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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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혁은 유현만이 돌아올 때까지 체육관을 봐주는 동안 운동하러 오는 관원들까지 챙겼다.
진혁은 일반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운동을 하는 선수들에게는 꽤나 유명 인사였다.
특히 격투기에 관심이 많은 어리고 젊은 친구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자세를 더 낮춰야지. 자세가 올라가면 빈틈이 너무 많이 보여. 그리고 자칫 동작들이 뻣뻣해질 수도 있다. 그러면 두들겨 맞는 거야.”
진혁은 관원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노하우를 조금씩 가르쳤는데 관원들 모두가 진혁의 말을 잘 따랐다.
“코어가 중요해. 타격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래플링으로 가면 코어의 힘으로 얼마나 버티느냐, 혹은 누르고 있느냐도 중요하니까. 밸런스를 잡는 운동도 같이 해 줘야 하는 거야.”
관원들을 가리키며 그들이 스스로 운동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그때부터 진혁이 몸을 풀며 자신만의 루틴대로 운동을 시작하였다.
진혁이 운동을 시작하면 관원들은 힐끔힐끔 진혁을 쳐다보았는데 그들의 얼굴에는 부러움과 감탄이 함께 섞인 그런 표정들이 가득하였다.
그렇게 진혁은 오전과 오후의 시간을 대부분 체육관에서 보낸 후에 저녁에 나오는 체육관 코치에게 마무리를 맡기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것이 최근 진혁의 하루 일과였다.
집에 도착한 진혁은 샤워를 한 후에 인더스 월드에 접속을 하는데 운동으로 인해서 많은 시간을 들여 게임을 즐길 수는 없지만 나름 알차게 게임을 즐기는 중이었다.
케빌로스 길드를 비롯하여 거대길드들과 원수 사이가 되고, 척살령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진혁을 죽이기 위해서 찾아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어쩌다 우르르 몰려와서 진혁을 죽이려고 하지만 진혁은 그들과 싸우기 보다는 도망치는 걸 택했고, 몰려 온 놈들 중에서 체력이 가장 약한 마법사, 레인져와 같은 직업의 플레이어들은 꼭 한 두 명은 죽인 후에 아이템을 먹고 도망을 쳤다.
“하하하, 다음에 또 보자. 이건 내가 잘 쓸게.”
진혁으로 인해서 이들 길드의 피해가 갈수록 커져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회유도 하고, 협박도 하고, 한 달에 1억을 준다고 길드 가입도 권해 보았지만 진혁은 단칼에 거절하였다.
“왜, 거절하는 거지?”
“재미있잖아. 너희들이랑 싸우는 것도 내가 인더스를 하는 이유 중 하나인데 그 재미를 빼앗기면 내가 무슨 낙으로 게임을 할까?”
“매달 1억이다.”
“1억이 무슨 대수라고. 너희들 아이템 두, 세 개만 벗겨 먹어도 1억은 버는데. 난 그냥 너희들 아이템 벗겨 먹는 걸로 놀 거다.”
모두가 고레벨들이고, 거대길드는 가입 기준이 최소 유니크 아이템 이상이니 이들과 싸워서 이긴 후에 이들이 떨어뜨린 아이템을 주워 파는 것이 더 큰 돈이 되었다.
그 돈으로 땅도 사고, 집도 짓고 하는 것이니 진혁의 입장에서는 이들 길드에 가입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볼일 다 봤으면 그만 꺼져.”
거대길드를 상대로 진혁처럼 당당할 수 있는 플레이어가 몇 없으니 이들의 싸움을 지켜보는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는 또 다른 재미를 주기도 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유현만이 체육관으로 돌아왔다. 이용현은 아쉽게도 패하였지만 그래도 잘 싸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에서는 잘 싸운 것만으로는 미래를 기대할 수 없기에 이용현은 체육관으로 돌아온 후에도 다음 시합을 기다리며 훈련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진혁은 유현만이 돌아오자, 엘리스 강과 약속한대로 미국, 로스앤젤리스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여기야!”
진혁이 로스엔젤리스 공항에 내려 입국 수속을 끝내고 게이트를 나오자, 엘리스 강이 진혁을 반겼다.
“회사 일은?”
“이것도 일인데. 우리 매니지먼트 소속 선수가 불편함이 없도록 캐어하는 거 말이야.”
“고마워.”
엘리스 강이 활짝 웃었다.
“어떻게 호텔로 먼저 갈래? 아니면 체육관으로 가서 스태프들을 만나 볼래.”
“당연히 체육관으로 먼저 가야지. 인사드리고 저녁까지 먹은 후에 숙소로 돌아오면 될 것 같은데.”
