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천후,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다(1)
196화.
지금 왕국은 전쟁중이다. 전쟁중에 상급 기사나 고서클 마법사를 초빙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초빙할려도 해도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자작성에서 다시 마을을 찾아 온것은 1개월후였다. 전번에 찾아온 기사와 병사 두명이 고작이었다.
"무슨 일로 온거냐?"
"정령사님, 제안할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말해 봐."
"들어 가서 이야기하면 않되겠습니까?"
말도 되지 않는 일이다. 목책안으로 들어가면 이 마을 사람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지 파악할수 있기 때문이다.
"웃기지 마라.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그곳에서 해라."
"크흠, 저희 왕국이 지금 전쟁중이란걸 아실겁니다. 그래서 정령사님이 전쟁에 참가해 주십사하고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만약 참가해 주신다면 어떤 부탁이든 들어 드리겠습니다."
"들어볼 가치도 없다. 그냥 가라. 내가 왜 전쟁터에 가야 하냐?"
남의 전쟁에 끼어 들고 싶진 않았다. 전쟁에 참가한다면 이 마을은 아마 자작이 철저히 조사해 밀은 물론 감자등의 종자를 빼았아갈것이다. 이 마을을 건드리지 않는다고 약속을 할것이 뻔하겠지만 그런 약속은 반드시 지켜 진다고 해도 갈 이유가 전혀 없었다.
"정령사님이 참전해 주신다면 톨리트 마을에서 징집된 사람들을 모두 돌려 보내 드리겠습니다."
"어떤 제안을 하더라도 절대로 가지 않는다. 그만 가라."
마을에서 징집되어 간 사람들이 얼마나 살아 있는지는 모르지만 거의 없을 것이다. 징집병들은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채 화살 받이용으로 이용되었을것이 뻔했다. 전쟁터에서 가장 먼저 죽는게 징집병들이다. 더이상 들어 볼 필요도 없었다. 목책 아래로 내려갔다. 기사가 마을로 접근하는지 그냥 포기하고 가는지는 기척만으로도 알수 있다.
'저 놈이 감히!'
기사는 목책 밖에서 야영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냥은 물러 가지 않는다는 시위였다. 다시 목책위로 올라갔다.
"당장 돌아 가지 않는다면 네놈을 죽여 버리겠다."
화가 난 천후는 살기를 쏘아 보냈다. 살기가 집중된 기사는 덜덜 떨었다. 후덜거리는 다리로 천후를 바라본 기사는 엉거주춤한 자세였다. 살기를 거두자 그제야 기사는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방금 느꼈을꺼다. 당장 네놈을 죽일수도 있다. 죽고 싶지 않다면 꺼져라."
"어, 어떻게 한것입니까?"
"알것없어. 인내심이 바닥나기 전에 당장 꺼져."
천후의 경고에 기사는 야영 준비를 거두고 되돌아 가고 있었다. 더이상 찾아 오지 않길 바랬지만 4개월후 영지민으로 보이는 청년 한명과 중년인 한명이 찾아 왔다.
"하르센 아저씨!"
"아는 자냐?"
"예. 징집되어 간 아저씨와 안면이 있는 마을 사람입니다."
스밍의 말에 징집되어 간 자들이 돌아 왔다는 것은 전쟁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징집되어 갔는지는 모르지만 고작 두명만이 살아 온것이다.
"스밍! 오랜만이구나. 문을 열어라."
"잠시만요."
"기다려."
목책문을 열려고 달려 갈려는 스밍을 제지했다. 확인할것이 있어서였다.
"전쟁은 끝난거냐?"
"누구십니까?"
"묻는 말에 답하라."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상했다. 전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징집병을 돌려 보낸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다. 중상자라고 해도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해 이곳으로 오지도 못하고 죽을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전쟁터에서 돌아 올수 있었던거냐?"
"보십시요. 부상을 입어 돌아 온것입니다."
