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제논의 삶(2)
38화.
할아버지는 자신을 혼자 내버려 두는게 걱정스러운지 이것 저것 많은 당부를 했다. 식사는 어떻게 하라는지 누가 찾아와도 절대로 문을 열어 주지 말라는등 잔소리에 가까울 정도였다. 일주일정도 걸리는 일이기에 할아버지도 걱정하지 않을수가 없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아침 일찍 떠난후 즉시 생각하고 있던 마나 연공을 시도해 봤다. 단전에는 이미 작은 마나 덩어리가 생성되어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마나를 모을수 있는지 이상했지만 그만큼 마나가 풍부하고 마나에 대해 이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짐작되었다.
아랫배에 뭉쳐져 있는 마나 덩어리를 움직여 볼려고 했다. 이마쪽으로 보내기 위해선 등뒤로 올려 보내야 한다. 코로 들어온 마나는 목을 타고 앞가슴으로 내려가 배꼽 아래의 단전에 모인다. 그런 마나를 배꼽위쪽으로는 올려 보낼순 없다. 들어 오는 마나와 서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단전의 마나를 사타구니쪽으로 보내 척추를 타고 올라가 목뒤, 머리 꼭대기, 이마순으로 보내야 한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이마로 보낸 마나는 다시 코, 턱, 목, 가슴순으로 한바퀴 돌아 단전으로 돌아 오게 하는게 단전 호흡에서 말하는 대주천이다.
단전 호흡에서는 소주천을 먼저하고 임독양맥이 뚫려야 대주천을 할수 있다고 쓰여져 있다.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되는지 실험해 봤다. 마나의 이해에서도 쓰여져 있는 것처럼 마나에 대한 믿음은 절대적이다. 믿음을 보여 주지 않는한 마나는 절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 사타구니쪽으로 마나를 보내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고 움직이라고 했다. 끈기를 요하는 작업이다. 움직일수만 있다면 반쯤은 성공한것이나 마찮가지다.
***
"별일 없었느냐?"
"예."
약속대로 일주일만에 돌아 온 할아버지였다. 마나는 아직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실망하기에는 이르지만 아쉬운건 어쩔수 없었다. 할아버지가 돌아 온 이상 저녁 마나 연공이 끝난후부터 마나를 움직이는 시도를 했다. 이주일후 처음으로 외딴 사람이 찾아 왔다. 할아버지의 친구라는 분으로 3서클 마법사라고 소개했다.
"안드레라고 불러라. 미르코가 네가 천재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서 대체 어떤 애인지 직접 보러 온거다."
"제논이라고 해요."
"똘똘하게 생겼구나. 근데 네가 특이한 질문을 했다며? 서클이 어떤 기준으로 분류한것인지 알고 싶다고?"
할아버지를 슬쩍 보았다. 무안한지 헛기침을 한번 한 할아버지는 입을 열었다.
"크흠...안드레는 3서클 마법사란다. 혹시 알고 있을까해서 물어 본거다."
"대답은요?"
"그때는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친구인 안드레에게 할아버지가 고개를 돌렸다. 마치 알고 있느냐고 묻는듯했다. 안드레 할아버지가 나섰다.
"미르코의 말을 듣고 이것저것 찾아 보고 고민해 봤지만 뭐라고 단정할순 없었단다. 위대한 존재가 창안해 분류해 놓은 마법을 하찮은 존재인 인간이 그 의도를 알수 있을리가 없는거다. 서클에 속하는 마법 하나하나는 분해해 연구하지만 서클 전체를 연구하는 마법사는 아마 없을거다."
"음,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꼴이네요."
"응? 그게 무슨 말이냐?"
자박자박.
의자에서 일어난 제논은 방문을 열어 제쳤다. 갑작스런 행동에 할이버지들이 당황해했다.
"보세요. 나무들이 보이죠?"
"......."
"나무 한그루 한그루가 모여 숲을 이루고 있다는걸 알수 있을거에요. 그렇죠?"
"그, 그렇구나."
여전히 이해를 못하는듯 할아버지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숲을 바라 보고 있었다.
"극히 일부분만 보고 전체를 보지 못한다는 뚯이에요."
안드레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 맞는 충격이었다. 열살 남짓한 아이가 할말이 아니었다.
"일부분...전체....아아!!!"
갑자기 주변의 마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런 마나를 감지했는지 할아버지는 급히 자신의 입가로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입을 열지 말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왜 그런지 모르는 제논은 멀뚱멀뚱 할아버지만 바라 보았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안드레 할아버지를 가르키며 손가락 4개를 펼쳐 보였다.
이제야 어떻게 된것인지 이해가 되었다. 안드레 할아버지가 깨달음을 얻어 4서클로 올라 갈려는 순간이었다. 깨달음을 방해하지 않게끔 안드레 할아버지가 깨어 날때까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법사가 각성하는 장면은 처음 보았다.
"하하하하~!! 제논! 고맙구나."