“그래. 그럼 그렇게 해. 너 체육관에 있을 동안 난 다른 업무를 보면 되니까. 일단 체육관으로 가자.”
엘리스 강은 할리우드에 위치한 종합격투기 체육관인 스트리트 짐으로 진혁을 데리고 갔다.
“안녕하세요.”
스트리트 짐에 도착하여 진혁과 함께 체육관 안으로 들어서며 인사를 하는 엘리스 강이었고, 관장인 트라빌러스는 엘리스 강에게 연락을 미리 받았는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어서 와. 여기까지 온다고 고생했지.”
“고생까지는 아닙니다. 시차적응을 하긴 해야 하는데 그건 밤새도록 신나게 놀다보면 절로 되지 않을까 합니다.”
미국과 한국은 밤낮이 다르니 진혁의 말대로 미국의 낮 동안 신나게 돌아다니다 밤이 되면 잠을 청하면 된다.
물론 하루 만에 시차적응이 힘들 수도 있지만 이런 일들을 자주 경험해 보았기에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다.
진혁의 대답에 트라빌러스는 화통하게 웃었다.
“그렇지. 신나게 노는 것만큼 시차적응에 좋은 것도 없으니까. 그럼 오늘 바비큐 파티는 어때?”
“와아아아!”
바비큐 파티라는 말에 체육관의 선수들이 함성을 질렀다.
“물주님!”
트라빌러스는 엘리스 강을 물주라 부르며 그녀에게 당당하게 요구를 하였다.
“오늘 소 한 마리, 돼지 한 마리 잡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래요. 그렇게 하세요. 진혁 선수가 오늘 스트리트 짐에 합류를 하는 날이니 축하할 겸 파티를 하세요. 단, 주변에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아직은 평판도 중요하니까요.”
*
확실히 한국 문화와 미국 문화는 달랐다.
바비큐 파티를 한다고 하지만 정말 말 그대로 바비큐 파티였다.
고기 굽어 먹고, 이야기 나누고 술도 한 잔 곁이고, 가벼운 음악소리와 함께 흥얼거리는 정도···, 과하지도 않으면서 적당히 흥이 있는 그런 파티였다.
시끄러운 장소를 좋아하지 않은 진혁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파티가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바비큐 파티를 끝내고 호텔로 온 진혁은 이전에 사용했던 호실을 그대로 사용하였는데 인더스의 접속기도 그대로 있었다.
접속기를 보니 인더스에 접속을 하고 싶었지만 참기로 하였다.
술도 한 잔하였지만 지금은 게임보다는 잠을 자야 할 시간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였다.
진혁은 씻고, 침대에 눕자,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그렇게 눈을 뜨니 날이 밝아오고 있었는데 시계를 보니 오전 6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미국은 조심하는 게 좋겠지.”
한국이었다면 조깅이라도 하였을 테지만 미국은 아무리 대도시라고 해도 사람이 드문 시간에 밖을 다는 건 위험하였다.
진혁은 침대에서 일어나 샤워를 한 후에 가벼운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후에 접속기로 가서는 인더스 월드에 접속을 하였다.
몸에 각종 패드를 붙인 후에 편안한 자세로 누운 후 가상현실 기어를 착용하였다.
“접속!”
-가상현실 게임 인더스 월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익숙한 음성과 함께 접속에 필요한 몇 가지를 확인하더니 곧장 접속을 할 수가 있었다.
접속하니 크로만 후작령의 본령이었다. 본령의 여관에서 깨어난 진혁은 밖으로 나왔다.
진혁이 본령의 길을 걸어가다 식당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보였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식당의 노천 테이블 위에 피란체바가 앉아 있었다.
“피란체바?”
피란체바가 진혁을 보자 등에 달린 날개를 움직여 진혁에게 날아와 그의 머리 위에 앉았다.
“내가 배가 고파서 먼저 와 있었어.”
엘리멘탈 정령은 계약자가 접속치 않아도 게임 안에서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거나 뭔가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걸 피란체바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다음에는 피란체바가 언제든지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내가 주인에게 말해 놓을게.”
“응, 나 가끔 진혁 기다리다 배가 고파 죽을 뻔 한 적도 많아.”
그 말에 진혁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알았어.”
피란체바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진혁을 보자, 사람들은 부러운 시선으로 진혁을 보았다.
피란체바란 정령을 소환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가 인더스 월드에서 가장 핫한 사내이자, 어쩌면 인더스 월드에서 가장 강한 사나이일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퍼져 있어서였다.
