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오크로써의 삶(8)
69화.
천막안으로 들어간 단장은 롱소드를 들고 나왔다. 자세를 잡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대륙의 마나 연공은 거의 모두가 동공(動功)이다. 어떤 연공법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조금씩 단장에게 마나가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리콜데르먼 마나 연공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편이지만 저런 마나 연공법만으로 상급 익스퍼트가 된 단장은 자질이 대단한것 같았다.
단장의 움직임을 한동안 바라 보고 있을때 해크는 좀이 쑤셔왔다. 단장과는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걸어가 태극권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무당파에서 본 어린 제자들이 하던 태극권이다. 무림에서는 아무리 태극권을 펼쳐도 마나를 몸속으로 끌어 들일수 없다.
무당파의 조사인 장삼봉이 창안한 태극권은 진체를 잃어 버린 상태로 남아 있는 태극권만으로는 무리라고 했다. 기이한 움직임을 보이는 해크에게 기사들과 병사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마치 춤을 추는듯히 흐느적거리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는지 간간히 피식피식 웃고도 있었다. 하지만 해크는 그런것에는 아랑곳없이 태극권에 빠져 들었다.
중원보다 마나가 몇배나 풍부한 이곳에서 태극권을 펼치자 조금씩이지만 마나가 몸속으로 들어 오고 있었다. 놀라운 발견이었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태극권도 익숙해 지고 있었다. 일반인이었다면 이미 지쳐 쓰러졌을것이다. 막강한 체력을 보유하고 있는 오크인 해크는 시간 가는줄도 모르고 태극권에 푹 빠져 들었다. 태극권을 펼치는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팡팡.
급기야 바람을 때리는 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하자 지켜 보던 기사들이 놀란 표정으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이제야 그들도 마나 연공이라고 짐작한 것이었다.
'후우~!'
만족스러울 만큼 태극권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후 움직임을 멈추자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걸 느꼈다. 기사 단장도 마나 연공을 멈춘채 해크를 지켜 보고 있었던 것이다. 단장이 다가왔다.
"마나 연공인가?"
"취익! 그래."
"그런 특이하게 움직이는 마나 연공은 처음 보았네."
하긴 이 대륙에는 존재하지 않는 마나 연공법이다.
"마나 연공 이름이 뭔가?"
"취익! 태극권이다."
"떼그거구언?"
발음이 어려운지 전혀 다른 단어로 들렸다. 질문 공세에 시달릴것같아 화제를 돌렸다.
"취익! 어때? 마나 연공이 효과가 있었어?"
"고맙네. 자네 말대로 효과가 있었네."
해크가 오크임에도 단장은 아무렇지도 않는듯했다. 자작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3일후 단장이 거의 회복되자 정글을 빠져 나가기 위해 이동했다. 마법사들은 던전안에서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그런 던전 입구 바위에 마나를 불어 넣어 막아 두었다.
던전에서 아무런 성과도 없이 실망한채 정글을 빠져 나가기 위해 이동하는 행렬 가장 앞에 선 해크가 모두를 이끌고 있었다. 마나 서치를 펼치며 몬스터가 있는 곳은 가급적 피했다. 그래도 인간 냄새를 맡고 접근하는 몬스터는 해크가 달려가 죽인후 가죽을 벗겨 자작에게 건네 주었다. 이미 오우거 가죽 두장까지 준 상태다. 자작 영지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길을 모르는 해크는 마법사가 말한대로 이동해 한달만에 정글을 빠져 나갈수 있었다.
"해크! 고맙네."
"취익!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부탁한 물건이나 빨리 가져와."
"걱정말게. 적어도 5일안에는 다시 오겠네."
자작 일행이 완전히 정글을 나갔다. 해크는 정글 경계 지점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호키에게는 오크들과 같이 살 준비를 해서 오라고 하며 약초 그림이 적혀 있는 책을 반드시 가져 오라고 했다. 이미 호키는 금화와 실버를 가지고 있는 상태다. 그 돈으로 필요한 물건은 얼마든지 구입할수 있을 것이다.