하르센이라는 자가 겉옷을 들추자 가슴에서 배쪽으로 길게 베인 흔적이 드러났다. 즉시 사이킥 스캔으로 얼마큼의 부상이었는지 살펴 보았다. 살가죽만 베인 탓으로 목숨에는 전혀 지장이 없는 부상이었다.
"다른 자는?"
젊은 청년은 바지춤을 끌어 올려 다리를 보여 주며 몇걸음 걸었다. 다리에는 긴 흉터가 남아 있었으며 다리를 절고 있었지만 심하진 않았다. 저 정도 부상이라면 다시 전쟁터에 투입되어도 문제없을 것이다. 구린 냄새가 났다. 자작이 흉계를 꾸미고 있다고 판단되었다.
"너희 둘! 묻는 말에 솔직히 말해라. 거짓말을 하는 즉시 목을 날려 버리겠다. 누구의 지시로 이곳으로 온거냐?"
"지, 지시라니요? 부상을 입어 돌아 올수 있었던겁니다."
"젊은 네놈도 마찮가지냐? 살고 싶다면 솔직히 말해라."
"그, 그렇습니다."
젊은 놈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대답했다. 놈들은 살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훌쩍.
목책 아래로 뛰어 내린 천후는 두놈에게로 다가갔다. 주춤거리는 두놈에게로 접근해 분근착골을 시전했다.
"크아아아~!!"
"으아아악~!!"
뼈가 뒤틀리는 고통에 경기를 일으키는 두놈은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비명을 내질렀다.
"캐, 캐논님!"
목책위에서 지켜 보던 스밍의 당황스런 외침이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놈들을 고문하면 왜 마을로 돌아 왔는지 알수 있는 일이다.
"이제 솔직히 말할 생각이 드냐?"
"크아...사, 살려 주...크아악~!!!"
계속 비명을 지르는 두놈에게 시전한 분근착골을 풀어 주었다. 고작 몇분도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두놈은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왜 온거냐?"
"헉헉헉...여, 영주님의 명령으로 온겁니다."
역시였다. 두놈이 털어 놓은 내용은 톨리트 마을의 상황을 보고하고 마을에 있는 정령사를 전쟁터로 끌어 들이기 위해 마을로 돌아 온것이다. 만약 성공하면 전쟁터에 남아 있는 중년인의 동생과 젊은 놈의 형을 돌려 보내 주는 조건이다.
"스밍! 두놈은 첩자다. 놈들을 죽이겠다."
"캐, 캐논님! 제발 죽이진 말아 주십시요. 살려 주십시요."
"난 한번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킨다. 놈들은 살 기회를 스스로 버렸다. 고문을 하지 않고 놈들을 마을안으로 들였다면 마을 상황이 영주의 귀에 들어 갔을것이다. 살려둘 이유는 없어."
"그, 그래도 제발 살려 주십시요."
스밍이 애원했다. 하르센이라는 중년인은 스밍이 잘 아는 사람같았다. 친척일지도 몰랐다.
"네가 그렇게 애원한다면 살려 주지. 단, 너희들에게 베푼 모든걸 거둔후 난 마을을 떠나겠다."
스밍은 고민해야했다. 하르센 아저씨를 살리고 싶다면 많은 것을 잃어야했다. 그렇다고 아저씨를 죽게 내버려 둘순 없었다. 입술을 굳게 깨문 스밍이 결단을 내렸다.
"사, 살려 주십시요."
"알았다."
번쩍.
그 자리에서 사라진 천후는 식량 창고로 들어가 밀과 감자, 말린 채소는 물론 씨앗까지 모두 아공간에 집어 넣었다.이미 빻아 놓은 밀가루는 모두 남겨 두었다. 이 밀가루만으로도 몇달은 생활할수 있을 것이다. 마을 밖으로 모습을 숨기고 나온후 농경지에 자라고 있는 모든 작물을 태워 버렸다. 마을 사람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작물이 자라 씨앗이 퍼지는것을 방지한것이다.
