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용병들과의 조우(2)
9화.
"난 캐논 드라이브 백작이다."
"허억!"
"흡!"
백작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는 놈들이었다. 키가 큰 용병놈이 다우트, 작은 놈이 크라크였다. 두놈 모두 덩치가 제법 컸다. 동료들 7명과 몬스터 사냥을 하러 산맥으로 들어와 오크 가죽을 제법 확보한 상태로 산맥을 빠져 나가는 도중에 습격을 받았다. 캐논이 때마침 도착하지 않았다면 죽은 목숨이었다며 몇번이고 감사 인사를 하는 두놈이었다.
"저어, 백작님! 저 샤벨 타이거는 어떻게 길들인것입니까?"
조심스럽게 묻는 다우트는 샤벨 타이거가 백작의 말을 알아 듣는게 믿기지 않았다. 몬스터를 길들인 인간이 있었다는 말은 들어 본적도 없었다. 솔직히 지금도 겁이 났다.
"이 녀석은 새끼일때 발견한거다. 그때부터 함께였다."
"아, 그, 그럼 계속 이 몬스터 산맥에서 생활하신겁니까?"
"5년동안 산맥을 헤메고 다닌것 같다."
쩌억.
5년이라는 말에 두놈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산맥에서 혼자서 살아 남을수 있는지 믿기지가 않았지만 저 샤벨 타이거와 함께였다면 무리는 아닐것이다.
"이 토랑이 있는한 다른 몬스터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몬스터들이 피해 갔다."
캐논은 토랑을 쓰다 듬어며 말해 주었다. 다우트는 역시라고 생각하며 캐논을 부러운 표정으로 바라 보았다. 저 샤벨만 있으면 이 산맥에서 두려운 존재는 전혀 없었다. 몬스터 가죽도 맘대로 얻을수 있을 것이다.
타닥타닥.
모닥불이 불똥을 튕기며 혀를 낼름거리며 밤은 점점 깊어 가고 있었다. 서서히 잠을 잘 시간이다. 마법 주머니에서 샤벨 타이거 가죽을 꺼내 바닥에 깔자 토랑 녀석이 얼른 올라와 드러 누웠다. 그런 토랑의 배쪽에 기대어 눕자 용병 두놈이 입만 벌린채 굳어 있었다.
"경계는 설 필욘없다. 토랑이 있는한 어떤 몬스터도 접근하지 못한다. 자라."
용병들에게 자라고 말한뒤 눈을 감았다. 아직 잠들진 않았다. 눈을 감고 사이킥 연습을 하는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 사이킥을 운용할지 상상했다. 콘테경에게 들은 마법사들의 마법이 큰도움이 되었다. 어떤 마법이 있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는 캐논은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마법을 흉내내어 마치 마법처럼 사이킥을 발휘하고 있었다. 스스로 명명한 사이킥 기술도 마법적 용어가 들어간 것이 대부분이다. 용병들과 이동하면 할수록 점점 우울한 기분으로 접어 들고 있었다. 토랑과 헤어질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길을 서두르면 오늘 저녁때쯤이면 산맥을 완전히 벗어 날수 있다고 했다. 한시간 정도만 이동하면 마을에 도착한다는 말에 멈추라고 했다. 이대로 마을로 들어 갈순 없었다.
"너희들이 먼저 마을로 돌아 가서 옷과 신발을 사 와라. 적어도 내일 이 시간까지는 돌아 와야 한다. 받아라."
마법 주머니에서 금화 2개를 꺼내 건네 주었다. 콘테경이 가지고 있던 주머니와 원래부터 자신이 가지고 있던 주머니 속의 금화는 모두 합쳐 20골드다.
"알겠습니다."
과연 용병들이 다시 돌아 올지 의문이었다. 만약 돌아 오지 않는다면 놈들을 찾으러 갈것이다. 용병들이 멀어지자 토랑과 함께하는 마지막 사냥을 하러 갔다. 이번에는 직접 사냥해 토랑에게 줄 생각이다. 하지만 송곳니가 삐죽 튀어 나온 거대한 멧돼지를 발견하자 마자 토랑이 뛰쳐 나가 잡아 버렸다. 캐논이 끼어들 틈도 없었다.
