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천후의 삶(2)
142화.
장연은 사부로 생각하고 있지만 사부는 스승이라고 부르라고 한다.
"옥녀검을 말하는 거라면 맞다."
"그럼 어떻게 하면 날카로움을 가미할수 있는거에요?"
"음, 갑자기 왜 그런걸 묻는거냐?"
장연은 천후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그러자 비연검은 깜짝 놀라며 만나 보고 싶어했다.
***
다음날 부모님은 외할아버님이 부른다며 막내인 천예를 데리고 외출했다. 남동생과 둘이 남은 천후는 천추에게 태극육합권을 가르켰다. 7살인 천추는 토납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제자리에 앉아 심법을 운용하기보단 몸을 움직이는걸 좋아 하는 천추는 가르키는대로 잘 따랐다.
챙그렁.
"응?"
시녀가 부모님 방을 청소한다며 들어 갔었다. 그 방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 오며 진한 술냄새가 확 풍겨져 왔다.
"무슨 일이죠?"
"이, 이걸 어쩌면 좋니. 청소를 하다가 그만 저걸 깨버렸어. 어떡해..."
선반위에 고이 모셔 놓은 백주가 든 항아리다. 그걸 건드려 깨버렸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묵직한 술항아리는 여자 한명이 들려면 낑낑거려야 한다. 가볍게 건드린다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을텐데 일부러 깨뜨리지 않는한 무리였다. 어쩔줄 모르며 당황하는 얼굴이었지만 눈은 흔들림이 없었다.
"누구 지시였나? 누가 백주 항아리를 깨라고 한거냐?"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무거운 백주 항아리는 일부러 깨뜨리지 않는한 선반에서 떨어질 이유가 없어."
"무슨 일로 고함 소리가 바깥까지 들리는게냐?"
부모님이 돌아 오셨다. 시녀는 곧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애걸복걸했다. 자초지정을 들은 부모님은 한숨을 내쉬며 빨리 청소를 하라고 하며 방을 나섰다. 술냄새가 진동는 방안에서 나온 부모님의 한숨 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없는 살림에 겨우 마련한 외할아버지 생신 선물이 사라진것이다. 당장 내일이 회갑연이다. 오늘 선물을 마련하지 않으면 불효 자식이라고 외할아버지를 뵐 면목이 없는 것이다.
"어쩌죠?"
"....."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선물을 마련할 방법이 없어 보였다. 고민하는 부모님을 보고 화가 치솟아 올랐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주변을 둘러 보고 올께요."
천후가 밖으로 나간다는 말도 귀에 들어 오지 않는듯 고심하는 표정의 부모님을 뒤로 하고 대문을 나섰다. 장가장을 빠져 나가 의원을 찾을 생각으로 이곳으로 온 길을 되새겨 걸어 가고 있을때였다.
"천후야!"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 보자 장연 누님이 달려 오고 있었다.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는지 자신이 밖으로 나오면 만나는 장연 누님이었다.
"나하고 사부님을 만나러 가자."
"지금 바빠서 않되요. 참, 누님, 의원을 알고 있어요?"
"의원? 누가 아프니?"
"아픈게 아니라 의원에게 볼일이 있어서요."
의원에게 볼일을 보고 자신의 사부를 만난다는 약속으로 누님의 안내로 장가장을 나가 의원을 찾아 갔다.
"장가장의 금지옥엽이 무슨 일인고?"
"제가 볼일이 있는게 아니에요. 천후야,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분이셔."
"안녕하세요. 천후라고 해요. 배가 더부룩해서 찾아 왔어요. 혹시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는 소화가 잘 되는 단약같은게 있어요?"
"물론 있지만 단약보단 손가락을 따는게 빨리 낫는단다. 이리 오렴."
의원은 대침을 꺼내 들고 천후를 불렀다. 손가락을 따서 피를 낼 생각인것이다. 깜짝 놀란 천후는 급히 변명을 했다. 이러다간 멀쩡한 손가락을 따야 할 처지에 놓인다.
