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천후,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다(2)
197화.
사이킥 서치를 펼쳐 보았지만 탐지되는 사람들도 채 50명이 되지 않았다. 이곳도 징집을 피해갈순 없었던것 같았다. 마차로 마을로 들어서도 나와 보는 사람들도 없을 정도였다. 산으로 둘러 쌓인 바닷가 근처 마을인 탓으로 농경지도 산을 깎아 만든 계단식이었다.
"저희 집으로 가시지요."
번리가 안내한 곳은 시골 촌구석 치고는 제법 큰 집이었다. 번리가 안으로 뛰어 들어가 큰소리로 누굴 불렀다. 문을 열고 나온 자는 늙은 여인은 눈이 커지며 번리를 얼싸 안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번리의 어머니같았다. 번리 집엔 번리 어머니 혼자만 살고 있었다.
세번에 걸쳐 마을 남자들 대부분이 징집되어 간후 일년전 마적들이 마을을 휩쓸어 대항하던 남아 있던 남자들을 모두 죽고 젊은 여자들을 끌고 갔다며 눈물을 훔치며 그간 사정을 설명했다. 남자들이 사라진 마을은 농사만으로 근근히 입에 풀칠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남자들이 있을땐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아 넉넉하진 못하지만 배를 곪진 않았었다.
"음, 번리! 마을 사람들을 한곳으로 모두 모아라."
번리가 밖으로 뛰어 나가자 엘의 손을 잡고 용병인 쟈르와 잭크를 데리고 마을 중앙으로 갔다. 마을 사람들이 도착하기 전에 아공간에서 밀가루를 꺼내 한쪽에 쌓아 놓고 대형 솥을 걸어 놓을 화덕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하나둘씩 중앙쪽으로 다가 올려는 마을 사람들은 로브를 입은 천후와 용병인 쟈르와 잭크를 보며 두려워했다.
"걱정말고 얼른 가세요. 마스터가 식사를 준비하는것 같습니다. 도와 드려야 합니다."
번리의 재촉에 엉거주춤 다가 오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늙은이들이었다. 총47명중 노인이 30명에 이르며 나머지는 열살 남짓한 아이들뿐이었다. 성인 남자들이나 여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번리의 소개로 마법사란걸 안 마을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런 촌구석을 찾아온 마법사는 천후가 처음이라며 웅성거렸지만 모두들 두려움에 물들어 있었다.
"모두 저 밀가루로 빵을 굽고 수프를 만들어라."
이 마을도 천후가 먹여 살려야 할 지경이다. 마을 사람들의 주식은 포테라라는 보라색 감자다. 계단식 밭에 주로 재배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 모두가 둘러 앉아 빵과 수프를 먹기 시작하자 경계심이 많이 줄어 들었다. 마을에 남자들이 있을땐 바다로 나가 뿌루뿌와 마르타를 주로 잡아 먹고 살았지만 지금은 바다로 나갈수 있는 사람이 없어 매일 감자와 채소를 곁들인 음식을 먹고 있다고 했다.
다른 마을에 비해 먹는것엔 그렇게 궁하지 않는 마을이었다. 식사가 끝난후 집집마다 밀가루를 옮겨 주라고 한 천후는 번리가 안내한 집으로 엘을 데리고 갔다. 빈집이 많은 관계로 가장 큰집이라며 내준 집안을 사이킥 클린으로 청소하고 아공간에서 지구의 침대를 꺼내 놓았다. 마을에서 지낸지 3일이 지나자 경계심은 거의 사라져 마을에 녹아 들었다.
"캐논님, 뿌루뿌를 잡으러 가야겠습니다."
"같이 가자."
뿌루뿌는 거대한 놈이라고 했다. 간간히 바다위로 올라와 물을 내뿜는 놈으로 한마리만 잡아도 마을 사람 모두가 몇달은 생활할수 있다는 말에 지구의 고래가 아닌가 했다. 번리와 쟈르, 잭크와 함께 바닷가로 갔다. 통나무 속을 들어내고 만든 배로 중심을 유지하기 위해 배 옆으로 나무를 묶어 작은 배가 나란히 매달려 있는 구조였다.