"안드레! 축하하네."
"이제 다 끝났어요?"
"그래. 덕분에 4서클 마법사가 되었단다. 정말 고맙다. 네 부탁이라면 어떤것이라도 들어 주마."
하루만에 깨어나 얼굴이 환한 안드레 할아버지와는 달리 제논은 너무 피곤했다. 마나 연공도 못하고 하루종일 움직이지도 못해서였다.
"할아버지! 저 피곤해요."
"그, 그렇구나. 미안하구나."
엄청나게 배도 고팠지만 쏟아지는 잠을 참을수 없었다. 제논은 침대에 쓰러지듯 넘어져 잠에 빠져 들었다.
"허허, 영락없는 아이로군. 저런 아이가 어떻게 그런 심오한 말을 알고 있는지 믿기지 않는군."
"그래서 자네를 부른걸세. 내 실력으로는 감당할수가 없는 노릇일세."
"알겠네. 당장 돌아가서 짐을 싸서 돌아 오겠네."
안드레는 그 길로 곧바로 산을 내려갔다. 제논이라는 아이가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지 반드시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훗날 위대한 대마도사가 될 재목이다. 그런 아이의 스승이라면 만사를 제쳐두고서라도 맡아볼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응? 안드레 할아버지는요?"
"짐을 가지러 갔단다."
얼마나 잤는지 몸이 개운했다. 안드레 할아버지는 어떤 마법 서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적어도 4서클 이상의 마법서를 가지고 있길 바랬다. 가볍게 집 주변을 산책한후 마나 연공에 빠져 들었다. 그로부터 이주일후에 안드레 할아버지가 다시 집으로 찾아왔다.
"제논! 잘 있었냐?"
"물론이에요. 할아버지! 전번에 원하는건 모두 말하라고 했죠? 가지고 계신 책을 모두 보여 주세요."
"책 말이냐?"
미르코를 한번 본 안드레를 마법 주머니에서 책을 모두 꺼내 놓았다. 책은 모두 30권이 넘었다. 기초적인 마법서는 물론 제논이 가장 보고 싶었던 4서클 마법서도 포함되어 있었다.
"할아버지! 5서클 마법서는 없으세요?"
"5서클 마법서는 왜?"
"전에 말했죠? 서클이 어떤 기준으로 분류하는지 4서클과 5서클 마법서를 보면 더욱 확실히 알수 있을것 같아서요."
"그, 그럼 넌 그걸 알고 있다는 말이냐?"
안드레와 미르코는 기함을 했다. 제논의 질문이 호기심에서 발로된 질문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제 나름대로 분석하고 예상할수 있었어요."
"허허허, 천재로군. 천재야. 그래,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 말해 줄수 있는거냐?"
"4서클 마법서를 본후에요."
테이블위에 있는 4서클 마법서를 집어 들었다. 안드레는 말리지도 않았다. 자신의 마법서는 타인이 보는걸 절대로 허락할수 없었지만 제논을 이미 제자로 삼기로 결정했다. 아직 1서클도 되지 못한 제논이 4서클 마법서를 읽는다고 해서 뭔가를 알아 낸다는건 있을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천재인 제논이라면 뭔가를 알아낼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런데 제논의 행동이 이상했다. 4서클 마법서를 대충 넘기는 것이었다. 왜 그런지 물어 보고 싶었지만 마법서에 집중하고 있는 제논을 제지하진 못했다.
탁.
"다 보았느냐?"
"예. 5서클 마법서는 있으세요?"
"...있단다."
"보여 주세요."
조금 망설인 안드레는 품속의 다른 마법 주머니에서 책 한권을 꺼냈다. 5서클 마법서였다.
팔락.
"그렇군요."
5서클 마법서까지 어떤 마법이 있는지 모두 살펴 보았다. 이외에도 다른 종류의 마법이 많을 것이겠지만 지금까지 살펴 본 마법서만으로 마법이 어떤 기준으로 분류되어 있는지 결론을 내릴수 있었다.
"시원하게 말해 보거라."
"예. 1서클 마법의 기본은 '점(點)'이에요."
"점이라니?"
"하나의 점을 중심으로 마법을 펼치는게 1서클이에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게 마법이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마법을 발휘한다. 그 허공에 임의의 한점을 상정하고 그 점을 중심으로 마법이 펼쳐지는 것이다. 1서클인 라이트 마법이라면 점을 중심으로 뭉친 마나가 밝은 빛을 발하는 원리다.
"라이트 마법을 펼치면서 자세히 살펴 보세요."
"알았다. 라이트!"
번쩍.
"윽!"
급히 눈을 가렸다. 눈부신 빛이 눈을 찌르고 있었다. 몇번이나 눈을 껌뻑거리자 겨우 안정이 되었다.
"하하하하! 그렇구나. 그래. 제논! 네 말이 맞구나."
