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거래
15화.
"나하고 거래하지 않겠느냐?"
"거래요?"
거래라는 말에 눈이 큰 마법사 소녀의 큰눈망울이 더욱 커지며 당황하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제안일것이다.
"내게 포션이 많이 있다. 그 포션에 네 마나를 불어 넣어 피가 굳지 않게 해주면 포션 절반을 주겠다."
"......"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인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포션이라면 트롤 피를 정제해 작은병에 넣은 붉은 액체를 말한다. 그런 포션의 피는 당연히 굳지 않은 상태다.
"내가 가지고 있는 포션은 정제를 한 상태다. 하지만 마나를 불어 넣지 못해 마법 주머니에만 보관하고 있거든. 곧바로 사용하면 문제는 없지만 누구에게 팔거나 줄수가 없어."
"그런 포션이 있다고요? 일단 보여 주세요."
물주머니에 가득 들어 있는 포션을 캐논의 허락을 받고 작은 접시에 따라 확인을 한 마법사 소녀는 이번에도 눈이 동그래지고 있었다.
"이건 누가 정제를 한거죠?"
"그건 말해 줄수 없어."
"굉장한 포션이에요. 어떻게 독성이 전혀 없는거죠? 최상급 포션이에요."
최상급 포션이라는 말에 캐논도 놀랐다. 독성이란건 마기를 말한다. 시간과 공을 들여 마기를 제거하는 일은 마법사들 보다 신관들이 전매 특허나 마찮가지다. 마기와는 상극인 신성력으로 정제한 포션은 마법사들이 제조한 포션보다 비싸다. 최상급 포션도 대부분 신관들이 만든 포션이다. 최상급 포션은 마기가 전혀 없는 순수한 트롤 피와 피가 굳지 않게 신성력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마나나 신성력을 불어 넣는 자의 능력에 따라 포션의 사용 기한이 정해진다. 고서클 마법사나 대신관이 불어 넣는 포션은 수십년은 문제없이 사용할수 있지만 저서클 마법사나 초급 신관이 불어 넣은 포션은 대부분 1~2년 미만이다. 그렇더라도 마법 주머니안에 넣어 놓으면 영구적으로 사용할수 있다. 그래서 마법사나 귀족들은 반드시 마법 주머니안에 포션을 넣어 놓는다.
"이, 이건 제가 마나를 불어 넣을수 없어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스승님을 모시고 올께요."
상점 안쪽으로 들어간 소녀는 잠시후 늙은 노인 한명을 데리고 왔다. 역시 로브를 입고 있었으며 며칠이나 씻지 않았는지 치렁치렁한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다.
"마나의 길을 걷고 있는 4서클 마법사 고스번입니다."
"캐논 드라이브 백작이다."
고스번이라는 노마법사는 젊은 나이에 백작이라는 말에 조금 놀라는 눈치였지만 금새 무표정해졌다. 몰락 귀족이라고 알아 본듯했다. 반말을 해도 아무렇지도 않은듯했다.
"최상급 포션을 가지고 계시다고요?"
"스승님! 이거에요. 확인해 보세요."
작은 접시에 있는 포션에 마나를 불어 넣어 마기가 어느 정도 정제가 되었는지 확인한 고스번은 깜짝 놀랐다.
"이걸 누가 정제한 겁니까?"
"말해 줄수 없다."
스승에게 그것까진 말해주지 않은것 같았다. 마법사 소녀는 엘시라는 이름이었다. 이제 갓 1서클 고리를 만든 초보 마법사였다.
"이 포션에 마나를 불어 넣어면 포션 절반을 주신다고요?"
"절반이 적다면 거래는 하지 않을꺼다."
"아,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물주머니를 통채로 건네 주었다. 그러자 고스번 마법사는 조심스럽게 받아 들고 안의 포션을 확인하고는 마나를 불어 넣기 시작했다. 힘이 드는지 마나를 불어 넣는 고스번 마법사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헉헉헉! 다 되었습니다."