"녀석..."
토랑을 쓰다 듬어며 자신이 할일을 대신해 버린 토랑을 살짝 안아 주었다. 토랑이 멧돼지를 뜯어 먹고 있을때 살점을 조금 베어 불을 피워 구워 먹었다.
"토랑, 이제 너하곤 헤어져야 해."
포식을 하고 드러 누워있는 토랑에게 이별을 고했다. 무슨 뜻인지 모르는듯 토랑은 하품을 하며 졸리는듯 눈을 감고 있었다.
"토랑, 이제 네 갈길을 가라. 그동안 고마웠다. 반드시 찾아 올테니까 내가 부르면 달려 와야 해."
아침 일찍 토랑에게 작별을 고하며 가라고 했다. 하지만 토랑은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자신이 한발을 떼자 토랑도 발을 떼며 따라 오고 있었다. 매일 같이 달라 붙어 있는 생활에 익숙해진 토랑은 헤어짐이 어떤것인지 모른다. 캐논을 부모라고 생각하고 있는것 같았다.
"토랑, 가란 말이다. 네 갈길을 가!!"
토랑을 밀치며 따라 오지 말라고 했다. 한발을 떼며 따라 올려는 토랑에게 손짓으로 떠나라고 해도 움직이지 않는 토랑이었다.
"가! 떠나!! 더이상은 함께 할수 없어. 약속할께. 반드시 다시 찾아올께. 그때까지 건강하게 살아 있어야 돼. 알았지. 어서 가!!"
두손으로 얼굴을 밀치며 가라고 종용했다.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는 토랑을 내버려 두고 앞으로 달려 갔다. 그러자 토랑도 뛰어 오고 있었다. 즉시 발을 멈추고 떠나라고 손짓하자 발을 멈춘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가!! 가란 말이다!!"
이번엔 감정을 담아 소리쳤다. 그러자 사이킥 힘이 발휘된것인지 토랑이 움찔했다. 자신돞 토랑과 헤어지고 싶진 않았지만 인간들 세상으로 데리고 갈순 없다.
"어서 가!!"
다시 소리치고는 등을 돌려 걸어 갔다. 일부러 뒤는 돌아 보지 않았지만 뒤쪽으로 신경을 곤두 세우고 토랑이 따라 오는지 살펴 보았다. 멈칫했었던 토랑은 잠시 머뭇거린후 천천히 캐논 뒤를 따라 오고 있었다.
홱.
"토랑, 빨리 가!! 멀리 가란 말이다."
발을 멈춰 뒤를 돌아 보면서 크게 소리쳤다. 사이킥 힘이 토랑에게 효과가 있다는것을 안 캐논은 감정을 담아 소리친것이다. 또다시 멈칫하며 머리를 흔드는 토랑에게 이제 혼자 살아야 한다고 다시 한번 크게 소리친후 등을 돌려 앞으로 걸어 갔다. 감정이 북받쳐 절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눈물을 훔치며 발걸음을 점점 빨리했다.
힐끗.
한동안 이동한후 토랑이 따라 오는지 뒤쪽을 확인했다. 저 멀리서 토랑은 자신을 바라다 보고 있었다. 그런 토랑에게 손짓으로 어서 가라고 하고는 등을 돌려 앞으로 달려 갔다.
"헉헉헉!"
숨이 턱밑까지 차 올라 양무릎을 짚고 헉헉거리며 숨을 고른후 얼굴을 들었을때 하마터면 기절할뻔했다.
"흐악!"
거대한 얼굴이 바로 앞에 다가와 있었다. 토랑이었다. 언제 달려 왔는지도 몰랐다. 그런 토랑의 얼굴을 얼싸 안고는 눈물을 흘렀다.
"토랑, 이제 헤어져야 한단 말이다. 더이상 함께 할수 없어. 가라. 제발 가!!"
손을 뗀 캐논은 토랑의 눈을 바라 보며 가라고 했다. 한동안 눈을 빤히 바라 보던 토랑은 이제야 무슨 말인지 알아 들었는지 등을 돌려 훌쩍 뛰어 갔다.
