지? 어둠의 정령아 이렇게 부르는 것도 조금 이상하잖아.”
-이름? 난 그런 거 없는데.
“그래? 그럼 내가 지어 줄까?”
-응. 예쁜 이름으로 지어 줘.
어둠의 정령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진혁을 보았다.
“네오?”
-네오? 안 예쁜데.
진혁은 우크라이나의 피겨 요정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여인이 떠올라 이름을 말하며 물었다.
“그럼 피란체바는 어때?”
-피란체바? 예쁘다. 피란체바 이름 예쁘다. 나 이제부터 피란체바 할래.
“그럼 앞으로 피란체바라 부를게. 잘 부탁해.”
-그래. 나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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