아메르 자작을 기다리는 동안 해크는 마나 연공만했다. 빨리 아공간을 소환할 정도로 마나를 모아야 했다. 약속대로 5일후 인간들이 정글 경계 지점으로 수레를 끌고 도착했다. 가장 앞에 아메르 자작이 말을 타고 있었다. 해크는 정글에서 나가지 않고 모습만 보여 주었다.
"해크! 잘 지냈나?"
"취익! 약속대로 와 주었군. 취익! 당장 거래를 시작하자."
마법 배낭안에 있던 몬스터 가죽을 쏟아 냈다. 트롤은 물론 미노타우르스, 오크 가죽등 50여개의 가죽을 꺼내고는 오크 마을에서 자주 먹던 과일인 캉킹도 꺼내 놓았다.
"이건 뭔가?"
"취익! 캉킹이라는 과일이야. 취익! 먹어봐."
캉킹을 한입 베어 물은 자작은 달콤한 즙이 입안으로 흘러 들어 오자 눈이 커지며 한개를 뚝딱 처리해 버렸다.
"이 캉킹이 많이 있나?"
"취익! 얼마든지 있어."
"그럼 이것도 거래를 하세."
자작이 가져온 물건은 도끼 10개와 단검 5개, 정글도 10개였으며 농기구는 괭이와 호미 비슷한것을 각각 10개씩 가지고 왔다.
"급하게 준비를 하느라 이것 밖에 가져 올수 없었네."
"취익! 엄청난 손해를 보는 거지만 처음 거래인만큼 내가 손해 보는걸로 할께."
"고, 고맙네."
가죽과 과일을 모두 준다는 말에 아메르 자작은 고마워했다.
"취익! 영지 사정은 어때?"
"...어렵다네."
"취익! 도와 줄께. 대신 영지 사정이 나아지면 더 많은 거래를 해야 돼."
배낭에서 물주머니를 꺼내 자작에게 건네 주었다. 오크용 포션을 인간용 포션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큰물주머니안에 가득 들어 있는 포션을 손톱만한 작은 병에 옮겨 담으면 족히 백병이상은 될것이다. 포션은 비싸다. 하급 포션이라도 해도 한병에 1골드이상이다.
"이, 이건 포션인가?"
"취익! 그래. 공짜로 줄께. 취익! 팔아서 영지 살림에 보태."
"고, 고맙네."
"취익! 대신 자작 일행이 가지고 있는 물주머니를 몇개 줘. 취익! 포션을 만들어 담을려고 해."
군말없이 자작은 물주머니를 건넸다. 다음에도 포션을 거래할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있을것이다. 자작은 가죽과 포션을 팔면 적어도 몇백 골드는 벌것이다. 그것으로 영지는 조금 살아 날지도 모른다. 자작 영지가 무사해야 앞으로도 계속 거래를 할수 있을 것이다.
자작과는 3개월후에 다시 거래를 하자고 했다. 호키가 한달전에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 알려 주면 구해 달라고 하고 헤어졌다. 정글안으로 해크를 따라가는 호키의 얼굴은 죽을상이었다. 오크들과 같이 생활한다는게 불안한것이었다.
"취익! 걱정마. 네겐 손도 대지 못하게 할테니까."
"그, 그래도..."
"취익! 우리들과 오래 살지 않아도 돼. 취익! 오크들에게 농사일이나 가축을 기르는 일등 몇가지만 가르켜 주면 풀어 줄께."
풀어 준다는 말에 호키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발걸음이 느린 호키를 업었다. 계속 걸어서 이동한다면 한달정도 걸릴것이다. 아레나 대륙에서 오크에게 업힌 최초의 인간이 호키가 될것이다. 너무 빨리 이동하는 탓으로 호키는 부덜부덜 떨었다. 오크 마을까지는 열흘만에 도착했다. 인간이 마을 안으로 들어 오자 처음 보는 인간에게 호기심을 느낀 오크들이 모조리 몰려 들었다.
