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청송, 치료사로 나서다
55화.
남궁천 장로의 질문에 무공에 관한 토론을 하고 있을때 갑자기 무아에 들어 선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부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한 남궁천 장로였지만 장로까진 어떻게 해줄수가 없었다. 황보 천욱 장로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태상 할아버지는 삼일후에 마차에서 나왔다. 모습도 조금 달라져 있었다. 흰머리도 많이 사라지고 더욱 젊어진것 같았다.
"송아! 고맙구나."
"많이 얻으셨어요?"
"얻을만큼 얻었단다."
황보산명은 이제 완전히 회복되었다. 이곳에서 며칠이나 지체한 탓으로 길을 서둘러야 했다. 여전히 마부석에 앉아 가는 청송을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는 소가주들과 누님들이었다. 몸이 회복된 황보산명은 야영을 할땐 청송에겐 대련을 신청했다.
모두가 지켜 보는 가운데 황보산명의 공격을 모조리 막아 버리자 놀라워했다. 자신의 무공이 전혀 먹혀 들지 않자 은근히 화가 난듯한 황보산명은 모든 무공을 발휘해 어떻게든 옷자락이라도 건드려 볼려고 애를 썼지만 소용없었다.
그래도 청송과의 대련으로 인해 무공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당산을 사흘 앞둔 시점에 무당산으로 가는 다른 마차와 합류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무당산으로 몰려 들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중에 당문(唐門) 마차와 우연히 만나 합류하게 된것이다.
당문도 당청 장로 한명과 당소량 소가주, 당봉이라는 15살정도의 여자아이 3명이 고작이었다. 당봉은 항상 검은 면사를 쓰고 있어 얼굴을 볼수가 없었다. 무당산으로 향하는 일행들은 거의 모두가 인솔자로는 장로 한명과 소가주, 그리고 동생 한두명이 함께하는 단촐한 행렬이었다.
"언니! 오랜만이에요."
"그렇구나. 잘 지냈니?"
"물론이죠."
남궁희와 당봉은 이미 아는 사이 같았다. 오대 세가에 속하는 만큼 서로 잘 알고 있는건 당연한것이다. 사천 지방에 자리하고 있는 당문은 특이한 문파다. 철저히 가족만으로 이루어진 문파로 독을 사용하는 문파다.
당문의 가훈은 강호에서도 유명하다. 은혜는 백배로 원한은 천배로 되돌려 주며 원한을 맺으면 지상끝까지라도 추적해 반드시 죽여 버리는게 당문이다. 복수는 몇 대를 이어가더라도 반드시 달성한다는 공포의 가문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그들이 사용하는 무형지독(無形之毒)은 아무런 냄새도 맛도 없어 언제 당한지도 모른채 죽을수 밖에 없다. 오랜만에 만났는지 당봉은 남궁희 누님에게 착 달라 붙어 끊임없이 재잘거렸다.
황보유미와는 짤막하게 인사만 나누었을 뿐이었다. 별다른 일도 없이 무당산 아래에 도착했다. 용봉 대회는 무당산 아래에서 개최된다. 7일후에 열리는 대회로 인해 넓은 공터에는 연무장 건설이 한창이었다. 유력 가문은 무당산의 무당파로 올라 갈수 있지만 중소 문파들은 산아래의 마을에서 대회가 열리는 날까지 기다릴수 밖에 없었다. 해검지(解劍池)에서 무기를 풀어 놓고 일행들은 도인 한명을 따라 무당산으로 올라갔다.
무당산으로 올라 갈수록 주변 경치에 압도되었다. 마치 관광지에 온 느낌이었다. 높은 산들이 즐비한 산봉우리의 한쪽면을 깎아 여러 전각이 들어선 상태로 경내는 굉장히 깨끗했다. 각 세가별로 작은 전각이 한개씩 배정되었다.