"지금 더부룩한게 아니에요. 더부룩할때 먹을려고 미리 준비할려는거에요."
"크흠, 그런게냐? 잠시만 기다리거라."
안쪽에서 상자 한개를 가져온 의원은 상자안에 빼곡히 들어 있는 작은 단약 열개를 꺼내 기름 종이에 써서 건네 주었다.
"헤헤, 누님, 돈이 없는데 어쩌죠?"
"내게 있어. 너 약속 꼭 지켜야 해."
"알았어요. 어서 가요."
마침 돈이 없었다. 혼자서 찾아 왔다면 간이 아공간에 있는 금화를 조금 떼어내 건네줄 생각이었다. 의원을 나와 누님을 데리고 약을 담을 상자를 구하고 바닥에 깔 붉은 비단도 구했다. 자금은 모두 누님이 계산했으며 그런걸 왜 사는지 묻는 말엔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을 대신해 주었다.
"네가 옥녀검에 날카로움이 없다고 한거냐?"
"그런데요?"
장연 누님을 따라 간곳은 식객들이 머무는 곳이라고 했다. 누님이 사부로 모시는 비연검은 얼굴이 쭈글쭈글한 앞니가 몽땅 빠진 노파로 일반 아이가 본다면 바로 울음을 터뜨릴 정도로 무서운 얼굴이었다.
"내가 두렵지 않느냐?"
"두렵다니요? 늙으면 다 그렇게 변하는게 아니에요?"
중원 사람들이 만약 중간계의 오크를 본다면 기겁할것이다. 오크보다 비연검의 얼굴이 백배나 더 나았다.
"켈켈켈, 꼬마 녀석이 보통이 아니구나. 그런데 넌 어떻게 옥녀검에 대해서 알고 있는게냐?"
"누님이 시전하는걸 처음 봤는데요?"
"음, 처음 보고 파악했단 말이지? 무공은 어느 정도 알고 있는게냐?"
"세가에 있던 무공 서적은 다 읽어 보았지만 어려워서 잘 몰라요."
많은 무공을 알고 있다고 말하면 믿지도 않을뿐더러 오해를 살것이다. 모르는척 일관하는게 다른 일에 휘말리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 갈수 있을것이다.
"무공이 어렵다면서 태극육합권은 어떻게 만든거냐?"
"그건 할아버지가 만든것을 제가 만들었다고 한거에요."
"켈켈켈, 예끼 이놈! 어른을 놀리는게냐? 열살짜리 아이의 생각이 아니로구나. 애는 너처럼 조목조목 그렇게 말하지도 않고 날 보는 순간 두려움에 떨것인데도 넌 아무렇지도 않은게 절대 평범한 아이는 아니로구나. 뭘 숨기고 있는지 털어 놓거라."
역시 늙은 생강이 매섭다는 말이 딱 맞아 떨어졌다. 일부러 겁 먹은 척 행동했어야 했다. 이렇게 된 이상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쏟아진 물은 마법으로 주워 담을순 있지만 조금은 털어 놓아야 할것 같았다.
"제게 뭘 물어 보고 싶은 건데요?"
"클클클, 네 제자가 되지 않겠느냐?"
"제자요? 할머니는 현경의 절대 고수세요? 현경이라면 생각해 볼수 있어요."
"칵칵칵칵, 크게 될 놈이로고."
비연검의 웃음은 특이했으며 더이상 제자가 되라는 말도 없었다. 비연검의 나가 보라는 손짓에 이곳 장원 지리를 모르는 천후에게 누님이 길 안내를 해 주며 놀랍다는듯 입을 열었다.
"칫, 왜 허락하지 않은거니? 난 아무리 사정해도 받아 주지도 않는데. 사부님은 절정 끝자락에서 언제 화경으로 올라 갈지 모를 정도로 굉장한 분이야. 그런 분의 제자로 들어 가는게 얼마나 영광인지 아니?"