배안에는 긴막대기 창이 몇개나 준비되어 있었으며 막대기 끝 달린 날카로운 창에는 로프가 매달려 있었다. 나무창을 뿌루뿌에게 꽂으면 앞쪽의 창살만 남기고 막대는 떨어져 나가 로프를 잡아 당겨 고래를 놓치지 않게끔 하는 것이다. 바다로 나가는 일행을 마을 사람들이 성원해 주고 있었다. 번리는 쟈르와 잭크에서 어떻게 노를 저어야 하는지 알려 주며 천천히 바다로 나아갔다.
다행히 파도는 잔잔해 전복될 우려는 없었다. 뿌루뿌가 자주 등장하는 뿌루뿌 섬 근처로 가서 찾아야 한다며 섬 근처로 이동했다. 큰섬인 뿌루뿌 섬은 예전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해적들로 인해 섬 마을 사람들이 해적들에게 당한 탓으로 지금은 버려진 섬이다. 그 섬 주변에 뿌루뿌가 자주 출몰한다고 했다.
물이 치솓아 오르는 곳을 찾아야 한다는 말에 천후는 통나무배 선수(船首)에 선채 주변을 둘러 보고 있었다. 뿌루뿌를 찾을수 없다면 마르타라도 상관없다고 했다. 마르타의 설명을 듣고는 지구의 만타가오리와 비슷한 모양을 한 놈이라고 생각되었다. 이 바닷가엔 해양 몬스터는 없다는 말을 들었다. 선수에 선채 바다위에 물기둥을 찾고 있었지만 전혀 보이지도 않았다. 이래서는 언제 찾을수 있는지 기약이 없었다.
- 엔다이론, 뿌루뿌를 찾아봐.
쉬운 방법을 놔두고 어렵게 찾을 필요는 없었다. 물의 정령인 엔다이론은 얼마 지나지도 않아 뿌루뿌가 있는 곳을 알려 왔다.
"저쪽으로 가자. 저 방향에 놈이 있다."
노를 처음 저어 보는 쟈르와 잭크인 탓으로 너무 느리게 움직이는 탓으로 뿌루뿌는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뿌루뿌는 지구의 고래와 비슷하지만 달랐다. 놈은 거대한 이빨로 통나무 배쯤은 한입에 산산조각 낼수 있다며 놈을 사냥할땐 뒤쪽으로 접근해 수십개의 창을 박고 지칠때까지 기다리는 식으로 사냥을 한다고 했다. 몸통이 거대한 만큼 방향 전환이 쉽지 않는 놈이기 때문이다.
"헉헉헉!!"
쟈르와 잭크가 지친듯 숨이 거칠어지고 있었다. 노를 젓는 요령을 전혀 모르는 탓으로 무작정 힘으로 젓고 있는 탓이었다.
"그만 젓고 단단히 잡아."
엔다이론에게 부탁해 배를 밀어 달라고 했다.
촤아악!
"으허엇!!"
"으아악!!"
엄청난 속도로 바다위를 날듯이 미끄러져 가자 화들짝 놀란 녀석들이 기겁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뿌루뿌의 뒤를 잡은 배위에서 번리가 창을 준비해 선수에 섰다. 족히 50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놈이었다.
뿌루웃!
촤아아!
등위의 움푹 들어간 곳에서 방귀뀌는 소리가 들려 오며 물이 공중으로 치솓았다. 저 소리에 놈을 뿌루뿌라고 부르고 있는것 같았다.
훌쩍.
놈의 등위로 훌쩍 뛰어 내린 번리가 창을 박아 넣고는 급히 헤엄을 쳐 다시 배위로 올라 와 창대를 회수하고는 다른 창을 집어 들고 다시 등에 박아 넣길 반복했다. 네개의 창이 뿌루뿌의 등에 박혔다. 시뻘건 피로 물든 바다속에서 놈이 요동치고 있었다. 거대한 몸을 천천히 회전시키며 배쪽으로 얼굴을 돌릴려고 했지만 등에 박힌 창살과 이어진 로프를 잡아 당기며 절대로 입쪽으로는 배가 다가 가지 않게끔 조종하는 번리는 흠뻑 젖은 몸에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힘들어 했다.