그대로 놔 둔다면 자작이 이 마을의 종자를 빼았을것이 분명했다. 저수지는 그대로 두었다. 앞으로 마을 사람들이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선 밀가루를 팔아 종자를 구입해야 한다. 그전에 자작군이 들이 닥쳐 마을을 풍지박살낼것이 틀림없었다.
활활 타는 농경지의 불을 보고는 마을 사람들이 달려 나왔다. 그 중에는 엘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동안 정이 든 엘은 데리고 가리고 했다. 마을 사람들 뒤에 모습을 드러내자 천후를 알아 본 사람들이 급히 길을 열어 주었다.
"아저씨! 불을 꺼 줘요."
"저 불은 내가 낸거다."
듣고 있던 마을 사람들이 경악하고 있었다. 왜 불을 낸것인지 간단하게 설명해 주자 모두들 스밍을 죽일듯이 노려 보았다.
"엘! 나하고 같이 갈테냐?"
"응!"
"이리 온!"
후다닥 안겨온 엘을 안아 들었다.
"캐, 캐논님! 저도 데려가 주십시요."
용병인 번리가 급히 소리쳤다. 그러자 다른 용병 두명도 데려가 달라고 애원했다. 도주하지 않고 살아 남은 용병은 모두 5명이다. 그중 두명은 마을 처녀들과 눈이 맞은 상태로 마을에 남을려는듯 부탁하지 않았다. 엘 혼자만 데려 갈려고 했지만 어쩔수 없이 세명도 데려 가기로 했다.
"좋다. 내 근처로 와라."
용병 세명이 다가오자 사이킥 워프로 마을 외곽으로 이동했다. 갑자기 용병들을 데리고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자 마을 사람들은 멍한 표정이었다. 천후가 사라진 그날 저녁 창고를 둘러본 마을 사람들은 창고안에 있던 많은 밀과 감자가 모두 사라지고 없자 화를 내며 스밍에게로 몰려가 때려 죽이는 참사가 발생했다.
***
"캐논님, 어디로 가실런지요?"
"나도 모른다. 지리를 전혀 모르는 탓으로 갈곳이 없다. 마물산으로 갈까?"
마물산이라는 말에 번리와 다른 두 용병 녀석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런 녀석들에게 마물산의 상황을 설명해 주자 입을 쩍 벌리며 놀라워했다.
"그냥 너희들이 알고 있는 곳으로 가자. 될수 있으면 사람들이 적은 곳이면 좋겠다."
"그럼 왕국 서쪽의 델칸 백작령의 차탈린 마을로 가시겠습니까?"
차탈린 마을은 바닷가에 인접한 마을로 인구는 백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라고 했다. 번리의 고향으로 백작령에서도 가장 외곽에 위치해 있었다. 세금을 낼때엔 마을 촌장이 직접 다른 마을로 이동해 그 마을로 찾아 오는 징수관에게 세금을 낸다며 길을 잘못들어 찾아 오는 사람외엔 외부와의 소통이 차단된 조용한 마을이라고 했다. 차탈린 마을로 가기로 결정했다.
백작령까지는 도보로는 무려 여섯달이 걸린다고 해 마차를 구입하기로 했다. 자작성으로 들어 갈순 없었다. 자작성으로 들어 가면 음모를 꾸민 자작놈을 죽이고 싶어 질것이다. 자작성과는 반대편인 데델 남작령으로 가기로 했다. 남작령까지는 40일거리로 5일거리에 있는 큰산을 넘으면 더 빨리 갈수 있지만 몬스터들이 우글거려 빙 돌아 가야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산을 넘는다."
"알겠습니다."
산은 특이하게도 트롤산이라고 부른다. 트롤이 엄청나게 많아 그렇게 부른다. 대형 몬스터인 오우거나 미노타우로스가 없는 탓으로 트롤이 산의 주인이 되어 버린것이다. 트롤산이라는 말을 들은 천후는 보물산으로 들렸다. 트롤의 피가 가득한 보물 창고나 마찮가지였던 것이다.
