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추산, 옛인연을 만나다(3)
107화.
채재재재쟁.
완전히 포위당한 형국의 추산을 향해 일제히 검을 뽑아든 남궁세가 무인들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추산을 어렵지 않게 제압할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것이지만 과연 그럴수 있을지 이들은 큰오판을 하는 것이다.
저벅저벅.
가주옆에서 복수 운운하던 중년인이 내려와 검을 뽑았다.
"놈! 검을 뽑아라."
"검? 네놈같은 놈들을 상대하는데 검 같은 거추장스런 물건은 필요 없어."
"감히!"
추산의 도발에 단단히 화가 난듯한 중년인이 보법을 펼치며 접근해 왔다. 역시 처음 보는 보법이었다. 뇌옥앞에서 중년인들이 펼치던 보법과 똑 같았지만 이 자의 움직임이 더 활발했다. 그런걸로 볼때 이 자의 경지가 더 높아 보였다.
휘익!
어깨를 향해 떨어지는 검을 경혼신법을 사용해 살짝 피했다. 피하면서 공격하면 단한방에 무너 뜨릴수 있었지만 중년인의 검법을 알아 보기 위해 일부러 피한것이다.
피웃.
옆으로 피한 추산을 향해 아래쪽에서 급히 검을 올려 긋자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볍게 허리를 뒤로 젖히며 피하자 위쪽으로 올라간 검은 급속도로 아래쪽으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사삭.
두걸음을 뒤로 옮기자 검은 추산 앞쪽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다. 중년인의 팔 길이와 검 길이를 계산해 피한것이다.
슈욱.
이번엔 중년인이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찔러오고 있었다.
스윽.
중년인의 검법을 자세히 살펴 보며 오른쪽으로 한걸음 옮겨 가볍게 피했다. 어떤 검법을 시전하고 있는지 전혀 알아 볼수가 없었다. 왜 남궁세가의 무공을 사용하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슈슈슈슈.
추산이 피한곳으로 빠른 속도로 찔러 오며 옆으로 더이상 피하지 못하게끔 좌우 양쪽을 집중적으로 찌르며 한걸음 내딪고는 얼굴을 향해 찔러왔다. 뒤쪽으로 한걸음 물러나자 얼굴을 찔러 오던 검은 어느새 회수되어 복부를 향하고 있었다. 얼굴을 찌르던 검은 허초였다. 중년인은 어느 정도 실전 경험이 있어 보였다.
주르르.
5미터 뒤로 멀찌감치 물러나 중년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네놈이 고문을 지시한 놈이냐?"
"그렇다."
사실인지 아는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공격이 전혀 먹혀들지 않자 얼굴이 조금 붉어진 중년인이 다시 공격 자세를 취했다.
"그게 무슨 검법이냐?"
"죽어랏!!"
탓.
검으로 답하는 놈이었다. 남궁세가의 검법을 시전하지 않는 것으로 볼때 모르고 있다고 판단한 추산은 중년인에게 더이상 볼일은 없었다. 좌우로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며 생소한 검법을 휘두르며 공격해 오는 중년인의 품속으로 뛰어든 추산은 중년인이 검을 들고 있는 오른 손목을 덥석 잡고는 오른손으로 목을 거머 쥐었다.
뚝.
왼쪽 어깨로 목이 툭 꺾인 중년인의 목을 놓아 주자 바닥으로 힘없이 털썩 쓰러지는 중년인이었다.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중년인을 죽여 버린 추산이었다.
"어헉!"
"자, 장로님!"
지켜 보던 무인들이 경악하며 추산에게 일제히 달려 들었다.
쿵.
마나를 발에 주입해 바닥을 찍었다. 그러자 큰소리가 들려오며 바닥이 흔들렸다.
"아앗?"
"으헛!"
달려 오든 무인들이 놀란듯 주춤거릴때 추산이 움직였다.
휙!