흠뻑 땀에 젖은 고스번 마법사는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마나를 불어 넣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닌것 같았다.
"고생했어. 그럼 절반을 가져가."
"감사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요."
헐레벌떡 안쪽으로 뛰어 들어간 고스번 마법사는 상자 한개를 들고 왔다. 그 안에는 작은 병들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포션을 병에 채우고 봉인을 했다. 모두 27병이었다. 절반인 13병씩 나누고도 한병이 남은 상태였다.
"한병은 마법 서적을 구입 자금으로 대신하겠다."
테이블 위에 있는 마법 서적을 본 고스번 마법사는 모두 선물로 주겠다고 했다. 그만큼 최상급 포션의 가격이 엄청나다는걸 실감했다.
"고맙다. 다음에도 포션을 가져 오면 거래를 하겠나?"
"이번처럼 최상급 포션입니까?"
"그럴꺼다."
"언제든지 가져 오십시요."
주름이 더욱 깊어질 정도로 환해진 얼굴의 고스번 마법사였다. 그런 고스번 마법사에게 초를 치는 발언을 했다.
"다음에는 이번처럼 절반이나 줄순 없어."
"...그, 그럼 얼마큼이나..."
"음...3할정도? 그리고 마법 기초 서적을 준비해 줘."
"알겠습니다."
마법 상점을 나와 잡화점으로 가서 물주머니를 몇개 구입했다. 트롤 피로 자신은 최상급 포션을 만들수 있다는걸 안 이상 피를 담을 주머니로 구입한 것이다, 샤벨 타이거 가죽을 팔고 마법 주머니의 공간이 넉넉해진 상태다. 식량도 구입해 채워 넣어야 했다. 여관으로 돌아와 나라시덴 상단주에게 샤벨 타이거 가죽은 팔았다고 말해 주었다. 오우거 가죽 경매까지 시간이 남아 돌았다. 마법 상점에서 받은 마법서를 읽어 보았다. '마나의 이해'는 마나의 근원이 무엇인지 설명해 놓은 것이었다. 그런 마나를 이용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게 '마법이란' 서적에 서술해 놓았다. 가장 많은 도움이 된건 '마법 총람'이란 책이었다. 4대 원소를 이용한 마법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놓은 책으로 서클별로 어떤 마법이 존재하며 어떤 모양으로 시전되어 어떤 위력인지 자세하게 설명해 놓아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1, 2서클 마법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마법사가 되기 위해 마법을 공부하는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
"허가해서는 않됩니다. 엘칸트 왕국 상인들에게 길을 열어 준다면 엘칸트 왕국은 저희 왕국의 속사정은 물론 부유한 왕국이 되어 군사력이 증강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길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엘칸트 왕국 상인들이 저희 왕국으로 들어 오면 그들이 뿌리는 자금과 세금으로 영지가 부유해 질겁니다. 또한 저희 왕국 상인들도 엘칸트 왕국으로 들어 갈수 있게 되어 상행이 더욱 활발해져 걷어 들이는 세금도 많아 질겁니다."
프론티아 왕실 회의장에선 두개의 세력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왕실파와 귀족파와의 대립이다. 그런 대립에 프론티아 국왕은 절로 얼굴이 구겨지고 있었다. 몇달전에 왕국 동쪽에 위치하는 엘칸트 왕국에서 리테르먼 왕국으로 상행을 할수 있게끔 길을 열어 달라고 공식으로 부탁을 해 왔다. 그 일로 인해 연일 회의를 열고 있지만 결론에 도달하지도 못한채 서로 언성만 높이고 있을 뿐이다. 어느쪽의 말도 일리가 있어 판단이 어려웠다. 길을 열어 준다면 두개의 왕국 모두 부유해 질것이지만 엘칸트 왕국이 욕심을 부릴지도 모른다. 최종적인 결론은 국왕인 자신이 내려야 한다. 굳이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었다.
