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천후, 중간계로 가다
193화.
노에스로 인해 마물산이 완전히 무너졌다. 무너진 산쪽으로 마나가 다시 몰려 드는지 살펴 보았다.
'됏군.'
마나는 여러곳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이제 이곳에 두번 다시 마계와의 통로는 열리지 않을 것이다. 마물산에 있는 마물들을 모조리 처리하기 위해 움직였다. 수많은 마물들이 숨어 있었지만 천후의 눈을 벗어 날순 없었다. 마물들을 처리하며 예전에 인간들이 살고 있던 마을에도 갔었지만 마을은 유령 마을로 변해 있었다.
마을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것으로 볼때 몇년이나 이곳으로 들어 오지 않은것 같았다. 마물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알수 있었다. 정기적으로 마물들을 토벌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었다.
사이킥 서치로 마물들을 찾아 모조리 죽이고 죽인 마물 사체는 아공간에 보관해 두었다. 마물을 청소하며 천마신공을 시전해 이 마물산에 있는 마기도 같이 빨아 들었다. 마계보다는 못하지만 이 마물산엔 마기가 풍부해 천마신공을 연마하기엔 안성마춤이었다.
'그만 나가자.'
마물산에서 생활한지 일년이 지났다. 마물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마기도 많이 옅여진 이상 더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는 없었다. 하늘 높이 떠올라 산아래를 빙 둘러 보며 인간들이 살고 있는 마을을 찾아 보았다. 서쪽 방향에 보이는 먼마을로 사이킥 텔레포트로 이동했다. 그 마을은 오백가구쯤 되어 보이는 큰마을이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쥐 죽은듯 너무 조용했기 때문이다. 목책으로 둘러 쌓인 마을은 목책 입구문이 반쯤 비스듬하게 열려 있는 상태로 언제 떨어져 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관리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마을 전체에 사이킥 서치를 시전했다. 오백가구라면 적어도 2천명이 넘을 정도의 인간이 살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렇게 큰마을에 감지되는 인간이라곤 겨우 백여명밖에 되지 않았으며 동물은 전혀 감지도 되지 않고 있었다.
큰 전쟁이 벌어져 강제로 징집을 당했다거나 몬스터의 습격으로 마을 인구가 급격히 줄어 들었을것이다. 마을 중앙으로 내려선 천후는 인간이 있는 집을 찾아 문을 두드렸다.
텅텅.
"아무도 없나?"
집안에 사람이 분명히 있는데도 잠시 기다려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더욱 크게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자 다른 집으로 이동해 노크를 했지만 역시 대답도 없었다. 문고리를 잡고 열자 문은 잠겨 있지 않아 쉽게 열렸다.
끼이익.
집안엔 시취가 풍겨왔다. 죽은 자를 방치한채 같이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안으로 들어 가자 침대위에 한사람이 누워 있었으며 바닥에는 두명이 누워 있었다. 바닥에 누워있는 중년 여인과 십대후반의 여자 두명은 이미 죽은 상태다.
침대에 누워 있는 10살남짓한 아이는 얼굴이 해골만 남은채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깡말랐다. 겨우 눈만 껌뻑이며 자신을 바라 보며 아무런 말도 없었다. 영양 실조로 예상되었다.
"사이킥 힐링!"
사이킥 치료를 시전해 주고 치료 포션을 먹였다. 겨우 입만 움직여 포션을 거의 다 흘려가며 받아 마시는 아이는 놀란듯 눈이 커지고 있었다. 포션으로 기력을 조금 회복했는지 아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누, 누구에요?"
"여행자다."
"머, 먹을것 줘요."
꼬르르.
아이의 배에서 밥 달라는 소리가 천둥을 치고 있었다. 얼마나 굶었는지는 모르지만 당장 먹을것을 줘선 않된다. 갑자기 빈속에 딱딱한 물건이 들어 가면 설사로 고생할것이다. 천천히 죽같은 무른 음식을 조금씩 먹어야 한다.
"일어 날수 있겠어?"
"끄응..."
힘겹게 일어나는 아이는 여자 아이로 보였다. 눈이 뀅한게 너무 불쌍해 보였다. 실라이온에게 마을 사람들을 조사해 보라고 했다. 마을에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모르지만 이 마을 사람들 전체가 영양 실조였다. 아이에게 포션을 한병 더 먹였다. 그러자 더욱 기력을 회복한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화로를 만들고 아공간에서 꺼낸 대형 솥을 걸치고 쌀을 손으로 비벼 가루를 내고 물을 넣고는 솥아래쪽에 사아킥 파이어로 불을 피워 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죽이 펄펄 끓을때 계란을 집어 넣고 저으며 적당히 소금으로 간을 맞추기 시작하자 고소한 냄새를 맡은것인지 한두사람씩 광장으로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자신이 처음 만난 여자 아이는 엘이었다. 엘은 이미 접시에 담긴 죽을 퍼 마시고 있었다. 천천히 먹으라고 해도 허겁지겁 접시에 입을 대고 부어 넣었다. 일부러 조금만 접시에 담아 주었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먹으면 오히려 탈이 난다.