혼도 놀란다는 경혼신법의 진가가 발휘되었다. 너무 빠른 움직임에 추산의 모습을 감지할수 있는 자가 있을지 모르지만 무인들은 짧은 비명을 토해내며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가, 가주...멈추어야 합니다."
50명의 무인들이 이미 20명이나 쓰러진 상태다. 바닥에 쓰러져 꿈틀거리고 있는 모습이 죽지는 않은것 같았지만 내상을 입은 상태라면 큰손실이다.
"멈추게."
포위한 무인들을 쓰러 뜨리고 있을때 가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펑.
"컥!"
한놈의 복부에 주먹을 박아 넣고 뒤쪽으로 훌쩍 이동해 가주가 있는 곳을 바라 보았다.
자박자박.
가주가 계단을 밟고 내려 오는 발걸음 소리는 가벼웠다. 호리호리한 몸매인 가주는 많은 내공을 보유하고 있었다. 가주가 움직이자 대들보 위에 숨어 있는 그림자에게서 살기가 뻗어 나왔다. 마치 가주를 어떻게라고 한다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경고로 여겨졌다.
"자네 경지에 탄복했네.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경지에 도달할수 있었나?"
"욕심을 버리면 돼."
"음, 그런가?"
스릉.
가주는 대답과는 달리 눈빛은 차거웠다. 장로를 죽인 탓으로 화가 단단히 난것같았다.
"이번엔 나하고 한번 놀아보세."
"무슨 검법을 사용할꺼냐?"
"소연검법이네."
남궁세가 무인들이 가장 처음 배우는 검법이 소연검법이다. 소연검법을 대성하면 대연검법을 배울수 있다. 추현이는 소연검법을 넘어 뛰고 대연검법부터 배웠다. 비록 아이들이 처음 배우는 남궁세가의 소연검법이지만 이제야 남궁세가 검법을 볼수 있다는 생각에 가볍게 흥분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금새 냉정하게 마음을 가라 앉혔다. 전투에서의 흥분은 금물이다. 가주는 소연검법 다음에는 대연검법을 펼칠것이다.
슈욱.
무슨 보법을 펼친것인지는 모르지만 순식간에 접근한 가주는 검을 가슴 중앙을 향해 찔러왔다. 가볍게 왼쪽으로 피하자 검이 왼쪽으로 따라 오고 있었다.
사사삭.
뒤쪽으로 물러서자 이번에도 가주의 검은 뒤쪽으로 바짝 따라 왔다. 죽인 장로와는 비교할수도 없을 정도의 빠른 움직임이었지만 추산의 입장에선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려 보였다. 추산이 모든 공격을 쉽게 피하자 가주는 잠시 멈춘후 검을 고쳐 쥐고 있었다. 그런데 가주가 펼치는 소연검법이 이상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소연검법과 조금 달랐다. 찌를때의 팔의 위치나 발의 움직임이 군데군데 달랐던것이다. 가주의 얼굴이 조금 붉어지자 검에 어렴풋이 기(氣)가 감지되었다. 평범한 검으로는 추산을 잡을수 없다고 판단한 가주는 검기(劍氣)를 사용할려는듯했다. 하지만 검기는 너무 약해 보였다.
파팟.
휘익.
두걸음을 앞으로 내딘 가주가 검을 휘두르자 검사(劍絲)가 채찍줄처럼 뻗어 나왔다. 경혼신법을 펼쳐 요리저리 피하자 피하고 있는 곳으로 접근한 가주는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파삭.
주먹을 사이킥 핸드로 감싸고 검사를 맞받아치자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주의 뿌린 검사(劍絲)는 힘없이 부서지자 가주는 숨이 가쁜지 헉헉거리고 있었다. 장시간 검사(劍絲)를 유지할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 보였다.
"그런 엉성한 소연검법으로는 날 어떻게 할수 없어. 다른 검법을 펼쳐봐."
"후~욱! 자넨 누군가? 남궁세가와 어떤 관계인가?"