빨리 보물산으로 가기 위해 위치를 말하라고 한뒤 모두를 데리고 사이킥 텔레포트로 이동했다. 좌표를 알면 워프로 이동했을것이지만 용병들이 좌표를 알고 있을리가 없었다. 도보로 이동하는것 보단 수백배나 빨리 보물산에 도착했다. 오늘은 산 아래쪽에서 야영을 하고 다음날부터 산을 오르기로 했다.
타닥타닥.
모닥불을 둘러 싸고 모포를 깔고 자는 이들과는 달리 천후는 명상을 하며 밤을 지새웠다. 중간계로 내려와 하루도 잠은 자지 않았다. 오로지 명상만으로 밤을 보낸것이다. 천마신공은 생각하면 할수록 깊이가 더해갔다. 십이성 대성했다고 생각했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 점을 깨달은 천후는 명상으로 천마신공을 연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쿠와아앙앙!!"
거대한 트롤 한마리가 앞길을 막고 있었다. 용병들은 두려움에 덜덜 떨고 있었다. 용병들에겐 롱소드를 한자루씩 건네 준 상태지만 소드 익스퍼트에 들지도 못한 녀석들이 트롤을 상대할순 없었다. 자신의 등에 업혀 있는 엘도 두려운지 어깨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 가며 떨고 있었다.
"걱정마라! 사이킥 플라이!!"
두둥실.
거대한 트롤 몸뚱아리가 공중으로 떠 올랐다. 당황한듯한 놈이 버둥거리며 발악을 했지만 엔다이론을 불러 놈의 심장을 멈추게 했다.
쿵.
바닥으로 추락시킨 놈은 죽은듯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놈의 몸통을 통채로 아공간에 집어 넣자 아공간을 처음 보는 용병들과 엘이 두려워했다. 트롤은 처음 만난 한마리만 죽이고 다른 트롤들은 움직이지 못하게 한후 피만 뽑고는 놓아 주었다. 산은 7일에 걸쳐 반대편으로 무사히 내려 갈수 있었다. 아공간에는 트롤의 피를 엄청나게 모아 놓은 상태다.
"이곳이 데델 남작령입니다."
"남작령에서 마차를 구한다."
엘이 힘들어 했다. 데델 남작성으로 이동해야 마차를 구할수 있다. 이곳은 가뭄이 들지 않았는지 밭에는 밀들이 자라고 있었다.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곳도 여자들이 대부분이다. 남자들은 징집되어 전쟁터로 끌려간 상태다. 데델 남작성까지는 5일이나 걸렸다. 사이킥 텔레포트로 이동해도 되었지만 걸어서 이동했다.
도로를 따라 가면서 만난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다. 그만큼 돌아 다니는 사람들이 전혀 없었다. 왕국이 전쟁중인 탓으로 상단 행렬도 없었다. 전쟁이 끝나더라도 왕국은 수십년은 회복되기 어려울 정도로 경제 침체에 허덕일것이 틀림없었다. 가장 큰문제는 생산력 저하다. 농사를 지을 인구가 턱없이 부족해 남녀 비율의 현격한 차이로 남성 희귀 현상이 벌어진다.
큰전쟁이 벌어 질때마다 되풀이되는 현상으로 수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중간계였다. 데델 남작성은 활기가 없었다. 돌아 다니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식당으로 들어가자 한숨만 쉬고 있던 주인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다음날 아침 알리가 구해온 이두 마차를 타고 델칸 백작령으로 향했다.
또각또각.
마차 한대와 말 두마리가 마차 뒤를 따르는 행렬이 차탈린 마을로 들어섰다. 긴여정이었지만 별다른 일도 없이 무사히 목표로 했던 마을로 접어 든것이다. 멀리서 부터 바닷 내음이 물씬 풍겨 왔었다. 험한 산을 한개 넘고 작은 산을 두개나 넘어 겨우 도착한 차탈린 마을은 규모가 작았다. 번리의 고향이라는 마을은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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