털썩.
토랑이 사라지자 그 자리에 주저 앉은 캐논은 엉엉 울었다. 어머니가 돌아 가셨을때나 콘테경이 죽었다는 것을 확인했을때도 이렇게 울진 않았었다. 눈물이 메말라 갈 즈음 훌쩍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토랑이 사라진 곳을 바라 보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용병들과 약속한 곳으로 천천히 걸어 갔다.
******
용병들은 약속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있었다. 얼굴이 밝은게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것 같았다.
"백작님!"
"수고했다."
"이건 남은 돈입니다."
"됐다. 수고비다."
일골드 이상 남았지만 귀족 체면에 받을순 없었다. 짐을 건네 받고 옷을 갈아 입었다. 귀족 차림치곤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옷이었지만 어쩔수 없었다. 말끔한 옷으로 갈아 입자 사람다운 냄새가 났다. 오랜만에 번듯한 옷을 입자 껄끄러웠으며 몸 구석구석이 가려웠다. 익숙해 질때까지 참을수 밖에 없었다. 롱소드를 허리에 차고 용병들을 따라 마을로 이동했다.
산맥을 벗어나자 멀리 목책으로 둘러 쌓인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인간 마을에 도착했다는 사실에 두근거리는 가슴이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멀리서 보던것과는 달리 마을은 제법 큰규모를 자랑했다. 무기를 휴대한 용병들을 쉽게 찾아 볼수 있었다. 몬스터 산맥이 가까운 만큼 몬스터 사냥을 할려는 용병들이 몰려드는 마을같았다. 용병들에게 물어 마을에서 가장 좋은 여관을 찾아 갔지만 허름해 보였다. 여관 입구에서 다우트와 크라크에게 프론티아 왕국에서 산맥을 넘어 건너오는 상인들은 어느 영지로 도착하는지 물어 보았다.
"자작령 아래쪽에 있는 코스피 백작령의 허들러라는 도시에 도착합니다."
다우트와 크라크는 한동안 산맥안으로 들어 가지 않고 상단 호위를 한다고 했다. 그들과 헤어져 여관안으로 들어가 방을 잡았다. 오랜만에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자 온몸이 녹아 나는듯했다. 한동안 목욕을 만끽한후 아래층으로 내려가 먹을것을 부탁했다. 고기는 질려 버려 야채와 빵, 수프를 주문했다. 식당안에는 저녁 식사 시간을 훌쩍 넘긴 탓으로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지만 대부분 용병들로 보였다.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음식들이 나왔다. 용병들이 만들었던 수프와는 비교도 할수 없을 정도로 맛었었다. 경건한 자세로 마치 기도하듯이 천천히 음미하고 있을때였다.
"야, 저거 뭐하는 놈이냐?"
"야! 조용히 해 임마. 귀족이면 어쩔려고 그래."
"흥, 저런 놈이 귀족이라고? 옷이나 머리카락을 봐라. 저런 놈이 귀족이라면 개나 소나 다 귀족이다."
누구를 보고 말하는지 바로 알수 있었다. 자신의 모습을 보고 떠드는 놈들이었다. 복장이 귀족 스타일이 아닌탓으로 누구도 귀족으로 보진 않을 것이다.
힐끗.
수프를 빵에 찍어 먹으며 누구인지 슬쩍 바라 보았다. 눈이 마주친 놈은 씨익 웃으며 술을 입으로 가져 가고 있었다. 마치 비웃는듯했다. 도저히 참을수 없었다.
꽝.
테이블을 거칠게 내려 치며 벌떡 일어 나며 허리춤을 더듬었다. 본능적으로 롱소드를 찾고 있었지만 방안에 놔둔 상태였다. 무기가 없더라도 자신에게는 사이킥이라는 힘이 있다.
"놈! 감히 귀족을 모욕하는 거냐? 귀족 모독죄가 얼마나 큰 죄인지 모른단 말이냐? 당장 한팔을 자른후 사과하라."
캐논의 호통에 주변 사람들이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나 피하고 있었다. 괜히 휘말려 사고라도 당한다면 자신만 손해다.