"번리, 로프를 놓아라! 사이킥 라이트닝!!"
번쩍.
파치지징!!
알리가 즉시 로프를 놓자 놈의 등에 박힌 창살에 사이킥 전격을 시전했다. 네개의 창살을 타고 들어간 전격에 놈의 거대한 몸이 퍼덕거렸다. 한번더 사이킥 전격을 시전하자 축 늘어져 버린 놈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번리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고마워했다. 마을로 돌아 갈때도 엔다이론이 배와 뿌루뿌를 미는 식으로 이동했다. 통나무 배가 마을쪽으로 접근하자 마을 사람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배 옆의 거대한 뿌루뿌를 본것이다. 모래사장에 도착해 뿌루뿌를 모래 사장쪽으로 끌어 올리자 번리가 정글도 비슷한 칼을 가지고 와 뿌루뿌의 등에 길게 선을 죽죽 그었다.
누가 얼마큼 가져 가는지 분배를 하기 위해 선을 그어 놓은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뿌루뿌 해체는 번리가 모두 하고 운반은 쟈르와 잭크가 했다. 그날은 뿌루뿌 고기로 푸짐하게 식사를 했다. 뿌루뿌는 번리가 일주일에 걸쳐 모두 해체했다. 거대한 놈인 덕으로 집집마다 뿌루뿌 고기가 늘려 있었다. 햇볕에 말려 보존 식량으로 만드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말린 고기와 뿌루뿌 기름으로 세금을 낼수 있다며 좋아했다. 50명도 되지 않는 마을 사람들은 일년동안은 고기 걱정은 없어 보였다. 마을에서의 생활은 따분했지만 걱정거리가 전혀 없었다. 엘도 마을 아이들과 곧잘 어울려 자신이 돌보지 않아도 되었다. 하는 일이 없는 천후는 매일 바다 낚시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
"캐논님, 세금 징수관이 찾아 왔습니다."
오늘도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바위 위에서 낚시를 하고 있을때 쟈르가 허겁지겁 달려와 알려왔다.
"알아서 하면 되잖아."
"그게 징수관이 꼬장을 부리고 있습니다. 집집마다 말리고 있는 뿌루뿌를 보고 욕심을 내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고기를 세금으로 내라며 협박하고 있는 중입니다."
세금은 징수관이 올 즈음 해마다 차탈린 마을에서 7일 거리에 있는 다른 마을로 가서 내고 있었지만 마을에 남자들이 사라져 낼 세금은 물론 다른 마을로 갈 사람도 없어 내지 않은 탓으로 세금 징수관이 직접 찾아 온것이다.
널려 있는 뿌루뿌 고기를 본 징수관이 세금을 낼수 있음에도 오지 않았다는 것에 화를 내며 직접 발걸음을 한 대가로 거의 모든걸 가져 갈려는 것이라고 했다. 전번 마을에서 처럼 자신이 나서면 또다시 같은 일이 되풀이되게 될것이다. 겨우 안정적인 삶을 찾았음에도 그런 평온을 깨기는 싫었다.
"놈이 원하는대로 다 줘 버려. 뿌루뿌라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잡을수 있어."
"알겠습니다."
쟈르가 달려 가는 모습을 보며 바위위에 낚시대를 올려 놓고는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산으로 이동해 먼발치에서 지켜 보았다. 마을 중앙에는 기사 한명과 병사 수십명이 들어온 상태로 십여대의 수레에는 제법 많은 짐이 실려 있는 상태였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바닥에 엎드린 상태로 징수관으로 보이는 배불뚝이 놈이 손짓을 하자 병사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잠시후 병사들의 손에는 뿌루뿌 말린 고기들이 들려 있었으며 밀가루 포대 자루까지 들고 나오고 있었다. 집집마다 나누어 준 밀가루까지 들고 나오자 그냥 지켜 볼순 없었다. 마을 사람들을 닥달해 어디서 구한 것인지 물어 본다면 자신을 들먹일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멈춰라!!"