"음식을 먹고 싶은 자는 접시를 가지고 와라."
대형 솥옆에 빈오크통을 꺼내 놓고 사이킥 워터로 물을 가득 채워 넣고 나무 그릇 한개를 올려 놓고 포션 두병을 섞었다. 죽을 먹기전에 물을 먼저 먹이기 위해 미리 준비를 해 둔것이다. 엘은 가뭄으로 인해 마을 사람들이 거의 다 죽었다며 울먹였다.
3년이나 지속된 가뭄과 세금으로 인해 마을은 반토막이 났다. 접시를 들고 광장으로 몰려든 사람들은 고작 이십여명에 불과했다. 그들에게 음식은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난다며 일단 물을 먼저 마시고 한입씩만 배급하고 한시간후에 다시 배급한다고 설명했다. 이견은 없었다. 모두들 힘이 없어 걸어오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말할 기운조차 없는 이들이었다. 거의 모두가 여자와 아이들이었다. 성인 남자는 이십명중 두사람밖에 보이지 않았다. 일렬로 늘어서 이들에게 먼저 치료수를 한모금씩 마시게 하고 죽을 딱 한입씩만 떠 주었다. 모두들 접시를 혀로 싹싹 훑어가며 핥아 먹기까지 했다. 더 먹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한시간이 지나지 않으면 절대로 주지 않았다.
"집들을 돌아 다니며 살아 있는 사람들을 모두 데리고 와라."
비틀거리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마을을 뒤지며 사람들을 데리고 나오기 시작했다. 움직일수 없는 사람들에겐 물통을 건네 주며 먼저 물을 마시게 하고 어느 집에 살아 있는 사람이 있는지 알수 있게끔 문을 활짝 열어 두라고 했다.
한시간마다 한입씩 죽을 퍼 주고 치료수를 마시게 하자 마을 사람들이 조금씩 기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움직일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죽을 나누어 주라고 하며 접시에 담아 주었다. 만약 주지 않고 몰래 훔쳐 먹는 사람은 두번 다시 배급해 주지 않는다며 협박까지 했다.
- 실라이온, 저들이 정말로 훔쳐 먹지 않는지 살펴봐.
실라이온의 보고로는 단한명도 훔쳐 먹지 않고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죽을 먹여 주었다고 했다. 중간계의 사람들은 마법사들을 두려워한다. 천후가 로브를 입고 있어 마법사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거역하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감히 눈도 마주 칠려고 하지 않았다.
한밤중이 되어서도 서서히 두입씩 죽을 배급해 주고 물을 마시게 하고는 오늘은 배급은 끝이라고 말해 주었다. 내일 아침 일찍 다시 모이라고 했다. 죽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엘은 그런 죽을 보며 먹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주지 않았다. 광장에 모닥불을 피우고 앉은 천후 옆에 엘도 앉아 있었다. 자신에게서 떨어 질려고 하지 않아서였다.
다음날도 아침 일찍부터 죽을 배급했다. 오늘은 세입씩 먹을수 있게끔 배급했다. 기력이 없어 움직이지 못하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집을 나와 죽을 받아 먹었다. 아직 움직일수 없는 자들도 많았다. 어제밤에 죽은 자도 있다고 했다. 마음만 먹으면 이 마을 사람들 모두를 살릴수 있지만 그렇게 하진 않았다.
살고 싶은 의지가 있는 자는 스스로 노력을 해야 한다. 마을에서 죽을 배급한지도 5일이 지나자 살아 있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마을 광장에 모였다. 성인 남자는 모두 8명으로 나머지는 아이들을 제외하면 모두 여자들이었다. 총 87명이 모인 마을 사람들에게 잘게 다진 고기를 넣은 수프와 죽을 배급했다.
10일이 지나자 모두 기력을 회복한 상태지만 앙상하게 마른 탓으로 아직 거동이 불편한 자도 있었다. 포션을 섞은 치료수를 매일 마시게 한 결과였다. 밀가루를 꺼내 주고는 마을 공동으로 먹을 빵을 굽게 했다.
자신이 이들을 매일 먹여 살릴순 없어 빵을 굽고 수프를 끓이는 동안 엘을 데리고 마을 밖으로 나가 밭을 살펴 보았다. 심한 가뭄으로 인해 밭은 흙먼지가 풀풀 날리고 있었다. 엔다이론에게 수맥을 찾아 보라고 했다. 수맥만 찾는다면 물을 끌어 올리는건 쉬운 일이다.
- 마스터, 찾았어요. 지하 백미터쯤에 있는 수맥으로 저기 큰 나무 아래쪽으로 흐르고 있어요.
제법 깊은 곳에 흐르고 있는 수맥이지만 끌어 올리는건 문제없었다. 밭이 없는 언덕쪽으로 이동해 언덕을 완전히 파내고 저수지를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노에스가 하는 작업은 순식간에 땅이 푹푹 꺼지며 언덕의 흙이 사라지고 있었다. 지켜 보던 엘은 겁을 먹었는지 자신의 로브를 붙잡고는 뒤에 숨어 떨고 있었다.
