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죽음, 그리고 환생의 연속
73화.
충격을 받은 리크였다. 오크는 자신의 수명이 다했다는 것을 알아 차리면 조용히 마을을 떠난다.
"취익! 언젠가는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찾아 올지도 모른다."
"취이익! 언제 올건데?"
"취익! 그건 모른다. 취익! 인간의 모습이건 다른 몬스터 모습이건 훗날 찾아 오겠다."
이별은 짧을수록 좋았다. 그날 바로 한글을 알고 있던 대마법사가 은거했었던 던전으로 이동했다.
"취이익! 이곳이 내 마지막 보금자리군. "
시간이 흘러 이곳에 은거한지 벌써 3년이 지났다. 이제 1년도 더 버틸지 못할것 같았다. 하루종일 정좌한채 생을 마감할때까지 내면의 빗장을 풀려고 노력했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이 시간만 흘러 가고 있었다. 더이상 내면속의 빗장을 풀려고 노력하지 않을 생각이다. 하는 일이 사라지자 아공간을 정리했다.
수많은 물품들이 보관되어 있는 아공간이다. 식량은 물론 무기, 금화, 서적등 꺼내도 꺼내도 끝이 없었다. 식량만 해도 얼마나 많은지 확인조차 어려울 지경이었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금화, 단한개라도 인간들 손에 들어 가면 난리가 날것인 아티팩트, 족히 수만권은 될법한 서적들이 들어 있는 아공간이다. 한종류씩 정리를 하면서 서적을 정리할때 특이한 책을 발견했다.
정령에 관한 책이었다. 자신은 항상 바람이 무언가를 알려준다. 나무나 잡초일때 바람이 알려 주는 느낌으로 무엇이 접근하거나 인간의 말소리까지 들을수 있었다. 그 바람이 혹시 바람의 정령이 알려 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의 정령과 소통할수 있는 정령 친화력을 타고 난것이 틀림없다고 생각되었다.
서적들중에 정령에 관한 책들을 모았다. 수만권의 책들중에 고작 10권정도가 고작이었다. '정령의 이해.' '정령이란?' '정령 소환 마법진.' '정령사.' '정령 마법.'등등의 서적으로 모두 읽어 보고 역시 자신은 정령 친화력이 타고 난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당장 계곡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바람이 많이 불어오는 계곡이라면 바람의 정령을 소환할수 있을지도 몰랐다. 땅을 평평하게 고르고는 정령 소환 마법진을 그리고 아공간에 있는 정력석을 박아 넣었다.
"취익! 자유로운 바람의 실프, 취익! 내 그대와 친구와 되고자 한다. 취익! 내 부름에 답해 이곳에 강림하라."
정령 소환 주문을 외우고 잠시 기다려 보았지만 아무것도 등장하지 않았다. 두번, 세번을 시도해 봐도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왜 나타나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자신은 바람의 정력과 친화력이 있다고 확신하고 있음에도 실패한것으로 볼때 정령 소환 마법진이 잘못된것은 아닌지 꼼꼼히 살펴 보며 다시 주문을 외워 봤지만 여전히 실패였다. 오크인탓으로 소환되지 않는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그런건 상관없을것이다. 정령 친화력과 제대로 된 마법진과 주문만 외운다면 정령은 소환된다.
'혹시 바람의 정령 친화력이 없는걸까?'
그렇다면 바람의 정령은 소환되지 않는다. 정령 친화력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 보기 위해서는 특별한 구슬이 필요하다. 마나 친화력이 있는지 검사를 하는것처럼 정령 친화력을 검사할수 있는 구슬이 있다. 대부분 정령사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이다. 아쉽게도 아공간에는 없는 물건이다.
정령사가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르는 상태로 찾아 다닐수도 없다. 바람의 정령 친화력이 없다면 혹시나 다른 정령과 친화력이 있을지도 모르기에 물, 불, 대지의 정령을 소환해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어떤 정령도 나타나지 않았다.
왜 그런지 확실한 이유도 모른채 홧김에 바람의 정령을 하급부터 중급, 상급순으로 차례대로 소환해 보았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바람의 상급 정령 소환 주문을 영창했을때 마법진위에 하늘거리며 연푸른색에서 점점 진한 푸른색 드레스로 변해가며 인간 모습을 한 여자가 등장한것이다.
- 호호호, 마스터 오랜만이에요. 겨우 저희를 소환할수 있게 되었네요.
"취익! 마스터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바람의 상급 정령인 실라이온은 이미 자신을 잘 알고 있는듯했다. 계약을 맺은 기억은 전혀 없는데도 알고 있는 듯한 말투에 놀랄수 밖에 없었다. 또한 '저희들'이라는 말까지 했다. 그렇다면 바람의 상급 정령뿐만 아니라 다른 정령들도 소환할수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귀신에 홀린듯한 느낌이었다.
- 마스터! 콧소리가 귀에 거슬리네요. 제게 말을 건다는 식의 생각으로 대화하세요.