무당파안에서는 함부로 전각외로 나갈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반드시 허가를 받고 나가야 한다. 내빈용 전각들을 다닥다닥 붙어 있어 손님들끼리의 내왕은 자유로웠다. 이미 짐을 모두 푼것인지 당봉은 남궁희 누님을 찾아와 수다를 떨고 있었다. 마차를 타고 오면서 끝없이 재잘거렸으면서도 끊임없는 대화에 질려 버릴 정도였다.
"신협! 무당파를 구경하시겠습니까?"
"소가주님! 편하게 말해도 된다니까요."
"않됩니다. 전 이게 편합니다."
남궁성휘 소가주는 청송에게 꼬박꼬박 존대를 하고 있었다. 청송보다 8살이나 많은 소가주가 부담되어 말을 놓으라고 몇번이나 말해도 고지식한 성격인 소가주는 그럴수 없다며 우기고 있었다. 무려 화경의 경지인 절대 고수에게 실례가 된다는 핑계였다.
무당파 삼대 제자의 안내로 무당파 구경을 나섰다. 무당파는 장문인을 정점으로 장로들과 일대 제자들이 무당파의 핵심이며 이대 제자는 강호에서 주로 활동하며 삼대 제자는 전각을 관리하거나 손님들을 접대하는 일을 주로 하고 사대 제자는 어린 아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무당파 구경도 갈수 있는곳은 한정되어 있었다. 몇몇 전각을 둘러 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조천궁(朝天宮), 일천문(一天門), 이천문(二天門), 삼천문(三天門)을 불러 보여 다닥다닥 달라 붙어 있는 고풍스러운 건물에 세월을 느꼈다.
삼천문 안쪽으로는 들어 갈수 없다고 했다. 도복을 입은 도인들이 만날때마다 '무량수불'이라고 말하며 인사를 해 왔다. 전진파에서 갈라져 나온 무당파는 도가 계열 문파다. 신선도를 추구하는 도인들이지만 속세에 물들어 강호 문파로 자리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어떻습니까?"
"운치가 있어요. 모든것이 잘 짜여진 각본대로 지어진 전각같아요."
"과연! 알아 보시는군요."
뭐가 감탄스러운지 소가주는 탄성을 발했다.
"무당파의 전각들은 진법에 의해 전각들이 세워진 상태라고 합니다. 적이 침입하면 진법을 발동시켜 적들을 막는 다고 합니다."
"진법요?"
진법이란게 어떤 것인지 경험해 보고 싶었다, 마법진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보면 많은 도움이 될것이다.
"먼옛날 제갈 세가의 천기자라는 분이 무당파의 도움을 받아 구사일생(九死一生)해 보답하는 의미로 만상훤뢰진(萬常喧儡陳)을 설치해 놓았다고 합니다."
"만상훤뢰진요?"
"예. 만상훤뢰진안에 들어 가면 기이한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져 미몽(迷夢)에 빠져 든다고 들었습니다."
마치 환상 마법진같았다. 꼭 경험해 보고 싶었지만 적이 침입하지 않는한 발동되지 않을것이다.
"하압! 합!"
"응? 무슨 소리죠?"
"사대 제자들이 수련하고 있는 중입니다."
"구경할수 있는 겁니까?"
각문파의 무공 수련을 훔쳐 보는건 절대 금기에 속한다. 어린 아이들이 하는 수련은 문파의 기본공일것이다. 각문파의 기본공들은 세간에 많이 알려진 상태다. 무당파는 태극구공(太極九功)이나 면장공(面長功), 태극권(太極拳), 소림사는 육합권(六合拳), 남궁세가는 소연검법(小衍劍法), 제갈세가는 소천성검법(小天星劍法)등이 기본 무공으로 알려진 상태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요."
안내하던 삼대 제자가 헐레벌떡 어딘가로 뛰어 갔다가 되돌아 왔다.
"가시죠. 허락을 받았습니다."