"그만! 모두의 말이 맞지만 허가하지 않는걸로 하겠다. 굳이 다른 왕국에 부를 나누어 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더이상 이 일로 심력을 소모하진 마라."
엘칸트 왕국에 통보를 하고 이 일은 끝난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엘칸트 왕국에서 유감을 표하며 국경에 병력이 집결하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 왔다. 강제로 길을 열기로 작정한 것이다. 25년전 프론티아 왕국은 왕권 다툼으로 많은 피해를 입은 상태다. 전대 국왕이셨던 아버님은 많은 귀족들을 숙청했다. 왕권이 바뀌면 으례적인 일이다. 아버님이 서거하고 자신이 왕권을 물려 받은지 겨우 10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내전의 상처는 겨우 수습된 상태지만 또다시 전쟁이 벌어 진다면 큰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이번엔 내전과는 달리 왕국의 운명을 건 대규모 전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다분했다. 그렇다고 이미 거절한 무역로 개방을 철회해 열어 줄수도 없는 노릇이다. 무능한 국왕이라고 귀족들이 자신을 따르지 않을것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예전엔 엘칸트 왕국과 프론티아 왕국 전력은 엇비슷한 상태였지만 내전으로 인해 병력이 줄어든 프론티아 왕국에 비해 현재는 엘칸트 왕국이 조듬 더 우세하다. 그런점까지 파악하고 엘칸트 왕국이 작정하고 전쟁을 할려는것이다. 하지만 길고 짧은건 비교해 봐야 한다. 이대로 싸우 보지도 않고 항복할순 없었다.
"마르티스 후작! 조용히 전쟁을 준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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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미 무역 도시를 나와 몬스터 산맥으로 향했다. 운이 좋으면 트롤을 발견할수 있을 것이다. 트롤을 찾지 못하더라도 덩치가 큰 놈을 잡아 사이킥 연습을 할려고 들어 온것이다. 거대한 오우거를 들어 올려 이동해 사이킥 힘이 담긴 구슬을 녹였었다. 몸속 어디에 구슬이 들어 있으며 얼마나 녹았는지도 모른다. 누구에게 물어 볼수도 없었다. 산맥안으로 들어 가면서 대형 몬스터를 찾고 있었지만 전혀 보이지 않았다. 깊은 산속으로 들어 가야 찾을수 있을것 같았다. 하지만 길을 잃을 수도 있다. 또다시 고생하긴 싫었다. 이럴때 토랑이 있었으면 쉽게 찾을수 있겠다는 생각했지만 토랑은 이 근처에는 없을 것이다. 반대편 산맥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대형 몬스터를 찾을수가 없어 사이킥 연습에 차질이 빚어 지고 있었다.
'제기랄!'
화가 난 캐논은 근처의 커다란 바위를 걷어 찾다. 괜한 화풀이에 발가락만 아팠지만 덕분에 번쩍 떠 오르는 생각에 만세라도 부르고 싶었다.
'이 바위로 연습하면 되잖아.'
대형 몬스터를 잡을려는 이유는 무거운 몬스터 놈을 들어 올려 사이킥 힘을 소모하는 것이다. 이 큰 바위를 들어 올려도 대형 몬스터를 들어 올리는것과 같은 효과를 낼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바위를 상대로 사이킥 훈련을 할수는 없었다. 사이킥 힘을 모두 소진한 상태에서 몬스터의 습격을 받는다면 낭패였기 때문이다. 푸미 무역 도시 근처로 내려 갔다. 근처에서 큰바위를 찾아야 했다. 훈련을 할만한 크기의 바위는 보이지 않았다.
'저 절벽을 떼어내자.'
어쩔수가 없었다. 몬스터 산맥 언저리에 높은 절벽이 있었다. 그 일부를 떼어낸 바위로 사이킥 훈련을 할 생각이다.