"흥, 귀족이라면 품위가 있다고 들었다. 그 꼴이 귀족이라고?"
"야아!"
동료로 보이는 놈이 말리고 있었지만 여전히 놈은 큰소릴치고 있었다. 간뎅이가 부은 놈이 틀림없었다.
"캐논 드라이브 백작이다."
"헉! 배, 백작이라니..."
웅성웅성.
젊은 나이에 백작 신분이라고 밝히자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놈은 똥 씹은 표정으로 얼굴이 급격히 굳어지며 외쳤다.
"흥, 믿을수 없다. 귀족이란걸 증명해 봐."
"내가 왜 네놈에게 증명해야 하는거냐? 당장 팔을 자르고 사과하라."
"귀족 사칭죄가 얼마나 큰지 네놈은 모르는구나. 새파랗게 젊은 놈이 백작이란걸 믿을수 없어. 결투로 결판을 내자."
"결투라고? 좋다. 받아 들이겠다."
어디서 들은것이 있는지 놈은 결투를 신청했다. 귀족 사회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투를 하는건 흔한 일이다. 승자의 판단에 따라 상대를 죽일수도 용서할수도 있다. 귀족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용병놈이 있을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만약 거부한다면 귀족이 아니라고 우길것이 틀림없었다. 여관 밖으로 나가는 놈을 따라 나갔다.
웅성웅성.
그런 모습에 지켜 보고 있던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가 귀에 들어 오고 있었지만 일일이 반응할 필요는 없었다.
"정말 백작일까?"
"귀족 사칭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있다면 거짓말이 아니겠지. 근데 무기도 없이 큐티로스를 이길수 있을까?"
"킥킥킥, 귀족이라는 자부심으로 상대해 봤자 단칼에 목이 날아 갈꺼다."
놈의 이름을 들었다. 용병들 세계에선 제법 유명한 놈인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놈이 한가닥하는 놈이라고 해도 사이킥이라는 힘이 있는 이상 전혀 두렵진 않았다.
"무기를 들어라."
"무기? 네놈이나 빼어 들어."
스르릉.
"놈! 죽어라."
바스타드 소드를 빼어든 놈은 다짜고짜 달려 들었다. 롱소드 보다 두툼한 바스타드 소드는 체구가 크고 힘이 강한 자들이 주로 사용한다. 놈이 말이 거슬렸다.
"감히 놈이라고?"'
절대로 살려 둘수 없는 놈이다. 고위 귀족인 백작을 무시하는 놈이다. 아무리 몰락 귀족이라고 해도 귀족이라는 자부심과 명예까지 버린건 아니다. 어머니는 귀족에 대해 철저히 교육시켰다. 드라이브 백작으로 명예를 지키라며 죽는 한이 있더라도 명예를 져 버려선 않된다고 했었다.
"저, 저런..."
"역시 쫄은거야."
"굳어서 움직이지도 못하잖아."
지켜 보는 군중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달려 오며 바스타드 소드를 힘껏 내려치는 놈의 입가엔 조소가 걸려 있었다. 단칼에 어깨를 베어 버릴 기세였다.
"사이킬 드릴!"
놈의 바스타드 소드가 어깨에 닿을 정도까지 쇄도한 상태다. 캐논은 가볍게 오른 손가락을 뻗었다.
쿠당탕탕.
달려 오던 기세 그대로 앞쪽으로 급격히 무너지는 놈을 슬쩍 피했다. 놈의 이마에 은화 한개정도의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놈은 뇌가 곤죽이 되어 비명도 지르지 못한채 죽어 버린것이다.
"헉! 마, 마법사다."
"마, 마법사였다니..."
떠들썩해진 군중들이 마법사라고 외쳐 대었다. 몬스터 산맥에서 사이킥을 연습하며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사이킥을 시전할땐 어떻게 할지 생각을 해 놓은 상태다.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말로만 사이킥을 시전한다면 지켜 보는 사람들이 의심할것이다. 그래서 마법사들이 허공에 마법진을 그리는것처럼 손가락을 뻗어 사이킥을 시전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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