"취익! 이 인간은 호키다. 취익! 앞으로 너희들에게 여러가질 가르켜 줄것이다. 취익! 만약 호키에게 손을 댄다면 죽인다."
평소에 온화한 해크가 험악한 얼굴로 오크들을 둘러 보며 협박을 하자 마을 오크들은 움찔거리며 겁에 질린 모습들이었다.
"취익! 노크, 네가 호키를 잘 보살펴 줘."
"취이익! 알았어."
수많은 오크들에게 둘러 쌓인 호키는 부덜부덜 떨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면 바뀐 환경에 익숙해 질것이다. 호키의 집을 짓기 위해 청년들을 이끌고 마을을 나갔다. 호키는 불안한지 해크의 옆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호키의 집은 이틀만에 완성되었다. 이미 한번 만들어 본 경험이 큰도움이 되었다.
호키가 가져온 약초책을 보며 오크들을 불러 약초 그림을 보여주며 사냥을 나갔을때 이런 약초를 발견하면 뿌리가 다치지 않게끔 캐 오라고 했다. 그리고 오크들이 몰래 찾아 먹는 나무 뿌리나 열매, 구근 식물이 있으면 온전하게 가져 오라고도 했다. 재배를 할수 있을지 실험해 볼 생각이다. 어른들이 사냥을 나가자 젊은 녀석들을 데리고 밭을 만들었다. 나무를 베고 뿌리까지 제거해 마을 밖에 번듯한 밭이 완성된것이다.
"취익! 호키, 농기구는 이런것들 밖에 없어?"
"아니요, 다른 것들도 있습니다."
어떤 것들이 있는지 바닥에 그림을 그려 보라고 했다. 낫이나 삽 모양을 그리고 쇠스랑같은것도 그렸다. 다음 거래때 그런 농기구를 가져 오라고 말해 두었다. 다음 거래때까진 고작 석달밖에 남지 않았다. 미리 준비를 해 두어야 했다. 포션을 만들기 위해 트롤 사냥을 나갔다.
오크가 트롤을 사냥한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라고 코웃음을 치겠지만 오크들중에서도 해크만이 할수 있는 일이다. 가급적 트롤은 죽이지 않고 피만 뽑을 생각이다. 트롤의 피는 어렵지 않게 뽑을수 있었다. 발견한 트롤에게 미리 준비한 동물 한마리를 조금 떨어진 곳에 놓아두고 소리를 내어 트롤을 유인했다. 트롤이 죽은 동물을 발견하고 포식을 한후 잠이 들면 트롤에게 슬립 마법을 펼쳤다.
육식 동물 대부분이 그렇듯이 트롤도 포식을 하면 바닥에 드러 누워 털을 고르거나 잠을 청한다. 몬스터는 인간보다 민감해 가까이 접근하면 비록 잠에 빠져 있더라도 알아 차린다. 잠들기를 기다려 멀리서 슬립 마법을 펼친후 접근해 팔에 마비 마법을 펼치고 다시 한번 슬립 마법을 펼쳐 깨어나지 못하게끔 조치를 한후 팔뚝에 상처를 낸다.
재생 능력이 뛰어난 트롤이 상처 부위가 재생되지 못하게끔 아이스 마법으로 살짝 얼린후 상처를 벌려 떨어 지는 피를 받아 내는 식이었다. 하루에 한두마리씩 트롤의 피를 받아 내고 트롤을 찾아 다니면서 발견한 약초라고 생각되는 풀을 캐고 캉킹 나무 열매와 나뭇가지를 수십개를 베어 마법 배낭에 넣고 미노타우르스를 한마리 잡아 마을로 돌아왔다.