"떠 올라라!"
둥실.
절벽위로 훌훌 날아갔다. 절벽위는 평평한 편으로 뒤쪽은 흙으로 뒤덮혀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앞쪽의 바위를 잘라내야 한다.
"파여라!"
다른 사람들 눈이 없을땐 굳이 사이킥이라는 말을 넣지 않는다. 마법처럼 보이기 위해 사이킥 OO라고 집어 넣어 마법을 발휘한다고 착각하게 했었다. 절벽위 바위가 '가가각'이라는 소리와 함께 움푹 파여 들어 갔다. 일미터 간격으로 절벽위 바위에 구멍을 파고 물을 채워 넣었다. 이젠 물을 얼려야 한다. 물을 얼리면 팽창력으로 바위가 갈라진다.
쩡! 쩌저저저.
구멍속의 물이 얼기 시작하자 굉음과 함께 바위에 금이 가고 있었다. 절벽을 떼어낸 바위 덩어리가 아래쪽으로 무너 진다면 산산이 부서질것이다. 땅에 닿기전에 사이킥으로 들어 올려 온전한 크기로 내려 놓고 훈련에 사용해야 한다. 서서히 바위가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한번 기울기 시작한 바위는 점점 가속도가 붙어 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급격하게 기울어지진 않았다. 지금 들어 올려야 한다.
"떠 올라라!!"
기울어지고 있는 절벽을 떼어낸 거대한 바위 덩어리가 멈춘 상태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머리에 엄청난 두통이 밀려 왔다.
'크...으으...크으...'
머리가 깨질듯이 밀려 오는 두통에 너무 욕심을 부린것으로 생각되었다. 절벽의 바위를 너무 크게 떼어낸 것이다. 머리속의 무언가가 순식간에 쭉 빨려 나가는 느낌이었다. 흔들리고 있는 바위는 여전히 공중으로 떠 오르진 않고 멈춘 상태로 정신력의 한계에 도달했는지 정신이 아득해 질려는 순간 배와 가슴의 경계를 이루는 양쪽 갈비뼈가 맞물리는 정중앙에서 시작된 서늘한 기운이 가슴을 타고 올라 머리속으로 들어 오고 있었다. 몸속 어딘가에 구슬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처음으로 어디에 있는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들어 오는 기운보다 나가는 기운이 더 많아 도저히 버틸수가 없어 사이킥 힘을 해제시켰다.
털썩.
"학학학학학!"
바닥에 주저 앉아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을때 거대한 바위가 빠른 속도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꽈치지직.
쿠웅.
쩌저엉.
기울어진 바위가 땅밑으로 추락했는지 굉음이 들려 오며 무언가가 갈라지는 소리도 들려왔다.
엉금엉금.
바위위를 기어 아래쪽을 내려 보자 나무들을 쓰러 뜨린 거대한 바위가 몇개로 갈라져 있었다. 게중에 가장 큰 바위는 오우거의 서너배는 될법했다. 저렇게 거대한 바위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는 것에 스스로가 놀랐다. 추락한 바위를 확인하고 절벽위 바위에 드러 누웠다. 한동안 안정을 취해야 했다.
푸미 무역 도시에 한가지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몬스터 산맥 초입에 있는 절벽에 골렘들이 등장한다는 소문이다. 바위들이 저절로 움직이는 모양이 바위 골렘이라며 프레임 자작이 직접 조사를 하러 왔지만 아무것도 발견할수가 없어 헛소문이라고 치부하게 되었지만 바위들이 움직이는 것을 직접 본 자들은 헛소문이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프레임 자작이 소문을 퍼뜨리는 자들을 잡아 들이기 시작하자 소문은 점점 사라져갔다. 경매를 하루 앞두고 사이킥 훈련을 중지하고 여관으로 돌아 갔다. 묵었었던 여관에는 빈방이 없어 다른 여관을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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