숨을 고르고 있는 가주는 시간을 벌 요령인지 질문을 해 왔다. 가주의 몸을 살피자 내공을 많이 사용한 탓인지 내공이 거의 바닥나 있었다.
"그건 알 필요없고 대체 어떤 내공 심법을 연마했기에 고작 두번 펼친 검사(劍絲)에 내공이 딸려 헥헥거리는거야?"
"......."
남궁성대는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경악할수 밖에 없었다. 소연검법은 물론 자신의 내공이 거의 바닥이 난것을 이 젊은 놈은 이미 파악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과는 비교도 할수 없을 정도의 고수가 틀림없었다. 어떻게 저런 젊은 나이로 그런 경지에 도달할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무림 세가는 문화 대혁명으로 인해 큰피해를 입었다. 모든 무림 세가들이 무너져 근근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현실이었다. 저 추산이라는 젊은 자는 남궁세가의 무공을 잘 알고 있는것 같았다. 사부가 남궁세가 인물이 아니라면 있을수 없는 일이다.
'음, 그때 살아 남은 자가 있었던가?'
남궁세가에서 무공을 알고 있는 자는 모두 죽였다. 무공을 모르는 아이들과 여자들은 모조리 쫒아 내 버렸다. 철저히 조사를 했음데도 살아 남은 자가 있었던것 같았다.
"자네 사부가 누군가?"
"알것없어. 이제 내공을 회복했으면 다른 검법을 펼쳐봐."
"...음."
가주는 가볍게 신음을 흘리며 대들보를 힐끔거렸다. 잠시 뜸을 들인 가주가 다시 공격을 할려는듯 보법을 밟았다.
탓.
일직선으로 달려 오든 가주가 급히 왼쪽으로 이동하며 검을 휘둘렀다.
휘익.
텅!
추산의 주먹에 막힌 검은 살짝 튕겨 나갔다. 그러자 이번엔 왼손으로 얼굴을 찔러 왔다.
탁.
가볍게 왼손을 막자 뒤에서 살기가 감지되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쩡!
급히 뒤돌아 서며 주먹을 뻗었다. 이미 대들보위에 숨어 있는 영(影)이라고 짐작되는 가주 그림자가 이쪽으로 은밀히 이동하고 있다는건 알고 있었다. 살기를 풀풀 날리는 영(影)은 그림자로써는 실격이다. 박살난 단검의 손잡이만을 쥐고 있는 영(影)은 검은 복면을 뒤집어 쓰고 있었지만 흔들리는 눈빛만은 감출수가 없었다.
"형편없는 그림자군."
퍽.
영(影)의 복부를 걷어차고 절로 앞쪽으로 숙여지는 영(影)의 뒷목의 마혈을 눌러 몸을 마비시키자 바닥으로 쓰러져 버렸다.
빙글.
눈깜짝할새에 영(影)을 제압하자 가주가 등뒤를 공격하는 것을 감지한 추산은 즉시 반바퀴 몸을 회전시켜 검을 피한후 가주의 오른 손목을 금나수로 잡아채 검을 빼았았다.
"헉!"
순식간에 자신의 검이 추산에 손아귀로 들어 가자 깜짝 놀란 가주는 즉시 뒷걸음질을 쳤다.
"가주!!"
휘리릭.
계단위 가주옆에 있던 장로로 짐작되는 중년인 세명이 즉시 뛰어 내려와 가주앞에 내려 서며 검을 뽑아 들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접근하기전에 가주를 처리할수 있었지만 일부러 움직이지 않은 추산은 장로들의 검법을 유심히 관찰했다.
휘익.
사사삭.
일부러 장로들의 공격을 막지도 않은채 피하기만 했다. 추산이 피하면 피할수록 장로들의 합공은 점점 더 강도를 더해 가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장로들이 시전하는 검법은 생소했다. 가주가 펼치던 소연검법을 모르는듯 처음 보는 엉성한 검법을 시전하고 있었다.
옛날 청송일때 시중에 파는 삼재검법을 응용한 검법인듯 위력이 형편없었다. 내공을 보유한 장로들의 움직임은 민첩했지만 검에 내공을 주입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이상 지켜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추산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번쩍.