- 이렇게 말이냐?
마법 메세지를 보내는 방법과 비슷한 식으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 호호호, 역시 마스터세요. 마스터를 또다시 만날수 있을지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마스터의 행동은 모두 지켜 보고 있었어요. 마스터가 저희들의 존재를 잊어버려 부르지 못한점은 모두 이해가 되요. 이제 자주 불러 주셔야 해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계속 지켜 보고 있었다는 말에 놀라는 한편 계속되는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 너 외에 어떤 정령을 소환할수 있는거지?
- 물의 상급 정령 엔다이론, 불의 상급 정령 샐라임, 대지의 상급 정령 노에스, 어둠의 상급 정령 다크니스까지 소환할수 있어요.
실라이온의 말에 입이 쩍 벌어질 정도였다. 언제 그렇게 많은 정령들과 계약을 맺은 것인지 물어 보지 않을수가 없었다.
- 호호호, 그건 절대 말해 줄수 없어요. 마스터 스스로 알아 내야 하는 일이에요.
실라이온의 말은 실망스러웠다. 일단 정령들을 모두 소환해 보았다. 그러자 불타는 듯한 붉은 드레스를 입은 샐라임과 투명한 드레스가 출렁거리며 눈에서 눈물을 뚝둑 떨어 뜨리는 엔다이론, 황토색의 드레스를 입은 노에스, 새까만 흑색 드레스를 입은 다크니스순으로 등장했다. 눈물을 뚝뚝 떨어 뜨리며 등장한 엔다이론은 너무 반가운 나머지 울먹이고 있었다. 정령은 계약을 맺지 않으면 등장하지 않는다. 자신은 계약한 기억이 없는 상태다.
실라이온은 스스로 알아 내야 한다고 했다. 계약을 맺긴 했지만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일은 있을수 없었다. 환생을 하면서 지금까지의 일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한가지 의심되는 점은 환생하기 전의 생이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죽은후부터 환생이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한국인 이전의 생도 있었을것이다. 그 이전의 생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것 같았다. 한국인 일때에는 아무것도 모른채였다. 그 이전 생을 알아야 했다. 그 열쇠는 아마 내면속에 숨어 있는 빗장이 걸려 있는 곳일것이다.
- 너희들 내 내면속에 숨겨진 방을 알고 있지?
- 호호호, 알고 있어요.
- 그럼 어떻게 여는지도 알고 있지?
- 그건 말해 줄수 없어요. 마스터 스스로 열어야 해요.
역시 정령들은 알고 있었지만 말해줄 생각이 없는듯했다. 이미 몇십년이나 노력을 했지만 계속 실패만 거듭하고 있었다. 언제 열수 있는지는 짐작도 할수 없는 상황에서 조그마한 단서라도 얻길 원했다.
- 원래는 말해 줄수 없지만 조그마한 단서를 말해 줄께요. 한자로 일(一)이에요. 더이상은 물어 봐도 말해 줄수 없어요.
일(一)! 한 일(一)자다. 하나, 한개라는 의미와 첫번째를 말하는 단어다. 다른 뜻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것 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그게 무얼 뜻하는지 바로 알순 없었다. 고민을 해 봐야 했다. 정령들을 소환할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음에도 아쉬울수 밖에 없었다, 오크로써의 생은 얼마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것을 말해 주자 정령들도 이미 알고 있다며 계속 지켜 보겠다고 했다. 또다시 환생하면 어떤것으로 태어날지 모른다. 식물이나 동물이라면 정령들을 불러 낼수 없다. 영혼으로 묶여져 있는 정령들을 소환하기 위해서는 마나가 필요하다. 동물들은 마나를 모을수 없는 탓으로 부르고 싶어도 부를수 없는 것이다.
'영혼?'
그렇다. 정령들은 영혼과 이어져 있다. 그런데도 자신은 정령들과 계약하고 있다는 사실은 물론 영혼들과 이어져 있다는 사실까지 모르고 있었다. 모든것은 내면속의 빗장을 풀면 알수 있을 것이다. 일단 조그만한 단서를 잡은 셈이다. 그 단서로 고민해 보면 조금씩 열수 있을것이다. 새로운 희망을 품고 매일 정령들을 소환해 대화를 하며 다음 생은 인간으로 환생하길 기원하며 정령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오크로써의 삶은 끝을 맺었다.