일주일만에 돌아 온 마을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아직 호키는 적응이 되지 않았는지 집안에서 밖으로 나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 호키를 노크에게 명령해 반강제로 마을을 돌아 다니게 했다. 익숙해지기 위해선 이 방법밖에 없었다. 야시크 아저씨 일행이 사냥에서 돌아와 생강 비슷한 것과 약초같은 풀을 내밀었다.
"취익! 스가라는 뿌리다."
생강 비슷한 것을 스가라고 불렀다. 흙을 털어 내고 직접 맛을 보았다. 아삭아삭한게 씹는 맛은 제법이었지만 조금 아린 맛이 날뿐이었다. 호키가 마을로 들어 온탓으로 어쩔수 없이 마을에 불을 피웠다. 불을 처음보는 오크들은 두려워했지만 불에 구운 고기맛을 보고는 너도너도 구워 먹을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번 뿐이었다. 역시 오크는 고기는 날것으로 먹어야 씹는 맛과 피맛을 즐길수 있어 구운 고기는 더이상 선호하지 않았다. 모닥불에 스가를 구워 보기도 냄비에 넣어 삶아 보기도 했다. 스가를 생으로 먹었을때와는 천양지차였다. 마치 감자와 비슷한 맛으로 변해 버린것이다.
호키에게 먹어 보라고 한뒤 일구어 놓은 밭에 재배를 하라고 했다. 어떤식으로 재배를 하는지 모른다는 호키에게 여러가지 방법으로 실험해 보라고 말해 두었다. 캐온 약초들을 모두 모아 약초 서적과 비교하면서 약초가 맞는지 확인하는 작업은 시간이 많이 걸렸다. 거의 대부분이 약초와는 조금 다른 풀들이었다. 그런 점을 오크들을 불러 모아 자세하게 설명하며 어디가 다른 부분인지 꼼꼼하게 설명해 주었다.
오크들이 제대로 된 약초를 캐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할것이다. 씨를 뿌려 놓은 캉킹 나무는 순조롭게 성장하고 있었다. 이미 1미터 정도 성장한 상태로 지금 접붙이기를 하면 딱 좋을 시기였다. 호키를 데리고 접붙이기에 대한 설명을 해 주며 자라나 있는 캉킹 나무를 30센티 정도만 남겨 두고 비스듬하게 잘라 버렸다.
배낭안에서 베어온 캉킹 나뭇 가지를 꺼내 잘라 놓은 부분과 맞아 떨어지게 비스듬하게 벤후에 서로 맞물리게 한후 동물 가죽끈으로 묶었다. 호키에게도 자세하게 설명해 주며 다른 젊은 오크들에게도 직접 해 보라고 했다.
어슬퍼게 하는 오크들에겐 일일히 자세하게 설명해 주며 작업을 끝냈다. 접붙인 부분이 완전히 달라 붙으면 다른 곳으로 옮겨 심어야 한다. 호키가 마을로 들어온지 두달째에 접어 들었다. 아메르 자작과 거래를 하기 위해 호키를 데리고 정글을 나갈 시간이다. 이번에도 호키를 업은 상태로 빠르게 이동했다.
"취익! 이십일후 이곳으로 올때 자작에게는 여러 종류의 농기구와 소금, 그리고 암컷과 수컷 생닭 몇마리를 가져 오라고 해."
자작과 이번에 거래할 물건은 가죽과 약초, 스가, 캉킹, 포션이었다. 가장 값진 물건은 역시 포션으로 큰물주머니 3개나 되었다. 호키에게는 모든 약초를 건네 주면서 영주성으로 가면 약초꾼을 찾아 가지고 있는 약초중에 진짜 약초가 맞는지 확인하고 어떤식으로 재배를 하는지도 물어 보고 배우라고 해 두었다. 아메르 자작이 이곳으로 올때까지 20일의 시간이 있었다. 그동안 정글안으로 들어가 여러 동물들을 사냥했다. 몬스터는 일부러 잡지 않았다.
- 작가의말
찾아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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