"누님 사부님이 아니었어요?"
"아니야."
누님이 제멋대로 사부라고 부르고 있는것 같았다. 부러워하는 누님에게 왜 제자로 들어 가지 않았는지 설명해 주었다.
"고작 절정이잖아요. 적어도 현경정도는 되어야 어디가서라도 어깨에 힘주고 다닐수 있잖아요."
콩.
"아얏!"
"언젠가 네가 사부를 모시는 일이 있으면 사부 덕 볼 생각은 하지도 마. 그런 애는 적을 많이 만들게 될꺼야."
"......"
일부러 그렇게 말한 탓으로 꿀밤만 맞았다. 피할수도 있었지만 그냥 맞아 주었다. 숙소에 도착하자 큰이모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인가 했다.
"어딜 다녀 온게냐?"
"장원을 구경했어요."
"네 큰이모부님이 태극진인을 소개시켜 준다더구나."
"태극진인요?"
진인이라면 무당파의 장로다. 장로까지 장가장을 찾아올 정도라면 장가장의 위세가 얼마나 큰지 알수 있었다.
"그래. 네게 큰도옴이 될꺼다."
"아버지, 지금은 피곤해서 바로 자고 싶어요. 지금도 눈이 절로 감기거든요."
"음, 그렇게 피곤한게냐?"
"큰이모부님, 죄송해요."
일부러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아쉬운듯한 표정의 큰이모부님은 다음을 기약하며 장원을 벗어났다.
"정말 피곤한게냐?"
"그럼요. 전 그만 쉬어야겠어요."
의심스러워하는 아버지에게서 도망치듯 방으로 들어갔다. 모두가 잠든 그날밤 천후는 단약과 금화, 마나 포션을 한병 꺼내 작업을 했다. 한입에 털어 넣을수 있는 작은 둥근 단약에 구멍을 뚫고 안쪽의 단약을 모두 파 내었다.
둥근 모양이 부서지지 않게 사이킥으로 조심스럽게 파낸후 안에 마나 포션을 부어 넣고 구멍을 메우고 금화를 종이보다 얇게 펴서 단약을 감싸자 금환이 되었다. 단약은 모두 열개다. 열개 모두 똑같이 만든후 3개를 비단이 깔린 작은 함에 넣고 두껑을 덮었다. 나머지 일곱개는 간이 아공간에 보관했다.
꼬끼오.
새벽을 알리는 수탉 울음 소리에 무량 신공 연마를 끝내고 정원으로 나가 태극육합권을 시전한후 동생을 깨웠다. 아버지도 일어나 정원으로 나왔다. 아직 잠이 오는지 눈을 비비며 정원으로 끌려 나온 천추에게 토납법을 하라고 하며 아버지에게 은천 검법을 배웠다. 매일 아침 이런 일과의 연속이었다.
오늘은 외할아버지 환갑연이다. 사시(巳時)부터 시작된 회갑연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이 지역의 모든 이들이 찾아 온듯했다. 상석 중앙에 외할아버지가 앉아 있었으며 그 옆에는 도복을 입은 노인이나 비단옷을 입은 노인들이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상석앞 중앙 빈공간 양옆에는 지역 유지들이 앉아 있었다. 의자에 앉지 못한 자들은 바닥에 깔린 거적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다. 가장 먼곳에는 거지들도 많았다. 악사들을 불러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외할아버지의 환갑을 축하하며 가족들이 가장 먼저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큰외백부는 저 멀리 있는 장백산에서 캤다는 백년 삼삼을 내놓고 작은 외백부는 50년 묵은 죽엽청을 내놓을때 아버지의 얼굴은 점점 굳어져 가고 있었다. 어재 하루동안 선물을 준비하지 못한것 같았다.