***
하지만 조물주의 장난인지 자신의 바람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렁이로 환생한것이었다. 흙을 먹고 토내내는 삶은 오래 가지 못했다. 어느날 엄청난 진동에 놀라 땅위로 올라갔다. 본능적으로 올라 가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는건 죽음이었다. 뭐가 어떻게 되었는지 영혼이 되어서야 알수 있었다. 이름모를 동물 한마리가 발로 땅바닥을 툭툭 치며 흙위로 올라오는 지렁이를 낼름 잡아 먹는 것이었다. 저런식으로 사냥하고 있을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
지렁이 다음은 잡초, 덩쿨 나무, 달팽이, 들꽃, 곰, 쥐, 새, 잡초, 잡초, 잡초순으로 환생을 거듭했다. 언제 인간으로 환생하는지 기약없는 환생을 거급하는 중에 앞을 볼수 있는 동물로 환생하면 무조건 인간들이 살고 있는 집을 찾아 갔다. 인간들을 찾아간 이유는 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컴으로 한 일(一)자에 관한 다른 뜻을 알아 보기 위해서였지만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아 낼수 있었다. 자신은 지구와 아레나 대륙에서만 환생을 거듭하고 있는것이었다. 왜 두개의 행성에서만 환생을 하는지는 모른다. 한 일(一)자에 대해 조사를 하기 위해 동물의 모습으로 인간들 집으로 몰래 찾아가 인간들에게 발각되어 죽는 일도 발생했다.
아레나 대륙에서는 지구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인간들 세상으로는 나가지 않았지만 지구보다 더 빨리 죽었다. 조심을 한다고는 했지만 하늘까지 살필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언제 접근했는지 하늘에서 날아온 거대한 새에게 잡혀 생을 마감하는 일이 빈번했다.
지구에서는 미국에 서식하고 있는 곰으로 환생해 인간집으로 내려가 인간이 집안에 없는 것을 확인한후 창문을 박살내고 침입해 컴을 찾았지만 비번이 걸려 있던 탓으로 컴은 사용하지도 못한채 출동한 경찰에 의해 총에 맞아 죽었다. 곰은 보호되는 동물이 아닌가 했지만 모를 일이다.
***
또다시 환생이 시작되었다. 이번엔 틀림없이 인간이다. 얼굴까지 꼼꼼히 손으로 만져 확인했다. 오크는 절대 아니었으며 이종족도 아니었다. 얼마만의 인간으로 환생하는지 속으로 환호성을 내지르며 해야 할일을 생각했다. 어머니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마나 연공은 하지 않았다.
찰싹.
엉덩이를 때리는 조산부의 행동에 일부러 큰소리로 울어 주었다. 무사히 태어 난것이다. 아직 눈을 뜰수가 없어 이곳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들려 오는 말소리가 한글이라는 것은 어머니 뱃속에 있을때 알고 있었다. 3일정도 지난 시점에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엄마의 품속에 안긴채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을때 엄마의 흐느낌 소리와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흐흑...미안하다, 미안해. 흐흐흑...널 키울순 없어. 네 이름은 정영한이야. 으흑...엄마를 미워하렴. 엄마를 원망해...훌쩍...엄마는 고인영이란다."
엄마의 말에 위험하다고 생각되었다. 심상치않는 말투가 어떤 짓을 저지를것 같은 분위기였다. 계속 흐느끼며 말을 걸며 이동해 바닥에 내려 놓은 엄마는 손과 얼굴을 몇번이나 만져보며 큰울음 소리를 터뜨리며 누군가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급히 멀어져 갔다.
자신은 보육원에 버려진 것이다. 머리속이 새하얘지는 순간이었다. 엄마에게는 어떤 사정이 있는것 같았다. 보육원에서는 잠자는 시간외에는 모두 마나 연공에 매달렸다. 들리는 말로 인해 이곳은 나주에 위치한 영아원이었다. 그곳에서 난 3개월후에 영국으로 입양되었다. 똘망똘망한 눈과 은발에 가까운 머리카락이 입양 포인트가 되었다고 떠드는 소릴 들었다.
자신의 머리카락이 왜 은발이라는것인지 어느 정도 짐작은 되었다. 엄마가 날 버렸을때 엄청난 충격을 받아 머리카락이 변해버린것 같았다. 영국으로 입양된 난 토니 브라운이라는 이름이 되었다. 새엄마에게 안겨 자동차에서 내렸을때 본 풍경은 전형적인 시골이었다.
드문드문 산재한 주택은 넓은 밭으로 둘러 쌓여 있었다. 그런 밭들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숲속으로 들어간 곳에 거대한 저택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층 저택으로 현관문 앞에는 굵직한 하얀 기둥이 네개나 있었으며 그 기둥 위쪽 이층 외벽 중앙에는 가문을 상징하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입양아인 날 안고 들어온 새엄마에게서 받아든 할아버지는 싱글벙글 웃음을 지으며 반겨 주었다.
나에게는 다행이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수 없는 처지에 학대라도 당한다면 꼼짝없이 당할수 밖에 없다. 영국인은 동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이 심하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런 가정이 아닌것 같아서 한숨을 놓았다. 이곳에서는 개인방에서 생활했다.
한국의 영아원에서는 많은 애기들과 같이 생활했지만 이곳은 사방이 둘러 쌓인 개인 침대에 누워 성장하길 기다렸다. 애기가 하는 일이라곤 잠을 자거나 배고 고프면 우는 일이다. 하지만 난 깨어있는 시간은 모두 마나 연공에 매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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