그러한 소문이 퍼진 이유는 케빌로스 길드와 아틀란티스 길드의 길드원들과 싸우면서 엄청난 방어력과 막강한 공격력으로 다수와의 전투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 싸움을 할뿐더러 그들을 박살내며 아이템을 챙기기까지 하니 그리 생각할 뿐이었다.
유트브를 비롯하여 각종 동영상 업로드 플렛폼에서는 진혁과 관련된 동영상이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특히 진혁이 직접 올린 영상들은 다른 크리에이터들이 촬영하고 영상을 올린 것보다 더 인기가 많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전투를 수행하는 당사자이니 1인칭 시점 업로드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1인칭 시점의 장점은 내가 직접 전투를 하는 것처럼 대리만족에서 최상의 만족감을 얻을 수가 있어 폭발적인 조회수가 나오고 있었다.
동영상을 본 사람들은 어떻게 이러한 움직임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기도 하였지만 간혹 인터넷에서 몽크흑마법사 동작 따라하기 챌린지가 이어지고 있어 고난위도의 아크로바틱 동작들을 따라하는 이들이 생겨나며 가능하다는 걸 사람들도 알게 되었다.
다만 그냥 따라하는 것과 몬스터, 혹은 플레이어들과 싸우면서 그런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을 선보인다는 건 다른 이들에게는 무리가 조금 있었다.
진혁이 식당의 노천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였다.
피란체바로 인해서 진혁이 몽크흑마법사임이 알려졌지만 누구도 진혁에게 말을 걸어 볼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그렇게 플레이어들이 하나둘씩 돌아가자, 진혁은 그제야 피란체바에게 물었다.
“우리 이제 어디로 갈까? 해적 잡으러 갈까?”
“아니, 해적보다 다른 놈들 잡아.”
“그래. 그럼 베리트 영지로 가보자.”
“베리트 영지?”
“그래. 베리트 영지에는 탐욕의 탑이라는 곳이 있데.”
“아, 탐욕의 탑은 나도 알아.”
“그래?”
“응, 그런데 기억은 안 나. 아주 오래전에도 탐욕의 탑이 있었거든.”
“탐욕의 탑은 모두 25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우리 탐욕의 탑으로 가서 25층까지 올라갔다 그렇게 오자.”
“알았어. 누구 빨리 올라가나 내기 할까?”
“몬스터도 사냥해야 하는데.”
“그럼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가면 되지.”
“그래. 그렇게 하자.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누가 빨리 올라가나 내기 하자.”
“응. 어서 가자.”
피란체바가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것처럼 흥미로운 표정을 하더니 재촉했다.
“그 전에 할 일이 있어.”
“무슨 일?”
“동동일, 동동이... 입힐 아이템을 업그레이드 해 줘야 해. 그래야 더 강해져서 우릴 도와 주지.”
“알았어. 그럼 얼른 가.”
“그래. 피란체바는 먹는 거 마저 먹어. 다 먹어야 가지.”
피란체바는 진혁의 말에 입을 크게 벌리더니 접시 채로 한 번에 음식을 다 먹어 버렸다.
“너어······.”
“얼른 가.”
진혁은 피란체바와 함께 대장간을 찾아갔다. 후작령 이상에는 드워프가 운영을 하는 대장간이 있었고, 이들은 전설급 이상의 아이템만 취급하는 NPC로 설정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찾아간 대장간은 인간들이 운영하는 대장간보다는 조금 한산해 보였다.
“어찌 오셨소?”
“아이템을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아이템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재료와 많은 돈이 들어가는데?”
“그건 준비해 왔습니다.”
진혁은 플레이어들을 죽이고 얻은 유니크 아이템들과 이를 업그레이드 시켜줄 룬석, 그리고 기본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마정석과 제일 중요한 금화를 대장장이에게 주었다.
“강화할 아이템은 모두 다섯 개입니다.”
다섯 개란 말에 드워프의 표정이 밝아졌다.
“허허, 귀인이시구먼. 안 그래도 손님이 없어 굶어 죽기 직전이었는데. 내가 업그레이드를 잘 해 줄 터이니 나만 믿게. 원하는 옵션이 있는가?”
“스턴 관련된 옵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방어구는 대미지 반사 옵션.”
“알겠네. 시간은 좀 걸리니 내일 찾으러 오게.”
“감사합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진혁은 대장장이에게 인사를 한 후에 대장간을 나섰다.
“아이템을 내일 찾으러 오라고 하니 오늘은 소환수들 부르지 말고 우리끼리 사냥하자.”
“그래. 하지만 백호는 불러 줘. 나 다리 아파.”
그 말에 진혁은 피식 웃었다.
“그래. 그럼 우리 백호타고 베리트 영지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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