큰전각 뒤에는 넓은 연무장이 있었다. 그곳에 10세전후의 아이들이 두패로 갈려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한곳엔 축구공보다 조금 더 큰 공을 묘기를 부리듯 가슴쪽에서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저곳은 태극구공을 수련하고 있으며 통나무와 물항아리를 치고 있는 곳은 면장공을 수련하고 있는 중입니다."
굵직한 통나무를 손바닥과 손등으로 번갈아 가며 치고 있는 아이들이 물항아리를 치고 있는 아이들에 비해 불쌍해 보일 정도였다. 순번대로 돌아 가면서 하는 수련이겠지만 저런 어린 나이부터 수련에 몰두하는 애들이 대단하게 보였다.
이곳은 사대 제자들과 속가 제자들이 함께 수련하는 곳이다. 속가 제자들중엔 여자 아이들도 몇명이었다. 오랫동안 지켜 볼수가 없어 숙소로 돌아 갔다. 생각같아선 무당파의 심처인 조사전(祖師殿)이나 자소궁(紫宵宮)까지 모두 구경하고 싶었지만 그곳엔 외부인들은 함부로 들여 보내지 않는 곳이라고 했다.
"송아! 넌 뭐든 치료할수 있지?"
"누님! 제가 신도 아닌데 뭐든 치료할순 없죠."
"아무튼 왠만한 상처쯤은 치료할수 있다는 거잖아."
남궁희 누님이 숙소로 돌어오자마자 기다렸다는듯이 찾아 왔다.
"화상도 치료할수 있어?"
"화상요? 간단한데요."
"그럼 나하고 같이 가자."
반강제로 누님에게 끌려갔다. 누님방에는 당봉이 있었다. 여전히 검은 면사로 두눈 아래를 모두 가린채였다. 당봉이 화상을 입은 것이라고 바로 알수 있었다.
"동생! 내가 아끼는 청송이라는 동생이야."
"당봉이라고 해요."
"청송이야."
청송의 반말에 당봉의 눈이 가늘어졌다. 당문의 사람들을 처음 대하고도 저렇게 반말을 하는 자는 없다. 아직 당문의 무서움을 모르는 자 같았다.
"송이가 동생을 치료해 줄꺼야."
"언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당봉의 날이 선 목소리에 누님은 당봉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송이는 신기한 치료를 하는 의원이나 마찮가지야."
"믿을수 없어요. 나하고 나이 차이도 별로 없는것 같은데 어떻게 그런 능력이 있겠어요."
당사자가 눈앞에 있는데도 대놓고 무시하는 당봉이었다. 은근히 화까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누님! 그냥 갈께요. 제발로 찾아온 복을 차 버리는 사람에게 괜히 힘들게 치료할 생각은 없어요.
"않돼! 네가 그냥 가면 당봉은 평생 면사를 쓰고 다녀야 해."
자리에서 일어 날려고 하다가 다시 엉덩이를 내릴수 밖에 없었다.
"그럼 일단 면사를 벗어 보세요."
"동생! 날 믿으면 얼굴을 보여줘."
"언니!"
"날 믿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동생과는 더이상 어울릴수 없어."
단호한 누님의 말에 당봉은 망설이는 눈치였다. 잠시후 누님과 자신을 번갈아 보던 당봉이 결정을 내린듯 면사를 벗었다. 당봉의 오른쪽 뺨 일부분이 화상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여 준 당봉은 얼굴을 숙인채 붉어져 있었다. 여자에게는 심각한 상처였다. 특히 사춘기인 지금은 더욱 민감한 사안일것이다.
"뭐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에요. 간단하게 치료할수 있어요."
"송아! 정말이야."
"예, 누님! 단 세밀하게 칼질을 할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요. 화상 자국을 먼저 제거를 하고 치료를 하면 깨끗한 피부로 되돌릴수 있거든요."
"저, 정말이에요?"