"엘! 저건 정령이 하는 일이야. 두려워 할 필욘없어."
노에스에게 작업을 중단하고 엘 앞에 모습을 드러 내라고 했다. 큰삽을 든 노에스가 하늘거리며 등장하자 엘은 눈이 동그래졌다.
"저게 정령이야?"
"그래. 만져 볼래?"
"응."
머뭇거리며 노에스를 살짝 만져 본 엘은 급히 손을 떼었다. 정령을 만져보게 한 천후는 다시 저수지 만드는 작업을 하라고 지시하고는 엘에게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주었다. 엘도 노에스가 저수지를 만들고 있다는걸 알고는 더이상 뒤에 숨지도 않고 지켜 보기만 했다. 가뭄이 들어도 밭에 물을 댈수 있게끔 큰저수지를 만들어 놓을 생각으로 저수지 만드는 작업은 5일동안 지속되었다.
투두두두.
말발굽 소리에 노에스에게 작업을 중단시키고 마을로 걸어 갔다. 엘은 두려운지 잘게 떨고 있었다. 엘의 아버지는 징집되어 끌려간 상태다. 이 마을에 남자들이 거의 없는건 전쟁으로 인해 세번의 징집을 당해 남자들이 없는 것이다. 엘이 그때의 상황을 기억하고 있는지 말발굽 소리를 듣고는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마을로 접근하자 열려 있는 목책문으로 이미 들어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어떤 자들이 온것인지 알아 보기 위해 엘을 안고는 경공을 시전해 목책을 뛰어 넘어 마을로 들어 갔다. 용병들로 보이는 자들 아홉명이 말을 타고 마을에 들어서 롱소드나 도끼, 창을 들고는 마을 사람들을 포위한 상태로 놈들은 구워 놓은 빵을 모두 한개씩 먹고 있는 중이었다.
저벅저벅.
"네놈들은 누구냐?"
"마, 마법사?"
"누군데 내 빵을 훔쳐 먹는거냐?"
천후의 말에 놈들이 즉시 마을 사람들 목에 무기를 들이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을 인질로 천후를 협박할 생각인듯 같았다.
"감히!! 사이킥 홀드!"
아홉명을 한꺼번에 움직이지 못하게 구속해 버렸다.
"알리! 놈들은 움직이지 못하니까 무기를 모두 빼았아."
"예? 아 ,알겠습니다."
성인인 알리가 다른 남자들에게 눈짓하자 모두가 달려 들어 용병들의 무기를 수거해 버리자 놈들은 당황하며 벌벌 떨었다.
"놈들을 한쪽으로 모아라."
완전히 굳어 있는 놈들을 알리 일행이 한곳에 모았다. 놈들은 묻는 말에 술술 불었다. 전쟁으로 인해 의뢰가 전혀 없어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 놈들은 마적질을 하고 있었다. 가르보아 왕국의 거의 모든 영지 마을은 남자들이 강제로 징집되어 전장으로 끌려간 상태다.
용병들에게 있어 텅빈 마을이나 마찮가지다. 그런 마을들을 돌아 다니며 습격해 식량을 구해 연명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들에게 판결을 내려야 한다. 영주성으로 끌고 가면 가차없이 목이 베여 질것이지만 끌고 가기는 귀찮았다.
"네놈들은 오늘부터 이 마을의 일을 도와야 한다. 도주하고 싶은 놈은 언제든지 도주해라. 네놈들의 몸에는 추적 마법이 걸려 있다. 추적 마법을 피할수 있다면 도주해도 상관없다. 단, 잡힌다면 그 자리에서 목을 베어 버린다."
이미 놈들도 자신이 마법사라고 눈치채고 있었다. 협박을 한 이상 도주할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할것이다.
"따라 와라."
놈들을 데리고 저수지를 만드는 곳으로 향했다. 우락부락한 용병 아홉명이 엉거주춤 뒤를 따라 오자 엘이 무서워했다.
"얼굴 펴! 앞으로 엘이 너희들을 보고 조금이라도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인다면 각오해."
당장 용병놈들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지만 그게 오히려 엘의 두려움을 부채질하는 결과를 나았다.
퍼퍼퍼퍼퍽!!!
"윽!"
"악!"
"컥!"
사이킥 핸드를 시전해 놈들의 얼굴을 모두 후려쳤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로 얼굴을 감싸는 놈들은 경악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얼굴 펴고 제대로 웃어!"
놈들은 울상을 짓고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는지 웃는지 어색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 얼굴이 웃겼는지 엘은 킥킥거리며 웃었다.
"앞으로도 그렇게 웃어!"
저수지 공사장에 도착해 놈들이 보는 앞에서 노에스에게 저수지를 계속 파라고 지시했다. 땅이 푹푹 파여 들어 가는걸 본 놈들이 입을 쩍 벌리는 한편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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