삼면에서 포위해 추산을 공격하든 장로들의 얼굴에 경악이 서릴 수 밖에 없었다. 중앙에 있던 추산이 사라진것이다.
퍽.
"컥!"
장로 뒤로 이동한 추산은 뒷목을 후려쳐 기절시키고 다시 번쩍이며 사라져 나머지 두 장로를 어렵지 않게 제압해 버렸다. 장로들의 합공을 지켜 보던 가주는 놀란듯 얼굴이 실룩이고 있었다.
"가주! 정말 남궁세가 가주 맞아? 가주의 검법은 물론 장로들의 검법이 이상하잖아?"
"...검법이 소실되어서 그렇네."
이해는 되었다. 왜 소실되었는지 묻지 않아도 알수 있었다. 문화 대혁명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문화 대혁명때 피해를 입었다고 해도 직계라면 어느 정도 무공을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게 정상이다. 그때가 어린 나이였다면 아직 무공을 배우지 못해 모르는건 이해가 되지만 가주의 나이로 볼때 문화 대혁명 시절엔 아직 젊은 나이였을것이다.
그런데도 남궁세가의 무공을 모르고 있었다는걸 납득되지 않는 점이다. 남궁세가를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을 내려야 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무공을 알려주면 남궁세가는 시간은 걸리겠지만 옛영광을 되찾을수 있을것이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 가야 할 점이 있었다.
"가주는 직계야?"
"......."
"아니군."
얼굴이 굳은채 말이 없는 가주로 볼때 직계가 아닌 방계로 짐작되었다. 그렇다면 모든것이 이해가 되었다.
"직계손들은 모두 죽었나?"
"...모른다네."
이것으로 가주 자신이 방계라고 인정한것이 마찮가지였다. 직계손을 찾아 할 필요가 있었다. 어떻게 직계가 아닌 방계가 남궁세가 가주로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바닥에 몸이 굳은채 쓰러져 있는 영(影)을 옆구리에 끼고는 경혼신법을 펼쳐 남궁세가의 높은 담장을 훌쩍 뛰어 넘었다.
"얼굴이나 한번 보자."
인적이 없는 산으로 이동해 영(影)의 복면을 벗겼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가주보다 나이가 더 많아 보였다.
"네가 가주를 암중으로 보호하는 영(影)이냐?"
"...가주가 아닌 남궁세가를 보호하는거다. 내 정체를 어떻게 안게냐?"
가주가 곧 남궁세가 전체나 마찮가지다. 가장 중요한 인물을 보호하는게 영(影)의 임무다.
"예전에 영(影)을 만나 본적이 있었다. 마혈을 풀어 줄테니까 묻는 말에 솔직히 말해라."
꾹.
마혈을 풀어주자 영(影)은 바닥에서 일어나 앉아 목을 몇번 빙글빙글 돌리고는 자세를 고쳐 잡으며 입을 열었다.
"사부님을 만나 본적이 있다고? 자네 나이가 몇이길래...지금 늙은이를 놀리는겐가?"
"믿지 못하는건 당연한 일이다. 굳이 설명할 생각도 없어. 남궁세가 직계가 아닌 방계가 왜 가주로 있는거냐?"
"음...문화 대혁명때 무공을 알고 있는 직계손은 모두 죽었다. 지금의 가주가 홍위병을 끌고 와 죽이고 남궁세가를 차지한거다."
"그게 정말이냐? 좀더 자세히 말해봐."
영(影)의 말이 사실이라면 가주는 죽일 놈이었다. 권력 다툼에 외부인을 끌어 들여 가주 자리를 차지한것이다. 남궁세가 직계들은 홍위병을 상대로 반항을 했지만 총으로 무장한 그들을 이길수가 없었다. 남궁세가를 완전히 장악한 현재 가주는 무공을 알고 있는 남궁세가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고 여자와 아이들은 추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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