제논은 알수 없었지만 안드레의 눈에는 확실히 보였다. 허공의 한점을 중심으로 급속도록 뭉친 마나가 빛을 뿌리고 있었다. 이런걸 마법서만 살펴 보고 알아 낼수 있는 제논은 역시 천재였다.
"이 사실을 마법 학계에 발표하면 큰반향을 불러 일으킬거다."
"않돼요. 전 해부 당하고 싶지 않아요."
"그, 그렇구나. 절대로 다른 사람들에겐 말하지 않으마."
마법사들은 남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독점해 연구할려는 자들이 수두룩하다. 그런 자들이 만약 제논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납치를 해서라도 알고 있는 지식을 모조리 토해내게 할것이다.
"그럼 2서클의 기본은 뭐냐?"
"2서클은 직선이에요."
"직선?"
안드레와 미르코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것이다.
"예. 점과 점을 서로 연결시켜면 직선이 되는거죠. 임의의 공간에 있는 점에 마법을 시전한후 다른 점쪽으로 보내는 것이죠. 그런 점들을 서로 연결하면 직선이 되는거고요."
"그, 그렇구나. 3서클도 빨리 말해 보거라."
점점 안달이 난 안드레는 제논을 재촉했다. 억만금을 주고도 배울수 없는 내용이다.
"3서클은 곡선이에요. 2서클은 직선으로만 이동하지만 3서클은 곡선으로도 이동할수 있는 거죠. 매직 미사일을 조종하는 원리에요."
안드레는 바로 이해가 되었다. 제논의 설명은 알아 듣기가 쉬웠다. 어떻게 어린 아이가 그런식으로 설명할수 있는지 믿기지 않았지만 천재인 제논이라면 가능할것이라고 생각했다. 제논에게 이미 흠뻑 빠진 탓으로 '제논이라면'이라는 의식이 깊숙히 자리 잡은 상태다.
"4서클은 면(面)이에요. 1서클의 점들을 2, 3서클에서 서로 연결시켜 모여 면이 된거지요."
"면?"
이번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직선과 곡선이 모여 어떻게 면이 되는지 알수가 없었다.
"자세하게 설명해 다오."
"알았어요. 이 책들로 설명할께요."
책을 가로로 나란히 세우며 모서리와 모서리를 연결시키면 직선이 된다. 책들을 다닥다닥 붙이자 직선들이 서로 모이게 되어 평평한 면이 되는 것이다.
"이해가 되었어요?"
"그, 그래. 이해가 되었다. 넌 어떻게 이런걸 알수 있었느냐?"
"마법서를 보고 알수 있었어요."
믿기지가 않았다. 마도사는 물론 수많은 마법사들이 알아 내지 못한 걸 어떻게 이런 아이가 알아 낼수 있다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제논이기에 가능하다고 생각되었다.
"5서클도 알고 있느냐?"
"5서클은...형(形)이라고 생각해요."
"형? 처음 듣는 말이구나."
"설명이 좀 어려워요. 밖으로 나가 바닥에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할께요."
나뭇가지를 한개 주워 흙바닥에 직선과 곡선을 죽죽 그으며 지금까지 말한 내용을 정리했다.
"선(線)과 선이 모여 면(面)이 되고 면이 모여 형(形)가 되는 거에요. 이런 상이한 기하학적인 곡선이나 직선으로 만든 면을 서로 연결시키면 불규칙적이고 복합적인 형(形)이 완성되죠."
"......."
할아버지들은 제대로 알아 듣지 못하는지 대답도 없이 바닥의 도형만을 뚫어지게 바라 보고 있었다. 부연 설명이 필요할것 같았다.
"다시 말해서 면은 선들이 차곡차곡 겹쳐 쌓인 것으로 결국 선들로 이루어진 내부를 말하고 면의 외곽을 이루는 윤곽으로 보이는 모양이 형이라는 거에요. 이런 형들은 직선과 곡선으로 분류될수 있는 거죠. 이런 형들은 또다시 고유한 형과 변형된 형으로 분류되어 고유한 형은 규칙적이고 단순한 반면 변형된 형은 부드럽고 안정된 느낌을 주는거죠."
"...어렵구나."
수학적 개념을 모르는 이들이 알아 듣기에는 어려울 것이지만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을 했기에 어느 정도는 알아 들었을것이다.
"혹시 6서클도 알고 있느냐?"
"아니요. 6서클 마법서를 읽어 보지 못해서 몰라요."
충격적이었다. 고작 마법 서적을 훑어 본것만으로 이런것을 유츄해 낼수 있다는 사실이 경악스러웠다. 대체 얼마큼의 재능이 있으면 이런 생각지도 못한 내용을 알아 낼수 있는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을 차분히 연구하면 많은 도움이 될것이다. 제논에게 마법을 가르켜야 하는 입장이 뒤바뀌어 버린것이다. 오히려 제논에게 배워야 할 입장이 되어 버렸다.
- 작가의말
오타나 이상한 내용 지적해 주십시요^^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