청송의 말을 듣고 있던 당봉은 푹 숙이고 있던 얼굴을 들고는 놀라워했다.
"그래. 당봉 네 얼굴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을 데려와. 다른 사람에겐 얼굴을 보여 주기 싫을테니까."
"저, 정말 완벽하게 치료할수 있는 거에요?"
"그래. 믿기지 않으면 실험을 해 볼래?"
"어떻게요?"
청송은 자신의 팔에 직접 상처를 내긴 싫었다. 치료를 받아야 하는 당사자인 당봉에게 팔을 내밀고 상처를 내라고 했다.
"예엣? 사, 상처를 내라고요?"
"실험을 할려면 상처가 내야할게 아냐? 걱정마! 아무런 흔적도 없이 깔끔하게 고쳐 줄테니까."
작은 입술을 꽉 깨문 당봉은 결단을 내렸는지 품속에서 뾰족한 침같은 물건을 한개 꺼내 팔뚝을 주욱 그었다. 그것만으로도 당봉의 성격을 알수 있었다. 한번 결단한 일에는 주저없이 행동하는 타입이다.
"소, 송아! 빨리 치료해."
누님의 외침에 붉은 피가 스물스물 올라 오고 있는 당봉의 팔뚝에 클린 마법을 펼친후 힐링 마법을 펼치자 피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베인 피부가 저절로 달라 붙었다. 잠시후 달라 붙은 피부는 언제 상처가 있었는지 분간도 할수 없을 정도도 완벽하게 복원되었다.
"이, 이럴수가...어떻게 이럴수 있는거죠?"
"이제 믿을수 있겠지? 그럼 네 얼굴의 화상 자국을 제거해 줄 사람을 데려와."
"아, 알겠어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급히 밖으로 달려 나가는 당봉은 면사로 얼굴을 가리는것도 잊어 버린채였다. 다른 사람을 만나면 어쩔려고 저러는지 그런 상황을 생각할 겨를도 없어 보였다. 잠시후 되돌아온 당봉은 검은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예비 면사를 가지고 있었던것 같았다. 당봉과 함께 온 사람은 당문 소가주인 당소량이었다. 가족이라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네가 의원이라고?"
대뜸 반말을 하는 당소량 소가주였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의원은 아니지만 치료는 할수 있어요."
"동생 말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이번엔 내 팔에 실험을 해 봐라."
스윽.
주저도 없이 내민 팔뚝을 그어 버리는 당소량이었다.
"클린! 힐링!"
그런 팔뚝위에 오른손 바닥으로 살짝 스치면서 마법을 발휘했다. 손바닥이 스쳐 지나간 팔뚝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이 말끔한 상태였다.
"음...진짜군. 어떻게 이런식으로 치료를 할수 있는거냐?"
"소가주의 무공을 알려 달라고 하면 알려 주실수 있으세요?"
"...미안하다. 사과한다."
치료술이나 무공이나 제자가 아닌한 함부로 타인에게 알려 주진 않는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 자세히 말해봐라."
"당봉의 화상 자국을 완전히 잘라 버리면 되요."
"알겠다. 당장 시작하면 되나?"
"일단 침대에 눕혀야겠죠."
누님에게 양해를 구한 당봉은 침대에 누운채 이를 앙물고는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생살을 베어 내는 고통을 참을 준비를 하고 있는것 같았다. 그런 당봉에게 당소량이 다가갔다.
"잠깐만요. 생살을 벨려고요?"
"그럼 달리 방법이 있냐?"
"물론이죠."
당봉에게 다가가 화상 자국이 있는 얼굴에 슬쩍 손을 흔들었다. 청송의 제지에 눈을 뜬 당봉은 손이 얼굴쪽으로 접근하자 움찔하고 있었다.
"걱정마! 아무런 고통은 없을꺼야. 믿을수 없다면 화상이 있는 곳을 꼬집어 봐."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