마을 중앙에 수북히 쌓인 뿌루뿌 말린 고기와 밀가루 포대에 놀라워 하는 징수관이 환한 웃음을 짓고 있을때 마을 중앙 상공에 등장한 천후의 말에 모든 사람들이 하늘로 고개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마, 마법사다!"
"번리! 마을의 세금은 얼마를 내면 되지?"
"예. 매년 뿌루뿌 말린 고기 두포대와 뿌루뿌 기름 두통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을 사람들이 50명도 되지 않는 탓으로 그보다 훨씬 적게 내도 될것입니다."
번리의 말에 징수관을 내려 보며 입을 열었다. 기사 한명은 징수관 옆에 선채 롱소드 손잡이에 손을 올려 놓고 언제든지 뽑을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렇다는데 왜 마을에 있는 모든 식량을 꺼내 온거냐?"
"당신은 누구십니까?"
"알것없어. 저 밀가루와 뿌루뿌는 모두 내가 마을 사람들에게 빌려 준것이다. 내 허락도 없이 감히 내 물건에 손을 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세금을 내야 합니다."
그렇게 두려워 하지도 않는 표정의 징수관은 세금을 들먹였다. 누굴 믿고 마법사를 두려워하지 않는지 모르지만 생각같아선 놈의 팔다리 한두개쯤은 꺾어 놓고 싶었지만 참았다.
"세금? 얼마큼의 세금을 내면 되는거냐?"
"영지의 바다에서 잡은 뿌루뿌는 절반을 내야 합니다."
"뭐라고? 절반을 내라고? 번리가 한말을 듣지 못한거냐? 마을 사람들이 적은 만큼 내야 하는 세금도 당연히 줄어 들었다."
"그렇습니다만 세금이 올랐습니다."
윽지를 쓰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세금이 대폭 올랐는지는 모른다. 징수관의 말이 맞다면 올린 세금만큼 내야 한다. 내지 않으면 전번 마을처럼 기사들이 마을을 점령하기 위해 병사들을 이끌고 달려 올것이다.
"좋다. 뿌루뿌 고기 절반을 가져 가라. 만약 세금이 올랐다는 말이 거짓으로 드러 난다면 넌 내손에 반드시 죽는다. 번리, 뿌루뿌 말린 고기 절반을 내 줘라."
천후의 협박에 징수관 놈의 눈이 일순 흔들리는건 놓치지 않았다. 세금이 올랐는지 그대로인지는 다른 마을로 가서 알아 보면 바로 알수 있는 일이다. 뿌루뿌 말린 고기 절반과 기름까지 절반이나 가져간 놈은 마을을 벗어 나고 있었다.
"챤네르님, 괜찮겠습니까?"
"시골 촌구석에 있는 마법사가 세금이 올랐는지 오르지 않았는지 무슨 수로 알수 있겠나?"
델칸 백작령의 세금 징수관인 챤네르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세금으로 빼앗긴 뿌루뿌 고기가 많았지만 그래도 마을 사람들이 먹고 남을 정도로 충분한 양이 남은 상태다.
"번리, 난 잠시 볼일을 보고 오겠다."
세금 징수관이 다녀 간지 7일이 지났다. 이쯤이면 다른 마을에 도착했을것이다. 징수관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다른 마을로 가서 알아 볼 생각이다. 며칠 걸릴지도 모른다고 말해 놓고는 사이킥 워프로 이동했다. 이동할 마을 좌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차탈린 마을로 들어 올려면 그 마을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을에 도착해 식당으로 들어간 천후는 주인에게 간단하게 주문을 하고 세금이 올랐는지 물어 보았다.
"세금요? 5년전 전쟁으로 인해 6할에서 7할로 그때 오르긴했지만 지금도 7할 그대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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