외할아버지에게 선물을 증정할땐 일일이 큰소리로 어떤 선물인지 크게 소리쳐 알리는게 관례다. 어느 지역의 누구는 이런 선물을 해 주었다고 하면 그 사람의 명성도 절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때문에 무리를 해서라도 큰선물을 준비한다.
"다음은 은천장으로 시집간 셋째딸 부부의 선물 차례입니다."
드디어 올것이 왔다. 한숨을 푹 쉰 아버지가 나설려고 할때였다. 천후가 아버지보다 먼저 쪼르르 달려 나가 품속에서 작은 함을 꺼내 축하 인사와 함께 건넸다.
"이건 뭔고?"
"금명환(金明丸)이라는 영약이에요. 아버지가 드리라고 했어요."
"영약이라고?"
영약이라는 말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외할아버지는 굳은 얼굴로 함을 열며 입을 열었다.
"무리를 했구나."
은천 세가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외할아버지였다. 사정이 뻔한 대도 무리해서 이런 선물을 준비한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오오!"
작은 함안에는 붉은 비단위에 세알의 작은 금환이 놓여 있었다. 반짝이는 금환을 본 사람들이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다.
"외할아버지, 한알을 먼저 드시고 두알도 빠른 시일내에 드세요. 그래야 효과를 볼수 있대요."
"허허, 무슨 영약이냐?"
"장생환과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대요. 어서 드셔 보세요."
천후가 재촉하자 외할아버지는 한알을 집어 들고 입에 넣었다. 금박과 소화제 겉면이 녹으면 놀라운 효과를 볼수 있을 것이다. 무인이 만약 복용했다면 적어도 3년이상의 내공을 얻을수 있을 것이지만 그런 설명은 해 주지 않았다. 만약 무인들이 내공을 얻을수 있는 것을 안다면 어디서 영약을 구했는지 알아 보기 위해 아버지에게 해를 가할것이다.
"오오! 몸이 날아 갈듯 가벼워진 느낌이구나."
무공을 모르는 외할아버지이기에 피곤함이 사라지고 몸이 건강해졌다는것만 느낄뿐이다.
"네가 천후라는 애냐?"
"그런데요."
"난 태극진인이란다. 네 태극육합권을 보여 줄수 있겠느냐?"
"음, 나중에요. 지금은 외할아버지 환갑연이 먼저에요."
지역 유지들의 선물공세가 이어지고 있을때 아버지 곁으로 돌아 오자 아버지는 크게 놀란듯 작은 소리로 다그쳤다.
"어떻게 된거냐? 그런 영약을 어디서 구한게냐?"
"그냥 소화제에요. 어제 의원을 찾아가 소화제를 구해 금칠을 한것 뿐이에요."
아버지는 입을 쩍 벌리며 심각하게 굳어져 버렸다. 그때 뒤에서 뾰족한 음성이 들려왔다.
"뭐라고? 그럼 그게 어제 그거였어?"
"누님, 쉿! 소리가 너무 커요. 다 큰 처자가 방정맞게 그렇게 큰소리를 지르면 아무도 데려 가지 않을꺼에요."
하필이면 장연 누님이 아버지와의 대화를 들은 것이다. 천후의 말에 누님은 엄청나게 화가 난듯했다. 쓸데없는 말을 한 탓이었다.
"너어, 할아버지 회갑에 소화제를 선물이라고 주다니 어떻게 그럴수 있는거니?"
누님의 큰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주목되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영약이라고 선물한게 소화제라고 들통나 버린것이다.
"그럼 그렇지. 다 망한 세가에 그런 영약이 있을리가 없잖아."
"어떻게 소화제를 영약이라고 속일수 있는거야."
여기저기서 비아냥거리는 말들이 들려왔다. 셋째딸이 회갑연을 망쳤다니 전대미문이라는등 구설수에 올랐다.
"모두 조용하게. 흥겨운 잔치에 먹고 마시면 속이 진정되지 않을걸세. 그런걸 알고 막내가 소화제를 준비한거라네. 내겐 그게 영약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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